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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머신을 타고
백제시대로 떠나볼까요?
‘삼국시대 문화의 꽃’이라 불리는 백제는 기원전 18년 한강 유역에서 건국돼 기원후 660년 멸망할 때까지 약 700년 동안 지속되었던 일찍부터 철기, 농경 문화가 크게 발달한 나라입니다.
바다와 연결돼 외국과의 문물 교류에 유리하였기에 주위 나라들보다 빠른 속도로 성장한 백제는 동아시아 문화 교류의 중심에 서서 선진 문화를 수용하고 이를 발전시킴으로써 수준 높은 문화를 재창조 하였답니다.
지난 5월 6일 학교 휴업일을 맞아 이 ‘문화의 나라’를 직접 눈으로 보고, 우리나라 고대 문화·역사에 대한 자부심도 느껴보고자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합정리에 위치한 '백제 문화단지'를 방문하였습니다.
먼저 백제에 대해 간략하게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백제는 부여 계통의 여러 이주민 세력이 한강 유역의 원주민과 결합하여 형성된 국가입니다.
전성기는 제 13대 근초고왕 때인데요, 이 시기엔 전라도의 마한 세력을 병합하고 가야 지역까지 영향력을 확대했습니다. 또한 중국과 공식적인 외교 관계를 맺었고 신라, 왜와도 교류를 시작했습니다. 서기 660년에는 나당 연합군의 총공격 을 받아 계백이 이끄는 5천 결사대의 항전 등에도 불구하고 수도 사비성이 함락되었답니다. 그 후 전국 각지에서 부흥운동 이 일어났지만 실패로 끝나면서, 백제 왕조는 그 역사를 마감했습니다.
백제의 유적지로는 부소산성, 인공 연못인 궁남지, 백제 무왕과 왕비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익산 쌍릉과 공주 수촌리 고분군, 금강변 야산의 계곡을 둘러싼 고대 산성인 공산성, 무령왕릉과 초기 백제의 왕성으로 추정되는 풍납토성, 몽촌토성이 있습니다. 유물로는 근초고왕이 왜왕에게 선물로 준 칼 모양의 장식품인 칠지도, 금동신발과 금동대향로 등이 전해옵니다.
♣ 사비궁(정양문과 천정전)
이곳이 정양문입니다. 입구에서부터 백제 문화의 웅장함이 물씬 느껴지지 않나요?
밑의 사진은 정양문에 들어서자마자 펼쳐지는 사비궁 풍경이랍니다.
사비궁은 백제 역사 문화의 절정을 이룬 사비시대의 왕궁으로 중심 공간인 천정전, 왕이 평소 문관에 대한 집무를 보던 문사전, 무관에 대한 집무를 보던 무덕전, 천하의 인재들을 맞이한다는 뜻의 연영전 등에 이르기까지 여러 건물들로 구성돼 있습니다.
이곳 천정전은 신하들이 왕에게 신년인사를 드리거나 국가 의식을 거행하고 외국 사신들을 맞이하던 사비궁의 가장 중요한 중심 건물로, 국가의 큰 정사를 하늘에 고하고 결정한 정사암으로부터 유래한 '천정대'에서 그 이름을 따왔다고 합니다.
천정전에 위치한 '어좌'는 임금이 앉는 자리로 용좌라고도 부릅니다. 어좌의 기단부는 고대 가구 자료와 당시 왕실 불교의 특성 등을 감안하여 공주 금동관음보살입상의 대좌와 안상 문양을 적용함으로써 왕의 존귀함을 표현하였습니다. 어좌의 용상 뒤쪽에서는 부여 규암면 외리에서 출토된 문양 중 세상이 태평할 때에만 나타난다는 '봉황문'도 관찰할 수 있습니다.
다른 건물에서는 왕과 왕비가 왕실 및 국가의 주요 행사 때 입었던 대례복과 궁궐 내에서 입었던 평상복을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왕이 평소 입었던 평상복임에도 불구하고 고급스러움이 느껴질 정도로 백제 예술의 화려함과 우아함, 그리고 섬세함이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 능사와 고분공원
능사는 성왕의 명복을 빌기 위한 백제 왕실 사찰로 '뜻이 크게 통한다'의 의미를 가진 대통문과 불상을 모시던 공간인 대웅전, '연화화생'의 의미를 담은 부용각 등으로 이루어져있습니다. 고분공원 은 백제시대의 대표적 묘제를 보여주는 곳으로 사비시대 고분 형태를 보여줍니다.
♣ 생활문화마을
생활문화마을은 백제 사비시대의 계층별 주거 유형을 보여주는 곳으로, 당시 백제인들의 생활 풍습을 알 수 있답니다. 귀족 가옥은 당시 최고의 벼슬에 있었던 대좌평 사택지적의 가옥을, 군관 가옥은 계백장군의 가옥을 연출하였습니다. 이밖에는 중류계급, 서민계급 가옥 등 다양한 계층의 생활 문화를 이해할 수 있도록 조성했어요.
백제의 장군! 하면 제일 먼저 누가 떠오르나요? 아마 계백 장군일 거예요. 위 사진은 백제 말기 대표적 무관인 계백 장군의 집을 재현한 곳이랍니다. 계백은 황산벌에서 신라군 5만명을 맞아 다섯번 전투에서 네차례 승리를 거두었지만 결국 중과부적으로 패하고 전사했습니다. 그러나 그 분의 충절과 기상은 후대에도 널리 전해지고 있어요.
