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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교육부 이야기/부모의 지혜 나눔

만문 만화, 시대의 사회상을 담다

대한민국 교육부 2014. 1. 7. 10:51

지난 달, 오후에 문화역 서울284에서 ‘근대성의 재발견’이라는 기획전의 교육프로그램으로 최석태 미술평론가의 <만화-시사만화와 만문 만화> 강연이 있었습니다. 최석태 선생님은 시사만화와 만문만화가 담고 있던 우리나라의 근현대에 사회상과 만화의 처음에 관해 얘기를 하셨습니다. 저와 함께 최석태 선생님께서 해주신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최초의 만화는 1909년 6월 2일 <대한민보> 창간호에 이도영 선생님이 그린 <삽화>라는 한 컷 그림으로 <대한민보大韓民報> 네 글자를 창간취지에 맞추어 풀이한 것이라고 합니다. 구한말 대한 제국 말기에 국권이 위태로울 때 애국 투쟁의 방편으로 시작되었는데 이 만화의 특징은 초기에 제목이나 첨가한 글의 내용이 한자에서 점차 한글로 변화했다는 것이랍니다.


<대한민보>의 시사만화는 주로 이도영 선생님이 그림을 그리시고 이우승 선생님이 조각하셨다고 합니다. 1910년 국권 침탈 후 친일파를 비롯하여 이토 히로부미 등 조선을 침탈하는 데 앞장섰던 일본인을 실명으로 비판했던 신문은 정간조치나 폐간되고 말았다고 합니다. 이도영 선생님께서는 폐간 후 만화는 그리지 않고 있다가 6.25 전쟁 때 살고 있던 집과 아내, 아들을 폭격으로 잃고 말았다고 합니다. 최초의 미술 선생님이시기도 했던 선생님은 과음으로 인한 병으로 1933년 53세의 나이로 별세하셨다고 해요. 


1918년 그렸다는 동양화 ‘추계독조(秋溪獨釣)’가 간송미술관에 자료로 남아 있고 자료 대부분은 폭격 때 사라졌다고 합니다. 하지만 신문에 실렸던 선생님의 만화들이 남아 재평가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니 반가운 일입니다.




그 당시 만화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했을 뿐만 아니라 1900년 전후 우리나라 사정이나 사회 모습을 거의 유일하게 보여주었다고 합니다. 만화는 적극적인 전달 수단으로서 통상적인 그림과 달리 여러 가지 효과를 목표로 과장, 대비, 풍자 등의 다양한 수법을 구사하여 제작되어 상대를 비난하거나 옹호하기도 했습니다.


1910년~30년대의 시사만화와 만문 만화를 살펴보면 식민지 조선의 생생한 사회상을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일제로부터 주어진 근대였지만 그것을 정당하게 소비할 수 없는 식민지 조선의 모습은 한마디로 ‘모순’이었다고 합니다.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는데 일제와 서구는 계속 공급해와 강제된 욕망만이 있었던 뒤틀린 모습의 근대를 작가는 과장이나 희화화를 통해 날카롭게 풍자했습니다.

<1909년 6월 7일, 이도영, 남의 숭내, 대한민보>

위의 만화는 <대한민보>에서 두 번째로 많이 팔린 신문에 실린 만화로 <금수재판>이라는 반일 풍자소설을 연재하였는데 삽화로 그려진 것이라고 합니다. 일본인과 친일파를 풍자한 것으로 남의 나라 모방을 잘하는 일본인과 친일파를 신사복 입은 원숭이로 표현하고 제목도 ‘남의 숭내’라고 쓰여 있습니다.

<1909년 6월 9일, 이도영, 명색없이 왜 깎어, 대한민보>

고종황제께서 단발령을 내려 많은 유학자가 반발하고 나라 안이 시끌시끌했던 시기에 작자는 만화로 단발령이 명분이 없음을 풍자해서 비난했다고 합니다.

(왼쪽) <1909년 6월 10일, 이도영, 공부는 언제 해, 대한민보> 

이토 히로부미가 조선을 시찰하러 왔을 때 학생들을 동원해 환영하게 했는데 그 상황을 풍자한 만화입니다. 등을 들고 있는 학생의 복장을 보니 다리에 ‘각반’을 차고 교복이기보다는 군복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 옷을 입고 있네요. 일제는 우리 여학생에겐 일본해군 군복 세일러복을 입게 하고 남학생은 만화 속의 학생 모습처럼 옛 일본육군 군복을 입게 했다고 합니다.    

