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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놀라운 학교 영어교육, 비법은? 본문
러시아의 영어교육과 한국의 영어교육
글 | 김원균 서울특별시성동교육청 장학사
지난 4년 동안 러시아에서 한국교육원장으로 근무하면서 세 아이들을 모두 국제학교가 아닌 현지 학교에 보냈다. 러시아어를 한 마디도 알아듣지 못하는 아이들이 현지 학교에서 영어를 어떻게 배울까 하는 걱정은 되었지만, 근무지가 국제학교가 없는 지역이라 선택의 여지가 없어 어쩔 수 없이 현지 학교를 보내게 되었다.
러시아어를 한 마디도 못하는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놓고 하루 종일 교실에 앉아 우리 아이들이 받게 될 스트레스와 공포심을 생각하면서 나는 불안과 초조 속에 하루하루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아이들에 대한 걱정에 부모인 나와 아내가 받는 스트레스가 더해져 당시의 생활은 그야말로 견디기 힘든 시간의 연속이었다. 어느 날 아이들이 걱정이 되어 학교에 찾아가 선생님들의 양해를 받아 몰래 아이들이 수업하는 모습을 엿보게 되었다.
6살 된 셋째는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교실 뒤쪽에 있는 정수기 뒤에 숨어 혼자 놀고 있는 모습을 보았고, 초등학교 5학년인 둘째는 아무 말도 알아듣지 못해 고개만 숙이고 노트에다 계속해서 낙서만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중학교 2학년인 첫째는 수업시간 내내 멍하니 앉아 있기만 하였다. 아이들의 그런 보습을 보고 돌아오면서 나는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 그런데 이러한 걱정은 1년이 지나면서 서서히 사라지게 되었고, 3년째 접어들면서는 오히려 국제학교가 아닌 현지 학교를 보낸 나와 아내의 선택이 옳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이유는 아이들이 서서히 주변 환경에 적응하게 되면서(아이들의 놀라운 환경 적응 능력은 항상 어른들의 섣부른 판단을 기우로 만들어 버리곤 하듯이) 현지 아이들과 어울리기 시작했고, 그에 따라 배우기가 그렇게 어렵다던 러시아어뿐만 아니라 영어를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는 수준까지 발전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때나마 아이들을 걱정하며 노심초사했던 우리 부부는 그제서야 가슴을 쓸어내리며 얼마나 다행스러워 했는지 모른다.
가끔 현지 학교를 방문하여 수업시간을 참관하면서 러시아 학생들이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모습을 보고 영어를 전공한 나 자신조차도 놀랐던 경험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데 평소 나는 러시아의 영어교육을 신기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많은 의아심을 가지게 되었다.
특별히 집에서 부모가 영어공부를 시킨 것도 아니고, 더군다나 러시아 학생들이 한국에서처럼 사교육을 받는 것도 아닌데 학교에서의 받는 수업만으로도 학생들의 영어 구사능력은 같은 또래의 한국 학생보다 월등한 이유가 과연 무얼까 하는 의아심을 근무하는 동안 끊임없이 갖게 되었던 것이다. 현지 영어 선생님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발음이 한국선생님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지가 않았고, 그렇다고 원어민 교사가 있는 것도 아닌데, 학생들이 학교에서의 수업만으로도 영어구사능력이 놀라울 정도로 변화되는 모습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러시아에 근무하면서 발견한 그 이유는 의외로 간단한 것이었다.
첫째는 선생님이 수업을 하지 않고 거의 모든 수업을 학생들이 하는 수업방식이었다. 선생님들은 학생들에게 적절한 과제를 부여하고 수업시간 내내 학생들이 발표케 한다. 그리고 선생님은 학생들이 틀린 부분과 중요한 부분만 약간 강조하는 정도이고 매시간 발표 결과를 평가하여 점수에 반영하는 시스템이다.
