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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 펭귄마을에서 느낀 '어미의 마음' 본문

~2016년 교육부 이야기/신기한 과학세계

남극 펭귄마을에서 느낀 '어미의 마음'

대한민국 교육부 2010. 6. 11. 17:57
남극세종과학기지 주변에는 아주 특별한 마을이 있다. 바로 남극의 신사, 펭귄 수 천 마리가 모여 사는 집단 서식지이다. 이곳은 세종기지에서 관리하고 있어 다른 나라 과학자들도 함부로 들어갈 수 없다.

필자는 세종기지에 머무르는 동안 여러 차례 펭귄마을을 찾았다. 비록 세종기지에서 관리하는 곳이지만 방문하기 위해서는 미리 우리나라 환경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 규칙은 누구에게나 엄격하게 적용된다. 필자가 세종기지에 머무르는 동안 국회의원들이 세종기지를 방문한 적이 있다. 하지만 펭귄마을을 방문할 수 있는 환경부의 허가를 미리 받지 않았다. 그래서 이들은 보트를 타고 바다에서 펭귄마을을 쳐다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펭귄마을은 세종과학기지로부터 3km 가량 떨어져 있는데 주로 걸어서 간다. 거리상으로는 가까워도 정작 가기가 만만치 않다. 특히 눈폭풍(블리자드)이 몰아친 뒤에는 펭귄마을로 가는 길이 눈에 파묻혀 방문하기가 쉽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바람까지 심하게 부는 날에는 숨쉬기조차 어려울 지경이다. 

하지만 펭귄마을 근처로 연구원들이 많이 갈 때에는 설상차를 이용할 수 있어 쉽게 이동할 수 있다. 설상차는 눈에 빠지지 않도록 무한궤도가 장착돼 있고 차 안에는 칼바람이 들어오지 않아 아늑하다.
 

▲ 세종기지 주변에는 허가를 받아야 들어갈 수 있는 펭귄마을이 있다.

   

   펭귄마을과의 첫 만남
 

필자가 세종기지에 도착한 다음날 처음 찾은 펭귄마을은 눈에 덮여 있었다. 어미 펭귄들은 몸통까지 덮인 눈과 거센 바람에도 불구, 둥지를 미동도 하지 않고 지키고 있었다. 얼마 전에 낳은 알 때문이다. 날씨가 변화무쌍한 남극에서는 잠시도 둥지를 비워두지 못한다. 세종기지가 위치한 남위 60도 근처는 적도에서 불어오는 따뜻한 바람과 남극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이 지표면에서 만나 저기압이 시시때때로 만들어진다. 때문에 날씨가 화창하다가도 갑자기 차가운 바람이 불어 체감기온이 영하 20도 정도로 떨어지기도 한다. 폭설이 갑작스럽게 내리기도 한다.

만일 어미 펭귄이 화창한 날씨만 믿고 둥지를 비웠다가 차가운 바람 때문에 알이나 알에서 부화된 새끼들은 모두 얼어 죽게 된다. 펭귄둥지가 자그마한 돌멩이로 만들어져 어미의 체온을 제외하면 보온기능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펭귄둥지가 돌멩이로 만들어지는 이유는 주변에 나무나 풀이 거의 자라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번식기가 되면 어미 펭귄들은 둥지에 사용할 돌멩이를 구하느라 정신이 없다. 얌체 어미 펭귄들은 자신의 둥지 옆에 있는 다른 펭귄의 둥지에 있는 돌을 몰래 훔쳐 가기도 한다. 때문에 둥지를 지을 때가 되면 돌 때문에 어미들이 싸우기도 한다.
 

▲ 펭귄들이 눈쌓인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알을 품고 있다.


둥지의 보온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어미 펭귄들은 둥지를 잠깐도 비우지 않는다. 하지만 아무것도 먹지 않고 둥지를 지킬 수 없어 암컷과 수컷은 번갈아 가며 둥지를 지킨다. 둥지를 지키는 어미 펭귄은 먹이를 구하러 나간 짝이 바다에서 돌아올 때가지 짧게는 며칠에서 길게는 한 달 가량 둥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바다에 나가 먹이를 구해 온 펭귄이 잊지 않고 수 천 개의 둥지 가운데 자신의 둥지를 찾는 것도 신기하기만 하다.

펭귄마을을 처음 방문했을 때 느낀 감정은 이전에 전혀 보지 못한 것을 보는 것에 대한 신기함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흐르자 어디선가 이상한 냄새를 느낄 수 있었다. 닭을 키우는 농장에서나 맡을 수 있는 냄새였다. 바로 크릴을 잡아먹는 펭귄의 배설물에서 나는 냄새였다. 시골에서 자란 필자에게는 별로 역겨운 냄새가 아니었지만 일부 대원들은 냄새가 심한 듯 코를 잡았다. 

펭귄은 남극에 사는 다른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사람을 겁내지 않았다. 불과 1미터 가까이 다가가도 크게 동요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보다 가까이 다가가면 고개를 쭉 빼며 부리로 쪼았다. 가까이에서 살펴본 펭귄의 알은 작은 달걀 크기 정도였다. 하지만 펭귄의 배설물이 묻어 있어 생각처럼 깨끗하지는 않았다. 
 

