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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시원하세요? 본문
문중 벌초를 다녀와서
할아버지 시원하세요?
벌초 I 금초 I 추석 I 산소 | 시제
한국 세시풍속 사전에 의하면 벌초는 전국적으로 행하는 미풍양속으로 고향 근처에 사는 후손들이나 외지에 나간 후손들이 찾아와서 조상의 묘에 자란 풀을 제거하고 묘 주위를 정리하는 일이라고 합니다. 일부 지역에선 풀을 금한다 하여 금초(禁草)라 부르기도 합니다. 백중이 지나 처서가 되면 모기 입도 돌아간다는 선선한 바람이 불어 풀의 성장을 멈추기 때문에 이때 벌초를 하면 비교적 오랫동안 산소가 깨끗이 보전되며 추석에 성묘하기 위해선 추석 전에 반드시 벌초를 끝내야 합니다. 경기도에선 '8월에 벌초하는 사람은 자식으로 안 친다.'라고 하여 미리 할 것을 권고합니다.
시간만 허락된다면 일가친척들 오시기 전에 소분(掃墳)이라 하여 8촌 이내의 가까운 친척들이 모여 가제 벌초를 합니다. 어머님은 날이 더워지면 미리 걱정하십니다. "온 동네 흉본다. 자손들이 가까이 살면서 묘소를 저리 내버려둔다고……."하시며 소분을 강조하십니다. 그렇지만 실제로 거기까지 손이 미치지는 못합니다.
올해는 저희가 문중 모둠 벌초 소임이 되는 해이기도 해서 원래 하던 소 문중과 함께 중 문중 벌초도 해야 합니다. 대문중 시제를 위해 전주에도 다녀와야 합니다.
아열대성 기후를 보이기 시작한 남부 지방은 사람의 왕래마저 뜸해진 산이 정글의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외래종 풀과 넝쿨이 어우러져 길을 터주지 않으면 진입조차 어렵습니다. 더구나 저희 시댁은 부부가 함께 모셔진 경우가 드물어 산소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습니다. 기본 사흘은 걸리는데 올해는 문중 벌초까지 맡으니 평일에 여든 가까이 되신 작은 아버님까지 나서서 진입하기 좋고 가까운 곳은 쉬엄쉬엄해놓으시겠다고 하십니다.
남편은 외장 손입니다. 결혼 초기만 해도 작은 댁 어르신도 젊으시고 친형제 이상으로 지내는 사촌들도 함께해서 벌초는 집안의 가장 큰 행사였습니다. 지방 붙여놓고 지내는 제사보다 누워계신 자리를 봐 드리는 일이 으뜸이라 여겼기 때문입니다. 명절 차례야 원거리에서 차 막히고 당신 가족들 맞이해야 하기도 하니 못 올 수도 있다 여겼으나, 벌초는 하루라도 참석해야 했습니다. 자주 못 보는 멀리 있는 먼 친척도 오고 잔칫집처럼 왁자지껄하던 분위기는 한 해 두 해 지나면서 수그러들었습니다. 어른은 연세 드셔서 거동이 불편해지시고, 아이들이 자라면서 일정이 바쁘고, 종교적 문제로 터부시하고, 이민하고…… 여러 이유로 빠지다 보니 어느새 온전히 우리 가족의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요란하게 비석 세우고 봉분을 높게 하는 걸 금기한 가풍 탓에 소박한 묘소가 오랜 세월에 이제 형체조차 구별하기 힘듭니다. 몇 년 전 가족 묘지를 제안한 적이 있는데 방계 후손들까지 동의해야 하는 일이라 도중에 난관에 부딪혔습니다. 연락도 안 되고 함부로 옮겼다가 집안에 좋지 않은 일이 생기면 원망 들을 수 있다고 어른들이 말리셨습니다. 천천히 받아들일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이날은 아이들 데리고 우리끼리 하는 벌초라 제일 접근하기 쉬운 곳을 골랐음에도 어디가 산이고 봉분인지 구별이 되지 않습니다. 남편은 혼자 예취기로 아카시아와 칡넝쿨이 뒤엉킨 입구에서 길을 내고 있습니다.
기다리기 지루하던 진돗개가 혼자 어디론가 갑니다. 근처 저수지에서 남편이 길을 트는 동안 강아지와 놀아줍니다.
