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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교육부 이야기/부모의 지혜 나눔

허수아비 팔 벌려 웃음 짓고

대한민국 교육부 2013. 10. 27. 13:00

어린 시절 가을이면 코스모스에 내려앉은 잠자리 잡아서 시집 보내며 등교했습니다. 돌아올 때는 논둑길 따라 허수아비매달아 놓은 줄을 흔들어 요란한 깡통 소리를 내야 했습니다. 걸어서 10분도 안 걸리는 거리를 우리 논을 돌아서 오느라 1시간이 걸리곤 했기 때문에 짜증이 나기도 했습니다. 새들도 약아서 도망가는 척만 할 뿐 되돌아와서 허수아비는 무용지물이었습니다. 중학생이 될 무렵 허수아비는 사라지고 반짝이는 색 테이프를 사서 논에 바둑판처럼 둘러치기도 했습니다. 위험하게 진동 파를 보내는 장치를 설치하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그마저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축제가 참 많은 진주. 시끌벅적한 곳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아이들과 추억도 나누고, 사라지는 농경문화에 대한 얘기도 나누고 싶어서 인근 문산 허수아비 축제를 찾았습니다.

 

문산 허수아비에는 재미있는 전설이 있습니다. 예로부터 이곳은 영천강에 의한 퇴적토가 충분히 형성되어 모든 작물이 잘되는 비옥토여서 마을 사람 모두가 풍족하게 살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두산리에서 개양역으로 넘어가는 골짜기에 외지에서 도둑들이 들어와 낟가리를 훔쳐가곤 했답니다. 이에 마을 사람들이 의논하여 허수아비를 많이 만들어 모닥불을 쌓아 놓으니 도둑들이 겁을 먹고 도망갔다고 합니다. 강강술래 유래와 비슷한 면이 있죠. 마침 체험활동 나온 어린이집 친구들에게 이 얘기를 해 주니 장승 앞에서 우리 마을은 우리가 지킨다는 용사 자세를 취해 줍니다.

원래 허수아비농작물을 쪼아먹는 새들을 쫓기 위한 목적으로 사람이나 동물 모양을 만들어 논밭에 세워 두는 조형물을 말합니다. 예전에는 나무 막대를 십자 모양으로 만들어 짚으로 속을 채우고 헌 옷가지를 입혔습니다. 한복에서 일상복으로 진화했습니다.

큰아들맨 앞 허수아비가 좀비 같아서 제일 무섭답니다제구실 못 하는 사람허수아비라고도 하고, 사극에서 해코지할 때 주로 쓰여서 조금 섬뜩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체험장으로 향했습니다. 잠자리 만들기, 투호, 굴렁쇠 체험이 있습니다. 짚으로 허수아비도 만들어 보고 싶었는데 없습니다. 농경문화의 변천사를 보여주는 자료나 짚으로 만들 수 있는 여러 가지 생필품-가마니, 멍석, 망태, 짚신, 소쿠리 등-도 보고, 새끼도 한번 꼬아보고 싶었는데 너무 많은 걸 바랐나 봅니다. 주말에는 제법 많이 한다고는 하나 조금 특색있는 활동을 기대했던 저로선 아쉬웠습니다.

문산농협 농가주부 연합에서 배, 단감 시식행사를 했습니다. 감은 곶감이나 홍시로 먹거나 이른 가을에는 우린감으로 먹는 걸로만 알았던 제게 단감새로운 과일이었습니다. 푸근한 시골 인심으로 맘껏 먹으라 자꾸 권하시는 바람에 배가 불룩해졌습니다. 주문하면 택배로 보내 준다고 합니다. 블로그나 웹사이트도 없고 명함 보고 주문한다는데 제가 간 날은 그것마저 동났다고 합니다.

 

손수레에 배를 싣고 내려오는 아주머니를 만나서 파시라고 했더니 낙과여서 배즙으로 만들어 가족끼리 먹을 거라 안된다고 하십니다. 상품이 아니니 돈을 받을 수는 없다며 그중 제일 크고 맛있는 걸로 몇 개 주십니다. 다 큰 아이들 보고 "집에 가서 새댁이 애들이랑 그냥 깎아 먹어." 하십니다. 60대는 청년이요, 70대는 장년 80대는 되어야 노년 축에 드니 40대 저는 새댁이라고 하십니다. 젊은이는 떠나고, 노인만 남은 데다 쌀농사는 돈이 안 되니 시설작물에 주력한다고 합니다. 불과 20~30년 전만 하여도 농자 천하지대본(農者 天下之大本)이라 하여 긍지와 자부심을 가졌던 농촌의 모습달라졌습니다.

이른 봄부터 주민들이 열심히 가꾼 박 터널을 구경했습니다. 흥부가에 나오는 일반 박뿐만 아니라 크고 신기한 모양의 박이 많습니다. 초가집 지붕에서 박 넝쿨은 비바람에 단단히 동여매는 역할을 하고, 이렇게 터널로 만들어 놓으니 그늘이 됩니다. 여물기 전 박 속은 나물로 먹고, 단단해지면 바가지로 쓰여 버릴 것 하나 없습니다. 유치원 친구들과 "금 나와라. 뚝딱! 은 나와라. 뚝딱!" 하며 지나갔습니다. 큰아들은 장단 맞추는 막내가 유치원생과 정신 연령이 같다며 놀립니다.


박 터널을 한 바퀴 돌고 연꽃이 만발한 연못으로 갔습니다. 손주 손잡고 나들이 나온 할머니, 유모차 끌고 온 젊은 부부가 보입니다. 사진 한 장 찍자고 하니 기꺼이 모델이 되어 주십니다. 저 멀리 들판에 코스모스가 만발했습니다. 전망대에 올라가니 저도 여신이 된 듯합니다. 유휴지를 활용하여 멋진 정원을 만들었습니다.

행사장을 걸어서 둘러보는데 2시간 남짓 걸렸습니다. 체험거리가 있었다면 한나절을 보낼 수 있었는데 아쉬웠습니다. 농경문화에 대한 고찰도 부족했고, 지역 경제 활성화를 기할 수 있는 축제가 열렸음에도 활용하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까웠습니다.

돌아와서 인터넷을 통해 농경문화 물건도 살펴보고, 풍속화도 봤습니다. 아이들에게는 직접 농사를 짓지 않아도 땀의 소중함과 작은 것 하나에도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갖자고 얘기해 줬습니다. 고리타분했을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잠시 일상의 번잡함을 벗어나 시골 길 걸으며 사색에 잠겨 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올해 문산 허수아비 축제의 주제"느껴 봐요! 옛 정서를. 함께 해요! 우리의 추억을."이었습니다. 기대했던 분위기와 달라 조금 아쉬웠습니다. 문산 허수아비 축제는 매년 9월 말에서 10월 초에 열립니다. 내년에는 더 풍성한 체험과 농산물로 찾아오리라 기대합니다. 있는 그대로의 시골 모습을 느끼고, 아이들과 추억을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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