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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교육부 이야기/부모의 지혜 나눔

진주향교에서 선비정신을 배우다

대한민국 교육부 2013. 9. 3. 11:00

기록적인 불볕더위에 전력난까지 겹쳐 올여름은 지내기가 많이 힘드셨을 겁니다. 에어컨도 없는 집에서 여름을 보내며 무기력해진 아이들에게 지구 환경 관련 책을 읽으며 토론도 했지만 당장 더위를 이기는 대책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조선의 선비 정신에 관해 이야기했습니다. 선비 하면 뭐가 떠오르십니까? 큰아들은 비가 와도 뛰지 않고, 청빈한 삶을 산 조선의 양반이 떠오른다고 합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는 학식과 인품을 갖춘 사람에 대한 호칭으로, 특히 유교 이념을 구현하는 인격체 또는 신분계층을 지칭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미 30년 전에 폐교되었지만, 엄마가 다닌 초등학교 뒤편에는 향교가 있단다. 연못이 있는 정자에 앉아 연꽃 밥도 따 먹고 더위를 식혔던 기억이 나는데, 진주에도 향교가 있더라. 우리 한 번 가볼까?"

큰아들은 중학교에서 배우는 조선 시대와 연계하여 몇 가지 질문을 던져 보고, 막내는 작년에 과학탐구토론대회 본선 주제가 한옥이었던 지라 재미있겠다며 손뼉을 칩니다.

 

'향교'유교의 옛 성현을 받들고, 지역사회에서 인재양성과 미풍양속을 장려할 목적으로 설립조선 시대 지방교육기관입니다. 진주는 고려 때인 987년 창건하고, 고려 말에는 강민첨, 정을보, 하륜 등이 이곳에서 공부하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향교의 공간은 교육과 제례를 담당하는 두 영역으로 나누는데, 1398년(조선 태조7)에 공자를 모시는 문표를 창건하고, 중앙교육기관인 성균관으로부터 교수(敎授)를 파견하였다고 합니다. 요즘으로 치면 서울 국립대학교에서 거점 국립 대학으로 정식 인정하였다는 의미입니다. 일제강점기 관리 차원에서 부산으로 이전하기 전까지 경남도청이 자리한 행정중심도시이기도 했기 때문에 진주가 교육도시라는 명성은 전통이 깊답니다. 진주 출신인 남편은 자랑에 신이 났습니다.

 

땀 뻘뻘 흘리며 도착한 입구. 어른, 아이 지위고하 구별 없이 말에서 내리라는 마하비가 보입니다. 학문을 닦는 곳이므로 누구든 평등하게 내려서 겸허한 자세로 들어오라는 것입니다. 진주향교의 역사를 알려 주는 비석도 있습니다.

진주향교비마하비

두둥, 눈앞에 펼쳐진 것은 11월 11일까지 보수공사라 롤러코스터처럼 꼭대기까지 이어진 공사용 나무판자로 된 길입니다. 모험영화를 찍어도 될 것 같습니다. 가파른 언덕이라 말을 타고 싶어도 못 타겠다며 두 아들 잠시 실망합니다. 암벽등반도 하는데 이쯤이야 성큼성큼 올라갑니다.

출입문풍화루를 지나니 생활시설에 해당하는 동재서재가 보입니다. 소박한 모습입니다. 보통 사당이나, 관공서는 웅장하게 보이기 위해 중국영향을 받은 맞배지붕이 많은데, 진주향교는 팔작지붕이 주를 이룬다고 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지붕 위에 삼각형 구조물이 더 있어 나지막해 보이나 미적 효과는 물론 내부공간을 극대화할 수 있는 우리나라 전통 가옥 구조로서 삼국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왔다고 합니다. 외적 허세보다 실속을 중시한 선비의 기상을 표현한 것이라고 합니다.

명륜당과 동재

공부하는 곳인 명륜당과 요즘 아파트 1층에서 많이 볼 수 있는 필로티 구조의 사교당입니다. 이쯤에 암, 수 은행나무가 서 있고 연못이 있어야 하는데 왜 없느냐고 물어봤습니다. 향교 은행나무를 세운 이유는 천 년 나무이긴 하나 암, 수가 구별되어 함께 있어야 번식하여 영구히 유지될 것이고, 음양의 조화를 꾀하는 것이겠죠. 공기정화 작용도 탁월하여 연못의 연꽃처럼 맑은 선비 정신을 표현하기에 적합했을 것입니다. 정자에 앉아 시조 한 수 읊어보려고 부채까지 준비했는데 서운합니다. 경기, 경북 지역물을 끌어올 수 있는 위치에 향교를 짓지만, 진주 향교일반인이 살기에는 불편한 언덕 위에 지어 타협하지 않는 선비의 꼿꼿함, 외골수를 보여주고 있다고 합니다. 사설 향교(사학)가 아닌 관학임에도 규모가 작은 편입니다. 꼭 필요한 시설 이외에 들여놓을 수가 없습니다. 두 아들 이구동성으로 "아빠네." 합니다.

