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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교육부 이야기/신기한 과학세계

디지털 수사 vs 아날로그 범죄

대한민국 교육부 2010. 3. 12. 09:33
   디지털 증거를 남기지 않는 범죄자
 

자동차로 여성을 유인해 성폭행한 후 살인하는 행각을 벌여 국민들에게 충격을 안겨준 경기 서남부 연쇄살인범 강호순은 범죄시 매우 치밀한 행동을 한 것으로 유명했다. 범행을 저지르는 날에는 반드시 하루 종일 휴대폰을 꺼놓았으며, 다시 켠 후에는 가장 먼저 애인에게 전화를 걸어 알리바이를 만들었다.

부녀자 5명을 집중적으로 살해했던 약 5개월 동안에는 평소 자주 사용하던 신용카드도 일절 사용하지 않았다. 또 자신의 모습이 찍힐 것을 염려해 CCTV가 설치된 도로는 교묘히 피해 다녔다.

강호순이 이처럼 치밀한 행동을 한 것은 디지털 증거를 남기지 않기 위해서였다. 현대인에게 디지털 기기는 이미 필수품으로 자리 잡았다. 휴대폰, 인터넷, CCTV, 디지털카메라, 내비게이션 등의 디지털 기기를 접하지 않고는 하루라도 살 수 없게 되어 버렸을 정도다.

이런 디지털 기기들을 접할 경우 자신도 모르는 사이 디지털 증거를 남기게 된다. 범행 지역에서 켜 놓은 휴대폰이 그 시간대에 그 곳의 기지국에서 잡히면 제일 먼저 용의선상에 떠오를 수밖에 없다. 또 PC방 등지에서 인터넷 사이트에 접속하는 행위는 곧 자신의 위치를 노출시키는 증거로 남게 된다.

이와 같은 디지털 증거들을 모아 법적으로 유효한 증거로 사용하고 분석하는 기술 및 수사 행위를 디지털 법의학이라고 한다. 지문, 모발, DNA 감식, 변사체 검시 등이 전통적인 법의학 분야라면, 디지털 법의학은 전자적 증거를 이용해 범인을 추리하고 추적하는 분야인 셈이다.
 

▲ 최근 전자 증거를 추적하는 디지털 법의학이 각광받고 있다

 
   강호순도 디지털 증거에 꼬리 밟혀
 

디지털 증거를 남기지 않기 위해 치밀한 행동을 했던 강호순도 결국 디지털 법의학의 수사망을 완전히 벗어나진 못했다. 안산시의 도로변에 설치된 CCTV에 군포의 여대생을 태워 안산으로 가던 강호순의 승용차 번호판이 뚜렷하게 찍혀 있었던 것이다. 또 한 학교의 현관에 설치된 CCTV에도 찍혀 결정적인 단서를 남겼다.

먼 곳의 CCTV에 찍힌 영상으로는 정확한 얼굴을 알기 어렵지만, 디지털 법의학 기술의 일종인 영상분석법을 이용하면 화질이 낮은 사진을 뭉개지 않고 선명하게 확대하는 것이 가능하다. 검거 후 강호순의 차량에서 불에 탄 채 발견된 일기장을 복원해 피해자의 이름이 거기에 적혀 있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도 대검찰청의 디지털 법의학 센터였다.

지난 2002년 영국 에섹스에서 일어난 10대 소녀 살인사건의 범인을 검거하는 데도 디지털 법의학이 이용되었다. 범인은 휴대폰에 있는 문자 메시지를 자신이 쓴 게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텍스트 분석 기법에 의해 범인이 쓴 것임이 확인되어 알리바이가 깨졌던 것.

특히 최근 사이버 범죄가 급증하면서 디지털 증거를 추적하는 디지털 법의학 분야가 더욱 각광받고 있다.

하지만 이처럼 디지털 시대에 맞게 발전하는 수사기법도 범인이 아날로그식의 도피 행각을 벌일 때는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10일 검거된 부산 여중생 살인사건의 피의자 김길태는 운전면허는 물론 휴대폰도 없고 인터넷도 하지 않아 경찰의 추적을 매우 어렵게 만들었다. 또한 범행 장소는 자신이 어릴 적부터 거주했던 곳이라 CCTV의 위치까지 파악하고 있을 만큼 주변 지리에도 밝았다.

작년에 발생한 원주 간호사 살해사건의 범인도 이처럼 아날로그식 도주에 능했다. 사건 직후 범인은 서울의 한 PC방에서 인터넷을 사용한 기록을 남겨 모든 수사력을 서울로 집중시켰다.

하지만 범인은 그 후 인터넷과 휴대폰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고, 자전거를 이용해 300㎞의 거리를 이동하는 고전적인 수법을 사용했다. 결국 범인은 서울이 아닌 부산에서 아날로그식 수사기법의 전형인 불심검문에 덜미가 잡혔다.

이번에 검거된 김길태 역시 수색 범위를 넓힌 주변 지역의 불심검문 중 격투 끝에 붙잡혔다고 한다. 뛰는 디지털 수사 기법 밑으로 숨어드는 아날로그식 방법이 첨단시대를 살아가는 범인들의 또 다른 범죄 패턴이 되지 않을까 염려된다. 

이성규 기자
 한국과학창의재단  사이언스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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