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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한살 어린이들의 궁궐 탐험기 본문
여러분은 소풍하면 가장 먼저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친구들과 나누어 먹던 도시락, 선생님들께서 바위 밑에 숨겨놓으신 보물찾기, 반 전체가 빙 둘러앉아 부끄러워하며 노래와 막춤을 뽐내던 장기자랑. 요즈음 아이들은 ‘현장체험학습’이라는 이름으로 소풍을 갑니다. 이름이 조금 딱딱하게 들리기도 하지만, 교실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느끼기 어려운 내용을 직접 보고, 만지고, 느끼는 데에 더 중점을 두자는 좋은 뜻이 담겨 있답니다. 세월이 변하고, 이름도 바뀌었지만, 소풍 하루 전날 느끼는 설렘이나 친구들과 함께 버스를 타고 가며 맛보는 간식의 달콤함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는데요. 부천 옥산초등학교 어린이들이 가을빛이 가득한 날 체험학습을 떠난다고 해서 따라가 보았습니다.
부천 옥산초등학교에 다니는 4~6학년 학생들은 임금님께서 머무르시던 궁궐인 경복궁으로 체험학습을 떠났습니다. 학생 수가 적은 4학년 학생들은 둘로 나뉘어 6학년 형, 누나들과 함께 버스를 탔지만, 들뜬 기분이 가라앉지는 않나 봅니다. 2시간여 버스를 타고 달려 드디어 먼발치에 광화문이 보입니다. 오른쪽에는 세종대왕님의 뒷모습도 보이네요. 선생님께서 도착했다고 말씀해 주시자, 어머니께서 정성껏 챙겨주신 도시락을 챙겨 버스에서 내렸습니다. 경복궁 주차장에서 안쪽으로 들어서자 매표소가 있는 널찍한 광장이 나왔습니다. 선생님들께서 표를 사시는 동안 어린이들은 오늘 하루 경복궁을 해설해 주실 선생님과 만났습니다. 오늘 해설을 해 주시는 선생님께서는 문화유산을 해설해 주시는 자원봉사 선생님이십니다. 할아버지 선생님께서는 인자한 미소로 아이들에게 인사를 해 주셨고 경복궁에 대해 설명해 주셨습니다.
< 경복궁 무료 해설 >
* 월, 수-토(매주 화요일은 휴궁일) : 11시, 오후 1시, 2시, 3시, 4시 (겨울철 3시 30분)
일요일은 10시, 11시, 오후 12시 - 3시는 30분 간격으로 있음, 오후 4시 (겨울철 3시 30분)
* 자원봉사 단체인 우리 궁궐 지킴이, 우리 궁궐 길라잡이에서는
미취학 아동이나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경복궁 무료해설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경복궁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궁궐로써 정문은 광화문이라고 합니다.”
'광화문'은 어떤 의미를 가진 말인가요?
빛이 사방을 덮는다는 뜻으로 세종대왕께서 이름을 붙이셨습니다. 임금의 덕이 만백성과 만물을 뒤덮어 우리나라의 위엄과 문화를 멀리까지 넓게 보여준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광화문 맞은 편에 있는 흥례문을 지나자 다리가 하나 보였습니다. 예전에는 궁궐 앞에 물이 지나다녔던 자리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 다리의 이름은 영제교인데 다리 아래에 해태가 4마리 새겨져 있었습니다. 그 중 한 마리가 혀를 쑥 내밀고 있는데 어린이들은 그 모습을 재미있어하였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우리 조상의 해학이 나타나 있는 조각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근정전
근정문을 지나자 근정전이 나타났습니다. 근정전으로 향하는 길에는 양쪽으로 돌로 된 막대가 세워져 있었는데 옛날에 무반과 문반의 양반이 쭉 나열하여 섰던 자리라고 알려주셨습니다. 근정전으로 들어가기 전에 우리는 그늘에 앉아 근정전에 대한 설명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설명은 듣지 않고 연신 두리번거리는 어린이들은 근정전의 뒤로 보이는 돌산(인왕산)과 근정전을 둘러싸고 있는 기와가 어우러져 있는 모습이 너무 멋있다면서 저희끼리 감탄하였습니다. 우리 어린이들 옆으로 렌즈가 길다랗고 큰 사진기를 삼각대에 세워 놓고 이리저리 사진을 찍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선생님께서도 이 자리에서 바라본 근정전의 모습은 경복궁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근정전으로 가기 위해 계단을 오르는데 계단이 가운데에는 없고 양쪽에만 있었습니다. 가운데는 임금님이 가마를 타고 지나시는 길이라고 하시자 한 학생이 다리가 아픈지 임금님은 좋겠다며 입을 쭉 내밉니다. 근정전의 안을 들여다보면서 어린이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분명히 밖에서 봤을 때는 이층집이었는데 안을 들여다보니 그냥 천장이 높은 1층이라는 사실과 근정전 내부의 모습은 TV 드라마에서 보았던 모습과 비슷하다는 것을 굉장히 신기하게 생각하였습니다.
근정전 옆에는 매우 큰 항아리가 있었는데 선생님께서 그 쓰임을 어린이들에게 물어보셨습니다.
“여러분, 이 독은 어디에 쓰이는 독이었을까요?”
“보물을 넣어 놓았던 항아리에요.”
“음식을 넣어 놓았던 항아리에요.”
“모래를 가득 채워서 향을 피웠던 항아리에요.”
