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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 공식 블로그
54년차 연기자, 이순재 씨를 만나보니 본문
76세의 할아버지 ‘이순재’. 하지만 어디에서건 그가 나타나면 초등학생들도 극중 캐릭터인 ‘야동순재’, ‘로맨틱순재’를 서슴없이 외친다.
지난달 6일 개막한 전국평생학습축제에서도 이순재 씨의 등장에 어린 아이들부터 청소년, 중년의 어머니·아버지, 노인층에 이르기까지 전 세대를 초월하는 인기를 보여줬다. 휴대폰 카메라를 들이대며 ‘같이 사진 찍어요~’하고 팔짱끼며 포즈를 취하는 사춘기 소년들에게도 그는 따듯한 옆집 아저씨 같은 존재이자 ‘멋진 연기자 이순재’로 불린다.
평생학습을 널리 알리는 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의미 있는 일이라 흔쾌히 홍보대사 자리도 동의한 만큼 이번 축제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평생학습에 대한 관심과 동기를 부여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연기자 이순재 씨가 제8회 전국평생학습축제 홍보대사로 모습을 드러낸 건 지난달 9일. 그는 “연기자로서 모범을 보여야 할 뿐 아니라, 어른으로서의 사회적 책임도 다 해야 하는 게 자신의 역할”이라고 홍보대사 수락의 의미를 말한다.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이라면 언제, 어디서든 참여하고 싶다는 그이다.
참고로 평생학습축제는 평생학습에 대한 인식을 고취하고 학습자와 학습기관들의 정보를 공유하는 축제다. 올해는 경기도 구리시와 경기도교육청 및 평생교육진흥원이 공동으로 주관하고, 교육과학기술부와 한국평생교육총연합회가 주최했다.
왜 철학과에 갔냐고요? 점수 맞춰 여기 저기 기웃하다 갔지 뭐…. 그런데 오히려 학과에 입학하고 나서 철학 전공에 대한 많은 자부심을 갖게 됐어요. 당시 철학과엔 타 학과에 비해 내로라하는 교수님도 가장 많았고, 그로 인한 영향을 적잖게 받았죠. 물론 연기한다는 핑계로 학과 수업을 많이 빼먹었지만 그 당시에 접한 철학은 여전히 제 인생의 밑거름이 되고 있답니다.
이미 알려졌다시피 이순재 씨는 연기자 중에서도 ‘원조 브레인’으로 손꼽힌다. 서울대학교 철학과 출신으로 당시 공부도 잘 하고, 연기도 잘 해 요즘 세대말로 ‘엄친아’가 따로 없다.
연기와 철학…. 그가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게 된 동기엔 별 다른 이유가 없지만 학과 공부를 하면서 오히려 철학에 매료된 동기는 있었으니, 그의 연기 열정을 이해해준 한 교수님 덕분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철학자이자, 전 고건 총리의 아버지인 고 고형곤 서울대 철학과 교수가 바로 ‘대학생 이순재’의 정신적 멘토였던 것.
당시 연극과 연기에 미쳐 수업을 밥 먹듯이 빼 먹었고, 그로 인해 다른 교수님들께도 눈 밖에 났지만 고형곤 교수님은 ‘그래~ 어떻게 보면 연기도 철학이지!’하며 연극하는 제게 오히려 희망과 용기를 줬다고 할까요.
그렇게 대학시절 연기자를 꿈꾸며 한 계단씩 밟아 오르던 이순재 씨는 22살이 되던 1956년 드라마 ‘나도 인간이 되련가’를 통해 첫 데뷔에 성공했고, 올해로 54년차 연기경력을 자랑하는 최고령 현역 연기자에 등극했다. 그럼에도 쓰러지지 않는 한, 나를 필요로 하는 순간까지 연기를 하겠단다.
요즘 연기자들의 외형적 조건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훌륭하다고 봅니다. 하지만 그들이 연기하는 모습을 볼 때면 ‘내공’이 약하다고 할까요. 나이가 어려서 약한 게 아니라, 그 나이대의 연기에서 보여줄 수 있는 그 무언가가 잘 안 보이는 것 같아요.
연기자 이순재 씨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기본’이다. 연기할 수 있는 조건은 많이 좋아졌지만 그런 상황일수록 중요한 게 바로 ‘기본기’라는 것.
그간 ‘빨리 빨리’를 강조하며 기술이나 경제, 문화 분야 등이 표면적으로는 어느 단계까지는 올라왔지만, 이젠 그 속을 한번 들여다보고, 탄탄하게 다져나갈 때라고 생각해요. 그게 바로 기본이자 내공이지요. 꼭 연기자뿐만 아니라 누구라도 차곡차곡 자기 자신을 만들고 탄탄히 쌓아가는 과정이 필요한 때라고 생각합니다.
