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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안의 자식, 날개를 펴지 못하게 하는 부모 본문

~2016년 교육부 이야기/부모의 지혜 나눔

품안의 자식, 날개를 펴지 못하게 하는 부모

대한민국 교육부 2010. 12. 14. 07:00


유치원선생님으로 있으면서 많은 아이들과 학부모님들을 만납니다. 부모님들을 만나 보면 '나중에 나도 저런 부모가 되어야지' 생각이들 만큼 닮고 싶고, 존경스럽기까지한 부모가 있는 반면 '저 부모 처럼은 절대 안돼야지!' 생각 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부모님들을 뵈면 아이의 성향과 행동들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 왜 아이가 짜증이 많고, 투덜거리는지, 반대로 어쩜 이렇게 긍정적일 수 있는지 이제는 부모님을 만나 뵈면 대부분 알 수 있는 능력(?)이 생겼습니다. 부모는 아이의 거울이라 하지요. 

이처럼 아이들에게는 부모의 성향이 매우 중요합니다. 부모가 긍정적이냐, 부정적이냐, 그늘이 많은 사람이냐, 밝은 사람이냐, 소심하냐, 적극적이냐에 따라 아이들도 닮습니다. 선천적 유전 조건을 물려받기도 하지만 부모에게 보고 배운것이니 당연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요즘 가정에는 아이가 하나, 아니면 둘입니다. 갈수록 하나뿐인 가정이 늘어나고 있지요. 부모입장에서는 모든 아이들이 소중하지만 아이가 하나인 집과 여럿 있는 집은 그래도 조금은 차이가 날 수 밖에 없습니다. 

아이를 적게 낳는 대신 많은 아이들이 과잉보호, 과잉애정을 받는 환경에서 자라게 됩니다. 대부분 귀한 공주님, 왕자님 대접을 받고 있지요.

혼자서 자라는 아이는 형제끼리 자라는 아이들이 경험하는 나눔과 배려를 배우기가 힘듭니다. 형제가 없는 아이들은 사랑도 물질도 받기만 하는 것에 길들여 질 수 밖에 없습니다. 부모들이 아이가 스스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독립심을 키워주기 보다 품안에서 날려보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마마보이, 파파걸로 성장한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부모 주위를 맴도는 '어른아이'가 됩니다. 부모들 또한 하늘에서 자식 주위를 맴도는 헬리콥터 부모가 됩니다.




 후불면 날아갈까, 손대면 깨질까, 금지옥엽 내새끼
 

유치원에 다니던 아이 중에 아빠 없이 조부모님과 함께 생활하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가족들은 아빠가 없다는 미안함과 안쓰러움에 아이에게 더 많은 사랑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셨던 모양입니다. 아이가 스스로 하게 하기 보다는 무엇이든 챙겨주시고, 밥도 떠 먹여 주시고, 옷도 입혀 주시고, 용변 본 뒤 뒷마무리도 해주셨던 겁니다.

아이가 지금보다 어렸을때는 괜찮았습니다. 일곱살 쯤 되고 보니 반에서 혼자만 용변처리를 못하는 아이가 되어버린겁니다. 혼자 처리하지 못해 선생님들 부르니 결국 반 아이들에게 놀림을 받게 되었습니다.  아이도 부끄러웠겠지요. 아이는 친구들의 놀림으로 깊은 상처를 받았을 겁니다. 
 
아이들 중에는 어떤 행동을 하기전에 선생님께 항상 물어보고 허락을 받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물을 먹는 것도, 점퍼를 벗는 것도, 그림을 그리다 지우개를 쓰는 것도, 종이에 풀칠 하다 어떤 부분에 칠을 해야하는지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는 아이들입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책을 고를 수도, 자신의 실내화 빨래를 할 수도, 농사일을 도울 수도 있습니다.


