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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벡 교수의 수업: ‘자기 이야기 Personal Narrative’

대한민국 교육부 2017. 7. 19. 16:41

풀벡 교수의 수업:

‘자기 이야기 Personal Narrative’

 

 

 

개강을 한 UCSB 캠퍼스는 활력이 넘친다. 가을 하늘을 비행하는 잠자리 떼처럼 자전거나 스케이트 보드를 탄 학생들이 강의실을 향해 이리 저리 쌩쌩쌩 지나간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비교문학과의 네시 교수가 캠퍼스 곳곳을 소개해주면서 했던 말이 떠올랐다.

 

 “자전거랑 보드를 조심하세요. 1년 동안 안전하게 지내셔야죠.”

 

 그때는 방학 중이라 캠퍼스가 아주 조용하고 한산해서 뭐 이런 주의사항까지 주나 싶었는데 이제야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었다.

  

“1344호는 어디에 있나요?”

 

미리 양해를 구하고 풀벡 Kip Fulbeck 교수의 수업을 참관하러 가는 길이었다. 아무리 찾아봐도 모르겠어서 1345호에 들어가서 물어보니 한 학생이 웃으며 이 건물 반대편에 있다고 알려주었다. 미로와 같은 예술 강의동 구조를 보니 문득 ‘이상이 설계했다’는 루머가 도는 이화여대 학관(여자 화장실을 통하면 1층 다음에 바로 3층이 나온다. 남자 교수들은 한 층을 올라가야 된다.)이 떠올랐다.

 

강의실에 도착하니 스물 다섯 명 정도의 학생들이 앉아 있었고 풀벡 교수가 강의를 준비하고 있었다. 풀벡 교수는 UCSB 영화학과 교수이자 영화감독, 구어(口語, spoken word) 퍼포먼스 아티스트, 자전적인 이야기와 허구를 결합한 이야기 작가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기반으로 해서 팝문화, 정치, 스탠딩 개그 등을 결합하는 그의 작업방식이 흥미롭고, 관심을 끌어서 그의 강의를 들어보고 싶었다.

 

풀벡 교수와 악수를 하고 학생들 옆에 앉았다. 그는 캘리포니아 햇빛에 그을린 까무잡잡한 피부에 검은 단발머리, 양 팔 가득 우리나라 단청무늬를 연상시키는 문신을 하고 있었다. 수업 시간 내내 풀벡 교수의 개가 강의실 곳곳을 어슬렁거렸다. 나는 그 개가 신경 쓰여서 집중을 할 수 없었는데, 학생들은 그들 발밑을 지나갈 때마다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면 개는 기분이 좋은지 가만히 웅크리고 있다가 또 다른 곳으로 가곤 했다. 참 강렬한 첫 인상이었다.

 

지난 학기 이 수업을 들었던 학생의 동영상 결과물을 보여주는 것으로 수업이 시작되었다. 한 여학생이 쉴 새 없이 자기 이야기를 쏟아놓는 ‘구어 퍼포먼스’를 하는 장면이었다. 억양, 표정, 동작, 목소리의 완급 등 가능한 모든 몸의 장치들을 사용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어서 이 학생의 이야기에 빨려 들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갑자기 기대에 어긋나는 황당한 질문을 던진다든가 이야기의 반전을 가미해서 한 순간도 지루할 틈이 없었다. 특히 발랄하고 평범한 여대생의 목소리와 표정으로 말하다가 돌연 거칠고 무례한 남성의 목소리와 표정으로 돌변할 때 저절로 감탄어린 웃음이 터져 나왔다. 자기 안에 있는 두 인격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솜씨가 놀라웠다. 사실 우리 안에는 얼마나 많은 서로 상반되는 모습들이 공존하고 있는가.

 

“여대생에서 거친 남성으로 변할 때 많은 동작을 할 필요 없어요. 목소리의 변화와 하나의 표정 변화면 충분해요.”

 

풀벡 교수 자신이 인상적인 표정과 목소리 변화로 그 차이를 보여주었다. 동영상 감상 이후 수업은 매우 역동적으로 진행되었다.

