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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몰랐구나!”, 여행 중 아이가 엄마에게 준 TIP 본문
과감히 아이와 떠난 30일의 여행, "염려와 걱정은 뒤로한 채~"
종일 아이와 같이 있다 보면 눈에 거슬리는 단점들에 엄마 잔소리가 늘게 됩니다. 간섭당하는 아이 마음도 편치는 않겠죠. 저 역시도 아이가 초등 고학년이 되고 자기주장이 강해지면서는 사사건건 부딪치는 것이 싫어 될 수 있으면 떨어져 있는 시간을 많이 만들려고 했습니다. 그런 엄마가 4학년 딸과 한 달간 '미국 서부여행'을 떠난다고 했을 때 주위에선 당연히 염려의 소리를 전했습니다. "일주일 정도면 모를까 한 달이나 붙어 다니면 분명 싸울 일만 생길 거다", "어린이와 중년여성은 여행 목적이 확연히 다를 텐데 잘 맞을까?" 하는 걱정들이었죠. 차라리 조용히 영어공부나 하게 단기영어캠프를 알아볼까 고심도 많이 했죠. 그래도 아직은 영어학습보다 넓은 세상 보고 느끼는 체험이 중요할 거란 판단에 과감히 '장기 여행'으로 결정했습니다. 염려와 걱정은 잠시, 낯선 땅에서 24시간 붙어 지낸 30일의 시간이 슬며시 우리 모녀 사이에 징검다리 하나를 늘려놓아 준 듯합니다.
<다양한 체험 중 과학체험에 특히 관심을 보이는 아이를 발견했다>
확실히 발견한 아이 호기심, "이제야 엄마가 날 알아주네~"
여덟 살 때에야 동생을 맞이한 딸은 엄마를 독차지하고 살던 의타심 강한 아이라 늘 '소극적이고 내성적'이라는 소개를 덧붙여야 했습니다. 학습에서도 엄마 의존도가 높고, '체육'만 좋다고 하니 평소 "이 아이는 과연 뭔가 하고 싶은 게 있긴 한 걸까?" 실망스러운 부분이 컸어요.
하지만, 30일간 함께 여행을 다니면서 미처 몰랐던 아이의 성향이 하나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아이 입에서 끝없이 질문이 나온 건 과학관이었어요. 캘리포니아 사이언스 센터, 그리피스 천문대, 디즈니랜드 미래과학관에서 본 아이 모습은 미술관에서 짜증 내던 때와는 확연히 달랐습니다. 첨단과학, 천체, 기계, 커뮤니케이션 등 직접 체험하고 작동시켜보며 '다리 아프다'는 투정도 쏙 들어갔죠. 놀이기구를 탈 때도 서너 번 반복해 타며 어떻게 작동이 되는지, 왜 그런 느낌을 받게 되는지 쉴 새 없이 질문하고 나름의 연구도 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물건마다 '어떻게 만들었지?', '나도 비슷하게 만들어볼래' 하며 재료들을 구합니다.
이렇게 맘껏 호기심 펼칠 수 있는 아이를 그간 시험 점수만 들먹이며 '공부에 관심 없는 아이'라 치부했던 게 미안해졌죠. 한 달의 여행을 마친 후 아이한테 말해줬습니다. "우리 딸은 과학에 호기심이 많더라. 앞으로 그쪽으로 체험도 많이 하고 발명도 해보자!" 이제야 엄마가 자신을 알아줬다는 듯 흔쾌한 답변으로 쐐기를 박더군요. "엄마, 난 과학이 제일 좋아. 물건들 보면 어떻게 만들어졌나 궁금하고 나도 그런 기계 만들고 싶어. 과학대는 없어? 과학만 하고 살면 안 돼?"
아무것에도 호기심 없는 아이가 아니라 호기심 펼칠 대상을 찾지 못했던 아이. '아이들은 재능과 소질이 없는 게 아니라 공부만 하느라 소질을 찾지 못하는 것'이라는 교육전문가의 말이 절감되었습니다.
<다른 자연감상은 따분해하던 아이가 레드락 캐년을 보면서는 지층의 원리에 대해 설명하느라 바빴다. 아이의 호기심이 머무는 곳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게 해준 30일간의 여행>
여행에서 재발견한 장점, "이런 면도 있었구나~"
부모가 자녀를 신뢰하는 게 중요하다지만 뭐든 어설프고 부족해 보이는 아이를 믿고 기다리는 일이란 쉽지 않죠. 매사에 적응이 늦고 적극성 없는 아이한테 쏟아부었던 잔소리도 "혼자서 해결해봐, 남들처럼 나서서 해"하는 레퍼토리였습니다.
