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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교편을 놓으려고 합니다

대한민국 교육부 2010. 11. 12. 07:00


아래의 두 그림은 윤승운 화백의 '맹꽁이서당'입니다.


 
   1. 兩面(양면)
 
  
참 재미있는 그림이지요?
반성문을 들거나 빵점짜리 시험지를 들고 벌을 서는 학생들과 그런 모습을 고소해하며 훈장님 뒤에서 킥킥대는 친구들. 무슨 말썽을 피웠는지 화가 난 훈장님의 회초리를 피해 걸음아 날 살려라고 정신없이 달아나는 녀석들. 곰방대 피우는 훈장님의 넉넉한 미소와 학생들의 익살스러운 표정이 더해져 그림을 보는 내내 입가에 미소가 절로 지어집니다. 음, 고이얀 녀석들 ^^;;
 
자, 그럼 이번에는 다르게 한번 생각해 볼까요?
먼저 왼쪽 그림입니다. 반성문과 빵점짜리 시험지를 들고 벌서는 학생들이 울고 있고 있습니다. 자존심이 상하고 창피하겠지요. 벌주는 선생님은 그저 웃고만 있네요. 훈장님 뒤에서 울고 있는 학생은 앞에서 벌 받고 있는 친한 친구가 걱정되고 마음 아픈 걸까요? 아니면 벌써 혼이 났는지도 모르지요.
   
이번에는 오른쪽. 선생님이 매를 들고서 노발대발 학생들을 쫒아가네요. 죽기 살기로 도망가는 학생들은 어찌나 빠른지 발이 안 보일 정도입니다. 화가 잔뜩 난 선생님께 잡히면 앞일을 예측할 수 없겠죠. 맞거나 기합을 받거나 아니면 부모님을 모셔 와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2. 닮은 꼴
 

어쩌면 예나 지금이나 이렇게 비슷할까요?
서당이 학교로, 훈장님이 선생님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지만 장난꾸러기, 말썽쟁이, 공부 안하는 학생들 그리고 교육과 훈육의 이름으로 매를 들고 쫒아 다니는 선생님의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참으로 많이 닮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버릇없는 학생들(퇴계 이황 선생이 "요즘 애들은 선생을 봐도 공손히 인사를 안 하고 벌러덩 누워 흘깃 보다 말아!"라고 하셨고, 율곡 이이 선생도 "선생님을 보면 인사를 해야지 도망가지 말 것"이라고 기록해 두셨답니다.)도, 체벌에 대한 반대의 시각(조선시대 임금 중종이 "스승이 비록 가르쳐주고 싶어도 유생이 스스로 즐겨 배우지 않는다면, 이는 종아리를 때리고 겁을 주어서 될 일이 아니다."고 하셨죠.)마저도 닮은꼴입니다. 
 
  
 
   3. 나의 초상
 
   
저는 선생님입니다. 그리고 선생님이 되길 잘했다고 매일 생각합니다.
아이들과 웃을 수 있고, 얘기 나눌 수 있고, 함께 고민하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정신없이 혼내고 나서 기죽어 있는 녀석들 보면 나도 뻘쭘하고 속이 상합니다. 그래도 그뿐입니다. 돌아서면 언제 혼났나 싶게 “선생님~~”하며 매달리는 녀석들에게 터덜 웃음을 지을 수 있습니다. 피자나 아이스크림을 쏘아 함께 먹을 때도 있죠.
   
하지만 정말 참을 수 없이 속이 부글거릴 때도 많습니다.
일년내내 연필하나, 공책하나 안 갖고 오지요(오늘 주면 내일 또 없습니다.), 아프다던 놈들이 4~5명씩 떼로 몰려다니며 보건실 간다는 핑계로 화장실에서 놀다 수업 20분쯤 남겨놓고 들어오지요, 자기보다 약한 친구 울려놓고 안 괴롭혔다고 끝끝내 우겨대지요, 물건 뺏지요, 때리지요, 잠수타지요(학교도 꽤 넓어 숨을곳이 많답니다.).......
   