운 좋게 최상의 자리에 오르는 연기자도 있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소리 없이 사라지는 더 많은 연기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너무도 잘 알고 있다. 반면, 젊은 꽃미남 연기자들이 방송계를 점령한 가운데서도 50여년이 넘도록 한결같은 사랑을 받고 있는 ‘국민 아버지’ 이순재 씨도 있다. 그만의 내공을 쌓은 덕이다.
지금도 연기자로서 하루 1~2시간은 꾸준히 발성연습을 하고, 밤샘 촬영이 있어도 그는 연륜을 내세우며 촬영순서를 바꾸는 일도 없다. 그래서 뜨는 해를 보며 촬영장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일이 많지만 철야를 소화할만한 체력을 가꾸는 일도 76세의 ‘연기자 이순재’에게는 의무와 같은 일이다.
그는 “요즘 연기하기가 참 어렵다.”면서도 “사람들로부터 괄세 받으며 힘들게 연기했던 시절을 떠올리면 지금의 환경에 ‘감히’ 불만을 품을 수조차 없다.”며 만족감을 드러낸다.
공부한 효과가 일찍 나타날 수도 있고, 늦게 나타날 수도 있지만 결과에 집착하지 말고 꾸준히 공부했으면 합니다. 어느 분야에서건, 무엇을 하건 꾸준히 배우고, 최선을 다해 공부한다면 먼 훗날 되돌아 봤을 때 후회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남는 건 공부뿐이라는 걸 지금도 매순간 절실하게 느끼고 있어요.
‘수학의 정석’을 펴 놓고 하는 것만이 공부는 아니다. 자신의 분야에서 게을리하지 않고, 배우고 공부하는 게 그가 강조하는 평생공부, 즉 미리 준비하는 ‘평생학습’이다.
고령화로 평생학습이 더 중요해진 시점에서 학습의 방법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잖아요. 지식을 책으로 접하는 고전적 방식에서 컴퓨터라는 문명의 이기로 인터넷 세계가 펼쳐졌고 그 안에서 무한한 지식을 습득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특히 고령자들이 관심 갖고 접근해야 할 부분이 아닌가 싶어요.
이 씨는 ‘이 나이에 무슨…’이란 편견을 버리고 간단한 컴퓨터 이용 방법을 습득하는 것만으로도 지적인 행복감을 추구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매순간 컴퓨터를 접하기 어려운 이 씨는 “연기자로서 매일 새로운 대본을 외우고, 그와 관련한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다양한 정보를 접하고, 여러 작품을 소화하기 위해 참고가 될만한 책을 많이 읽는 게 나만의 평생학습”이라며 멋쩍게 웃는다.
특히 역사서에 관심이 많은 이 씨는 시간이 나면 우리 역사뿐 아니라 외국의 역사서를 많이 보는 편이란다. 최근에는 모교 도서관에서 우연히 역대 대통령을 평가한 ‘대통령과 국가경영’을 접하고 흥미롭게 읽었다고 추천한다. 참고로, 이 책은 ‘Leader for Nation Building’의 한글판으로 파란만장했던 한국의 현대사를 소개한 책이다. 또 얼마 전에는 일본에서 구입한 역사서를 통해 일본 고대사와 우리 역사의 연계성을 찾고 문화를 고찰해 보는 재미에도 흠뻑 빠졌었다고 말한다. ‘기본’을 중시하는 이 씨에게 역사의 기본을 이해하는 일이야 말로 그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
이순재 씨는 연기자를 선택한 데 단 한번도 후회한 적이 없단다. 세월을 거슬러 20세로 되돌아간다고 해도 ‘연기를 하고 있을 것’이라는 그의 거침없는 한 마디가 76세 현역 최고령 연기자의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이유다.
교과부 웹진 꿈나래21
연기자 이순재 씨는…
1934년 10월 함경북도 회령 출생. ’56년 드라마 ‘인간이 되려는가’로 데뷔 후 ‘미로’(1968), ‘토지’(1974) 등 100여 편이 넘는 영화와 ‘사랑이 뭐길래’(1991), ‘이산’(2007), ‘거침없이 하이킥’(2007), ‘베토벤 바이러스’(2008) 등 수많은 드라마에 출연. 2007 연예대상, 2008 MBC 연기대상 PD상, 2009 백상예술대상 공로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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