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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해상무역

대한민국 교육부 2015. 7. 31. 14:47


신라의 해상무역 



■ 해외에서 찾은 신라의 흔적

신라는 동해바다에 인접해 있었고, 이를 통해 활발한 해상무역을 진행했습니다. 이러한 해상활동을 가능하게 했던 것은 뛰어난 성능의 배와 항해술, 그리고 새로운 세계로 진출하고자하는 굳은 의지 때문이었습니다. 이렇게 해상무역을 통해 다른 나라와 활발한 교역을 했던 신라의 역사적 사실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의 고문서 등에서도 나타나있습니다. 이러한 다른 나라의 오래된 기록에서 보면 신라는 금이 넘쳐나는 황금의 나라로서 자신들과 생김새가 다른 이들을 포용하는, 자유롭고 개방적인 성격을 지닌 매력적인 나라였다고 합니다.


신라의 모습을 관심 있게 연구한 학자들 사이에서는 신라가 동서양의 잇는 무역로였던 실크로드의 동쪽 끝이었다는 주장을 합니다. 그리 생각해보면 신라는 결코 작은 나라가 아닌 동해를 넘나드는 수많은 배를 통해 다른 나라의 문화를 받아들이고, 그것을 자기의 것으로 만들어 빛나는 문화를 가졌던 무역 강대국이자 문화 강대국이었습니다.



■ 처용은 서역인?

신라가 해상을 통해 다른 나라와 교역을 했을 것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나타내는 자료 중 하나는 바로 삼국유사에 기록된 처용설화인데요.


▲처용설화(출처: 에듀넷)


이 처용설화에 나타난 처용의 얼굴 모습이 일반적인 우리 민족의 얼굴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 입니다. 까만 얼굴에 푹 들어간 큰 눈과 높은 코는 신라 사람이라기보다는 서역인(아라비아인)과 비슷합니다. 이처럼 동해 바다에서 왔다는 처용 설화에 대한 해석과 처용 탈에 나타난 처용의 모습을 보고 학자들은 처용이 서역인이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처용탈을 쓰고 처용무를 추는 모습(출처: 에듀넷)


이러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문화재로 신라 원성왕의 무덤이라고 짐작되어지는 괘릉의 서역인상을 예로 듭니다. 괘릉에는 무덤을 지키는 신하의 모습이 조각된 석상들이 있는데 그 중 곱슬한 머리카락과 수염, 큰 코와 부리부리한 눈을 가진 옛날 서역인의 모습을 한 서역인의 상이 있습니다. 이 서역인상으로 미루어볼 때 신라는 서역인들이 자주 왕래하고 살기도 하였던 나라였을 것입니다. 


▲서역인의 상(출처: 에듀넷)



■ 발굴 과정에서 드러난 교역의 흔적 

신라가 다른 다라와 교역했다는 역사적 사실은 신라의 유물에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신라의 유적인 천마총에서는 수없이 많은 유물들이 쏟아져 나왔고, 이 중에는 유리잔도 있었는데, 유리잔의 성분과 모양 등을 정밀하게 연구한 결과 천마총에서 나온 이 유리잔은 신라가 만든 것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또 다른 신라의 유적인 황남대총에서도 손상된 유리잔을 금속실로 이어둔 유리잔이 발굴되었는데, 이 역시 신라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처럼 신라 고분에서 왕과 같이 매장된 수많은 보물들 중에 유리잔이 있었다는 것과 손상된 유리잔을 금속실로 이어 더 이상의 손상을 막으려 했다는 점을 보면 신라가 얼마나 유리잔을 소중히 여겼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또한 천마총이나 황남대총 등에서 발굴된 유리잔은 신라 왕릉에서만 발견이 되었으며, 이 두 유리잔들은 신라를 왕래했던 서역인을 포함하여 다른 나라 사람의 손에 들려져 왔을 것이라 추측되어집니다. 


 

▲천마총 유리잔(출처: 국립중앙박물관)                 ▲황남대총 유리잔(출처: 국립중앙박물관) 


다른 예로, 신라의 유적 중 하나인 계림 14호분에서는 황금보검이 발굴되었습니다. 이 황금보검 역시 금으로 만들어졌지만 만들어진 방식 등은 신라의 기술이 아니었습니다. 금을 눌러 장식하고 다른 보석을 박는 등 황금보검은 그 생김새가 매우 화려하고 아름다웠는데, 이와 비슷한 제작 방법과 모습을 보이는 것은 서역이었습니다. 이 황금보검이 어디서 만들어졌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흑해 연안이나 중앙아시아 어느 지역에서 만들어졌을 것이라 예측되고 있습니다. 


▲계림로 14호 무덤 황금보검(출처: 문화재청 헤리티지채널)


만약 위의 유물들이 육지의 길을 따라왔다면 고구려나 백제 등에서도 발견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신라의 고분에서만 나온 이 유리잔들은 어떤 의미일까요? 그것은 바로 신라가 해상무역을 통해 활발하게 다른 나라와 왕래했다는 의미입니다. 



[자료출처: 에듀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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