주의, 경고, 뒤로 나가 서있기, 협박(엄마한테 전화 한다~), 반성문, 깜지, 기합, 고문(?), 때리기 등등 알고 있는 훈육의 방법을 다 동원합니다. 화가 머리 끝까지 올라가있는데도 실실 웃으며 분위기 파악 못하는 녀석들이 있으면 ‘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보자’하며 발본색원의 정신(?)까지 새깁니다. 휴....ㅠㅠ
 

 
   4. 초등학교 5학년의 생각
 
 
현재 지도하고 있는 5학년 학생들에게 체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았습니다. 내가 아무리 좋은 의도로 체벌한다 해도 체벌을 당하는 학생들은 할 말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그 학생들의 얘기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습니다. 


 Q  초등학교 1~5학년 까지 체벌(맞거나 기합 받거나 신체적인 처벌을 받은 것)을 받은 경험이 있나요?
 
  네(99%) .................................(고작 1%의 '아니오')
 
 Q   체벌에 대한 자신의 생각은요?
  
승훈이 : 선생님이 부모님께 오늘 잘못한 것을 말씀드리라고 해서 말했다가 아버지께 빠따로 맞았습니다. 그냥 선생님께 맞았으면 한대만 맞았을텐데.......

재식이 : 저는 선생님이 말로해도 되는데 경고도 없이 맞아서  수업시간에는 (맞는 것이 무서워서) 말도 못하겠습니다.

영선이 : 체벌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멍이 들 정도로 심하게 때리면 나도 폭력성을 배우는 것 같다.

지연이 : 체벌은 나쁘다. 똑같이 선생님께 해 주고 싶다. 

채림이 : 아픈 것 보다는 기분이 나쁘다. 왠지 선생님이 우리 교실의 대왕인 것 같다 .

재준이 : 선생님에 대한 신뢰가 조금씩 없어진다.

종현이 : 체벌이 금지되었으면 좋겠다. 매로 때리는 것은 짐승을 길들일 때 쓰는 것이다. 사람은 말을 할 수 있으니까

나영이 : 집에서도 맞고 학교에서도 맞고 학원에서도 맞고......나는 북어인가보다.

혜연이 : 때리는 것은 좋으나 (앞뒤 상황을)다 알고 때리거나  아이들 이야기를 다 듣고 체벌해 주셨으면 좋겠다.
<조사한 날짜 : 2010. 11.08.  위의 학생명은 모두 가명입니다.>
 
 

 
   5. 이제 교편을 놓을 때
 

교편은 조선시대 서당에서 사용하던 회초리를 뜻합니다.
조선시대에 아들을 서당에 맡긴 아버지가 산에서 나무를 할 때 자식을 잘 가르쳐달라는 뜻으로 싸리나무를 한 다발 묶어 훈장에게 전달하는 초달문화(楚撻文化)가 있었다고 합니다. '초달'은 회초리(鞭)를 뜻하는 것으로 이러한 서당의 문화가 우리 교육에 남아 '교직'이 '교편(敎鞭)을 잡다'라고 표현되지요. 체벌의 문화가 우리나라에서 어느 정도 용납이 되는 것도 일정부분 서당의 교편(敎鞭) 문화에서 기인했다고 하는 견해가 있습니다.
 
오늘부터 저는 교편(敎鞭)을 놓으려고 합니다. 놓는다고 생각하니 속은 후련하네요. 대신 한숨이 늘고 흰머리가 급속도로 증가하겠지요. 말로 학생들을 설득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또 말하고 있는 사이 다른 학생들은 진도 대신 자습을 하거나 떠들고 있어야 합니다. 길 잃은 한 마리 양을 찾으러 간 사이 99마리 양이 또다시 길을 헤매게 되는 것처럼.
 
‘unhurriedness(서두르지 않는, 느긋한)’ 해야지요. 교직에 첫발 내 딛을 때 선물 받은 ‘사랑의 매’는 이제 자린고비처럼 교실 한켠에 걸어두고 먹기 아까운 굴비 쳐다보듯 바라보기만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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