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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상에서 가장 과학적인 알파벳, 한글 본문

~2016년 교육부 이야기/신기한 과학세계

지구상에서 가장 과학적인 알파벳, 한글

대한민국 교육부 2010. 11. 2. 09:55
문자의 본질은 약속이다. 인류는 차츰 혀와 성대 근육이 발달하면서 다양한 소리로 의사전달을 하기 시작하고, 이를 기록하기 위해 문자를 개발했다. 초기의 문자는 음성과 필연적인 연관이 있지는 않았다. 쐐기문자, 상형문자 등 고대 문자에서는 음가보다 뜻을 중요시하는 경향이 보인다. 그러다 음가를 그대로 표시하는 데 문자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 알파벳 등의 표음문자다.

문자의 출현 과정에서 보듯, 문자는 소리를 그대로 투영한 기호가 아니다. 어디까지나 ‘이러한 모양은 이렇게 읽자’고 약속한 기호 체계다. 라틴 알파벳도 약속이고, 한자도 약속이고, 일본 문자인 히라가나와 가타카나도 약속이고, 세종대왕이 창제한 훈민정음도 약속이다.

오랜 시간 동안 구성원들이 공유한 약속에 따라 문자를 쓰고 있기 때문에 그 약속을 배운 사람들은 모두 그 문자를 잘 쓰고 이해한다. 문자마다 장단점이 있고 언어권마다 표현 방식이나 문법 등이 달라서 문자에 우열을 두기란 어렵다. 어떤 언어든 의사소통과 기록이라는 본연의 기능은 충실하게 수행하기 때문이다. 그러함에도 한글이 특별히 더 ‘과학적’이라고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세종 28년(1446) 창제된 훈민정음의 해설서, 훈민정음 해례본

 

한글의 과학성의 핵심은 그 논리성과 실용성에 있다. 한글을 칭송하는 외국의 언어학자들이 강조하는 부분도 바로 논리적이고 배우기 쉽다는 것이다. 네덜란드 라이덴학의 언어학자 포스 교수는 “한국인들은 세계에서 가장 좋은 알파벳을 발명했다. 한글은 간단하면서도 논리적이며, 게다가 고도의 과학적인 방법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분명하다”며 한글의 과학성을 강조했다.

독일 함부르크대의 한국학자 베르너 잣세는 한글의 과학성을 실용성과 연관시켜 파악한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이렇게 전한다.

“처음 볼 때는 한글이 어렵다고 느꼈지만 실제로 배워보니까 하루 만에 익힐 수 있었다. 특히 한글 글자 모양이 입 모양이나 발음 모양을 본떠서 만들었다는 사실이 인상적이었다. 열 살도 안 된 우리 아이들도 취미로 한글을 금세 깨우치고 나서는 자기들끼리 비밀 편지를 쓸 때 한글을 쓴다. 독일어를 한글로 적는 것이다. 그만큼 한글은 쉽게 익혀서 쓸 수 있는 글자다.”



   과학적 근거가 분명한 한글의 제자 원리
 

한글의 창제 원리에 관한 이야기는 여러가지가 있다. 혹자는 창호지를 보고 모양을 본땄다고 하고, 혹자는 산스크리스트어에서, 혹자는 몽고의 파스파문자를 참고하여 글자모양을 만들었다고 추측한다. 이처럼 흥미로운 가설이 많지만, 어디까지나 처음 문자의 모양을 생각해 낸 계기만을 추측한 것일 뿐이다. 세종은 ‘훈민정음 해례본’에 한글의 제자 원리를 글로 분명하게 밝혀, 자음은 발음기관의 모양을, 모음은 세계의 근간인 천지인(天地人) 3재(才)를 본땄다는 것이 지금의 정설이다.

한글의 과학성을 논할 때 가장 먼저 언급하는 점이 발음 기관의 모양을 본뜬 글자 모양이다. 우주의 시작이건, 만물의 시작이건, 도량의 시작이건 간에 그 근간이 논리적이어야 한다. 알파벳은 각 글자가 어떤 연유로 생겼고, 또 글자 체계의 구성 원리가 불분명하다. 그 어느 문자도 한글처럼 명징하고 확실한 제자(製字) 원리를 제시하는 문자가 없다. 발음기관은 음성이 나는 원천으로서 ‘최초’의 논리성과 물리적인 근거를 확실하게 부여한다. ‘훈민정음 해례본’이 이를 어떻게 명시했는지 보자.

