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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자료/역사

경복궁내에 건물과 쓰임새

대한민국 교육부 2016. 5. 9. 11:08

경복궁내에 건물과 쓰임새 









<경복궁>





조선 제일의 궁궐



경복궁은 조선시대 궁궐 중 가장 중심이 궁궐로서 태조 4년(1395)에 한양으로 수도를 옮긴 후 처음으로 세운 궁궐이에요. 경복궁의 뜻은 시경에서 ‘왕과 백성이 태평성대를 누릴 큰 복을 빈다’는 뜻의 ‘경복(景福)’이라는 두 글자를 따와서 지은 것이랍니다.


각 건물의 이름과 쓰임새

경복궁 내의 각 건물에는 유교의 정신을 담아 이름을 지었어요. 예를 들어 국가 행사를 치르거나 임금과 신하가 중요한 일을 결정하던 근정전(勤政殿)은 나라 다스리는 일을 부지런히 하라는 뜻이 담겨있고, 임금과 신하가 모여 회의를 했던 사정전(思政殿)에는 깊이 생각해서 바른 정치를 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답니다. 경복궁의 각 건물의 이름과 그 의미를 알아봅시다.


<각 건물의 이름과 쓰임새>




<바른 정치가 세워진 곳 경복궁 근정전>





경복궁은 조선시대 내내 왕이 머무는 궁궐 역할을 하지는 않았어요.

경복궁은 태조 이성계가 한양에 조선을 건국한지 3년 후인 1395년에 세워졌는데, 1592-1598년 임진왜란 때 일본에 의해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이 불에 모두 타버리고 말았습니다. 이후 선조와 광해군은 불에 탄 경복궁을 복원하려 하였지만 결국 실현되지 못하였고 대신 창덕궁을 복원하고 경희궁을 지어 조선 후기까지 중심적인 궁궐 역할을 하였지요.


<창덕궁>

 

<숭정전 (경희궁지)>





경복궁을 다시 세운 흥선대원군

조선시대 말, 어린 고종 대신 나라를 통치한 흥선대원군은 약해진 조선을 강하게 세우기 위해서는 왕권을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강한 왕권을 보여 주고 왕실의 위엄을 세우기 위해서 경복궁을 다시 세우기로 하였답니다. 그리하여 흥선대원군은 많은 백성들을 노동에 동원하였고 양반들에게는 지원금을 걷었어요. 또 ‘당백전’이라는 화폐를 만들어서 경복궁 중건에 필요한 돈을 마련하고자 하였지요.

결국 경복궁은 1867년에 다시 세워졌지만 경복궁 중건으로 인한 폐해도 많았어요. 당백전이 많이 발행되면서 물가가 크게 올라 백성들이 살기 어려워졌고, 무리한 공사에 많은 백성들이 동원되면서 흥선 대원군에 대한 원망이 더욱 커졌습니다.


조선의 마지막과 함께 한 경복궁

흥선대원군이 어렵게 다시 세운 경복궁은 조선 말기 가슴 아픈 역사를 지켜보아야만 했습니다. 1895년에는 경복궁 안에서 명성황후가 일본 자객에 의해 시해되는 사건이 벌어졌고, 1910년 국권을 잃은 후에는 궁안의 4,000여 칸의 건물을 헐어버렸으며 정문인 광화문도 북쪽으로 옮겨버렸어요. 또한 궁의 중심건물인 근정전 앞에는 매우 큰 석조건물인 조선총독부 청사를 지어 근정전을 완전히 가려 버렸어요.


비록 궁궐 안의 많은 건물들이 사라졌지만, 광복 후 경복궁을 복원하는 공사가 지속되어 옛 모습을 찾아가고 있어요. 또한 정전, 누각 등의 주요 건물들이 남아있고 처음 지어진 자리를 지키고 있어서, 조선의 법궁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출처:에듀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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