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고도와 그림자

태양의 고도와 그림자

겨울의 햇살을 깊숙이 담아낸 한옥의 처마

■ 한옥에 숨겨 있는 과학 원리

▲ 과학의 원리가 숨어 있는 한옥의 모습(출처: 에듀넷)

한옥은 전통의 멋과 운치가 깃든 우리의 옛 집입니다. 하지만 자연친화적인 한옥이 과학적이란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죠. 가장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것으로 꼽히는 처마는 한옥이 색다른 운치를 자아내게 하는 일등공신입니다. 대개 처마는 폭이 넓으면서 끝으로 갈수록 위쪽으로 살짝 들리는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왜 이런 모습을 한 걸까요. 여기엔 놀라운 과학 원리가 숨어 있습니다.

한옥의 처마는 단순히 집을 멋있게 꾸미려는 생각이 아닌 우리 조상들이 집 안으로 일정량 이상 햇빛이 들어오게 하기 위하여 만든, 즉 태양의 고도를 계산해서 만든 아주 과학적인 지붕이랍니다. 한옥에서 처마가 하는 역할은 비나 눈이 집 안으로 들이치는 것을 막고, 여름철에는 내리쬐는 뜨거운 햇빛을 막아 주며, 겨울철에는 집 안을 따뜻하게 하는 것입니다.

■ 계절마다 다른 태양의 남중고도 

처마가 어떻게 이런 역할을 할 수 있는 걸까요? 그것은 지구의 자전축이 23.5도 기울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기울어진 자전축 때문에 태양의 고도는 여름과 겨울에 47도쯤 차이가 나게 됩니다. 다시 말해 우리나라가 지리적으로 북위 37도 선에 있으므로 자전축이 기울어지지 않았다면 1년 내내 남중고도는 53도가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자전축이 기울어져 있어 여름엔 태양의 남중고도가 53도보다 23.5도 더 높아진 76.5도가 되고 겨울엔 39.5도로 낮아지게 되는 것이지요. 여름에는 햇빛이 수직에 가깝게 비추고 겨울에는 방 안 깊숙이 들어올 만큼 낮은 각도로 완만하게 비추게 되는 거죠. 결국 처마는 태양이 높이 뜨는 여름에는 실내로 들어오는 햇빛 양을 줄여 주고 낮게 뜨는 겨울에는 햇빛을 오래 머물게 할 수 있는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이랍니다.

▲ 여름과 겨울, 태양의 남중고도(출처: 에듀넷)

조금 더 자세히 알아볼까요? 한옥에서 햇빛을 조절하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먼저 지붕의 돌출 길이를 이용하는 것입니다. 처마를 여름 햇빛과 겨울 햇빛의 남중고도 사이에 위치하도록 돌출시키면 여름 햇빛은 튕겨내고 겨울 햇빛은 안으로 들어오게 하는 것이 가능해지게 됩니다. 예를 들어 38도선 지역의 태양의 남중고도는 하지 때 75.5도, 동지 때 28.5도인데 이 사이에 처마가 위치하도록 만드는 방식인 것이지요. 뜨거운 햇빛은 방에 들어오지 못하고 해가 질 때까지 처마에만 머물게 됩니다. 여름에 모자나 파라솔을 써서 햇빛을 가리는 원리로, 한옥의 처마가 길게 늘어진 이유랍니다.

다른 하나는 방의 깊이를 조절하는 방법입니다. 특히 추운 겨울 처마를 통과해 방안으로 들어오는 햇빛의 양을 조절하기 위해 방의 깊이를 얕게 지었답니다.

▲ 한옥의 처마와 태양의 남중고도(출처: 에듀넷)

■ 햇빛을 다스리는 한옥의 처마 

좋은 집은 여름철의 뜨거운 햇빛은 막고, 겨울철의 따뜻한 햇빛은 오래 머무를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합니다. 오랜 세월 이 땅에서 살아온 우리의 선조들은 이러한 자연적인 환경에 알맞은 집으로 처마를 생각해 낸 것입니다. 처마는 이처럼 깊이가 어느 정도인가에 따라 그 역할이 달라질 수 있는데 우리 나라 중부 지방의 경우 대략 넉자(약120㎝) 정도가 알맞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여름에는 이러한 처마의 작용으로 뜨거운 태양에 달구어진 마당 가운데의 기온과 처마 아래의 기온에 상당한 온도 차이가 생기게 되는데, 온도에 차이가 생기면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현상이 바로 대류 현상입니다. 결국 공기의 이동이 생기게 되고 바람이 부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나타나게 되어 시원함까지 느낄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제대로 지은 한옥이 여름에 시원한 이유도 여기에 있답니다.

겨울에는 처마의 작용으로 햇빛이 아침 10시쯤 마당 쪽 끄트머리부터 조금씩 들어오기 시작해 오후 4시쯤이면 방의 안쪽 끝에 정확히 닿게 됩니다. 이렇게 하여 햇빛이 귀한 겨울에도 무려 6시간이나 햇빛이 방 안에 머물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이렇게 한옥에는 햇빛을 다스리는 지혜가 숨어 있습니다. 잘 보존된 한옥을 찾아가 숨어 있는 과학적 원리를 찾아보는 것도 좋겠죠?

[자료출처: 에듀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