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 공식 블로그

천덕꾸러기 부부젤라가 미움받는 이유 본문

~2016년 교육부 이야기/신기한 과학세계

천덕꾸러기 부부젤라가 미움받는 이유

대한민국 교육부 2010. 6. 25. 09:43
더운 여름을 더욱 뜨겁게 달구고 있는 2010 남아공 월드컵도 어느 새 조별 예선 막바지에 이르렀다. 개막 이후 모든 골키퍼들을 공포에 몰아넣은 남아공 월드컵 공인구인 ‘자블라니’부터 시작해서 3D중계, 급작스런 날씨 변화 등 많은 화젯거리가 있었다. 

▲ 부부젤라는 2010 남아공월드컵의 최대 이슈 중 하나다.

그 중 단연 최고의 이슈는 바로 남아공의 응원 도구 ‘부부젤라’다. 개막전 경기를 볼 때 월드컵 중계 촬영 팀의 오디오에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닌지 의심이 될 정도의 소음이 흘러나왔다. 얼핏 들으면 수만 마리의 파리가 왱왱거리는 듯한 소리의 원인은 다름 아닌 ‘부부젤라’였다. 

부부젤라는 남아공 최대부족인 줄루족으로부터 유래됐다는 설이 있는 나팔 모양의 전통 악기다. 이 악기는 최대 140dB 정도의 코끼리 우는 소리를 낸다. 

비행기의 제트엔진 소리가 150dB인 것을 감안할 때, 경기장 안의 수만 명이 불어대는 부부젤라 소리는 모든 선수들에게 상대 선수를 비롯해 맞서 싸워야 할 또 하나의 적이 된 셈이다.


   시끄러운 경기장, 더 시끄러운 소음공해
 

소음공해라고 한다면 조용한 공간에서의 신경을 거스르는 소리라고만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충분히 시끄러운 운동 경기장에서도 특정 소리는 소음공해로 간주될 수 있다.

사실 소음은 그 기준에 애매한 면이 있다. 주변 환경이나 소리의 주파수, 또는 듣는 사람의 상태에 따라서도 얼마든지 소음이 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조용한 도서관에서 걸을 때 마다 ‘뾱뾱’ 소리가 나는 신발을 신고 다닌다면 엄청난 소음이 될 것이다. 하지만 수만 명의 관중으로 가득 메워진 월드컵 경기장에서는 그 뾱뾱거리는 귀엽기 짝이 없는 신발 소리가 들리지 않을 수도 있다. 

▲ 공공의 적 부부젤라. ⓒBerndt Meyer

 
또한 사람의 귀는 낮은 소리에 비해 높은 소리에 더 민감하다. 파동의 일종인 소리가 전달 될 때 진동수가 높을수록 그 에너지는 증가하게 되는데, 높은 소리의 진동수가 더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같은 크기의 소리더라도 높은 소리가 더 거슬리게 느껴진다. 

이 뿐만이 아니라 듣는 사람의 심리 상태나 취향도 소음의 기준이 된다. 신경이 날카로울 경우에는 어떤 소리도 소음이 될 수 있다. 또한 어떤 사람은 좋다고 생각하는 소리도 누군가에겐 소음이 될 수 있다. 이렇게 소음의 기준은 천차만별이고 정확히 판단하기에 무리가 있기 때문에 법적인 문제에서도 해결하기가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다. 

이는 부부젤라도 마찬가지다. 수만 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경기장에서 그 정도의 소리는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 또한 시끄러운 응원은 단지 이번 월드컵에서만 보이는 풍경은 아니다. 

시끄러운 응원에는 사실 우리나라도 빠지지 않는다. 경기장에 울려 퍼지는 태평소와 꽹과리 소리는 그 큰 경기장 전체로 퍼져나간다. 외국에서 경기를 할 때도 이 곳이 한국이 아닌지 착각할 정도로 붉은 악마들의 응원 열기는 대단하다. 하지만 똑같이 시끄러운 응원임에도 불구하고 부부젤라가 문제가 되는 이유가 몇 가지 있다.



   천덕꾸러기 부부젤라가 미움받는 이유
 

우선 부부젤라는 경기장에 모인 수만 명의 사람들이 동시에 사용한다. 간단한 구조의 악기여서 싼 가격에 많은 사람이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월드컵의 열기에 들뜬 사람들이 하나씩 사들고 경기장에 들어가 한꺼번에 부부젤라를 연주하기 시작한다. 꽹과리 소리가 아무리 크다 하지만, 수만 명의 붉은 악마가 모두 한손에 꽹과리를 들고 응원하는 모습은 볼 수 없다.

두 번째는 리듬과 박자의 차이다. 부부젤라와 얼핏 비슷해보이는 태평소를 예로 들어보자. 물론 태평소도 수만 명이 함께 사용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보다 큰 차이점은 리듬이 있다는 것이다. 음의 높낮이를 조절하며 진정한 연주가 가능한 것이다. 

반면 부부젤라는 하나의 음밖에 낼 수 없다. 소리의 크기가 크든 작든 일정한 소리를 오랫동안 듣게 되면 극도의 스트레스를 유발할 수 있다. 게다가 부부젤라는 앞서 말했듯이 140dB안팎의 매우 큰 소리를 내기 때문에 90분이 넘는 시간동안 듣게 되면 고막에 무리를 주어 청각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 반복되는 일정한 음으로 날카로워진 신경은 부부젤라를 최고의 소음공해라고 인정하기 충분하다.