 

“자,  공책을 꺼내세요. 내가 주는 다섯 가지 주제에 대해 떠오르는 문장을 각각 한 줄씩 빨리 적어보세요.”

 

1. 첫 키스 
2. 건강
3. 부모님 
4. 일
5. 애완동물

 

 나도 공책을 꺼내 써보기 시작했다. 첫 번째 키스가 언제였더라.... 음... 건강, 부모님에 대해서 뭐를 쓰지?... 하고 끄적이고 있는데 5분도 채 안되어

 

“자, 그만. 다 썼죠? 그룹별로 발표하고 나서 가장 그 뒷얘기가 궁금한 베스트 문장을 하나 뽑아보세요.”

 

하더니 1조는 누구누구, 2조는 누구누구...하면서 조를 나눠줬다. 황급히 문장을 마무리 하고 3조 자리에 끼어 앉았다. 이 한창 젊은 대학생들의 문장은 단연 첫 키스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이 젊은이들은 내가 쓴 문장 중 2. 건강 “미국에 처음 와서 캘리포니아 여성이 두 아이가 함께 탄 유모차를 힘차게 밀면서 조깅을 하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를 더 들어보고 싶은 이야기로 꼽았다. 다시 자리로 돌아가 이번에는 원하는 이야기를 가장 창의적인 방식으로 역시 짧은 시간 안에 써보라고 했다. 이건 더 힘들었다. 앞의 것은 구체적인 주제를 주고 한 문장을 쓰라고 하니 어떻게든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는데, 무엇이든 창의적으로 쓰라니 부담감이 확 밀려오면서 머리가 막히는 것 같았다. 뭐든 써야 겠어서 끄적대고 있었더니 역시 순식간에 “자, 그만.”하는 풀벡 교수의 소리가 들렸다.


“잘 써지는 얘기가 있고, 잘 안 써지는 얘기도 있죠. 만약 잘 써진다면 계속해서 쓰세요. 하지만 만약 어떤 얘기가 잘 안 풀린다면 괴로워하지 말고 내버려두세요. 그 주제에 대해서는 아직 여러분이 쓸 말이 충분히 없는 거니까요. 언젠가 그 주제가 흥미로워지고 할 말이 있을 때 다시 쓰면 되는 거예요.”

 

그리고 우리가 갖고 있는 글쓰기에 대한 전형적인 습관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분명 창의적인 방식으로 이야기를 쓰라고 했는데도 모든 학생들이 종이의 맨 위 왼쪽에서부터 글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아무도 종이의 한 가운데에 인상적인 한 문장을 쓴다든가 그림을 그린다든가 종이를 반 접어서 그 반쪽에만 글을 쓴다든가 하는 등의 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과연 그랬다. 내용이 창의적이어야 한다는 생각에 우선 사로잡히게 되기 때문에 접근하는 방식부터 새로워야 한다는 것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이다.

 

“첫 키스에 대해 쓰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문장을 ‘내 첫 키스는... My first kiss is...’라고 시작하죠. 그런데 Hip, Hap, Hop...이라고 쓰면 어때요?”

 

풀벡 교수가 첫 키스의 소리를 적나라하게 표현하자 학생들이 하하하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글쓰기의 진정성에 대해 강의를 이어나갔다. 진실한 이야기가 중요하지만 누가 이게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겠는가? 결국 진실인 것처럼 믿게 하는 이야기가 더 힘이 있다. 또한 사람들이 다음에는 이런 일이 벌어지리라고 기대하는 일들을 배반하도록 끊임없이 이야기의 구조를 비틀어줘야 한다는 요지였다.

 

 

 

 

 

세 시간 연강으로 진행되는 수업이어서 중간에 잠깐 쉬는 시간을 가졌다. 풀벡은 준비해온 삶은 계란을 하나 까서 먹더니 앉아 있는 학생들과 스스럼없이 사적인 얘기를 나누었다.

