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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선 대장 무산소 등정, 얼마나 힘들길래? 본문
지난 27일 오후 6시, 산악인 오은선 대장이 8천91미터의 히말라야 고봉 안나푸르나 등정에 성공했다. 여성 최초로 히말라야 8천미터 이상 14좌 완등을 달성한 것이다.
국내외 언론은 오 대장이 27일(한국시각) 오전 5시쯤 7천200미터의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4를 출발해 13시간 16분 간의 사투 끝에 안나푸르나 정상에 올랐다고 보도했다. 정상에 오른 오 대장은 태극기를 펼쳐든 채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오 대장은 지난해 가을 안나푸르나에 도전했으나 악천후로 발길을 돌렸다가 이날 결국 성공했다. 특히 여성의 몸으로 무산소 등정과 속공 등반 등 위험부담이 큰 전략으로 14좌 완등에 성공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히말라야의 8000m급 고봉들은 인간에게 정상을 쉽게 허락하지 않기로 유명하다. 그동안 수많은 국내외 산악인들이 목숨을 잃은 것이 그 예다. 극한의 추위, 크레바스, 예측불가한 눈사태, 초고속의 강풍과 눈보라, 눈을 멀게 하는 설맹 등이 도전자의 목숨을 언제라도 빼앗을 것처럼 도사리고 있다.
▲ 대부분의 산악인들은 “고산등반에서 가장 참기 힘든 건 산소 부족”이라고 입을 모은다.
오은선 대장 역시 캠프 4구간에서 3~4발자국을 걷는 동안 5~10분이나 휴식한 것으로 알려졌다. 100미터 나아가는 데 1시간 이상 걸리는 셈이다. 무산소 고봉 등정이 어려운 이유다.
기압은 고도가 증가할수록 매 100미터당 11.7밀리바(mb)의 비율로 감소한다. 평지의 기압이 1천700㎜Hg이라면 해발 1천800미터에선 680㎜Hg로 떨어진다.
1천500~3천미터에서의 압력도 인간에겐 매우 낮은 대기압이다. 이곳에선 갑자기 숨을 가쁘게 몰아쉬게 되는데 인체 항상성(恒常性)의 원리에 따라 고도가 높아지면 산소 분압이 낮아지고, 자율신경 스스로 호흡량과 폐활량을 늘려 효율적으로 체내 산소를 이용하려 하기 때문이다.
산소가 부족해지면 피를 온몸에 보내기 위해 심장박동이 빨라지는데 “두세 발짝만 떼어도 해수면에서 1백미터를 전력질주하고 난 후의 숨 가쁜 상태가 된다”고 산악인들은 말한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해수면의 공기 중 산소 포화도는 20% 남짓이고, 해발 1천800미터의 산소 포화도는 16%대로 떨어지기 때문에, 8천미터의 경우 산소가 절대적으로 부족해 적응이 되지 않을 경우 매우 힘들다”고 설명한다. 지난 1988년 히말라야 원정에서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랐던 산악인 정승권씨는 이를 “가슴이 터질 것 같고, 숨 막혀서 죽을 것 같은 상태”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따라서 8천미터 이상의 고봉에선 일반인은 고사하고, 전문 산악인들도 고산병의 위험에 빠지게 된다. 따라서 기존에는 고봉 등정에는 극지법(極地法)이란 전략을 구사했다. 이는 베이스캠프~캠프1~캠프2~캠프3~캠프4 등의 전진 캠프를 설치하면서 물자를 보관하고 고소순응을 하면서 차근차근 정상에 오르는 안전한 방법이다.
그러나 이번에 오은선 대장은 산소통 없는 무산소 등정으로 중간 캠프를 건너 뛰어 바로 오르는 속공등반을 구사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일까?
지난 1999년 에베레스트 정상근처에서 실종된 전설적인 산악인 ‘조지 말러리’의 시신이 75년 만에 발견됐다. 말러리는 세계 최초로 무산소 등정에 도전, 실종된 영국 산악인이다.
▲ 8천미터 이상의 고봉에선 일반인은 고사하고, 전문 산악인들도 고산병의 위험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이는 얼마 후 이탈리아 산악인 ‘라인홀드 매스너’에 의해 깨졌다. 그는 에베레스트 무산소등반 뿐만 아니라 세계 최초로 8천미터급 14봉을 모두 정복한 사람이 됐다. 세인들은 그를 ‘세기의 철인’이란 별명을 붙여주고,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에겐 한 가지 원칙이 있었다. 그것은 과학적 원리에 의한 철저한 고소순응(高所順應) 전략과 기존에 개척된 루트를 따르지 않는 모험정신이었다.
고소순응이란, 높아지는 고도에 따라 달라지는 기압이나 산소분압의 저하에 대해서 인간의 생리기능이나 육체가 적응, 본래의 건전한 기능을 회복하는 것이다. 가장 낮은 단계부터 고지를 향해 가면서 자신의 생리기능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도록 차근차근 고지대에 맞게 만들어 나가는 훈련방법이다.
스위스의 의사 출신 히말라야 등반가 에트와르 위스 뒤낭은 “인간은 6천미터의 고도에선 적응할 수 있지만, 그 이상을 넘어가면 산소부족으로 에너지 보충이 어려워져 고산병에 걸릴 수 있다”고 경고한 적이 있다. 산소 부족으로 인한 두통, 식욕 감퇴, 멀미, 현기증, 불면증, 숨 막힘, 무력증 등의 증상이 따라온다는 것이다.
이를 극복하려면 체력이 뛰어난 등반가도 천천히 단계적인 적응 수순을 밟아가며 고도를 낮추는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 인간은 6천미터의 고도에선 적응할 수 있지만, 그 이상을 넘어가면 산소부족으로 에너지 보충이 어려워져 고산병에 걸릴 수 있다.
전문가들은 “에베레스트 등반의 경우, 가장 이상적인 조건은 베이스캠프(약5천4백m) ~ 캠프1(약6천1백m) ~ 캠프2(약6천4백m) ~ 캠프3(약7천2백m) ~ 캠프4(약8천m) ~ 정상이라는 순서를 밟는 것”이라고 말한다.
즉, 각 단계마다 3~4일 정도 적응하고, 캠프4에서 하루 만에 정상 정복을 노리는 것이다. 그래도 최소 약 17일이 걸린다고 한다.
8천848미터에 달하는 에베레스트 산의 경우, 이런 고소순응 과정을 철저하게 거친 다음에 도전에 나선다. 이렇게 되면 베이스캠프에서 정상까지는 약 1개월이 소비되고, 악천후엔 훨씬 더 걸릴 수도 있다.
그러나 매스너의 경우, 캠프 1, 캠프2, 캠프3 등을 오르내리며, 적응훈련을 하다가 빠르게 정상에 오르는 등반 법을 구사해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했다. 그는 기존에 구축된 루트를 따르지 않고 새로운 루트로 빠르게 오르는 속도등반을 실시해 더욱 유명해졌다.
우리나라의 오은선 대장 역시 이런 방법으로 무산소 등정을 달성했고, 중간캠프수를 줄여 3-4일 만에 정상을 밟는 속공등반을 선택했다. 오 대장은 평소에 마라톤 선수를 능가하는 체력, 피로 해소능력, 산악인에 적격한 체질인 헤모글로빈 증가량 등 선천적인 조건도 갖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이러한 과학적 방법 이외에도 강한 체력과 정신력이 바탕이 되어야 고봉을 정복할 수 있다. 불굴의 의지력으로 만들어낸 철녀(鐵女)의 승리인 셈이다.
글 | 조행만 기자
한국과학창의재단 사이언스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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