여행에서도 첫 일 주일은 입 꼭 다물고 엄마 옆에만 붙어있어 짜증이 났어요. 일상에서는 "혼자 못하면 하지 마!" 하고 기회를 단절시켰지만, 24시간 동행하는 여행이다 보니 회피할 길도 없었죠.
그런데 낯선 환경에 서서히 익숙해지면서 아이는 엄마보다 용감해졌습니다. 항상 소극적이라고만 여겼는데, 정작 위기 상황에서는 현명해지고 문제 해결도 척척 하는 적극성을 처음 발견했습니다. 버스 정류장을 한 정거장 미리 내려 걸어가야 했을 때 짜증 내는 엄마와 달리 아이는 "덕분에 이 길 구경도 하고 좋잖아." 하며 의연함을 보였고, 갑자기 쏟아진 비 때문에 발이 묶여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을 때 수시로 카페 밖을 나가보며 "지금 빨리 가야돼. 안 그러면 또 쏟아져. 빨리 와" 손을 잡아끈 것도 아이였어요. 엄마만 의지하던 아이가 여행 후반에는 '지하철에서 엄마는 자라'며 내릴 정거장도 챙겨줬습니다.
학교와 학원을 맴도는 일상에서는, 그리고 시험 점수만으로는 발견할 수 없었던 아이의 숨겨진 모습들이었습니다. 아이가 나갈 세상에서는 여행지에서보다 더 많은 돌발상황과 위기가 펼쳐지겠죠. 아이한테 보이지 않는 힘이 있다는 걸 한 뼘 더 믿게 된 만큼, 지금 좀 밀리고 더디더라도 조금 더 참고 기다려줄 수 있는 엄마가 되어야겠습니다.
<아이의 눈길이 머무는 모든 곳을 주시하게 하고, 아이의 말에 귀 기울이게 해준 여행>
미국 부모들은 나중에 자식한테 아무것도 안 준다는데
한 달간 미국 서부여행을 하면서 한인민박을 운영하는 분과 얘기 나눌 시간이 많았는데, 미국에서는 부모가 자식한테 나중에 아무것도 물려주지 않는다는 말이 현실 그대로였습니다.
사실 저는 평범한 우리 아이한테 조금이라도 안정된 환경을 마련해주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자립'이 원칙이죠. 실상 엄마도 함께 경제활동을 해야만 생활이 유지되기 때문에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자립'이 몸에 배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렇다고 방치는 아니었습니다. 학교 성적이 나쁘거나 친구 문제가 있으면 학교에서는 곧바로 부모부터 호출한다고 해요. 학교에서는 '차별'과 '폭력'을 가르치지 않는데 아이가 이것을 보고 배울 곳은 가정이라는 논리라는 거죠. 그러니 부모들은 가정에서의 인성교육에 특별히 신경 쓰고 있다고 합니다.
어려서부터 자립을 배워 자신의 진로를 찾아가는 아이들을 보면서 벌써 아이가 가졌으면 하면 직업, 아이한테 물려줄 통장까지 정해놓고 있는 제가 부끄러워졌어요. 요즘 '글로벌 인재'라는 말이 교육의 키워드가 되고 있어 외국어 능력에만 조급했는데, 거기엔 '자립'과 '자기 주도'의 소양이 담겨있다는 숨은 뜻을 이제야 읽을 수 있었습니다.
<24시간 밀착하는 아이와의 여행은 아이와 엄마 모두의 성장에 좋은 기억이 될 것이다.>
30일간의 여행을 마치고 열흘 남짓 지난 지금, 아이는 자신에게 느껴지는 가장 큰 변화로 "마음이 쿨해졌다"는 걸 꼽습니다. 이전에는 사소한 걸로도 마음이 아팠는데, 긴 여행을 다녀오고 나니 다 큰 문제 아니라 받아들이게 된대요.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의 관심도 활력소가 되어 학교생활을 전보다 즐거워합니다.
엄마한테 감지되는 변화로는 "엄마가 착해졌다"고 표현합니다. 아마도 엄마가 변했다기보다는 한 달 내내 붙어있으면서 엄마 성격을 더 잘 파헤친 덕분에 아이 스스로 잔소리 안 듣게 대처하고 있기 때문이겠죠. 화를 내고 혼을 내는 건 여전하지만 보이지 않는 애착과 신뢰가 아이와의 완충장치를 만들어주지 않았을까요?
아이와 함께 보낸 30일간의 여행이 옷을 갈아입듯 눈에 띄는 변화를 줄 순 없겠지만, 이따금 엄마와의 소통, 아이와의 소통이 부딪쳤을 때 따뜻한 기억으로 아이의 성장과 엄마 노릇에 은근한 힘이 되어주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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