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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모 시험감독 직접 해보니 본문
저는 평소 아이들의 시험일이 언제인지도 모르는 무심한 엄마입니다. 시험이란 평소 공부한 걸 되짚어 보고 부족한 것이 무엇인가 알게 되어 보충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한 문제 더 맞히고 틀리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열심히 준비하는 자세가 우선이다."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시험에서 평균 90점 이상 받으면 뭐해주실 거예요?"라는 흥정은 저에게 통하지 않습니다. "네 공부, 네가 하는 것이고 좋은 성적 나오면 네가 좋은데 내가 왜 보상을 해줘야 하니?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는데 칭찬을 바라면 안 되지." 그래서 단순히 성적이 떨어졌다고 해서 혼을 내지도 않고, 조금 올라도 노력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면 요행이라며 칭찬도 없습니다.
이런 저이기에 해마다 학부모 자원봉사 목록에서 시험감독은 제외했습니다. '학생을 평가하는 시험에 학부모가 왜 가야 하지?' '그렇잖아도 긴장해 있는데 누구 엄마가 어슬렁거리면 신경 쓰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단호히 거부했습니다.
올해는 막내까지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삼 남매가 모두 다른 학교에 배정되었습니다. 공평하게 한 가지 활동만 해 주기로 했습니다. 첫째, 둘째는 작년에 하던 걸 이어서 하면 되는데 막내는 마땅히 할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그때 담임선생님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학부모 시험감독을 해달라고 하셨습니다. 위의 사유를 대며 거절했습니다. 그러나 실제 해 본 학부모의 반응이 좋고, 학생들이 꺼린다면 벌써 없어지지 않았겠냐고 하십니다. 더구나 한 반에 두 학년이 한 줄씩 번갈아 자리가 배치되고, OMR 답안지와 서술형 답안지가 있어 감독 선생님 한 분으로는 제시간에 배부하고 거둘 수 없으니 학부모의 봉사가 절실하다 하셨습니다. 아들에게 '혹시 엄마가 간다면 부담스럽지 않겠냐?' 물어보니 전혀 상관없다며 누구도 어떤 학부모가 다녀갔다 뒷말하지 않는다며 걱정하지 말라고 합니다. 해 보기로 했습니다.
교육복지실에 고사 시작 20분 전에 모였습니다. 교장 선생님께서 감사 인사를 하셨습니다. 자녀에 대한 관심과 봉사 덕에 명문학교의 전통을 유지할 수 있다 하십니다. 괜한 짓 하는 거 아닌가 망설인 터라 민망했습니다.
책을 꺼내 보는 일이 없도록 책상의 서랍 부분이 앞으로 가게 해서 앉았습니다. 홀수 줄은 3학년, 짝수 줄은 1학년 혹은 2학년 같은 학년이 이웃하지 않도록 자리를 잡았습니다. 학년별 잘 구분하여 시험지와 답안지를 넘기고 열심히 풀고 있습니다. OMR 답안지와 서술형 답안지에 이름부터 기재하고 선생님께서 확인 도장을 찍어 주십니다. 검정 볼펜이나 컴퓨터용 사인펜만 허용되기 때문에 잘못 기재한 경우 답안지를 바꿔야 합니다. 원하는 학생은 조용히 손을 들고 선생님은 새 답안지를 주고 기존 답안지는 찢어 시험지 봉투에 넣습니다. 서술형 답안지는 틀린 답에 두 줄을 긋고 새로 기재합니다. 저는 줄 친 답 위에 확인 도장을 찍어 줬습니다. 중학생이라 과목당 45분이 주어집니다. 아무도 부정행위를 하지 않습니다. 어린 시절 앞사람 허리를 연필로 쿡쿡 찌르며 보여달라고 하는 친구가 늘 있었는데 주의 한 번 줄 일도 없습니다.
다 푼 학생들은 답안지를 엎어놓고 마칠 때까지 엎드려 있습니다. 다 푼 자의 여유가 느껴집니다. 종료시각 얼마 남지 않았는데 답안지를 교체해야 하는 친구가 손을 번쩍 들었습니다. 슬리퍼 소리 날까 앞으로 힘껏 당겨 신고 살며시 다가가 도장을 찍어 주고, 새 OMR 답지를 전해 줬습니다.
답안 정리가 끝나고 봉투에 넣고 가기까지 소란을 피우는 학생도 없습니다. 학생들 뒷모습만 보고 있어도 자꾸만 기분이 좋아지고 흐뭇해지는 저는 엄마 맞습니다. 학생들에게 가벼운 눈인사를 하고 교실을 나왔습니다.
감독을 마치고 대기실에 다시 모였습니다. 저는 제가 가졌던 선입견에 관해 얘기했습니다. 한 엄마는 아이가 공부도 잘 못하고, 특별히 잘하는 것도 없어서 학교에 올 일이 없었는데 이 봉사를 계기로 학교에 드나들게 되어 기쁘다고 합니다. 올 때마다 설레고 나갈 때는 뭔가 했다는 뿌듯함을 느낀다고 합니다.
학교 급식실에서 점심도 함께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어떤 밥을 먹는지, 급식실은 깨끗한지 둘러볼 수도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삼현여자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는 10여 년째 감독 없이 시험을 치르고 있다고 합니다. 사전에 학생들은 어떤 부정행위도 하지 않을 것이며 만약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처분에 따르겠다는 서약서를 쓴다고 합니다. 시험 당일 선생님은 시험지를 배부하고, 마치는 시간에 거둬가는 역할만 하는데 아직 불미스런 일은 없다고 합니다. 모름지기 시험이란 이래야 하는 게 아닌가 했습니다.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 가기 위해 저는 학부모 시험감독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었습니다.
직접 해 보니 마음이 달라졌습니다. 첫째, 짧은 시간에 선생님 혼자서 대여섯 장에 이르는 시험지와 답안지를 모두 나눠주는 것은 무리입니다. 둘째, 학부모가 오는 것에 학생들은 부담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푸근하다고 합니다. 지나가다 선생님이 보시면 틀린 답인가 긴장되기도 하고, 교정 확인 도장을 많이 받자면 민망했는데 학부모가 하니 편하다고 합니다. 셋째, 학기당 하루 이틀 몇 시간만 봉사하면 되므로 고정적인 활동을 할 수 없는 학부모도 참여할 수 있습니다. 특별한 재능이나 기술을 필요로 하는 일이 아니어서 누구나 할 수 있어서 자식을 맡긴 부모로서 뭔가 보답을 했다는 뿌듯함을 안겨 줍니다. 마지막으로 그 덕에 학교를 방문할 수 있어 좋습니다. 학부모 공개 수업이나 큰 행사가 있어 방문하는 날은 준비된 뭔가를 보는 느낌인데 평소 시험 칠 때의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습니다.
"아들, 엄마 내년에도 학부모 시험감독 봉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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