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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외무성의 독도 홍보팜플렛에 대한 반박문1 본문

~2016년 교육부 이야기/주요뉴스('08~'16)

일본 외무성의 독도 홍보팜플렛에 대한 반박문1

대한민국 교육부 2008. 9. 23. 23:31

(일본 외무성 홈페이지에 게시된 독도 홍보팜플렛에 대한 반박문입니다. - 출처: 동북아역사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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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주장
o 일본은 옛날부터 독도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었다.
 - 경위도선을 표시한 일본지도로서 가장 대표적인 나가구보 세키스이(長久保赤水)의 「개정 일본여지노정전도」(1779년) 등 일본의 각종 지도와 문헌이 이를 확인해 주고 있다.

일본 주장의 허구성
o 「개정 일본여지노정전도」는 사찬(私撰)지도로서 1779년 원본에는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 본토와 함께 채색되지 않은 상태로 경위도선 밖에 그려져 있어서 일본 영역 밖의 섬으로 인식하고 있다.

  o 더욱이 일본 해군성의「조선동해안도」(1876년)와 같은 관찬지도들은 오히려 독도를 한국의 영토에 포함시키고 있다.

  o 1696년 도쿠가와(德川) 막부정권이 일본 어민들의 울릉도 도해를 금지한 이후 두 섬에 대한 인식이 흐려져 독도를 마츠시마(松島), 리양코도(リヤンコ島), 랑코도(ランコ島), 다케시마(竹島) 등으로 혼란스럽게 불렀을 뿐만 아니라 지리적 위치도 완전히 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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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 1> 일본 해군성의 조선동해안도(1876년) :
일본 해군성은 독도를 조선의 소속으로 표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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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주장
o 한국이 옛날부터 독도를 인식하고 있었다는 근거는 없다.
 - 한국측이 주장하는 우산도가 독도라는 것을 뒷받침하는 명확한 근거가 없으며, 우산도는 울릉도의 다른 이름이거나 가상의 섬이다 .

일본 주장의 허구성
o 독도는 울릉도에서 육안으로도 바라볼 수 있어서 울릉도에 사람이 거주하기 시작한 때부터 인식할 수 있었다. 이러한 인식의 결과 세종실록지리지(1454년), 신증동국여지승람(1530년), 동국문헌비고(1770년), 만기요람(1808년) 등 한국의 수많은 정부 관찬문서에 독도가 명확히 표기되어 있다.
   - 특히 동국문헌비고(1770년), 만기요람(1808년) 등에는 “울릉도와 우산도는 모두 우산국의 땅이며, 우산도는 일본인들이 말하는 송도(松島)”라고 명백히 기록하고 있다. 송도는 당시 일본인들이 부르는 독도의 명칭이다. 우산도가 독도라는 것을 명확히 알려주고 있다.

  o 2005년 일본 오끼섬에서 발견된 안용복 관련 조사보고서인 「원록9병자년조선주착안일권지각서」(元祿九丙子年朝鮮舟着岸一券之覺書)에는 안용복이 휴대한 지도에 울릉도와 독도를 조선의 강원도에 부속된 섬으로 명기하고 있다. (아래 <자료 5> 참조)

  o 오늘날과 달리 지도제작 기술의 부족으로 고지도 중 독도의 위치나 크기를 잘못 그린 것이 있으나, 이것이 독도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했다는 증거가 되는 것은 아니다.
   - 한국의 고지도는 관찬지도이든 사찬지도이든 언제나 동해에 두 섬, 즉 울릉도와 독도를 함께 그리고 있어 독도의 존재를 명확히 인식하고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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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 2> 울릉도에서 바라본 독도 :
독도는 울릉도로부터 육안 관측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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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주장
o 일본은 울릉도로 건너갈 때의 정박장이나 어채지로 독도를 이용하여 늦어도 17세기 중엽에는 독도의 영유권을 확립했다.
 - 에도(江戶)시대 초기(1618년), 돗토리번의 요나고 주민인 오야(大谷), 무라 카와(村川) 양가는 막부로부터 도해(渡海)면허를 받아 울릉도에서 독점적으로 어업을 하며 전복을 막부에 헌상했다. 독도는 울릉도로 도항하기 위한 항행의 목표나 도중의 정박장으로서, 또 강치나 전복포획의 좋은 어장으로서 자연스럽게 이용되었다.