 

“아이가 있으세요?” 어떤 학생이 묻자 “아들 하나, 딸 하나가 있어요.” 하면서 네다섯 살 정도 되어 보이는 두 아이의 사진이랑 동영상을 보여주었다. “중국어도 할 줄 아세요?” 보여준 블로그에 한자가 써 있는 걸 보고 한 학생이 질문하자 “딤섬을 주문할 수는 있어요” 했다.

 

쉬는 시간이 끝나니 읽기자료를 펴라고 했다. 옆의 학생이 보여준 자료를 보니 픽션, 논픽션에서 발췌한 ‘자기 이야기’에 관계된 다양한 작가들의 글이 수록되어 있었다. 아까 랜덤으로 툭 던져준 주제인 줄 알았는데 그것과 연관된 ‘첫 키스’나 ‘직업’에 관한 이야기들이 수록되어 있었다. 이 이야기들이 어떤 면에서 설득력이 있는지 자연스러운 토론이 이어졌다.

 

“과거에 일어난 일을 반드시 과거 시제로 쓸 필요는 없어요. 독자들이 ‘음, 과거에 일어난 일이니까 지금은 괜찮겠지...’라고 안심하게 되니까요. 이 작가가 쓴 것처럼 현재 시제로 쓰게 되면 독자가 작가의 입장으로 더 몰입할 수 있게 되지요.”

 

수업의 마지막 부분은 한 페이지 정도 자신의 이야기 초고를 써온 두 명의 학생들이 발표를 하고 그걸 함께 논평하는 시간으로 이뤄졌다. 주제는 놀랍게도 ‘첫 섹스 경험’에 관한 거였다. ‘우리나라에서는 대학 교양시간에 다루기 힘든 주제인데 이곳은 아무렇지도 않나...’ 속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전혀 아무렇지도 않은 건 아닌 듯 했다. 듣는 교수나 발표하는 학생 양쪽 다 얼굴이 약간 발그스름해지는 걸로 보아서. 하지만 발표를 맡은 학생은 목소리의 완급을 주면서 최선을 다해 발표를 하고 나머지 학생들은 주로 자신이 좋았던 부분에 대해 열심히 논평을 하였다.

 

“이 문장에서 특히 내가 네 머릿속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어. 내가 너인 것 같았어” 
“엄마가 새로 벽지를 장식해준 가장 어린아이 같은 공간에서 어른이 되는 경험을 한 걸 묘사한 대조가 돋보였어.”

 

교수 또한 그 자리에서 함께 조언을 하고, 학생의 글 위에도 몇 가지 코멘트를 적어서 바로 건네주었다. 글 한 편이나 그림을 하나 완성했을 때 가장 궁금한 것은 역시 다른 사람의 반응이다. 조언들이 오가는 광경을 지켜보면서 이 수업이 학생들로 하여금 작가-독자-감상자-비평가의 입장을 골고루 경험하게 하는 장점이 있다는 생각을 했다. 창작을 할 때 지나치게 남을 의식하면 자기의 것을 완성해내지 못하고, 그렇다고 독자를 전혀 의식하지 않으면 자기의 세계에만 갇히게 된다. 이 수업에서 발표한 학생은 다른 사람의 반응을 참조할 수 있고, 논평하는 학생들은 다른 사람의 글을 통해 자기의 것을 찾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수업 참관이 끝나니 나도 한 편의 이야기를 쓰고 싶어졌다. 학생들의 호응이 좋았던 캘리포니아 여성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면 어떨까? 그러자 유모차를 밀며 달리는, 운동으로 다져진 날씬한 여성과, 너무 살이 쪄 온 몸이 공처럼 부풀어 오른 여성의 모습이 대조적으로 떠올랐다. 이 두 여성들은 건전하고 밝고 긍정적이고 에너지가 넘치는 미국인의 모습과, 빈부격차에 시달리고 되는대로 먹고 모든 걸 체념한 듯한 또 다른 미국인의 모습을 상징한다. 미국에 처음 온 주인공이 이 두 여성과 친구가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써봐야겠다.

 

글_ 조윤경 (이화여대 교수, UCSB 교환교수)

출처_ 크레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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