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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은 '없다'가 아니다? 본문
문명에는 역사적으로 축적된 인류의 철학이 담기기 마련이고, 우리가 사용하는 ‘수’라는 개념 또한 예외일 수는 없겠다.
‘존재’를 표현했다고 할 수 있는 자연수부터 ‘모자라는 것’, ‘딱히 표현하기 어렵지만 분명 그러한 것’, ‘무한한 것’, ‘끊임없이 접근하는 것’ 그리고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인 ‘없는 것’까지 참 많은 것을 표현하고 다시 우리에게 철학적인 사유를 하게끔 만드는 ‘수’. 필요와 개념에 의해 탄생하였지만 이러한 수는 다시 우리의 생각에 생각을 더해 문명을 발전시키는 상호 작용을 해왔으리라.
1. 인류가 감당하기 버거웠던 ‘수’
‘수’의 역사는 어찌 보면 ‘인간의 지적 성숙’의 역사일지도 모른다. 피타고라스의 제자 히파소스가 살해당한 비극을 간직한 ‘무리수’가 그랬고 철학자 제논을 괴롭혔던 ‘무한’도 빼놓을 수 없다.
▲ 제논이 고민하던 아킬레스와 거북이의 역설은 거리만 가지고 이야기하던 변수에 시간을 추가함으로써 ‘도도히 흐르는 (소요)시간’이 ‘차이가 0에 접근하면서도 무한히 나뉘는 거리’라는 함정에서 우리를 구해냈다. 끝없이 0에 접근한다는 개념은 미적분을 탄생시켰고 무한대라는 개념과 0은 결국 서로 뗄 수 없는 역사를 지니고야 말았다.
이제 오늘의 주인공 없는 것을 나타내는 ‘0’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자릿수의 기호로 사용되던 0이 수의 대접을 받은 것은 인도에서 필산을 하면서부터라고 추정하고 있다. 0이 연산의 대상이 되면서부터 인류는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모두 초등학교 수학 시간에 0에 대해 한 가지 서약을 했다.
「 0으로 어떤 것을 나누는 엄청난 짓은 절대로 하지 않겠습니다.
만약 그러한 엄청난 짓을 한다면 수학점수를 일정량 포기하겠습니다.」
이유도 모른 채 습관처럼 지켰던 이 약속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2. 0의 만행
산술에서 0으로 나누는 것은 신성 모독과 같다. - 던 햄, 『수학적인 우주』-
무(無)를 알면 모든 것을 알 수 있다. - 물리학자 서스킨드 (L.Susskind) -
무(無)는 마치 벌레처럼 존재의 심장 속에 똬리를 틀고 있다. - 사르트르, 『존재와 무』-
‘부정’ 또는 ‘불능’이라는 짧디짧은 단어로 우리의 서약을 받아낸 0.
그 속사정은 이렇다.
‘모든 것’으로 둔갑하는 0의 마술은 수의 역할이나 연산에서 끝나지 않는다.
자연계에서 절대 온도 0도가 되면 원자는 정지하고 영점진동한다. 이 절대 온도 0도에서 흥미로운 일들이 일어나는데 이론적으로 0K에서 기체는 액체나 고체로 상태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부피가 0이 되어야 한다. 수은은 4.2K 부근에서 전기 저항이 0이 되어 초전도 현상을 보이고, 액체 헬륨을 2.2K 이하로 냉각시키면 저항이 0이 되어 아무리 가는 관이라도 힘을 가하지 않은 상태에서 통과하는 초유동 상태가 된다.
또 0을 이야기 할 때 블랙홀을 빼놓을 수 없다. 크기는 0, 밀도는 무한대인 블랙홀에서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현상과는 다른 차원의 일들이 일어날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3. 0의 새로운 개념
최근 천체 물리학에서는 무(無), 없다. 진공, 0 이란 것들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다.
1932년 양전자(반전자)의 발견으로 ‘진공이란 완전히 빈 공간’이라는 개념이 깨졌다. 영국의 물리학자 폴 디랙은 진공이란 에너지가 음인 전자로 가득 채워져 있고 ‘어디에나 있는 것’과 ‘어디에도 없는 것’은 구분되지 않는다는 새로운 개념을 내놨다. '없다'란 물질이란 것은 없지만, 아무것도 없는 것은 아니라는 개념은 무한한 공상과 사유를 불러온다.
기존에 우주의 탄생을 이야기할 때 무언가 있는 것으로부터 변화되거나 생겼을 것으로 추측했지만, 새로운 개념은 물질도 공간도 시간도 크기도 0인 무(無)에서 우주가 탄생하였다는 새로운 학설을 가능케 했다.
1982년 알렉산더 빌렝킨 교수의 ‘무(無)로부터의 우주 탄생’이란 논문이 바로 그랬다. 또, 2001년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의 과학칼럼니스트 K. C. Cole은 호킹, 레더먼, 스트로밍거 등 과학자 20여 명의 의견을 참고해 우주의 탄생을 0에서 찾는 내용인 『The Hole in the Universe』라는 책을 출간해 관심을 모았다. (번역판『우주의 구멍』, 2002년 출간)
이제 0은 ‘아무것도 없다’가 아니라 ‘0이라는 것이 있다’라고 접근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아킬레스와 거북의 역설이 시간이라는 새로운 차원을 개입시켜 해결되듯, 0은 또 다른 차원으로 통하는 문이 아닐까?
4. 기대
0은 아직도 우리에게 물음표를 던지고 있지만 우리는 ‘생각하지도 않고 언급하지도 않기’라는 침묵의 다짐 아닌 다짐을 하고 있다.
이제 철학, 수학, 과학, 공학, 기술을 분류하고 경계 짓고 개별심화시키던 조류는 흘러갔고, 모든 것은 이어져 있다는 것을 알고 연관성을 깨우쳐야 할 때다. 엉뚱한 의문이나 맹랑한 공상조차도 창의력의 근원이 된다.
이 글을 읽고 “나에게 친절한 설명도 없이, 나의 의견은 묻지 않고 0으로는 나누지 않기로 한 약속은 무효다.”라고 분개하는 학생들에게 0과도 같은 무한한 응원을 보내며, 신기함에만 집중하지 말고 ‘믿고 싶은 것을 믿기 위해 고집하는 짓은 경계하라’는 당부를 남기며 이야기를 마친다.
모든 것이 유동적이고 상대적인 우리가 사는 세상에 ‘없다’는 것조차 유동적이라면, 그거야말로 참 절대적이지 않은가!
물리학의 역사는 소중한 개념들을 포기해 온 역사다. 시간과 공간은 수천 년 동안 소중하게 여겨진 개념이고, 명백히 우리는 이것을 포기하려 하고 있다. - 스트로밍거(하버드대학 끈 이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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