 

▲ 쿠두(Kudu). 소목 소과의 포유류로 영양의 한 종류이다. 쿠두의 뿔을 잘라 쿠두젤라를 만든다. ⓒWikimedia Commons



   응원을 위해 위엄 따윈 버렸다
 

부부젤라가 처음부터 소음제조기였던 것은 아니다. 부부젤라의 원조로 추정되는 것은 쿠두젤라(kuduzela)라는 산양의 뿔로 만든 악기다. 악기 생산으로 발생하는 생태계 파괴를 우려해 금속으로 만든 것이 부부젤라라는 설이 유력하다. 

처음엔 주석으로 만들었으며, 가볍게 하기 위해 알루미늄으로도 만들었다. 또한 길이도 지금처럼 짧지 않고 보통 1m 이상에서 2~3m에 달하는 것도 있었다.

이것을 응원에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긴 금속재인 부부젤라는 응원 도구가 아닌 상대 응원인파를 위협하는 무기로 변질됐다. 피파는 월드컵에서의 폭력 사태를 우려하고 그 길이를 1m 이하로 제한하게 됐고 짧아진 부부젤라를 가볍고 싼 플라스틱 재질로 대량 생산함으로써 쉽게 구할 수 있게 됐다. 

문제는 수량이 많아졌다는 것뿐만이 아니다. 바로 짧아진 길이와 재질변화가 부부젤라를 소음 제조기로 만든다는 것이다. 

▲ 부부젤라의 원조로 추정되는 쿠두젤라. ⓒ남아프리카 국립공원



   귀를 괴롭히는 높은 진동수
 

숨을 불어넣어 연주를 하는 관악기들은 모두 정상파라는 파동현상을 이용한 것이다. 관악기를 불어 진동을 시키면 입사파와 반사파가 생기고 진폭과 파장이 같아서 제자리에서 진동을 하고 있는 모습을 띄게 되는데 이를 정상파라고 한다. 

이 파동의 파장은 악기의 관 길이와 연관이 있다. 대부분의 관악기는 양쪽이 모두 열린 개관이기 때문에 파장의 반절의 정수배에 해당하는 길이가 관의 길이와 같을 때 정상파가 만들어지며 이 파장들이 중첩효과를 내어 주변 공기를 진동시켜 음파를 만든다. 

음파의 파장이 길수록 낮은 소리를 내고 파장이 짧을수록 높은 소리를 낸다. 파장이 짧다는 것은 자주 진동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진동수가 높다는 것을 말한다. 위에서 말했듯이 파동에너지는 진동수와 진폭이 클수록 크기 때문에 파장이 짧아 진동수가 큰 고음은 유리잔을 깨뜨려 버릴 정도로 큰 에너지를 가진다. 

이 파장이 관악기에서는 관의 길이에 의해 결정된다. 관의 길이가 길수록 파장이 길어지고 진동수가 낮아지게 되므로 낮은 소리가 나게 된다. 초등학교 시절 리코더를 불 때 모든 구멍을 다 막아야 낮은 소리가 나온다는 것은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모든 구멍을 막음으로써 열린 구멍이 양끝만 남게 되고 정상파의 파장을 길게 만들어준 것이다.

 

▲ 양쪽이 열린 관에서의 정상파. 파장이 짧을 수록 높은 소리를 낸다. 관의 길이, 막는 구멍 또는 부는 세기에 따라 파장이 달라질 수 있다. 아래쪽으로 갈수록 짧은 파장.



여기서 부부젤라의 변신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원래는 길이가 길고 무거운 금속을 사용해 낮은 소리로 웅장한 느낌을 줬던 부부젤라가 피파의 규제로 인해 1m 이하로 짧아지고 응원도구로 사용하기 위해 가벼운 플라스틱으로 변했다. 

짧아진 관에서는 파장이 짧아 높은 진동수의 음파가 발생하며 재질이 가벼운 플라스틱이기 때문에 더 쉽게 진동하여 진동수는 더욱 증가했다. 원조 부부젤라에 비해 매우 높은 소리를 내게 된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사람은 낮은 소리보다 높은 소리에 더 스트레스를 받으며, 이는 부부젤라가 남아공을 제외한 전 세계의 미움을 받게 된 이유다. 



   FIFA회장, “문화는 존중해야 한다”
 

이렇게 높은 소리를 140dB에 육박하는 큰소리로 오랜 시간 듣다보면 고막에 비정상적인 압력이 가해져 청각 장애를 유발할 수 있다. 실제로 80dB정도의 소리만 돼도 장시간 들을 경우 청각에 이상이 생길 수 있다. 

그렇다면 이렇게 위험한 악기를 계속해서 경기장에서 볼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부부젤라를 금지시켜 달라는 청원은 수 차례 있었다. 하지만 FIFA 제프 블래터 회장은 “이것은 아프리카의 문화이며 그 자체로 존중돼야 한다. 아프리카에서 열리는 축제를 ‘유럽화’ 시키면 안된다”며 부결시켰다. 

부부젤라의 사용이 합리화됐지만 우리의 귀를 보호할 권리는 얼마든지 있다. TV를 통해 본다면 모르겠지만, 만약 직접 경기장에 가게 된다면 꼭 귀마개를 챙기는 것이 좋다. 귀마개는 소음을 최대 50%정도 줄여주는 효과를 보인다. 

글 | 조재형 객원기자 (alphard15@nate.com)
 한국과학창의재단  사이언스타임즈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