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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레의 저주, 왜 통할까? 본문
[월드컵 속 과학] 스포츠에서 징크스가 유난히 많은 이유
‘펠레의 저주’가 남아공 월드컵 대회에서도 여지없이 통하고 있다. 축구 황제로 불리는 전설적인 축구 스타 펠레는 남아공 월드컵의 16강이 확정된 직후 “이번 우승팀은 브라질과 독일, 아르헨티나 중에서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하지만 브라질은 네덜란드에 1-2로 역전패 당해 8강전에서 탈락해 버렸다. 독일과 아르헨티나는 공교롭게도 8강전에서 맞붙었는데, 그 결과 독일이 4-0으로 일방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이 경기에서도 알게 모르게 펠레의 저주가 작용했다.
▲ 펠레가 우승팀으로 예상하는 국가가 나쁜 성적을 거두는 ‘펠레의 저주’는 1966년부터 시작됐다.
이제 남은 것은 독일인데, 펠레의 저주대로 우승 문턱에서 고배를 마실 것인지 아니면 펠레의 저주를 깨고 우승할 것인지 지켜볼 일이다.
펠레가 우승팀으로 예상하는 국가가 나쁜 성적을 거두는 ‘펠레의 저주’는 1966년부터 시작됐다. 그는 당시 개최된 잉글랜드 월드컵 대회에서 자신이 속한 브라질이 우승할 것으로 예상했으나, 브라질은 1라운드인 조별 리그에서 탈락해 버렸다.
또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서 그는 독일과 페루를 우승 후보로 지목했으나 두 팀 모두 8강에서 탈락했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프랑스와 잉글랜드, 이탈리아를 우승 후보로 지목했지만, 어느 팀도 결승에 오르지 못했다.
1994년에는 콜롬비아, 1998년에는 스페인을 우승 후보로 점찍었는데, 둘 다 예선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펠레가 꼽는 팀마다 기대 이하의 형편없는 성적을 거둔 셈이다.
펠레의 저주 외에도 유명한 월드컵 징크스로는 ‘4강의 저주’가 있다. 전 대회에서 4강에 진출한 팀 중 한 팀은 다음 대회의 본선에 오르지 못한다는 게 바로 그것이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4강에 진출했던 프랑스는 다음 대회인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 참가하지 못했고, 잉글랜드(1998년)와 네덜란드(2002년) 역시 4강에 오른 후 다음 대회의 예선에서 탈락하는 불운을 겪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한국과의 3-4위전으로 강력한 인상을 심어주며 3위에 오른 터키도 2006년 독일 월드컵에 참가하지 못했다. 이밖에도 유니폼 색깔에 따라 우승팀이 판가름 된다는 유니폼 징크스나 남미와 유럽에서 우승팀이 한 번씩 번갈아 나온다는 징크스 등이 있다.
운동선수들에게는 유난히 징크스가 많다. 경기 당일 동그란 것을 먹으면 골을 먹는다거나 집에서 접시를 깨면 홈런을 친다는 사람이 있다. 또 시합 전에 수염이나 손톱을 깎지 않아야 경기에 이긴다는 사람도 많다.
운동선수뿐만 아니라 우주인에게도 징크스가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우주인인 이소연 씨는 소유즈 호를 타기 위해 우주정거장으로 걸어가던 도중에 주변의 누구와도 악수를 하지 않았다. 탑승 전에 악수를 하면 불운이 온다는 러시아 우주인들의 징크스를 따랐기 때문이었다. 이밖에도 러시아 우주인들은 샴페인을 마실 때 건배를 하지 않아야 하며, 우주선 탑승 직전에 버스에서 내려 소변을 보는 등의 징크스를 지킨다.
이처럼 징크스를 지키는 것은 스트레스를 덜고 자신감을 얻기 위한 행동이다. 사실 실력이 엇비슷한 스포츠팀 간의 대결에서는 단순히 신체적 기량의 우열보다는 정신력 등 심리적인 상태가 승패를 좌우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또 스포츠 경기에서는 운이라는 요소가 강하게 작용하기도 하므로 유난히 징크스가 많다.
혹시 닥칠지도 모를 불의의 사고에 대비해야 하는 우주인 역시 불안정한 심리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징크스를 철저히 지키는 편이다. 즉, 일의 결과가 자신들의 삶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경우 징크스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 행동 심리학자 스키너는 '미신을 믿는 비둘기'라는 실험을 했다.
그럼 이런 징크스들은 어떻게 해서 생기는 것일까. 미국의 행동 심리학자 스키너는 이와 관련한 흥미로운 실험을 해보였다. 스키너는 먹이 공급 장치가 있는 큰 새장에 비둘기들을 가두고 새들의 행동과는 아무 상관없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비둘기에게 모이를 주었다.
그러자 며칠 후 비둘기들의 행동에서 특이한 변화가 관찰됐다. 어떤 비둘기는 새장 안에서 시계 반대 방향으로 두세 바퀴씩 돌아다녔고, 다른 비둘기는 새장의 위쪽 구석 중 한 군데에 계속해서 머리를 쑤셔 넣었다. 또 다른 비둘기는 투명 막대기를 머리로 들어 올리는 듯한 동작을 반복했으며, 머리와 몸통을 시계추처럼 움직이는 비둘기도 보였다.
먹이와 자신들의 행동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지만, 비둘기들은 배가 고플 때마다 각기 그 특별한 행동을 취한 것이다. 그것은 우연히 시계 반대 방향으로 두세 바퀴 돌았을 때나 머리와 몸통을 시계추처럼 움직였을 때 먹이가 공급되자 그 행동이 먹이 공급과 연관이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즉, 자신의 행동과 먹이 공급에서 원인 및 결과의 패턴을 찾아 각자 나름대로의 인과 관계를 만들었던 것이다. 스키너는 이 실험에 ‘미신을 믿는 비둘기’라는 이름을 붙였다.
미신이라고 믿으면서도 자꾸만 징크스에 얽매이는 심리적 상태도 실험에서 밝혀졌다. 1987년 웨그너는 한 그룹의 피실험자들에게는 ‘흰곰에 관한 생각을 하지 말라’고 지시했고, 다른 그룹에게는 ‘흰곰에 관한 생각을 하라’고 요구했다.
실험 결과 흰곰 생각을 억제한 그룹이 흰곰 생각을 하게끔 한 그룹보다 오히려 흰곰 생각을 더 많이 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정 생각을 의도적으로 하지 않으려는 시도가 오히려 역효과를 만들어내는 셈이다.
징크스는 이처럼 과학적 근거가 없을 뿐더러 설득력도 전혀 없다. ‘펠레의 저주’ 경우에도 매번 징크스로 작용한 것은 아니다. 펠레는 2006년 월드컵에서 이탈리아가 우승할 것으로 예상했는데 그대로 들어맞았다. 또 개최국은 반드시 16강에 진출한다는 개최국 징크스도 이번 남아공 대회에서는 들어맞지 않았다.
징크스가 무성하다는 것은 그만큼 월드컵 대회가 전 세계인의 관심사라는 증거이다. 이번 대회에서는 어느 징크스가 살아남고 어느 징크스가 깨지는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일 테니까 말이다.
글 | 이성규 기자
한국과학창의재단 사이언스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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