아주 사소한 행동에도 언제나 허락받고 행동하는 것이 몸에 베인 것입니다. 놀다가 더워 땀을 뻘뻘 흘리는 아이에게 점퍼를 벗어라고 하면 "엄마가 감기 걸렸다고 벗지 말랬어요"하고 대답합니다. 땀에 옷이 젖으면 감기에 더 해로울텐데도 엄마말은 지킵니다. 하물며 캠프에 가고 싶은지, 가기 싫은지 물어봐도 "엄마한테 물어봐야 해요"하고 대답하는 아이도 있습니다. 자신의 마음보다는 엄마가 시키는 대로 하는 것에 익숙해진 아이들입니다.

아이는 캠프에 가고 싶어 하는데 부모가 안 보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이가 다칠까봐 혹시나 하는 마음에, 불안과 걱정 때문에 보내지 못하시는 겁니다. 아이는 훨훨 날고 싶어 하는데 부모는 아이를 꽁꽁 잡아두려고 합니다. 혹여나 후 불면 날아갈까 손대면 깨질까 금이야 옥이야 금지옥엽입니다.




 남의 자식보다 내 자식만 소중해
 

부모뿐만 아니라 할머니, 할아버지도 그런경우가 있습니다. 예전에 졸업한 아이 할머니 중에 유명한 분이 계셨습니다. 개구장이 남자아이였는데 친구들과 놀다가 다툼이 생겼던 모양입니다. 그러다 서로 한 대씩 주고 받았지요. 집에 돌아온 간 아이는 할머니가 오늘 어떻게 지냈냐며 묻자, 친구에게 맞았다고 미주알고주알 할머니에게 일러바친겁니다. 할머니가 자기편이 되어줄거라는 것을 알았으니까요.

다음날, 할머니가 유치원으로 찾아 오셨습니다. 교실로 오셔서는 손자를 때린 아이의 머리에 꿀밤을 한 대 주시고는 교실을 떠나지 않고, 손자 친구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지켜보고 계시더라는겁니다. 할머니는 선생님께도 "잘 안지켜보고 뭐했냐"고 타박을 주셨지요. 

할머님께 이런저런 사정을 설명해드리고 집으로 돌아가 기다려 달라고 부탁을 해도 쭉 지켜보고 계셨답니다. 선생님은 할머니가 가실때까지 가시방석에서 수업을 하셨답니다. 

내 자식이 소중하면 남의 자식도 소중합니다. 남의 자식도 그 집에서는 소중할텐데, 그 부모가 알았다면 얼마나 화가 났을까요? 부모가 언제까지 따라다니며 아이의 일을 해결해 줄 수는 없습니다. 아이가 조금 더 크면 어떻게 될까요? 언제나 부모 꽁무니만 쫒아 다니는 아이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부모는 어릴 적부터 아이가 스스로 해결하고, 자립심을 키워나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믿음과 기다림으로 아이들을 날아오르게 하자.
 

아이들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스스로 할 수 있는 능력이 충분합니다. 교사인 저도 깜짝 놀랠 때가 한 두번이 아닙니다. 어른들이 믿고 기다려 주면 대부분 아이들이 자신이 가진 능력을 발휘합니다. 하지만 부모의 앞선 걱정으로 아이가 스스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릴 때는 참 안타깝습니다.

갈수록 이런 부모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두 날개를 활짝펴고, 하늘 높이 날아 갈 수 있도록 부모는 마음을 내려놓고 두려움을 버리고, 아이에게 용기와 격려를 주어야 합니다. 
 


절벽 가까이로 나를 부르셔서 다가갔습니다. 
절벽끝에 더 가까이 오라고 하셔서 더 가까이갔습니다. 
그랬더니 절벽에 겨우 발을 붙이고 서 있는 나를 
절벽아래로 밀어버리시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나는 그 절벽아래로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나는 그때까지 내가 날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 로버트슐

스스로 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도록, 그만큼 자신이 대단한 사람임을 아이들은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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