“어금닛소리 글자인 ㄱ은 혀의 안쪽이 목구멍을 닫는 모양을 본떴다.”
“혓소리 글자인 ㄴ은 혀끝이 윗잇몸에 붙는 모양을 본떴다.”
“입술소리 글자인 ㅁ은 입의 모양을 본떴다.”
“잇소리 글자인 ㅅ은 이의 모양을 본떴다.”
“목청소리 글자인 ㅇ은 목구멍의 모양을 본떴다.”

여기서 어금닛소리, 혓소리, 입술소리, 잇소리, 목청소리 이 다섯 소리가 입에서 나는 모든 자음 소리의 기본이다. 이 다섯 글자꼴 중 어금닛소리 ㄱ과 ㄴ은 입 속 혀의 작용을 본뜬 것이고, 입술소리 ㅁ, 잇소리 ㅅ, 목청소리 ㅇ은 각각 발음을 내는 입술, 치아, 목구멍의 모습을 본뜬 것이다. 한편으로 이 5개 음이 모든 소리의 기본이 된다고 하여 전통적인 5행(五行)사상을 반영한다.
 

최근 한글은 인도네시아의 소수민족, 찌아찌아족의 공식 문자로 채택되었다. 사진은 한글 수출 홍보관

 
바로 이 부분이 이전의 그 어느 문자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과학성의 근간이다. 물론 다른 언어권에 발음기관을 본뜬 문자가 없는 것은 아니다. 전화기 발명으로 유명한 벨의 아버지 알렉산더 멜빌 벨(1819~1905)이 19세기 후반에 농아를 위한 문자로 발음기관을 본뜬 문자를 고안한 바 있다. 그러나 이는 특수한 상황에서만 사용하는 대체 문자일 뿐, 온전한 문자는 아니다.

자음이 발음기관의 모양이라는 물리적인 실체에 근거했다면 모음 창제에는 우리의 전통 과학 사유가 오롯이 녹아 있다. 예부터 한민족은 숫자 3을 중히 여겼으며 세계를 구성하는 요소도 하늘, 땅, 인간으로 구분했다. 세종은 한글의 모음 글꼴에 세계의 3요소를 그대로 담았다. ‘·(아래아)’는 둥근 하늘의 모습을, ‘-’는 평편한 땅의 모습을, ‘ㅣ’는 서 있는 사람의 모습을 각각 본떴다. 하늘과 땅이 생기고 그 속에서 인간이 대지에 발을 딛고 생장한다는 이치를 담아 이들이 조화롭게 엮인 모음 11글자가 만들어졌다.

아주 간단한 듯 보이지만 천지인(天·地·人) 3요소를 조합한 모음 글꼴은 매우 심오한 의미를 지닌다. 단순한 사물의 형상이 아닌 추상적인 우주관을 글꼴에 표현해 문자가 세계를 이루는 원리임을 천명했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우주관과 자연관을 간단한 모음의 형상에 온전히 담아낸 재치와 창의력에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체계적인 음운 분석으로 탄생한 모음
 

글꼴의 구성 원리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음운학적 원리다. 흔히 오해하는 바와 달리, 초성-중성-종성으로 구성되는 음소 단위 조합은 세종의 독자적인 업적이 아니다. 한글 창제에서 가장 중요한 원리 중 하나인 음소의 구분은 이미 중국과 몽고의 언어에서 찾아볼 수 있다. 중국어는 한글의 초성과 중성을 합한 성(聲)과 한글의 종성에 해당하는 운(韻)으로 구성됐으며, 몽고의 파스파 문자에서는 중성이 다시 음성학적으로 떨어져 나왔다. 

당시 중국과 몽고에서는 음성학이 꽤 높은 수준으로 발달해 음소와 관련된 연구성과를 다수 내고 있었으며 세종은 그 성과를 숙지해 한글 창제에 반영했다. 그러나 세종은 파스파문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중성인 모음에 독립된 문자를 부여해 한글을 이전 언어와 질적으로 달라지게 했다. 게다가 서로 다른 음소인 초성과 종성의 소리값을 동일한 것으로 간주해 자음으로 통일했다는 것도 한글의 위대한 과학적 성취 중 하나다.

이렇듯 한글은 발음기관의 모양과 전통적인 자연철학에 단단한 근거를 뒀을 뿐 아니라 음운학적인 분석으로 모음을 분리하고 초성과 종성을 동일 소리값으로 묶어 기존의 소리 체계의 수준을 한 차원 높였다. 이런 점 때문에 한글은 단순한 인간 사이의 의사소통의 약속이란 차원을 넘어선 ‘과학적인 문자’가 된 것이다. 어언 564돌을 맞은 한글. 항상 사용해서 그 가치를 잊곤 하는 한글에서 선조들의 지혜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글 신동원(KAIST 인문사회과학과 교수) 사진 동아일보 DB
 교과부 과학기술 매거진  S&T 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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