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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 국민서포터즈

엔지니어, 전체를 보는 안목을 갖춰라!

대한민국 교육부 2012. 5. 22. 07:00




“과학자나 엔지니어들도 하나만 전문적으로 파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고 봅니다. 오히려 전체를 볼 줄 아는 안목을 키우는 게 먼저라는 생각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제 선진화를 이끈 원동력이 엔지니어링에 있다는 것을 지금의 10대들이 얼마나 알고 있을지 사뭇 궁금합니다.”


'과학자 릴레이 인터뷰' 2. 김범만 교수편



김범만

현 포스텍 교수

IEEE 최고 권위자 그룹

뛰어난 확장성으로 3G, 4G 주파수 대역 커버

이동통신 2G 주파수의 잡음과 확장성 문제 해결 (핸드폰 대중화에 결정적 기여)

밀리미터파 대역 반도체 개발(기존 30배)

미 텍사스 중앙연구소 (초고주파 연구)


포스텍의 김범만 교수는 IEEE(국제 전기전자 기술협회)에서 인정하는 초고주파 영역 최고 권위자 그룹에 속한다. 당연히 초고주파에 대한 이야기들이 진행될 것이라 예상했지만 뜻박에 이공계 부재에 대한 깊은 고민을 엿볼 수 있었다. 


김범만 교수를 거쳐 간 제자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그냥 하는 말이 아님을 알 수 있다. 30대에 삼성전자 임원 자리에 오른 노태준 전무를 비롯한 말단에서 펜텍 CEO가 된 이준호 사장, 회사를 키워 대만 휴대폰 제조회사에 1,000억에 매각한 윤광준 살자클럽 대표 등 하나같이 입지적인 인물들을 보노라면 김 교수의 정체성과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1) 시작은 무기성능 향상


근대화가 한창 진행 중인 60년대 초 어머니는 의대를 아버지는 법대를 원했지만 정작 본인은 엔지니어링에 관심이 많아서 공대에 지원하였다. 전공은 전자공학이 두각을 나타내는 것을 보고 부모님을 설득한 것인데 입학한 후에 전국의 수재들이 전자공학과로 대거 몰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니 자연스레 치열한 경쟁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우리나라 기술이 선진국과 비교하면 한참 뒤처지는 현실인식은 학생들이 유학을 결심하게 되는 계기로 작용하게 되었고 김 교수도 미국 카네기 멜론 대학으로 떠나게 되었다. 그리고 졸업 후 텍사스 중앙연구소에서 마이크로웨이브(초고주파)를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처음 시작은 무기성능의 개선을 위해서였다. 기존 레이더 기술에 적용하게 되면 모니터에 비행 물체의 이동 경로를 좀 더 정확히 나타낼 수 있을 것이고 또, 미사일에 부착하면 더욱 정밀한 타격이 가능하다는 점 등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2) 초고주파 영역의 새로운 장을 열다.


얼마 후 김 교수는 밀리미터파 대역에서 구동하는 반도체를 개발함으로써 초고주파 영역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기존 기술의 약 30배 이상의 성능 향상을 이끌어낸 입지적인 개발이었다. 85년도의 일로 관련 학회는 난리가 났고 새로운 기술의 등장은 김 교수를 단번에 세계적인 권위자로 만들어 냈다.

 

더불어 김 교수는 81년도부터 꿈꿔온 한국에서 벤처를 결심하고 실행에 옮겼다. 당시 한국에서 벤처라 불리는 회사는 두 개(한일합섬, 삼미특수가)가 있었고 오랜 고민 끝에 두 회사와 합류를 생각했지만, 우리나라 기술력의 낙후, 국내 시장의 부재, 더불어 미국 시장진출이라는 삼중고를 감당하기에는 시대 상황이 어림도 없었다.

 

결국, 다시 진로를 턴하여 89년도에 포스텍에 둥지를 틀게 되었다. 그리고 때마침 한국에서 이동통신 시장이 일어나기 시작하면서 기업이 김 교수를 찾는 횟수가 잦아지기 시작했다.

 

3) 이동통신의 탄생


삐삐가 탄생하는 데 있어서 김 교수의 기술이 필요했고 이후 전 과기부(현 교과부)를 통해 9년간 연구지원을 받는 등 이동통신 원천 기술에 획기적인 기여를 하게 되었다.

 

김 교수의 기술을 살펴보면 휴대폰 네트워크를 책임지는 기지국의 장비를 들 수 있다. 기지국은 원래 그 목적이 전파를 보다 멀리 보내는 역할에 있다. 그런데 전파를 멀리 보내는 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또한, 기지국과 멀어질수록 잡음이 심해진다는 기술적인 문제도 있다. 여기에 필요한 것이 증폭 기술인데 김 교수의 기술로 전파를 보다 멀리 그러면서도 통화 잡음 90% 이상을 잡아낼 수 있었다.

 

2000년 이후부터는 모든 기지국에 이 장비가 점진적으로 보급 되면서 통화 품질은 월등히 좋아졌고 통화 잡음 또한 더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수준으로 낮아지게 되었다. (현재 이동 3사의 모든 기지국 안에는 김 교수의 증폭기가 들어있다.)

 

4) 후진들 두각 나타내


하지만 더욱 놀랄만한 일은 이후에 일어났다. 김교수의 제자들이 사고를 치기 시작한 것이다. 윤광준 살자클럽 대표는 김 교수의 기술이 기지국이 아닌 휴대폰에 적용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벤처 회사를 설립, 2년 만에 대만 FCI 에 천억에 매각해 버렸다.

 

또 다른 제자는 WAPAM 이라는 벤쳐 회사를 설립 휴대폰 제조사에 부품을 공급하기 시작하였고 기업 행을 택한 제자들 역시 업계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등 기술하나가 100명, 천명을 먹여 살린다는 엔지니어 본질에 충실한 모습들이 보여 지면서 김 교수의 교수법에 세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기 시작했다.

 

김 교수는 “가만히 있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아는 것을 구현해 내는 게 중요하고 공부 역시 지식 습득보다는 뭔가를 만드는 데 필요하다는 목적의식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생각하여야 하며 디테일의 차이가 성공을 만들고 일은 속성으로 배우는 것보다는 숙성이 돼야 하며 엔지니어들의 처우 개선에 앞서 스스로 노력과 인식전환이 먼저”라고 밝히기도 했다.

 

또한, “누구든 흥미가 생기면 장래가 촉망 받을 수 있으니 그런 의미에서 이공계 쪽은 전망이 밝다고 볼 수 있다면서 앞으로는 기회가 허락하는 한 중고생들을 자주 만날 계획임을 밝히기도 하였다.

 

멀리 있는 누군가를 아주 가깝게 또 언제 어디서든 만나게 해 주는 반가운 기술 휴대폰의 등장, 기술의 진일보가 인류의 행복에 이바지한다는 아주 단순한 진실을 만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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