일본 주장의 허구성
o 도해면허는 내국 섬으로 도항하는 데는 필요가 없는 문서이므로 이는 오히려 일본이 울릉도・독도를 일본의 영토로 인식하지 않고 있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다.

  o 17세기 중엽의 일본 고문서인 『은주시청합기(隱州視聽合記)』(1667년)는 ‘일본의 서북쪽 한계를 오키섬으로 한다''고 기록하여 일본인들 스스로 독도를 자국의 영토에서 제외하고 있다.

  o 1877년 일본 국가최고기관인 태정관은 17세기말 한일간 교섭결과를 토대로 “…품의한 취지의 죽도(竹島, 울릉도)외 일도(一島, 독도)의 건에 대해 일본은 관계가 없다는 것을 명심할 것”이라고 하면서 독도가 일본의 영토가 아님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였다.

  o 한편 일본 외무성도 『조선국교제시말내탐서(朝鮮國交際始末內探書)』(1870년)에서 ‘죽도(울릉도)와 송도(독도)가 조선부속으로 되어 있는 시말’이라는 보고서를 작성하였으므로 송도(독도)가 한국땅임을 자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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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 3> 조선국교제시말내탐서(1870) :
일본 외무성 문서로서 울릉도와 독도를 조선의 영토로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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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주장
o 일본은 17세기말 울릉도 도항을 금지했지만, 독도 도항은 금지하지 않았다.
 - 1696년 울릉도 주변 어업을 둘러싼 한일간의 교섭 결과, 막부는 울릉도로의 도항을 금지했지만, 독도로의 도항을 금지하지는 않았다. 이는 당시부터 일본이 독도를 자국의 영토라고 생각했음이 분명하다.  

일본 주장의 허구성
o 17세기말 일본 막부정권이 울릉도 도항을 금지할 때, ‘죽도(울릉도) 외 돗토리번에 부속된 섬이 있는가’라는 에도 막부의 질문에 대해 돗토리번은 ‘죽도(울릉도), 송도(독도)는 물론 그 밖에 부속된 섬은 없다’고 회답하면서, 울릉도와 독도가 돗토리번 소속이 아님을 밝히고 있다.

  o 또한 일본 자료(오야가(大谷家) 문서)에서 보이는 ‘죽도(울릉도) 내의 송도(독도)’(竹嶋內松嶋), ‘죽도 근변의 송도’(竹島近邊松嶋) 등의 기록이 잘 설명해 주는 바와 같이 ‘독도는 울릉도의 부속도서(屬島)’로 간주되었다. 그러므로 1696년 1월 울릉도 도해금지조치에는 독도 도해금지도 당연히 포함되어 있었다.

  o 도해금지조치 이후 있은 일본의 독도 명칭 혼란은 일본이 독도 도항은 커녕 독도에 대해 제대로 인지조차 못했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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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 4> 일본 태정관 지시문(1877년) :
일본 메이지(明治) 정부의 국가최고기관인 태정관은 17세기말 일본 막부가 내린 울릉도 도해금지조치 등을 근거로 ‘울릉도와 독도가 일본과 관계없다는 것을 명심하라’고 내무성에 지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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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주장
o 한국이 자국 주장의 근거로 인용하는 안용복의 진술 내용에는 많은 의문점이 있다.
 - 안용복의 도일(渡日)활동은 자신의 불법 도일죄를 감하기 위하여 과장한 것으로 일본의 기록과도 부합하지 않기 때문에 사실이 아니다.   

일본 주장의 허구성
o 안용복의 도일활동에 관해서는 조선의 비변사에서도 철저한 조사가 이루어졌으므로 그것을 기록한 조선의 관찬서 기록이 진실이 아니라고 하는 일본측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 또한 일본의 기록에 없는 것이 조선의 기록에 있다고 하여 조선의 기록이 잘못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일본측의 독단에 불과하다.

※ 안용복의 도일활동은 숙종실록, 승정원일기, 동국문헌비고 등 한국의 관찬서와 죽도기사(竹島紀事), 죽도도해유래기발서공(竹島渡海由來記拔書控), 이본백기지(異本伯耆志), 인부연표(因府年表), 죽도고(竹島考) 등 일본 문헌에 기록되어 있다.

  o 안용복의 활동으로 인해 울릉도/독도에 관한 논의가 일본에서 있었으며, 결과적으로 두 섬을 조선의 영토로 인정하게 되었다.
   - 일본측은 안용복 사건으로 양국간에 영토문제가 대두되자 1695년 울릉도/독도가 돗토리번(鳥取藩)에 귀속한 시기를 문의하는 에도막부의 질문에 대해 ‘돗토리번에 속하지 않는다’는 돗토리번의 회답이 있었다.

  o 1696년 1월에 내린 막부의 도해금지령은 같은 해 8월 요나고(米子) 주민에게 전달되었으므로 요나고 주민이 그 기간 독도에 갈 수 있었으므로, 같은 해 5월 울릉도에서 일본인을 만났다는 안용복의 진술을 거짓으로 보는 일본측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

  o 2005년 일본에서 발견된 안용복관련 조사보고서인 「원록9병자년조선주착안일권지각서」(元祿九丙子年朝鮮舟着岸一券之覺書)는 그 말미에 안용복이 휴대한 지도를 참조하여 조선 팔도의 이름을 기술하면서 울릉도와 독도가 강원도에 소속됨을 명기하고 있어 당시 안용복이 독도를 조선 땅이라고 진술한 사실을 명백히 입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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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 5> 1696년 안용복 관련 조사보고서 :
안용복의 2차 도일시 활동상황을 기록한 문서로 ‘죽도’(울릉도), ‘송도’(독도)가 강원도에 속한 조선의 영토임을 명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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