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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소설을, 찰칵하다> 본문
고등학교 때도 선생님들께서 많이 강조하셨지만, 대학생이 되니 교수님들께서 더 많이 권면하시는 것이 바로 ‘책 읽기’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대학생은 전공서적을 읽는 것부터 시작하여 관련된 논문을 읽는 일이 많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읽기가 기반이 되어 시험 때에도 글로 쓰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지요. 글 읽는 능력과 쓰는 능력에는 책 읽기가 필수인 셈입니다. 책을 다양하게 읽음으로써 얻게 되는 배경지식은 내가 하는 공부와 연결되어 많은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서울시 창작공간, 연희문학창작촌>
지난 두 달간 ‘꼭 읽자!’하고 다짐했던 책 몇 권이 있었습니다. 항상 완벽히 다 읽어내기가 어려운 적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읽는 것보다도 더 고민이 되는 것은 ‘책을 읽고 나서 이후에 이것을 어떻게 소화할 것인가?’ 라는 점입니다. 학창시절엔 글로 내 느낌과 감상 등을 적는 독후감이 책 읽고 난 후의 결과물이었는데요. 독후감은 왠지 모르게 숙제 같다는 느낌이 들지요? 책 이야기에 대한 내 생각을 풀어내는 재미있고 신선한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야외무대 '열림'에서 진행된 '소설을, 찰칵하다'>
바로 연희문학창작촌의 2013 <문학, 번지다> 프로젝트 선정작인 <소설을, 찰칵하다> 프로그램에서 알게 되었는데요. 문학동아리 “파를”이 주최하고, 서울문화재단이 함께하는 <소설을, 찰칵하다>는 연희문학창작촌 야외무대 ‘열림’에서 지난 8월 31일 그 발표회가 진행되었습니다.
<프로그램 순서지>
<소설을, 찰칵하다>는 문자로 된 텍스트를 이미지 텍스트로 변환하는 작업이었습니다. 프로그램을 담당하여 가르쳐주신 한 선생님께서는 이 작업의 주체가 전문적으로 글 쓰는 사람이 아니라, 18세, 19세의 평범한 청소년들이었다는 점을 강조해주셨습니다. 바쁜 수험생활과 공부에 쫓기는 10대가 이 프로젝트를 끝내는 데까지는 많은 과정과 힘겨움이 있었지만, 끝까지 함께 해준 학생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도 잊지 않으셨습니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친구들은 가평고등학교 문예창작반 학생들입니다. 학생들은 한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읽고, 5월부터 이를 이미지로 재표현하는 작업을 했다고 합니다.
첫 번째 팀은 김영하 작가의 작품 하나를 읽고 세 학생이 각각 연출, 배우, 동영상을 맡아 작업했는데요. 학생들의 작품 상영 전 이야기를 듣는 것도 매우 유쾌했습니다. 과정 중 어려웠던 점으로는 동영상 작업을 할 때 컴퓨터가 잘 안 되었던 것인데 이 때문에 시간이 꽤 걸린 모양입니다. 또 조원들과 함께 협력해서 진행해야 하는 부분도 어려움의 하나라고 하였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작품상영회를 할 수 있게 되었으니, 의견을 모으고 조율하는 과정을 즐겁게 잘 견디어낸 것 같지요?
작품 감상의 포인트는 ‘10대가 바라본 20대의 모습’이라고 하였습니다. 물질에 너무 치중하게 되는 20대들에 대한 반성과 비판을 담았다고 하는데요. 그렇다면 앞으로 10대들은 20대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생각하고, 20대들은 자신의 지나온 과정을 반성해보는 기회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해주었네요. 20대 대학생인 저에게 10대는 어리게만 보였지만, 10대들이 지적하는 문제를 들으니 ‘아!’하는 신선한 충격이 들었답니다. ‘10대의 시각에서 보는 20대의 모습은 순수한 열정보다는 현실에 점차 익숙해지고 순응하게 되는 모습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처음으로 해보게 되었답니다. 그러한 시선이 참 성숙하게 느껴졌습니다.
두 번째 팀은 세 명의 여고생이었습니다. 비록 같은 팀은 아니지만, 객석에 있는 같은 문예창작반에서 활동했던 친구들로부터 자연스럽게 질문을 받아 대화하는 것을 보면서 이 활동을 하며 끈끈해진 친구들 간의 관계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가을밤, 낭독과 함께하다>
김애란 작가의 작품을 읽고 작업한 것으로, 제목이 ‘앓이’였는데요. 사진과 텍스트, 음악이 잘 어우러지는지 보아달라고 요청을 했습니다. 이 팀은 낭독이 더해져서 감성적인 느낌이 더해졌습니다. 한 친구는 영상 속에 자신의 사진만을 활용해서 표현했는데, 그것이 대단하면서도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하나의 계기가 되는 시간이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3 한 여학생은 대인관계에서의 마찰과 불화를 담았다고 하는데, 처음엔 쉽게 생각하고 읽었지만 읽다 보니 자기 주변의 관계에 대해 많은 생각과 성찰을 할 수 있게 된 기회라고 이야기해주었습니다.
<조인호 시인의 시 '불가사리' 낭독>
문학 발표회답게 특별출연자로 초청된 조인호 시인이 함께하는 시 낭독회 시간도 있었습니다. 싱어송라이터의 기타 연주와 함께 낭독하는 ‘불가사리’라는 시가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시인의 청년 시절에 일상에서 겪었던 일을 두고 쓴 작품이라고 하는데요. 어느 날 우연히 길을 지나가다가 길가에서 힘겹게 고물을 줍는 고물상 할머니를 보고 나서 쓴 시라고 하셨습니다. 문학이 때로는 어려워 보이지만, 일상의 장면을 순간순간 담아내는 과정이라 생각이 들었습니다.