사교당

다시 좀 더 가파른 사다리를 타고 제례 공간으로 향했습니다. 정면에 대성전이 있고, 좌우로 동무, 서무가 있습니다. 뒤편에는 켜쌓기를 한 축대가 있습니다. 마름 쌓기가 축대의 기능 면에서 더 견고하나, 일자형 켜쌓기를 한 것은 미관상 좋고, 선비의 곧은 기상을 나타내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강수량이 적은 마른 지형이고, 모서리에 맞물림 기법(interlocking)을 사용하여 붕괴의 위험이 없다고 합니다.

축대 밑에 잘린 나무 몇 그루가 보입니다. 벽오동은 푸른 줄기에 목질이 희고 깨끗하여 선비의 절개를 상징하기도 하지만 전설 속에서 봉황이 산다는 나무여서 신성함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진주의 대표 산인 비봉산도 원래는 봉황이 산다는 뜻으로 봉산, 혹은 대봉산이라고 하였으나, 일제 강점기 자긍심을 짓밟고자 날 비를 써서 비봉산으로 바꿨다고 합니다. 봉황이 깃든 곳이 아니라 이미 날아가 버린 쇠퇴한 지역이라는 뜻이니 이름을 되찾아야 한답니다. 토박이 남편이 비상하는 봉황으로 해석한 저의 우매함을 살짝 비웃습니다. 오동나무는 성장도 빠르고 목질이 희고 단단하니 이 역시 선비의 기상을 나타낸답니다. 은행나무천 년을 사는 나무이니 오래도록 선비 정신을 이어가라는 뜻이랍니다. 동백은 눈 속에서도 꽃을 피우고 사철 푸르러 역경에도 굴하지 않음과 청정함을 기원하기 위함이고, 우리나라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고 빠뜨리지 않는 정원수인 소나무, 느티나무천 년을 사는 나무로서 선비의 기상을 오래오래 이어가라는 뜻이랍니다. 나무 이야기를 오래 하자 조금 지루해진 큰아들 "아빠, 조경 전공하셨어요?" 묻습니다. "토목은 말 그대로 흙과 나무를 다루는 인류의 가장 오래된 직업이고, 지구가 존재하는 한 필요한 직업이야. 관심을 가지면 익히게 돼." 직업에 대한 자부심도 피력합니다.

왼쪽부터 벽오동 나무, 은행나무, 오동나무

내려다보니 진주한 눈에 들어옵니다. 바람이 불어와 지금이 한여름인가 의심스러울 지경입니다. 열악한 동네, 불편한 자리에 왜 세웠나 했는데 이해가 됩니다. 비옥한 곳은 개간해서 생활에 쓰고, 일신의 편안함은 뒤로하고, 백성의 어려움을 먼저 살피라는 깊은 뜻도 있고, 여름에 시원하니 학문에 정진하기 최적의 장소입니다.

전망은 좋은데 내려가려니 다리가 후들거려 잠시 주춤하는 막내, 안타깝게 바라보는 형

오는 길에 의곡사봉산사를 들렀습니다. 두 아들이 비봉산 이름을 바꿀 수 없다면 우리가 비상하는 봉황이 되자고 합니다. 내친김에 자연 생태계의 보고인 비봉산 산행 한 번 하자고 했더니 내려오니 덥다고 집에 가자고 합니다. 양반으로 태어나기만 하면 선비가 되는 줄 알았는데 실천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고 합니다.

봉산사


"선비는 책만 읽고 현실문제를 외면한 걸로 아는데 너희가 잘 아는 실학의 선구자 정약용, 정약전을 비롯하여 퇴계 이황 도산서원을 설계한 기술인이었단다. 물론 직접 농사짓고, 집을 짓진 않았지만 평생 배우고 익히는 생활 습관백성을 두루 살펴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었고, 목숨을 걸고 임금에게 충언하고,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물질에 현혹되지 않는 강직함을 지녀야 진정한 선비라고 할 수 있지. 이를 잘 실천하는 사람은 비록 관직에 오르지 못해도 선비로서 존경을 받았단다.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를 실천해야 진정한 선비인 것이지. 알겠니? 여름은 덥고, 겨울은 추운 것이 자연의 순리. 조금 덥다고 툴툴대며 해야 할 바를 등한시하면 되겠니? 자, 각자 위치로 가서 오늘 일을 정리한다."

 

우리의 선비정신서양의 기사도나 일본 사무라이 정신과 달리 누구나 실천할 수 있는 생활태도입니다. 보수 공사가 끝나고 한적한 날 진주 향교를 방문해서 찬바람을 느껴보렵니다. 교육관도 있으니 다양한 체험학습 프로그램을 진행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집 인근에도 향교가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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