▲ 스쿠아에게 잡아먹힌 좀 자란 새끼펭귄의 뼈가 앙상하다.



   펭귄을 노리는 약탈자, 스쿠아
 

필자를 비롯한 일행들이 둥지 근처에 다가가도 크게 움직이지 않던 펭귄들이 갑자기 동요하기 시작했다. 천적인 남극바다도둑갈매기(스쿠아) 때문이었다. 펭귄들은 하늘로 고개를 빳빳하게 세운 뒤 평생 들어보지 못한 괴상한 소리를 내며 울어댔다. 스쿠아는 남극 육상 생태계의 최상층에 위치해 있다. 남극 동식물의 시체를 먹기도 하지만 주식은 펭귄의 알과 새끼이다. 때문에 스쿠아는 먹이를 구하기 위해 펭귄이 알을 낳고 난 뒤에야 알을 낳는다. 펭귄에게는 해를 끼치지 않는 사람들보다 알과 새끼를 잡아먹는 스쿠아가 더 무서운 셈이다. 실제 펭귄 둥지와 멀지 않은 곳에서는 스쿠아가 훔쳐 먹은 알 껍데기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첫 방문 이후 한 달 가량 지나 펭귄마을을 다시 찾았을 때에는 대다수 둥지의 알이 부화된 상태였다. 회색 솜털이 보송보송한 새끼들은 어미의 배에 몸을 숨기고 체온을 유지하고 있었다. 배가 고프면 먹이를 달라는 듯 어미의 부리 쪽으로 고개를 쭉 내밀었다. 어미는 부리를 벌려 반쯤 소화된 크릴을 유아식으로 토해주었다. 어미로부터 먹이를 받아먹은 새끼들은 만족스러운 몸짓으로 다시 어미의 배에 몸을 숨기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 귀여웠다.


펭귄둥지를 지켜보고 있노라면 가끔씩 어미들이 신경질적으로 울기도 했다. 한 마리가 울면 주변의 어미 펭귄들까지도 덩달아 울었다. 스쿠아가 새끼들을 노린다는 일종의 공습경보였다. 스쿠아는 새끼를 품고 있는 어미의 곁으로 바짝 다가와 새끼를 훔쳐갈 기회를 노리곤 했다. 어미 펭귄들은 스쿠아를 쫒아 보내기 위해 부리로 쪼아도 보지만 겁 없는 스쿠아는 전혀 주눅들지 않았다. ‘열 장정이 한 도둑 막지 못한다’고 하더니 펭귄 둥지를 호시탐탐 노리던 스쿠아들은 어렵지 않게 새끼 펭귄을 훔치는데 성공하곤 했다. 
 

▲ 어미펭귄이 알에서 갓부화된 새끼 펭귄에게 먹이를 주고 있다.


▲ 새끼 펭귄이 어미의 부리로부터 반쯤 소화된 크릴 유아식을 받아먹고 있다.



   어미의 마음은 한결 같아라
 

스쿠아 녀석들은 양심도 없는지 펭귄 둥지 근처에서 알을 깨먹고 새끼를 뜯어 먹었다. 눈 앞에서 잡아먹히는 새끼를 쳐다봐야 하는 어미의 심정은 얼마나 아플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 또한 자연의 이치라는 생각이 들어 지켜보기만 했다. 이 광경을 한참 지켜보다 펭귄마을의 다른 곳을 살펴보니 빈 둥지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스쿠아에 새끼를 빼앗긴 어미 펭귄들이 더 이상 둥지를 지키지 않고 떠났기 때문이다. 

세종기지를 떠나기 불과 일주일 전 마지막으로 펭귄마을을 찾았을 때에는 대다수 새끼 펭귄들이 어미들의 덩치만큼 자라 어미와 새끼를 구분하기 쉽지 않았다. 아직 완전하게 어미의 덩치만큼 자라지 않은 어린 녀석들은 한곳에 무리를 지어 모여 있었다. 한곳에 모여 있어야 스쿠아의 공격을 피하기 쉽기 때문이다. 일종의 펭귄 유치원인 셈이다. 이 녀석들은 아직 어리지만 스쿠아가 나타나면 어미들과 함께 소리를 지르며 스쿠아에 대항하기도 했다. 

그런데 가끔 이상한 모습이 연출되곤 했다. 도망가는 어미 펭귄을 새끼 펭귄들이 따라잡는 달리기 경주가 벌어진 것이다. 어미가 먹이를 잘 주지 않아 새끼들이 먹이를 달라고 보채는 것이란다. 새끼들이 먼 바다여행을 떠나기 전에 다리 힘을 기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어미들이 먹이를 미끼로 새끼들을 운동을 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바위 위에 배를 깔고 만사를 귀찮아하는 녀석들도 볼 수 있었다. 그런 녀석 주변에는 운동을 안하면 나중에 큰 일 난다는 표정으로 새끼들을 혼내는 어미들을 볼 수 있었다. 어미들은 어서 운동하라는 듯 날카로운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사람 세상이나 동물 세상이나 자식이 탈 없이 잘 자랄 수 있도록 항상 신경 쓰는 어미의 마음은 같은가보다.
사진 | 박지환, 극지연구소
글 | 박지환 자유기고가 
 한국과학창의재단  사이언스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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