<꿈과 현실의 고민을 담아낸 세 번째 팀>
마지막 팀인 ‘너구리의 스테이지 23’은 박민규 작가의 책을 읽고 작업을 했는데요. 비가 조금씩 오는데도 불구하고 오늘 최종발표회를 담기 위해 삼각대에 놓인 큰 카메라를 보니 이 프로젝트의 중요성을 더 실감 나게 느낄 수 있는 것 같다고 이야기해주었습니다. 시간을 많이 할애해야 하는 작업이었지만, 가평천에서 촬영하던 기억이 생생하게 날 정도로 좋은 추억이 되었다고 합니다. 책의 시각이 워낙 독특했지만, 읽으면서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고 합니다.
<현실에서의 안주와 도전하는 꿈에 대해 이야기한 세 번째 팀>
꿈과 이상으로 상징되는 ‘즐거움’, 우리를 가로막고 있는 ‘틈’, 우리 삶의 ‘클래스’ 등을 핵심 단어로 제시하면서 꿈과 현실의 경계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는 사람들의 단상을 보여주었습니다. 특히 ‘틈’이라는 이미지를 일상에서 볼 수 있는 장면들로 구체적으로 여러 장 제시하여 저로 하여금 꿈에 가까이 나아가게 하지 못하는 가로막음이 무엇일까 생각해보게 되었네요.
학생들과 3개월간 함께한 한 선생님께서는 서툴고 풋내나는 작품이지만, 만들었던 과정이 떠오르면서 벅차다는 소감을 말씀해주셨습니다. 문자 텍스트를 이미지로 바꾸는 과정에서 많은 토론이 있었고, 재창작하는 데에 시나리오 작업도 필요했을 것입니다. 선생님과 학생 간의 교류가 긴밀하고 활발하다고 느껴졌던 것은 선생님의 소감을 들으면서였는데요.
“인생이 생각보다 깁니다. 지금은 입시가 다인 것 같지만, 삶에는 정말 많은 일이 있습니다. 그리고 인생에서 길을 잃는 순간도 올 것입니다. 이 작업이 수행평가나 중간고사, 기말고사에 들어가는 것이 아닌데도 선생님들은 배경만 깔아주고, 학생들이 모든 것을 스스로 했습니다. 나이가 들어 언젠가 길을 잃었을 때, 이때의 작업을 한 번 보면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학생들의 뜨거운 진심이 담겨서 좋습니다.”
저도 함께 벅차오르는 것을 느꼈습니다. 비록 프로젝트의 과정이 쉽지는 않았겠지만 순수함과 열정을 담은 결과물이 언젠가 학생들의 모습을 비춰줄 거울 같은 역할을 해줄 것을 기대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선생님들이 만든 '학생들의 제작과정' 영상을 통해 그간의 과정과 학생들의 소감을 고스란히 볼 수 있었는데요.
“그냥 무심코 지나치던 길을 다시 보고, 두 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어요.”
“과정이 쉽지 않아서 더 값진 경험인 것 같습니다.”
“색다른 경험이었는데, 이미지로 변환하는 과정에 참여하는 게 좋았어요.”
“쉽게 지나가는 풍경을 주시하게 되고, 더 자세히 알려고 노력하게 되었습니다.”
여행작가, 상담가, 뮤지컬배우, 무대감독, 방송작가 등 다양한 꿈을 꾸고 있는 친구들에게 이번 경험이 밑거름되어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그동안 함께했던 학생들과 선생님들, 그리고 관객들>
이번 연희문학창작촌의 <소설을, 찰칵하다> 최종발표회에 시민 관객의 한 사람으로서 참여하면서 느낀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첫 번째는 고전도 좋지만, 현대문학작품을 선택해 읽은 것은 오늘날 현대사회의 모습을 곧 경험하게 될 청소년들에게 진지한 성찰을 가져다주었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두 번째로는, 색다른 책 읽기의 대안을 제시했다는 점입니다. 그동안 글 읽기 후에 글을 소화해낼 방법은 독후감이 제일 흔한 일이었는데요. 가만히 생각해보면, 문학작품을 읽고 이미지로 다시 표현하기가 그리 쉽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글에는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의미의 단어들도 많이 담겨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그렇기에 오히려 더 많이 고민하고 노력했을 것을 생각하니 정말 대견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마지막으로 이러한 청소년들의 예술활동이 더 많아지고 활발해졌으면 합니다. 현재 교육부의 정책 방향도 꿈과 끼를 키우는 행복교육인데요. 이러한 활동이 정책 방향과 맥이 닿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무대에 자신의 작품을 상영하는 청소년들을 보면서 부러웠습니다. 나도 청소년 때 이러한 창작 활동을 해보았다면 정말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만큼 이 작업이 청소년으로 하여금 현재 발을 딛고 있는 학교나 가정, 여러 환경으로부터 더 시각을 넓혀주는 멋진 일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 <소설을, 찰칵하다> 프로그램 최종상영회를 통해서 저도 배운 것이 하나 있답니다. 그동안 책 읽은 것을 개인적으로 기록해볼까, 아니면 블로그에 실어볼까 고민하며 주저하였었는데요. 여기에서 제시해준 책 읽기의 새로운 대안을 가지고 저도 카메라로 이미지를 찍어보거나 영상을 만드는 작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책을 한 번만 읽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작업 중에 더 오래 그리고 묵직하게 책의 내용을 여러 번 곱씹어보며 사유하는 힘이 길러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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