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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사기록 없는 장영실은 외계인?(상) 본문
지난해 11월 부산시 동래읍성 북문 광장 앞의 장영실 과학동산이 문을 열었다. 조선시대 과학자인 장영실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조성된 이 과학동산에는 혼천의를 비롯해 앙부일구, 천상열차분야지도, 측우기 등 그가 만든 조선시대의 과학기기 19점이 복원 전시되었다.
장영실하면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가장 뛰어난 과학기술자로 누구나 공히 인정하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와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이 선정하는 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에 헌정되어 있으며, 1969년에 설립된 (사)과학선현장영실선생기념사업회에서는 매년 장영실 과학문화상을 수상하는 등 기념사업을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다.
또 매일경제신문사에서는 1991년부터 매년 탁월한 공산품을 선정하여 ‘IR52 장영실상“을 교육과학기술부 후원으로 시상해오고 있다. 가히 장영실은 우리나라 역사상 최고의 과학자로 꼽히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이런 유명세와는 달리 장영실은 그 출생 및 성장과정과 과학 활동 이후의 여생이 전혀 알려져 있지 않은 가장 미스터리한 인물 중의 한 명이다. 심지어 백과사전에도 장영실의 경우 모든 인물 항목의 기본 사항인 출생년도와 사망년도 모두 물음표로 기재되어 있을 정도이다.
세계에서 보기 드문 자동물시계인 자격루와 세계 최고의 우량계인 측우기 등을 제작한 공으로 종3품인 대호군의 벼슬에까지 오른 장영실이 이처럼 철저히 베일에 가린 삶을 살았던 까닭은 무엇일까?
우선 장영실의 출생일 및 성장과정이 전혀 알려지지 않은 까닭은 그가 조선의 신분 계층 중 가장 천한 노비였기 때문이다. 1434년(세종 16) 7월 1일자의 세종실록을 보면 장영실은 동래현 관노였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1433년(세종 15) 9월 16일자의 기사에는 그의 부모에 대해 언급되어 있다.
“행사직 장영실은 그 아비가 본래 원나라의 소주‧항주 사람이고 어미는 기생이었는데 공교한 솜씨가 보통 사람보다 뛰어나므로 태종께서 보호하시었고 나도 역시 이를 아낀다.”
이에 의하면 장영실은 원나라 출신의 아버지와 기생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장영실의 본관인 아산 장씨 세보에 의하면 이와는 조금 다르다.
▲ 장영실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부산 동래에 조성된 장영실 과학동산
우리나라의 성씨 중 장(蔣)씨는 모두 아산 장씨로서 장영실은 아산 장씨의 족보에 장서의 9세손으로 기재되어 있다. 따라서 장영실의 부친은 원나라 사람이 아니라 고려 때 송나라에서 망명한 이후 줄곧 한반도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았던 귀화인이었다.
아산 장씨 족보에 의하면 장영실의 부친인 장성휘는 전서라는 벼슬을 지낸 것으로 되어 있다. 전서는 고려 후기부터 조선 초기에 이르기까지의 정3품 관직으로서, 중앙 관청의 장관급 직위였다.
그뿐만이 아니다. 부친 장성휘는 5형제 중 셋째였는데, 나머지 네 형제도 모두 전서 벼슬을 지냈다. 때문의 그들의 출생지인 경북 의성군 점곡면 교동은 5전서의 마을로 불리기도 했다.
아산 장씨의 3세손인 장공수와 장숭은 당시 무기의 제조를 맡았던 군기시의 책임자를 역임했으며, 장영실의 고조할아버지인 5세손 장득분은 군기시의 책임자 및 천문지리학을 담당했던 서운관의 책임자를 지냈다.
즉, 장영실의 가문은 대대로 과학기술 분야의 책임자로서 고위직을 지냈던 쟁쟁한 가문이었던 것이다. 시조 장서의 고향인 중국 항주가 아라비아와 중국을 연결하는 해상 실크로드지역으로서, 군사 및 무기 등 과학기술 분야의 교류가 활발했던 곳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이는 결코 우연이 아닌 것 같다.
장영실이 부산 동래현의 관노로 있었던 것도 부친이 동래현에 파견된 고위직 군사기술자였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부산 동래는 고려 말 무렵 왜구들의 침략이 잦았던 국방 요지였다. 따라서 동래에 파견되어 있던 부친 장성휘가 그 지역의 기생과 인연을 맺어 장영실을 낳았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조선 시대는 태종 때 엄격한 신분제도가 만들어져 기생에게서 태어난 아이는 아버지의 신분 여하를 막론하고 천인 계급에 속해야 했기 때문에 장영실도 동래현의 관노가 된 것이다.
▲ 충남 아산의 아산 장씨 시조묘에 세워져 있는 장영실 추모비
먼저 그의 출생년도에 대해서는 1383년설과 1390년설 등 두 가지 설이 있다. 1383년설에 의하면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할 무렵인 1392년에 장영실은 만 9세가 된다. 따라서 장영실은 9살까지는 높은 벼슬을 지낸 아버지 밑에서 우수한 교육을 받았다고 본다.
