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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 속에 담긴 백과사전 이야기

대한민국 교육부 2018. 2. 20. 09:00

 

명화 속에 담긴 백과사전 이야기

<디드로의 초상>




지금은 지식, 과학, 요리 등 생활 전반에 걸쳐 궁금한 점이 생길 경우 스마트 폰으로 검색만 하면 의문점을 해결할 수 있어 편리하다.


하지만 인터넷이 없었던 시절에는 의문사항에 대한 해결책 중 하나가 바로 백과사전이었다. 백과사전은 자연, 과학, 상식 등 방대한 지식을 분류한 책으로, 생활은 물론 공부하는 데 있어 필수품이었다.


서양 백과사전은 로마시대에 폴리니가 편찬한 <박물지>가 기원이며, 근대 백과사전은 1630년에 간행된 독일 알스테드의 백과사전이었다. 알파벳순 배열을 처음 시도한 백과사전은 1674년 모레리의 <역사대사전>이다. 그 이후 백과사전은 알파벳순으로 배열하는 것이 일반화되었다.


현대적인 백과사전이 출현한 것은 18세기에 이르러서이다. 1728년 체임버스에 의해 간행된 <백과사전>으로 2권으로 출간되었다. 체임버스의 백과사전은 이후 백과사전의 모범이 되어 많은 나라에 영향을 끼쳤다.


프랑스의 드니 디드로와 달랑베르는 서적상의 권유로 영국에서 출간된 과학 및 기술에 대한 백과사전을 프랑스어로 번역하고자 준비하다가 <백과전서>를 출간하게 된다.


문학가이자 철학가인 디드로는 <백과전서>를 통해 정치적, 종교적으로 엄격한 보수주의를 따르는 전통문화와 절연하고, 근대적이고 과학적인 지식을 보여주고자 했다.


디드로의 <백과전서>는 과학, 수공기술, 종요, 예술에 관한 용어는 선·후위 없이 나란히 배열되었으며, 그에 대한 정의는 당시 몽테스키외, 루소 등 프랑스 지식인 계층 중 중요 주요 인물들을 중심으로 하는 분야별 전문가들에 의해 세심하게 작성되었다.


드디로의 <백과전서>는 1751년 2권이 발간되었으나, <백과전서>를 비종교적 세력의 음모라고 여기던 종교계의 탄압으로 이듬해 발행 금지처분을 받는다. 드디로는 이에 굴하지 않고 1751년부터 1772년까지에 걸쳐 도팜과 함께 28권을 완성하였고, 1776년~1777년에 보유 5권, 1780년에는 색인 2권을 간행함으로서 모두 35권을 완성한다.




<디드로의 초상> 1769년경, 캔버스에 유채 ⓒ 파리 루브르 박물관 소장

 


 


18세기 프랑스의 과학, 기술, 직업에 대한 종합사전이라고 불리는 <백과전서>의 출판을 위해 편찬 작업을 하는 디드로를 그린 작품이 프라고나르의 <디드로의 초상>이다.


책상 앞에 앉아 있는 디드로가 오른손으로 독서대에 놓여 있는 책의 페이지를 들고 돌아보고 있다. 왼팔은 두꺼운 책 위에 편안하게 올려놓고 흰색의 셔츠 깃을 만지고 있다.


디드로가 오른손으로 잡고 있는 책의 페이지가 끝이 불규칙한 것은 그가 자주 보았던 책이라는 것을 나타낸다. 또한 왼팔 아래 놓여 있는 두꺼운 책은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레이스가 달린 흰색의 셔츠 깃과 소매는 디드로가 부르주아라는 것을 나타낸다. 당시 흰색의 셔츠는 부르주아를 상징한다.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1732~1806>의 이 작품은 디드로의 의뢰에 의해 제작되었다. 디드로는 장르 불문하고 모든 회화의 열광적인 애호가로 파리 왕립 미술원의 평론가로도 활동했다. 특히 디드로는 프라고나르의 열렬한 지지자였다.