(오른쪽) <1909년 6월 20일 , 이도영, 그만 자고 그만 깨라, 대한민보>

당시 <대한민보>는 눈길을 끌고 마음을 움직여 행동을 촉구하거나 구매를 촉진하려는 수단으로 만화를 실었는데 위의 만화도 무지하고 현실에 무관심한 조선인을 깨우치고 계몽시키고자 하는 의도의 내용이 담겨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왼쪽) <1909년 7월 25일, 이도영, 백이 서지 왈, 대한민보>

친일파 이완용에 대한 해괴한 소문이 나돌고 있었을 때 신문에서 소문을 언급하며 친일파 이완용을 만화로 풍자한 것입니다. ‘임이완용’ 재주가 없는 품팔이 일꾼에게 일을 맡겼더니, ‘자부 상피’ 자기도끼에 상처만 입었다.'라는 뜻이지만 친일파 이완용이 얼마나 미웠으면 공정해야 할 신문에서 소문을 실으면서 비판을 했을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오른쪽)  <1909년 9월 2일, 이도영, 이병무-벌거벗고 환도 찼군, 대한민보>

1907년 체결된 정미 조약에 의해 구한국군대가 해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군부대신 이병무가 버젓이 군복을 착용하고 다니는 것을 풍자한 ‘이검일병무사의(利劍一柄武士儀) 벌거벗고 환도 찻군’이라는 제목과 함께 배가 불룩한 중년의 남자가 벌거벗고 허리에 긴 칼을 차고 군대식 경례를 붙이는 장면을 그려 넣음으로써 당시의 친일 고관을 신랄하게 풍자했다고 합니다.

<1910년 2월 2일, 이도영, 추위에 책인 집에서 저 가련할사 우리 동포를, 대한민보>

위의 만화에서 처음으로 ‘동포’라는 말이 지면상에 나왔다고 합니다. 가난한 우리 국민의 모습을 그려 넣은 만화는 풍자와 한탄 때로는 감상으로 그 시대를 기록했다고 합니다. 그래도 그 당시는 1910년의 경술국치가 되기 전이었기에 친일파와 일본인을 실명으로 비판할 수 있었지만 국권 침탈이 되고 나서 친일 신문을 제외하고는 폐간되고 말았다고 합니다.

<1919년 1월 21일, 라혜석, 섣달대목 1, 매일신보>

<1920년 7월 26일, 김동성(필명 천리구), 매일신보(총독부 기관지로 한글판)>

총독부 기관지의 하나인 한글신문 <매일신보>에 실렸던 시사만화 두 편입니다.

<1923년 5월 25일, 낙천자, 작작 짜내어라, 동아일보 :소작인 악지주 : 현상공모의 수상작>

위의 만화는 지면 경쟁이 벌어지면서 현상공모에 의한 만화가 실렸던 것을 보여주는 만화지만 일제의 허용정책에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작가의 이름을 밝힐 수 없다든지, 실명비판을 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 후로 신문과 잡지 등의 지면에 만문 만화가 등장했는데 한 컷짜리 만화에 짧은 글이 결합한 형태였습니다. 만문 만화는 기형적인 근대를 그려냈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근대가 조선인들에게 어떻게 다가갔는지 보여주기 때문에 가치 있는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고 합니다. 일본인과 차별을 받아야만 하는 식민지 국민의 처지와 눈부신 근대 문물이 남의 떡이기만 했었던 가난한 조선.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던걸이나 모던보이에게는 유행처럼 따라 해야만 했던 허영과 사치의 신문물이었습니다. 만문 만화에서는 우회적인 표현방식으로 특히 모던 걸의 사치풍조를 신랄하게 비판하여 민족의 장래를 걱정하고 민족의 자각을 호소했다고 합니다.


우리의 근현대 시대상을 담고 있었던 시사만화와 만문 만화사상통제 정책, 전향 정책 등 폭압적인 일제의 탄압이 가중됨에 따라 시사성 있는 만평 자체는 점차 불가능하게 되고 어린이 유머 만화가 늘어난 어린이와 여성 독자들의 욕구를 채우게 되었다고 합니다. 광복 후에는 동서 냉전의 결과 선전매체의 성격이 다분한 만화가 등장하여 엽기, 살인 등 충격적인 내용을 담아 이를 염려한 부모, 교사 등 사회의 중요세력은 만화에 적대적이 되고 저질, 불량 문화라는 인식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오늘날 만화의 번성은 가히 눈부시다고 합니다. 광고에도 만화가 한 몫하고 있고, 교육 계몽을 위한 학습만화에도 위력을 발휘하고 있으니 유용하게 사용한다면 무궁무진하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게 만화라고 합니다.

강사님은 많은 자료를 보여주시면서 시사만화와 만문 만화는 우리 근대 문화에 큰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그 시대를 잘 조명하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과거를 알아야 앞으로 나갈 수 있으며 어제가 없는 오늘은 없고 내일도 없다’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우리에게 그리 멀지 않은 과거인 근대지만 그 시기는 오늘이 있기까지 매우 중요한 시기였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시기의 시사만화와 만문 만화를 보면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무슨 생각이 그 시기의 사회를 지배했는지 알 수 있어 재미있었습니다.


다양한 문화 장르가 시대상을 보여준다는 것은 알았지만, 만화도 그 중 하나의 자료가 된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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