남편이 키 높은 억새와 가시덤불, 칡넝쿨을 제거하여 길을 내면 제가 낫을 들고 쓰러뜨린 풀을 산소 바깥쪽으로 돌아가며 담장처럼 쌓아올립니다. 제초제를 일절 쓰지 않고 자연건조 퇴비가 되도록 꼭꼭 눌러 해를 넘깁니다. 이른 봄 적당히 부피가 준 풀을 모아서 나무 밑에 퇴비로 뿌리거나 양이 많으면 트럭에 실어 따로 처리합니다. 가시가 덜 섞인 풀은 두 아들이 갈퀴로 모아 버립니다. 봉분 주위는 낫으로 정성스레 베어냅니다.
"할아버지 머리가 덥수룩해서 불편하셨죠? 제가 시원하게 해 드릴게요. 올해도 우리 가족 모두 건강하게 하는 일마다 잘 풀리고 발걸음 닿는 곳마다 두루 좋은 일 생기게 해 주세요.
말끔해진 산소를 보니 제 마음도 개운해집니다. 돗자리를 가져오지 않아 바닥에 그냥 엎드려 절합니다. 절하는 자세가 영 엉성합니다. 추석 전에 다시 한 번 제대로 가르쳐줘야겠습니다.
덥고 습한 날 풀을 베니 풀독이 올라 부풀어 오르고 모기와 벌레에 물려 상처투성이입니다.
"아빠, 요즘은 벌초 대행업체도 많던데 우리도 그런 데 맡기면 안 돼요?"
음력 8월이면 주말을 송두리째 빼앗기는 두 아들 불만을 내비칩니다.
"너희는 엄마, 아빠 나이 들어 요양원 가면 간호인에게 맡기고 찾아보지 않을 거니? 우리가 도저히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모를까 조금 수고로울 뿐 할 수 있는데 맡기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른은 내가 편하면 모시고 힘들면 모시지 않아도 되는 분이 아니야. 조상님도 마찬가지야. 내 생명의 근원인데 한 해에 단 며칠 살펴드리는 것도 못하겠니?"
"우리만 자손인 게 아니잖아요? 다른 친척분들은 오시지도 않는데 매년 우리만 너무 고생하는 것 같아요."
"누가 도와주고 안 도와주고에 따라 의당 내가 해야 할 일을 미루면 안 돼. 네가 말한 대로 모두가 자손인데 누가 하면 어떠니? 할 수 있는 사람이 하는 게야."
"아빠가 더 나이 들고 너희가 공부나 일로 멀리 간다면 동의를 구할 수 있는 직계 묘소라도 한 곳에 모실 작정이야. 예(禮)란 마음에 있는 거지 형식에 있는 것이 아니야. 벌초할 수 없게 되면 대행업체에 맡겨도 되고, 아예 못할 수도 있어. 차례상을 물 한 그릇 떠놓고 모실 수도 있고, 마음으로 기도만 할 수도 있어. 그렇지만 나만 고생하는 것 같고 귀찮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이미 예가 아니야."
어떤 질문이든 훈장님처럼 길게 답변하는 남편에게 걸려 아이들은 긴 시간 훈계를 들었습니다. 막내는 엄마, 아빠가 안 계신 걸 상상하는 것만으로 무섭다고 합니다. 꼭 안아줬습니다
추석보다 먼저 있는 아버님 제사입니다. 수험생이라고 벌초에서 제외했던 딸. 제수 음식 만드는 데는 저의 훌륭한 조수입니다. 소박하지만 정성을 다해 음식을 만들고 마음을 다해 절을 합니다. "저희를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음복을 하면서 뵌 적 없는 아버님 얘기를 듣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말씀드립니다. '내년에도 머리 시원하게 깎아드리고 누워계신 자리 봐 드릴게요. 몇 년 뒤에는 멀리 계신 할아버지, 할머니, 작은할아버지, 할머니까지 한 지붕 아래 모시겠습니다. 함께 계시면 어느 자손이 와도 얼굴 한 번 더 보고, 절 한 번 더 받으실 겁니다."
벌초한 다음 주는 온 가족이 몸살을 합니다. 그렇지만 하지 않은 무거운 마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우리의 장지 문화는 바뀌어야 한다고 합니다. 저도 찬성합니다. 그렇지만 묘소를 보살피는 마음은 돌아가신 분의 뜻을 기억하고 우리를 반성하는 계기이기도 합니다. 그 마음만은 지키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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