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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멋과 향이 있는 현대시박물관 본문
최근 인기도서 목록을 살펴보면 자기계발서가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국내 문학이 인기 있었던 과거와는 다른 모습이죠. 특히 1980년대에는 국내 시인의 시집이 많은 인기를 끌었는데요. 요즘은 시집은 보지 못한 지 오래고 그나마 소설이 인기도서의 적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이렇게 국내 시가 설 자리가 많지 않은 안타까운 상황에서 현대 시의 맛과 멋을 담은 현대시박물관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기쁜 마음으로 찾아가 보았습니다.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현대시박물관의 입구입니다. 박물관이라고 해서 여느 박물관처럼 크고 넓은 현대식 건물일 줄 알았는데 현대시박물관은 예쁜 가정식 집 같은 느낌의 아담한 건물이었어요. 누군가의 집을 엿보는 기분이 들어 현대시박물관의 건물은 무척이나 흥미롭게 느껴졌습니다. 실제로 현대시박물관은 집처럼 신발을 벗고 들어가서 관람을 해야 한답니다. 자, 이제 본격적으로 시의 집으로 들어가 볼까요?
현관에 들어가자마자 바로 양옆에는 멋들어진 붓글씨가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알고 보니 모두 시인들이 직접 쓴 붓글씨였는데요, 제가 알고 있는 시인들이 직접 쓴 것이라고 생각하니 신기하더라고요. 그중에서 저는 박두진의 붓글씨가 가장 마음에 들었답니다. 그동안 박두진의 시에서 볼 수 있었던 역동적인 느낌이 그가 힘 있게 그어 내린 한 획마다 고스란히 담겨있더라고요. 시인의 시 세계가 녹아있는 글씨체, 참 멋지지 않나요?
현관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거실과 3개의 방으로 구성된 1층과 2층으로 나누어져 있답니다. 각 방에는 시의 역사를 볼 수 있는 시집이 전시되어 있고 여러 시인의 작품과 초상이 함께 담긴 액자가 벽에 걸려있습니다. 저는 먼저 1층의 가장 오른쪽에 위치한 방부터 들어갔어요. 이 방은 1910년대부터 1950년대 시집이 전시된 방이에요. 100년도 더 된 시집이라 그런지 표지만 보아도 예스러운 맛이 물씬 느껴졌습니다. 빛바랜 누런 종이에 세 가지 색으로 이루어진 표지와 지금과 달리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쓰여 있는 제목의 많은 시집을 보니 마치 살아있는 현대 시의 역사를 생생히 보는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특히 가장 넓은 이 방에는 방 한가운데에 탁자가 있었는데요. 탁자 유리 아래에 전시된 시인들이 보낸 편지들과 시와 관련한 여러 기사가 참 인상 깊었습니다. 그것들을 읽고 있으니 마치 제가 시인들과 개인적으로 만나는 것 같은 가까운 느낌이어서 보는 재미가 쏠쏠하더라고요. 탁자 위에는 몇 권의 시집이 놓여있었는데, 고요한 시의 향기로 가득한 현대시박물관에서 혼자 시집을 읽으며 감상에 푹 빠질 수 있어서 정말 좋았어요. 탁자에서 보내는 시간은 현대시박물관에서 빼놓아서는 안 될 코스라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시집의 여운을 한껏 품고 왼쪽에 있는 가운데 있는 방에 들어갔습니다. 가운데에 있는 방은 1951년부터 1960년대 시집이 전시된 방이에요. 시기가 현대에 더 가까워서인지 확실히 시집들이 앞의 방에서 보았던 시집들보다 색깔이 다양하더라고요. 문자만 쓰여 있던 시집에 그림이 생기니 소설책 같은 느낌도 들고 보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이 방은 특히 저에게 생소한 시집이 무척이나 많아서 노천명이나 유치환 시인 같이 아는 시인의 시집이 보이면 두 배는 반갑게 느껴졌습니다. 한편으로는 국문학도인 저를 반성하게 하기도 했고요. 다음에 현대시박물관에 올 때는 더 적극적으로 감상할 수 있도록 모든 방에 걸려있는 시인들을 알고 공부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답니다.
1층의 마지막 전시실인 가장 끝에 있는 방은 1970년대의 시집과 현대 시인 전집을 모두 모아 전시한 방이에요. 이 방에서는 다른 방과 달리 시집과 함께 시인들이 실제로 사용했던 물건이나 원고가 전시되어 있어 눈길을 끌었습니다. 그중에서도 검은 펜으로 시를 쓰고 나서 초록 펜으로 시를 고쳐 쓴 흔적이 가득한 김종삼의 원고는 그 앞에 한참을 서서 바라보게 하였습니다. 남들은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원고를 가득 채운 초록 펜의 흔적들을 보면서 이 시를 쓸 때 김종삼이 얼마나 많은 고민과 번뇌를 했을지 짐작이 가더라고요.
