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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는 최선의 교육방법 본문
‘개념카드’를 들고 활짝 웃고있는 금가초 5학년 학생들
놀이학습은 강의식 수업보다 시간이 많이 소요되기 때문에 두 교수·학습법이 함께 병행된다. 개념을 설명 중인 이상호 교사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놀이는 최선의 교육방법’이라고 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처럼 신나게 놀면서 공부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가 아닐까?
이상호(50) 충북 금가초 교사는 ‘어떻게 하면 학생들이 즐겁게 공부할 수 있을까’를 항상 고민한다. 그리고 ‘놀이’에서 그 해답을 찾는다. 놀이학습은 게임을 즐기듯 공부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수업을 하는 내내 학생들이 즐거워한다. 20여 년째 놀이연구를 통해 동료교사와 학부모에게 놀이방법을 전파해 온 이 교사는 놀이에 대한 철학이 남다르다.
“놀이는 문화적 성과를 다음 세대에 전해주기 위한 최선의 방식이며 그 안에는 많은 요소들이 응축된 덩어리로 들어있어요.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어떻게 구성원으로 살아가야 하는지, 어떤 마음가짐으로 자아를 형성하고 발전시켜 나갈 것인지에 대해 포괄적인 내용이 응축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교사의 놀이 철학이다.
지난 6월 14일, 사회수업이 한창인 금가초 5학년 교실에 들어서니 왁자지껄하다. “아름다운 이 땅에 금수강산에 단군 할아버지가 터 잡으시고 홍익인간 뜻으로 나라세우니 대대손손 훌륭한 인물도 많아~(중략)” 학생들의 합창소리도 힘차게 들려온다.
선사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 개념을 총정리해 보는 사회과 시간. 이 교사의 비장의 무기가 공개되는 순간이다. 이 시간에 주어진 놀이학습은 일명, ‘개념카드’ 만들기. 이 교사의 역할은 게임의 룰을 소개하고 손바닥 크기의 카드를 학생들에게 나눠주는 정도다. 3~4명으로 구성된 모둠에 빈 카드를 나눠주면 카드에 어떤 내용을 담을지 고민하는 것은 학생들의 몫이다.
개념카드의 룰은 이렇다. 카드 2장이 1세트인데 작성자는 자신만의 아이콘을 카드 한편에 새겨 넣는다. 그리고 나타내고자 하는 개념을 대표하는 2개의 이미지를 카드에 그려 넣는다. 그림으로 정확하게 표현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하단에 개념을 써넣어도 좋다. 이 교사의 설명을 듣고 교과서를 한 장 한 장 넘기며 개념 찾기에 빠진 학생들의 표정이 진지하다. 개념 찾기가 어려운 학생은 모둠원의 도움을 받기도 하고, 이 교사의 설명을 들으며 다시 교과서를 훑다보면 어렵지 않게 시대별로 특징을 찾아낼 수 있다.
“그래 이거야!” 모재영 학생의 탄성이다. “청동기시대에는 미송리식 토기와 탁자모양 고인돌이 있었지. 통일신라시대에는 불교와 관련된 것이 많네.” 모 군은 수업시간에 미처 발견하지 못한 것을 발견했는지 얼굴이 상기되어 있다. 개념카드에 아이콘을 그려 넣고 교과서 속의 사진을 베껴 그림을 그려 넣는다.
이기웅 학생은 한 장의 카드에 강감찬 장군을, 또 한 장의 카드에 서희의 얼굴을 그려 넣었다. 아무리 살펴봐도 그림만으로는 두 사람을 구분하는 게 쉽지 않았던지 카드 하단에 강감찬과 서희의 이름도 써넣었다. 이 군은 “강감찬 장군은 귀주대첩을 승리로 이끈 고려시대 명장이고, 서희는 외교로써 거란을 물리친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인물”이라고 설명한다.
개념카드가 완성되면 이젠 마음껏 놀이를 즐길 차례다. 모둠별로 개념카드를 모두 섞어 일정한 간격으로 카드를 뒤집어 놓는다. 차례가 된 학생은 먼저 두 장의 카드를 뒤집을 수 있다. 이때 동일한 개념카드를 찾을 경우에만 게임을 이어나간다. 뒤집은 두 장의 카드가 다른 개념이면 다시 원래대로 카드를 뒤집고 게임은 다음 차례의 학생으로 이어진다.
교실 곳곳에서 웅성웅성하더니 한 쪽에서 갑자기 탄성이 쏟아졌다. 30장의 카드 중 함서양 학생이 20장의 카드를 획득하며 대승을 거둔 것. “친구들과 게임을 하다보면 너무 재미있어요. 꼭 외우려고 하지 않아도 개념카드의 이미지들이 머릿속에 쏙쏙 들어와요.” 함 양의 설명이다.
