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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사에 열정이 없는 철수

대한민국 교육부 2018. 4. 11. 17:49

  철수(가명)는 고등학교 1학년인데, 매사에 열정이 없습니다. 공부하다가 백일몽에 사로잡히기도 하고, 숙제 마감 날짜를 깜빡 놓치기도 합니다. 중학교 때는 중간 정도의 성적이었지만 고등학교에 들어와서 점점 조밀해지는 시간표와 일정을 따라가기 벅차서 걱정이 심해진 나머지 우울증 증세를 보였습니다. 몇 군데 병원을 다녀온 뒤 항우울제를 복용하기 시작하면서 없던 활기마저 더 떨어졌습니다. 교실 뒤편에 앉아 멍하니 벽을 바라보며 온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그럴수록 다리를 떨기도 하면서 안절부절했습니다. 학과 성적을 보면 영어와 국어는 보통인데 수학과 과학은 형편없어 한 마디로 하위권입니다. 이대로 가면 문제가 생길 것 같아 어머니를 학교에 모시고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철수의 진단

어머니는 철수에게 큰 기대를 걸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아빠가 사업을 하시다가 몇 년 전에 물려받은 재산을 다 없애자 가족들은 힘겨운 생활로 접어들었고, 그래선지 날마다 철수에게 마음을 단단히 하고 공부를 열심히 잘하라는 말씀을 자장가처럼 들려주셨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훈계를 하셨겠지만 사실은 자신의 우울증을 푸는 통로로 아들을 사용한 셈이어서 아들마저 우울증에 걸렸으니 대가는 혹독했습니다. 필자는 먼저 어머니에게 매일 저녁 아들에게 우리 가문이 얼마나 훌륭한 가문이었는지 그리고 아들이 반드시 이 가문을 부흥시켜야 한다는 당부의 말씀을 그만두셨으면 하고 부탁했습니다. 좋은 말씀이긴 하지만 아이가 감당하기엔 매우 벅차기 때문입니다.

철수는 지능검사로는 정상이었지만 심리검사에 따르면 대인관계와 현실 적응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필자는 이 부분을 좀 더 탐색하려고 그림검사와 문장완성검사를 하면서 철수와 얘기를 나눴습니다. 철수는 그림검사에서 여러 채의 집이 있는 마을과 뒷산을 그렸습니다. 그러고 나서 마을과 뒷산 사이에 나뭇가지가 마을 쪽으로 휘어진 소나무를 그렸습니다. 무슨 뜻일까요? 마을이라는 현실 공간과 뒷산이라는 나만의 공간을 구분하고, 두 세계 사이에 걸쳐있는 소나무가 자신이라는 뜻입니다.

이런 아이들은 분열적인 성격이어서 세상과 자신 사이에 뻘쭘한 거리를 둔 현실이 지악스레 가까이 오는 것도 피곤하고, 멀리 가버리는 것도 싫은, 현실의 참여자가 되기보다 관찰자가 되는 것을 좋아하는, 그래서 공부도 하다 말다 하는 주변인입니다. 문장완성검사에서도 ‘내가 원하는 것은 무인도에 가서 낮이면 파란 풀밭에서 책을 읽고, 밤이면 별과 함께 잠들고 싶다.’고 했는데, 이런 아이들은 친구도 그다지 필요 없습니다. 현실을 반만 살고 자신의 세계에서 반을 삽니다

 

 철수의 지도

철수는 자신이 게으르고 공부를 못한다고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에게 뒷산처럼 독특한 자기만의 사유공간이 있고, 거기 자주 빠져들다가 현실을 놓치고 공부를 망가뜨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릴 적부터 남달리 호기심이 많고 여러 가지 일들을 구경하기 좋아했지만 그저 아이디어 뱅크였을 뿐, 그것을 성적 향상이나 현실적 이익과 연결하는 일은 드물었던 게 자신의 약점인 걸 알아차리기 시작했습니다.

두 세계 중 자신만의 사유공간이 더 매력적이고, 그래서 오래 거기 머무느라 현실을 재미없게 생각했고, 마치 스님이 어쩌다 하산하듯 세상으로 내려왔고, 그 때문에 현실을 놓쳐서 생기는 피해를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자기 세계를 간직하면서도 현실을 외면하지 않을 만한 거리를 만드는 것입니다. 철수는 이런 식으로 상담을 통해서 자기를 이해했습니다.


그 후, 철수는 행동을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불규칙적으로 먹던 항우울제를 성실히 복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철학 문학 판타지 소설을 읽고 자신만의 환상 영역을 구축하던 습관을 자발적으로 조절해서 시간을 줄였습니다. 수업시간에 자신도 모르게 백일몽으로 접어들 때마다 손목에 맨 노란 고무줄을 튕기면서 속으로 ‘그만!’이라고 외쳤습니다. 그리고 일주일씩 계획을 세워서 살기로 하고, 난생처음 마음을 먹고 플래너 수첩을 사서 쓰기 시작했습니다.

여름방학이 지나고 2학기 중간고사를 치자, 성적이 몰라보게 뛰었습니다. 자신만의 세상도 소중하지만, 객관적인 세상에 적응하는 것도 소중하다는 가치관을 세운 탓입니다. 멋쩍고 말 없던 그에게 하나둘씩 친구들이 생기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입니다.

 

글_ 김 서 규 유신고등학교 진로상담부장교사
출처_행복한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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