원고 아래에는 김종삼이 쓰던 수통과 모자가 있었는데요. 그것들을 보니 김종삼이 저 모자를 푹 눌러쓴 채 많은 고뇌를 하며 시를 쓰고 그러다 지칠 때면 주황색 수통에 물을 담아 마시는 모습이 상상이 되어 혼자 웃음을 지었답니다. 매번 시를 책이나 교과서 속에서 활자로만 마주하다가 이렇게 시와 관련한 여러 가지 물건들과 함께 시를 읽으니 더 이해도 잘되고 그 시가 생생하게 와 닿는 느낌이었어요.
1층의 거실에는 벽 가득 시인들의 시와 초상이 액자로 걸려있는데요. 벽을 따라 옆으로 움직이면서 시인의 초상을 보며 시인의 시를 감상하니 마치 시인이 시를 읽어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중에는 한글과 함께 영어로 번역된 김광규의 시도 있었답니다. 고은이 몇 년째 노벨 문학상 후보에 머무르고 있는데, 한국말의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영어로 번역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던 터라 영어로 번역된 김광규의 시를 보니 더욱 반갑더라고요.
1층을 다 보고 난 후 저는 2층으로 향했습니다. 마치 다락방을 올라가는 계단같이 생긴 현대시박물관의 계단은 참 특별하더라고요. 그냥 계단만 있는 것이 아니라 복도 양옆의 벽에 수많은 시인의 손때 묻은 육필원고가 족자로 걸려있는 ‘시의 숲’이었거든요. 한 칸씩 계단을 올라가면서 육필원고를 찬찬히 살펴보았는데요. 시마다 그 시인만의 분위기가 글씨체에 고스란히 담겨있어 그 시가 보다 감각적으로 느껴졌습니다.
특히 피천득의 시는 처음 보는 작품이었는데, 그 새로운 시에도 작가 특유의 아련함이 담겨있어 제 마음에 쏙 들었답니다. 흐릿하고 힘이 없는 듯 하면서도 연필로 줄임표의 점 하나까지 세세하게 눌러쓴 피천득의 글씨체는 작품이 주는 먹먹함을 몇 곱절은 더해주었어요. 육필원고 숲은 모든 것이 디지털화된 세상에서 오랜만에 아날로그적 감성에 푹 빠질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준 것 같아요.
육필원고 숲을 지나 도착한 2층에는 하나의 다락방이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화백들이 그린 그림과 함께 시가 걸려 있었어요. 한눈에 보아도 시와 어울리는 그림이 있는가 하면 시와는 그다지 상관이 없는 듯한 그림도 있었는데요. 묘하게 볼수록 모두 시와 닮은 그림으로 보이는 점이 정말 신기하더라고요. 초록빛 빛의 벼들로 가득 차있는 그림이 특히 눈에 띄었는데요. 그림만 봐서는 어떤 시인지 짐작할 수 없었습니다. 벼를 주제로 한 시라고 혼자 지레짐작했는데 알고 보니 뜻밖에도 이상화의 ‘빼앗긴 들어도 봄은 오는가’라는 시의 시화였어요. 초록 벼들이 가득 찬 들판처럼 보이는 이 그림을 자세히 보면 초록 물결들이 한 방향이 아니라 이리저리 여러 방향으로 흔들리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답니다. 꼭 빼앗긴 들에 대해 슬퍼하고 분노하며 되찾기 위해 저항하는 시 속의 화자의 모습을 표현한 것 같지 않나요?
모든 관람이 끝난 후 나무로 만들어진 대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니 마치 영화관에서 마음을 울리는 잔잔한 영화 한 편을 보고 나온 느낌이 들었습니다. 단순히 시 작품 자체나 역사만을 다루지 않고 시의 맛과 향을 살리기 위해 시인의 글씨체를 비롯하여 친필원고, 조각품, 시인의 초상, 시인이 쓰던 물건, 사진 등과 같은 다양한 장치를 이용해서 시를 눈과 함께 마음으로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저는 이번 기회를 통해 시는 볼수록 깊은 맛이 느껴지고, 읽으면 읽을수록 새로워지고 다르게 다가온다는 점도 알 수 있었답니다.
어느새 날씨가 쌀쌀해지면서 가을이 성큼 다가오고 있네요. 서늘한 가을 날씨, 현대시박물관에 들러 시와 함께하는 것은 어떨까요? 그곳에서 느낄 수 있는 시의 맛과 향이 여러분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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