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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인천상륙작전' 실재 주인공에게 듣다 본문
“인천 상륙작전하면 맥아더 장군을 떠올리기 쉽습니다. 물론 맥아더 장군의 전략적 판단과 용단이 성공 요인 중 하나였지만, 우리 국군과 젊은 세대부터 나이 든 어른까지 수많은 국민들의 희생 없이는 불가능했습니다.”
영화 ‘인천상륙작전’의 주인공이자 해군 첩보부대의 리더인 장학수(이정재) 대위는 실존인물일까? 답은 실존 인물입니다. 인천상륙작전(Operation Chromite)은 한국전쟁 발발 직후 열세에 몰렸던 우리가 5000분의 1이라는 낮은 성공률에도 불구하고 전세를 역전시켰던 가장 위대하고 대표적인 사건입니다. 이 성공에는 우리 해군의 ‘X-ray’ 작전과 희생이 있었습니다.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은 수도 서울을 탈환하는 발판이 됐을 뿐만 아니라 북한의 보급로를 차단해 낙동강 전선의 북한 주력 부대를 붕괴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데 큰 의미가 있습니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실화 ‘인천상륙작전’의 실재 주인공, 당시 우리 해군 첩보부대의 ‘X-ray’ 작전을 주도했던 함명수(88) 전 해군참모총장을 정책브리핑이 만났습니다.
영화 ‘인천상륙작전’의 실재 주인공이자 ‘X-ray’ 작전을 진두지휘했던 함명수 전 해군참모총장.
- ‘인천상륙작전’의 실재 주인공으로써 영화는 당시 상황과 비교한다면 얼마나 흡사한가요?
영화가 한창 진행 중이라 뭐라고 말하기가 그렇지만 영화는 역사에 픽션을 가미해야 재미있기 때문에 실제와는 조금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인천 상륙작전 당시 실제 ‘X-ray작전’을 지휘했는데, 영화와는 몇 가지 다른 점이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영화에서는 팔미도 등대에서 교전 장면이 있던데, X-ray 작전을 수행 중인 당시에는 팔미도에 적군이 없었습니다. 우리 해군은 8월 20일 팔미도에 상륙해 등대 내 통시시설을 이미 파괴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 상륙 하루 전 미군 소속 대북 첩보 부대인 ‘켈로부대(KLO)’는 팔미도를 탈환한 뒤 등대를 작동시켰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맥아더 장군이 지시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지시한 적이 없습니다. 맥아더 장군은 팔미도 등대 작동사실에 대해 모르고 있었습니다.
- ‘X-레이 작전’은 어떤 건가요? 어떻게 진행됐나요? 관련해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사건이 있으시다면 말씀해주세요.
6·25전쟁 당시 우리군은 북한군에 밀려 낙동강까지 후퇴하게 됐습니다. 이에 맥아더 장군은 미국 루시 중령을 통해 우리 군에게 두 가지 임무를 요청했습니다.
하나는 인천으로 접근하는 도서를 점령하는 것과 우리 군만이 할 수 있는 인간정보(HUMINT, human intelligence) 임무였습니다. 즉 미군의 항공사진 촬영이나 통신장비 감청으로 할 수 없는 극비 업무로 사람이 직접 가서 보고 듣고 확인하는 것이죠.
제가 지휘한 해군 첩보부대는 상륙작전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X-ray’ 작전을 실행하게 됐습니다. 적의 내부를 본다는 의미에서 제가 ‘X-ray’라고 이름을 붙였죠.
함명수 전 해군참모총장이 ‘X-ray’작전이 시작하게 된 배경부터 실제 상황,
그리고 일화까지 이야기하고 있다. 함 전 총장은 “조국을 위해 희생한 모든 이들을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950년 8월 17일 우리 첩보부대는 인천 앞바다인 영흥도로 잠입해 들어갔습니다. 북한군의 해안포 위치, 병력 규모, 수로에 배치돼 있는 기뢰의 위치와 제거의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했습니다. 작전 수행을 위한 우리 부대원들의 희생도 훌륭했지만 영흥도와 인천 시민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 했을 것입니다.
특히 인천에 잠입했을 당시 김순기 중위를 통해 알게 된 북한군 보안원으로 일하고 있던 김정국 씨와 권상우 씨가 있습니다. 김 중위가 인천경비부에서 근무할 때 권 씨를 정보원으로 활용했었어요. 권 씨는 ‘살기 위해 북한군에 협조했을 뿐 대한민국 해군에 충성을 다하겠다’고 했습니다. 덕분에 통행증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저를 포함한 고 임병래 소위, 고 홍시욱 하사 이렇게 3명은 미국이 외국군에게 주는 최고훈장인 ‘은성무공훈장’을 받았습니다. 이는 해군첩부대가 얼마나 중요한 작전을 수행했고 그 작전이 성공적이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 ‘X-레이 작전’에 참여했던 고 임병래 소위, 홍시욱 하사 등을 기억하신다면?
당시 해군 정보국장이었던 저의 지휘 아래 김순기 중위, 임병래·장정택 소위를 팀장으로 한 3개팀 총 17명을 선발해 첩보대 조직을 구성했습니다. 단, 대원들은 모두 독신자로 뽑았습니다. 가족에게 작전을 누설할 수도 있고 아무래도 작전 수행 중에 가족으로 인해 마음이 약해질 수도 있기 때문이었죠.
에피소드로는 첩보작전을 갈 때 제가 중령 진급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대원 중 임병래 소위가 그것을 알고 인천으로 향하는 배에서 계급장을 선물했는데 제가 그것을 바다에 던져버렸습니다. 그것을 뒤에서 보고 있던 임 소위는 서운해 했지만, 대원들에게 ‘이번 작전에 성공하기 위해 용왕님께 드린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후 인천상륙작전 수행 이후 중령으로 진급했습니다.
- 인천상륙작전이 5000분의 1이라는 낮은 성공률에도 불구하고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은 무엇인가요?
맥아더는 5000분의 1이라는 낮은 성공률 때문에 오히려 전략적으로 적의 허를 찔러야 한다고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인천을 점령해야 서울을 점령할 수 있고 낙동강 전선으로 흘러내려가는 모든 보급물자를 끊을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맥아더 장군의 이러한 전략적 판단은 훌륭했지만, 기획단의 핵심멤버는 스미스 해병소장과 도일 해군소장이었습니다.
또한 미 7사단에 포함돼 있는 우리군과 해병대 등 상륙군들의 용감함이 있었습니다. 아울러 스트러블 해군제독의 작전 지휘는 탁월했습니다. 그는 인천에 들어가기 위해서 월미도 공략을 가장 중요시 했습니다. 무엇보다 희생자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신병들의 용감함이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었습니다.
- 현재 대한민국은 사드 배치 문제 등 안보와 관련해 대내외적으로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국민들에게 전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요?
자유는 공짜가 아닙니다. 희생 없이는 자유를 얻을 수 없습니다. 인천상륙작전은 풍전등화의 대한민국을 구한 것이며 그 뒤에는 고귀한 희생이 있었습니다.
또한 ‘지키는 자가 없을 때 위기가 온다’는 말이 있습니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장병들은 최고사령관의 몫이요 국민 각자의 몫입니다. 국민 스스로가 자기 나라를 지켜야 합니다.
- 젊은 세대도 영화 ‘인천상륙작전’에 관심이 많은데 그들에게도 한 말씀 해주세요.
벌써 관객이 500만 명이 넘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영화에서 봤듯이 인천상륙작전에서 목숨을 잃은 대부분은 젊은 세대들입니다. 이것에 공감을 한다는 것에 마음이 든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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