“이 항아리는 불이 났을 때를 대비하여 놓아둔 물 항아리입니다. 건물이 나무로 되어있고, 풍수지리에 의하면 경복궁에서 바라보이는 관악산은 예로부터 불의 기운이 강했다고 해요. 그래서 항상 우리 조상은 불의 기운이 궁궐에 미칠까 봐 물 항아리도 두고, 물을 막아주는 해태상도 이곳 저곳에 만들어 두었다고 해요.”
근정전 뒤에는 사정전이 있었습니다. 정사에 대해 생각하는 곳이란 뜻으로 옛날 임금님이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지 알 수 있는 이름이었습니다. 왼쪽에 있는 문으로 나가자 널찍한 공간이 나왔습니다. 전각이 또 하나 있었는데 수정전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어린이들이 그냥 지나가려는데 선생님께서 퀴즈를 내 주셨습니다.
“이곳은 세종대왕 때 학자들이 모여 백성을 위해 현명함을 모았던 곳입니다. 혹시 이곳의 예전 이름을 아는 사람이 있나요?”
이곳은 ‘집현전’이었습니다. 그제야 어린이들은 ‘나도 알고 있어요.’라는 눈빛으로 수정전을 아는체해 주었습니다. 수정전을 지나가자 널찍하고 아름다운 연못이 나왔습니다. 거기에는 경회루가 있었습니다. 어린이들은 저마다 물 위에 풀잎을 띄워 보기도 하고, 멋진 모습으로 사진도 찍으면서 연신 감탄하며 놀라워하였습니다. 특히 물 위에 비친 경회루의 물그림자가 어린이들이 웅장함을 느끼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경회루 앞에서 선생님과 함께 멋지게 사진도 찍었습니다.
경회루
경회루를 지나서 다시 오른쪽 문으로 들어가자 강녕전이 나왔습니다. 그곳에서 선생님께서는 어린이들에게 '강녕'이라는 말은 '안녕'이라는 말과 비슷한 뜻을 가졌다고 설명해주셨습니다. 어린이들은 “밤새 강녕하시었습니까?”라는 인사말을 조선 시대 사람이 된 것처럼 따라 해 보며 저희끼리 즐거워하였습니다. 그날은 마침 강녕전을 개방하는 날이었습니다. 어린이들은 임금님이 주무시던 곳에 신발을 벗고 올라가 앉아보는 경험을 즐거워하였습니다.
향원정
강녕전 뒤에는 왕비님이 주무시던 교태전이 있었습니다. 교태전 뒤뜰에는 아미산 정원이 있었습니다. 중국의 아름다운 산을 뒤뜰에 본떠 만들어 놓은 아미산 정원에는 육각형 모양의 굴뚝이 있었습니다. 예쁜 모양이 새겨져 있는 것을 보고 선생님께서 무슨 건물일지 말해 보라고 하시자, 창고, 비밀통로, 지하실 입구 등 창의적인 대답을 하던 어린이들은 굴뚝이라는 말을 듣자 조금은 어리둥절해하면서도 재미있어하였습니다. 경복궁 후원에 있는 향원정을 끝으로 경복궁 훑어보기를 끝냈습니다.
해설사 선생님과 헤어진 어린이들은 수문장 교대식을 보기 위해 다시 흥례문 밖으로 나갔습니다. 수문장 교대식은 20분 정도 진행되었는데 웅장한 북소리와 함께 수문장과 병사들의 행진과 교대의식, 그리고 새로운 병사들의 배치로 이루어졌습니다. 어린이들은 병사들의 창이 삼국지에서 관우가 들고 나오던 청룡언월도인지 아닌지를 두고 갑론을박하고 있었습니다. 결국에는 이따가 끝나고 여쭈어 보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창’에서 관심을 거두고 교대의식에 집중하였습니다. 칼과 옷이 진짜인지를 물어보는 어린이, 똑같은 옷을 입은 같은 편끼리 왜 싸우려고 하느냐는 어린이 등 어린이들의 창의성은 정말 어른이 따라갈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어린이들의 질문세례에 어느덧 수문장 교대의식이 끝나고 고궁박물관으로 향하였습니다. 고궁박물관에도 역시 자원봉사를 해 주시는 해설사 선생님께서 나와 계셨습니다. 짧은 시간 동안 많은 내용을 알려주시려는 열정에 선생님들은 감동하였지만, 오전부터의 강행군에 지쳐있었던 어린이들은 어른들과는 다르게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11살 어린이들의 궁궐 탐험은 이렇게 마무리 되었습니다.
짧지만 길었던 궁궐 역사여행이 끝나고 어린이들은 여전히 교실에서 장난기 가득한 눈으로 어른들과는 조금 다른 곳을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 어린이들의 마음속에는 우리 것, 우리 역사에 대한 남다른 무언가가 남았나 봅니다. 어떤 어린이들은 지금의 경복궁이 옛날 건물 그대로가 아니라 불타버린 궁궐을 재건하고 복원한 것이라는 사실에 속상해하기도 하고, 다른 궁궐에 대해 궁금해하는 어린이들도 있었습니다. 무언가 지식을 알려주기 위해 애쓰기보다는 재미있는 옛날이야기처럼 우리 역사 이야기를 교실에서 들려주며 때때로 체험학습이나 책을 통해 자극해 준다면 어린이들은 스스로 방식으로 역사에 대한 인식을 재구성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탐방이었습니다. 어른이 준비해 놓은 정답과 상관없이 어린이들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스스로 답을 찾아갑니다. 이제 소풍은 단순히 놀러 가는 것을 뛰어넘어 어린이들이 경험을 통해 스스로 성장해 나갈 좋은 기회가 되고 있습니다. 현장체험학습, 소풍의 참된 의미를 어린이 스스로 만들어가는 그 ‘과정’ 속에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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