교사 입장에서는 학생들이 어려워하는 내용을 쉽게 가르칠 수 있고, 학생 입장에서는 놀이를 하며 개념을 정리할 수 있으니 수업이 즐거울 수밖에 없다. 그리고 카드를 뒤집는 짧은 순간에 위치와 이미지를 동시에 기억해야 하는 놀이다보니 자연스럽게 관찰력과 기억력을 키울 수 있다. 바로 놀이학습의 매력이다.
이 교사의 놀이학습은 다양한 방식으로 진행된다. 국어과는 스무고개 등을 통해 상상하고 유추하는 힘을 길러준다면, 수학과는 칠교놀이 등 도형에 대한 감각을 익혀 실생활에서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도록 지도한다. 이 교사만의 독특한 놀이학습은 5학년 교실을 넘어서 금가초 학생들에게 두루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 학교에서는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삼삼오오 모여 놀이에 푹 빠져있는 학생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놀이학습의 다양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매 차시 놀이학습을 하기에는 현실적으로 여러 가지 어려움이 따른다. 강의식 수업에 비해 시간이 많이 소요되기 때문에 강의식 수업과 놀이학습을 병행하고 있다. 또 수업시간이 다소 산만하다는 점도 단점 중 하나다.
놀이와 동고동락하며 20여 년의 세월을 보낸 이 교사에게는 놀이가 부재한 학교 현장은 늘 아쉬움의 대상이다. 7차 교육과정의 초등 교과서에 나오는 놀이는 298가지. 그 중에서 학교 현장에서 행해지는 놀이는 단편적이고 미흡한 편이라는 게 이 교사의 판단이다.
“7차 교육과정에서 민속놀이가 비중 있게 다뤄졌어요. 하지만 놀이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 없이 교육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도구로 소개되었기에 놀이에서 얻을 수 있는 다양한 교육 효과를 얻지 못하고 있어요. 더구나 교사들이 놀이를 잘 몰라요. 너무 안타깝습니다.”
게임 룰을 설명하는 이상호 교사
을지문덕 이미지를 그려 넣은 카드
이상호 교사가 ‘놀이’에 흠뻑 빠져든 것은 87년 놀이연구회 ‘놂’과 인연을 맺으면서 부터다. ’99년부터는 인터넷커뮤니티 ‘놀이배움터’를 통해 교사를 대상으로 전래놀이 교육을 해왔다. 당시 자료를 묶어 『전래놀이 101가지』(사계절)를 출판했으며, 내용 일부는 교과서에 소개가 되는 등 전래놀이 보급에 앞장서 왔다. 2008년에는 ‘(사)놀이하는 사람들’을 조직해 교사는 물론, 학부모들에게 놀이교육을 전파하고 있다.
“아이들이 놀이를 하다보면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아요. 우리 삶이 실패를 인정해야 성공할 수 있는 것처럼 놀이에도 삶의 이치가 고스란히 담겨있어요. 놀이에서 졌을 때 인정하고 자신의 마음을 추스르는 방법을 알아가는 데 놀이의 가치가 있다고 믿습니다.” 이 교사의 설명이다. 더불어 “놀이로 배우는 공부는, 머리로 배우는 공부와는 다르며, 곧 깨닫는 교육”이라고 덧붙였다.
이 교사는 취재 중에 5학년 15명이 함께 펼치는 긴줄넘기 동영상을 보여주었다. 학생들에게 주어진 미션은 ‘15명이 함께 긴줄넘기를 5회 연속 성공할 것!’ 학생들은 어떻게 하면 긴 줄에 걸리지 않고 줄넘기를 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매번 줄넘기에 걸리는 2명의 친구를 위해 누군가 타이밍에 맞춰 돌아가는 줄넘기 안으로 밀어주는 것으로 대안을 찾았다.
그렇게 틈틈이 줄넘기 연습을 한 학생들은 2주간의 연습 끝에 드디어 성공했다. 다운증후군과 지적장애가 있는 두 친구는 이제껏 줄넘기를 한 번도 넘어보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 믿지 못할 결과를 놓고 학생들은 물론, 교사들도 크게 놀랐다고 한다. 놀이의 위력을 함께 체험한 순간이었다.
금가초 5학년 학생과 이상호 교사는 제법 ‘놀 줄 아는’ 사람들이다. 5학년 학생들에게서 전교생으로 놀이가 확대되듯이 대한민국 초등학생들이 ‘놀이의 맛’을 알아갈 때까지 이 교사의 놀이연구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이 교사는 ‘어떻게 하면 학생들이 즐겁게 공부할 수 있을까’를 항상 고민하다가 놀이수업을 시작하게 됐다.
‘(사)놀이하는 사람들’은 ‘생활 속에 되살아날 놀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열악한 놀이 환경의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서울, 경기, 인천, 대전, 전북, 제주 지부에서 여러 회원들이 지역 놀이마당 개최, 놀이조사, 놀이캠프 등의 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소식지 발간, 놀이지도사 양성을 통한 전래놀이의 확산, 놀잇감 보급, 대중강좌 등을 전개하고 있다.(www.nolza.kr, http://cafe.daum.net/noleez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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