둘째는 한국의 영어교과서는 교사가 수업하기에 편리하도록 만들어져 있으나, 러시아의 영어교과서는 학생들이 집에서 공부하기 좋게 워크북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집에서 학생들이 워크북을 가지고 스스로 공부하여 발표 자료를 준비한 후 수업시간마다 발표를 하게 된다. 물론 영어교재는 읽기, 쓰기, 듣기, 말하기가 균형 있게 구성되어 있다.
셋째는 한 학급에 학생들이 30~40명 정도 되는데 영어시간은 분반하여 15~20명 정도로 구성하여 학생들에게 수업시간 동안 발표의 기회를 가능한 한 많이 주고 교사가 평가를 제대로 할 수 있도록 소인수 집단으로 학급을 재구성하여 운영하고 있다는 점이다.
4년간의 임기를 마치고 귀국하여 서울의 한 지역교육청에서 영어교육업무를 담당하면서 학교현장을 방문할 때마다 학교마다 배치된 원어민영어보조교사, 화려한 영어전용교실, 영어선생님들의 유창한 영어 실력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하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영어수업을 참관하면서 느꼈던 것은 거의 모든 수업이 선생님의 일방적 수업방식이었고, 학생들은 어쩌다 선생님이 질문하면 단답형으로 답하는 정도였다. 교사 위주의 수업방식과 아이들의 소극적 수업 참여가 한국적 영어교육의 가장 큰 장애요소이며, 이러한 수업 방법과 교실 문화가 바뀌지 않는 한 아무리 좋은 정책이 나오고 많은 예산을 투자해도 효과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종종 원어민 영어교사들에게 이러한 질문을 하곤 한다. 당신이 한국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면서 다른 나라에서 가르칠 때 보다 영어교육에 어느 정도 효과가 있는 것 같으냐고, 그리고 학생들이 몇 퍼센트나 수업에 참여하느냐고 질문하면 그들은 ‘한반에 30∼40명이 수업하는데 학생들이 얼마나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겠는가, 그리고 한국 학생들은 수줍음이 많고 소극적이어서 수업 참여율이 아주 낮아 효과가 크지 않다.’고 대답한다.
그리고 한국인 영어교사들에게 효과적인 영어교육을 저해하는 가장 큰 요인은 무엇인가라고 물어보면 ‘공문처리와 잡무가 너무 많아 수업과 공문처리 중 어느 것이 주요 업무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대답한다. 그래서 나는 한국에서의 영어교육이 바뀌려면, 그리고 내실 있는 공교육을 통해 사교육을 줄이려면 교사 위주의 교육정책이 아닌 교실 현장에 맞는 교수방법의 개발과 현장 시스템의 변화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영어 교과서의 체제를 획기적으로 바꾸고, 학생 스스로가 수업을 학생 중심·학생 주도적으로 이끌어갈 수 있도록 교사가 수업을 구안하여 적용하며, 교사는 적절한 과제 부여와 공정한 평가로 충실한 조언자 및 가이드로서의 최소한의 역할만을 수행하는 교수방법으로의 변화가 없이는 영어교육의 변화를 기대하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최첨단의 화려한 영어전용교실 같은 하드웨어 구축도 중요하지만, 15명 내외의 영어 수준별 이동수업이 효과적으로 이루어 질 수 있는 영어 교과교실의 확보와 학생들이 집에서 스스로 공부해서 학교에서 발표할 수 있도록 교사 위주가 아닌 학습자 중심의 교과서의 개발, 영어를 가르치기보다는 ‘영어로’ 가르치는 교실 문화의 변화 등에 정책의 우선을 두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영어는 도구 교과이다. 도구는 실생활에서 ‘쓸모’가 있어야 한다. 입 안에 갇혀 맴도는 영어는 쓸모가 없다. 영어를 입 밖으로 나오게 해 ‘쓸모’ 있게 만드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한 것일 수가 있다. 문제가 현장에 있다면 해결책도 현장에서 찾아야 한다. 현장과 동떨어진 해결책은 아무런 ‘쓸모’가 없다. 그렇지 않으면 ‘Press any key’라고 말했을 때 ‘any key’를 찾느라 우리 아이들이 컴퓨터 자판 위를 하염없이 헤맬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교과부 웹진 꿈나래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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