프라고나르는 디드로가 지식임을 강조하기 위해 책장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하고 있다. 하지만 부드러운 성격을 강조하기 위해 책에 시선을 두지 않고 누군가와 대화하는 모습으로 표현했다.




<마담 퐁파두르> 1775년, 종이에 파스텔 ⓒ 파리 루브르 박물관 소장

 


 


디드로가 출간한 <백과전서>가 놓여 있는 곳을 그린 작품이 라 투르의 <마담 퐁파두르>다.


금박으로 수놓은 드레스를 입은 퐁파두르 후작부인이 의자에 앉아 손으로 악보를 잡고 있다. 그녀의 뒤쪽 의자에 기타와 악보가 펼쳐져 있다. 후작부인이 기대고 있는 책상에 책들이 꽂혀 있고, 벽에는 풍경화가 걸려 있다.


책상에는 책 제목까지 알 수 있을 정도로 사실적으로 그려졌는데, 왼쪽에서 오른쪽을 구아리니의 <파스토르 피도>, 볼테르의 <앙리아드>,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 디드로의 <백과전서>가 보인다.


구아리니는 책은 사냥의 여신인 디아나를 그린 목가풍의 책으로 사냥을 즐겼던 루이 15세의 취향을 나타내고 있다. 나머지 3권의 책은 당시 왕과 교회에서 인정하지 못했던 철학자들이다.


철학자들의 책은 당시 검열 대상이었지만, 퐁파두르 후작부인의 지성미를 나타낸다. 퐁파두르 후작부인은 보수 계층이었던 귀족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철학자들의 혁신적인 사상을 지지했다.


퐁파두르 후작 부인은 루이 15세의 정부로 19년 동안 사랑을 받았다. 그녀는 자신의 서가에 3500여권에 이르는 장서를 꽂아두었을 정도로 책 읽는 것을 좋아했으며, 루소 등 철학자들과의 원활하게 교류한다. 철학자들과 교류하면서 백과사전 출판에 관여했을 정도로 출판에 관심이 많았다. 당시 퐁파두르 후작부인의 살롱에서 예술가들과 학자들과 모여 담소를 나누면서 정보를 교환했었다.


퐁파두르 후작부인은 화려한 드레스 차림이지만 그 당시 유행하던 가발을 쓰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평상복을 입고 궁정 내실에서 편안하게 있는 것을 나타낸다.


후작부인이 의자에 앉아 있는 자세가 불편한 것은 드레스 안에 페티코트를 입고 있어서다. 당시 페티코트는 우산살 같은 뼈대를 넣었기 때문에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그녀가 신고 있는 구두는 뮬로 뒤축이 없다.


후작부인이 악보를 들고 있는 것과 뒤에 의자에 기타와 악보가 펼쳐져 있는 것은 그녀가 노래 연습 중이라는 것을 나타낸다. 그녀는 루이 15세를 위해 오페라나 연극 무대에서 노래를 불렀다.


후작부인의 작은 내실에서 열린 소공연은 가까운 사람에게만 공개되었으며, 루이 15세가 엄격한 왕실 규범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벽에 걸려 있는 풍경화와 발 아래 깔려 있는 양탄자는 당시 부르주아들의 유행이었다.


모리스 켄탱 드 라 투르<1704~1788>는 전신 초상화를 원한 퐁파두르 후작부인의 의뢰 때문에 다른 초상화보다 크게 제작했지만, 종이에 파스텔로 그렸기 때문에 제작에 어려움이 많았다. 또 후작부인이 국정에 바빠 오랫동안 모델을 할 수 없어 마지막 얼굴 작업을 할 때만 모델을 섰다. 라 투르는 큰 종이가 없어 여러 종이를 붙여서 완성했다.




글_ 박희숙 미술평론가

출처_ 사이언스올 사이언스타임즈

저작권자 2018.01.25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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