그러다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들어서면서 고려의 고위직 관리였던 장성휘의 집안은 역적으로 몰려 장영실과 어머니가 관노가 되었다는 추정이다. 이런 주장을 하는 이들은 그 근거로 부친 장성휘의 생몰년도 및 묘소에 관한 기록이 전혀 없다는 점을 내세운다.
장성휘의 다른 네 형제의 묘소는 각각 비안, 의성, 안동, 의흥 등지에 흩어져 있다. 이로 볼 때 조선이 개국되자 다른 네 형제는 다른 지방으로 피해 화를 면했으나 장성휘만 역적으로 몰려 처형되었을 거라는 주장이다.
1390년 출생설을 주장하는 이의 논거는 알려진 대로 동래에서 전서 벼슬을 지낸 장성휘와 기생 사이에서 태어난 장영실이 어린 시절에 부유한 환경에서 정상적인 교육을 받은 것으로 본다. 그러다 조선 건국 이후 태종대에 이르러 신분제의 실시로 장영실은 관기인 어머니의 신분에 따라 졸지에 동래현 관노로 예속되었다는 것.
어쨌든 장영실은 어린 시절부터 당시 상류계층 자제들의 예에 따라 중국어 및 아랍어 등의 학문적 교양을 이미 갖추었고, 조상대부터 내려오는 과학적 소양을 이어받아 동래현 관노로 있으면서도 출중한 능력을 발휘했음이 틀림없다. 그러다 각 지방의 능력 있는 인재들을 임금에게 천거하는 도천법이 시행되면서 장영실은 관찰사의 추천으로 한양에 올라가게 되었다고 한다.
이때가 태종 때였으니 장영실은 고려 말 조선 초의 혼란한 시대적 환경에 따라 신분이 오르내리는 인생의 굴곡을 일찍이 경험한 셈이다. 한양으로 올라온 장영실은 세종이 즉위하면서 그 이름을 떨치기 시작한다.
조선시대 야사 총서인 연려실기술에 의하면 1421년(세종 3)에 세종이 윤사웅, 최천구 등과 함께 장영실을 중국에 유학 보내 각종 천문기계를 익혀오라고 명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장영실 일행은 1년간 중국에서 머무르다 조선으로 돌아왔다.
귀국한 다음해인 1423년 장영실은 상의원 별좌에 임명되면서 관노 신분에서 벗어났다. 이때 세종이 장영실을 별좌에 앉히려 하자, 기생의 소생을 상의원에 둘 수 없다며 이조판서 허조가 반대하고 나섰다. 상의원은 임금의 의복과 궁중에서 사용하는 일용품 및 금은보화 등을 담당하는 기관이었는데, 별좌는 종5품의 문반직이었지만 월급은 받지 못하는 무록관이었다.
그러나 병조판서 조말생 및 유정현 등이 장영실은 상의원에 적합하다고 주장하여 세종은 그를 별좌로 임명했다. 관노가 일시에 종5품직에 오른 것은 매우 파격적인 대우였다. 별좌가 된 지 1년 만에 다시 장영실은 정5품 사직의 벼슬에 올랐다.
사직이란 벼슬은 실무는 없지만 월급을 받는 녹관으로서, 군부에 속한 직책이었다. 그 후에도 장영실은 승승장구해 1433년(세종 15) 정4품 벼슬인 호군에 오르고, 1438년(세종 20)에는 종3품인 대호군에 올랐다.
▲ 국립고궁박물관에 복원된 자격루
또 한국 활자의 백미라고 일컬어지는 갑인자를 만들어 인쇄능률을 향상시켰으며, 세계 최초의 측우기를 발명하는 데 참여했다. 특히 자동물시계인 자격루를 제작하고, 혼천의와 자격루의 기능을 결합시킨 옥루를 만들어 흠경각에 설치한 업적은 장영실로 하여금 호군과 대호군의 직위를 받게 했다.
또한 경상도 채방별감으로 임명되어 경상도 지방의 광물을 조사했으며, 박연과 함께 성률과 악기를 고치고 바로잡는 일을 하기도 했다. 이밖에도 벽동군에서 청옥이 난다는 소식이 들리면 세종은 장영실을 보내 채굴하게 했고, 특별한 제련 기술을 갖고 있는 중국 사람이 나타났다는 소식을 들으면 장영실로 하여금 그 기술을 배우게 했다는 내용 등이 세종실록에 기록되어 있다.
심지어 세종은 매일 강무할 때 장영실을 곁에 두고 내시를 대신해 명령을 전달시키기도 할 정도였다. 그런데 1442년 장영실은 아주 이상한 사건에 휘말린다.
이 포스트는 생사기록 없는 장영실은 외계인?(하) 에서 이어집니다.
글 | 이성규 기자
한국과학창의재단 사이언스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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