계백장군의 집으로 들어가는 입구 바로 옆에 위치해 있던 행랑채는 보통 대문을 중심으로 마구간, 하인들이 기거하는 방, 광 등으로 구성돼 있고 주택의 경계선에 따라 세워지는 경우가 많아요. 사진 속 행랑채의 경우는 사람들이 사용하던 창고나 광 정도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이 안에는 실제 백제시대의 무기들이 있었답니다.
백제 병사들은 근거리 전투 때는 대도와 철도끼, 철낫, 철모를, 원거리 공격 때는 주로 활을 사용하였습니다. 또한 기마술을 익혀 재갈, 안장 등의 마구류와 함께 방어용 무기로 쓰였던 갑옷과 마름쇠 등도 출토되고 있습니다.
행랑채 바로 앞에 있던 위엄이 느껴지는 이 건물 안에서는 황산벌 전투 영상도 관람할 수 있었습니다.
다음은 백제 귀족의 주택으로, 백제 말기 대좌평을 역임하였던 사택지적의 가옥을 재현한 곳입니다. 대좌평은 제1의 관등인 좌평 중에서도 최고에 해당하며 여덟 개의 큰 귀족 가문 가운데서도 이 사택씨가 제일 높은 신분이었다고 합니다. 최근 발견된 ‘미륵사 사리 봉안기’를 통해 무왕의 왕비도 또한 사택씨였음을 알수 있습니다.
휘황찬란한 무지개 빛깔의 비단들과 여러 종류의 그릇, 장신구와 거울들이 사용된 점을 보면 귀족이 살았던 곳이라는 사실을 한눈에 알아차릴 수 있겠죠?
백제 건축가 아비지의집 을 침소, 부엌 등 생활공간인 주옥과 작업공간으로 재현한 건물이에요. 사진 속 탑은 아비지의 작업 공간에서 접할 수 있었던 정림사지 5층 석탑 모형이랍니다. 아비지가 살던 시기에 백제에서는 미륵사 등 거대 사찰이 건축되었는데, 아비지는 이같이 우수한 백제의 건축 기술을 신라에 전해준 인물이라고도 할 수 있어요.
우리나라는 강수량의 대부분이 여름철에 집중돼 물이 빠르게 유실되기 때문에 겨울, 봄에는 가뭄이 드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반면에 논농사를 짓는 데는 물이 많이 필요했어요. 때문에 안정적으로 물을 확보하는 일이 몹시 중요했는데요, 이 우물이 그 문제를 해결해 주었습니다. 우물은 각 가정마다 갖추기도 했고, 여러 가구가 공동으로 이용하는 경우도 있었답니다. 공동 우물을 이용하기 위해 주변에 사람들이 모이게 되면서 우물이 마을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이곳에 사람이 모여 물물교환과 교역이 시작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었습니다. 즉, 옛 시대의 우물은 사람들이 만나는 장소이자 마을의 중심이었습니다.
이곳은 백제시대의 가마 죽요지를 재현한 곳입니다. 백제시대의 요지는 크게 기와요지와 토기요지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기와와 토기를 동시에 구웠던 요지도 있어요. 백제 시대의 요지는 크게 아궁이, 연소실, 소성실, 굴뚝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아궁이는 불을 지피는 입구, 연소실은 아궁이를 통하여 땔감이 지펴지는 곳, 그리고 소성실은 구워야 할 물건을 재는 곳으로 가마에서 가장 넓은 공간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굴뚝은 연기를 뽑아내기 위해 지어졌답니다. 이렇게 4가지 구조물로 구성돼 있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구조가 간략화되는 경우도 찾아 볼 수 있어요. 사진 속 가마는 충남 정양군에서 6세기 중반 정도에 만들어진 요지를 재현한 것으로, 가마 보호를 위해 보호각도 설치하였습니다.
무왕 13년 일본에 파견돼 백제의 음악과 춤을 전수한 악사 미미지의 집을 재현한 곳입니다. 본래 기악무는 부처를 공양하고 불교를 포교하기 위한 가무인데, 일본에 전수된 기악은 절에서 연주되었으며 현재까지도 전해지고 있어 백제의 음악과 무용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되어줍니다. 기악무에 사용된 기악탈은 도다이지 등 여러 절에 보관되어 있답니다.
♣ 백제의 탄생을 알리는 위례성
위례성은 백제 한성시기의 도읍으로, 고구려에서 남하한 온조왕이 한성에 자리 잡고 비류의 미추홀을 통합하고 난 후 백제의 수도로 정한 곳입니다. 이 성은 지리적으로 외적의 침입을 막는데 유리했고, 토지가 비옥하다는 점에서 백제가 성장하는데 큰 기반이 되었어요.
♣ 백제의 위엄
역사에 대한 기록이 그리 많지 않아 고구려, 신라를 포함한 삼국 가운데서 존재감이 제일 떨어지는 나라 백제. 그러나 이 백제 문화단지 견학을 통해 대륙의 문물을 받아들이고 이를 재창조하였던 백제의 개방성, 유연성과 활동력, 그리고 넉넉한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당일 체험으로 방문했던 터라 구석구석 다 보지 못해 약간의 아쉬움도 남습니다. 휴일 많은 5월, 가족·친구들과 함께 백제 문화 여행을 가보는 건 어떨까요?
참고(이용 안내)
- 운영 시간 : 3월~ 10월: 오전 9시~ 오후 6시/ 11월~다음해 2월: 오전 9시~ 오후 5시/매주 월요일 휴관
- 종합 안내센터: 041-635-7740/ 매표소: 041-635-7741
- 백제 문화단지 사이트 주소 http://www.bhm.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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