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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가 한명회와 압구정은 무슨 관련이 있을까요?

대한민국 교육부 2016. 2. 23. 19:23

권력가 한명회와 압구정은

무슨 관련이 있을까요?



■ 칠삭둥이로 태어나 권력을 움켜쥔 지략가, 한명회 

영화 ‘관상’ 속에서 지략가로 나오는 인물로, 조선전기 계유정난의 설계자로서, 성공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 한명회(출처: 에듀넷)


바로 한명회입니다. 한명회는 7달 만에 태어나, 어려서는 몸이 불편했는데 차츰 성장하면서 체구가 보통 사람보다 커지고 지모가 남달리 뛰어났다고 합니다. 젊었을 때는 절에서 글을 자주 읽고, 짧고 간결하면서 설득력있게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훌륭한 말솜씨를 지녔다고 합니다. 단종을 왕위에서 밀어내고 수양대군이 왕이 되기까지 지략의 중심이 된 인물인 한명회는 영의정까지 지내고, 두 딸을 예종과 성종의 후궁으로 들이면서 왕의 장인으로서 권력을 지녔으나, 그만큼 여러 시련을 겪기도 하였습니다.



■ 압구정 

역사 속에서 다양한 평가를 받고 있는 한명회와 의미가 깊은 지역이 있습니다. 이 곳은 겸재 정선의 ‘경교명승첩’에도 등장합니다.


▲ 겸재 '경교명승첩'(출처: 에듀넷)


‘경교명승첩’은 겸재 정선이 한강을 유람하면서 잠실 쪽에서 바라보며 그린 그림입니다. 최고의 권력을 자랑하던 한명회는 남은 여생을 유유자적하기 위해 한강 가에 정자를 지었습니다. 바로 이 정자가 있는 곳이 오늘날의 압구정입니다. 압구정은 한명회가 세운 정자의 이름이기도 하며, 압구정은 한명회의 호이기도 합니다. 겸재의 그림에서 언덕 위에 보이는 정자가 바로 압구정입니다. ‘압구’란 ‘갈매기와 친해 가깝다’라는 의미로 욕심 없이 자연과 어울리며 지낸다는 뜻으로, 세조를 왕으로 추대하고, 영의정을 지낸 한명회가 노년에 갈매기와 벗하고 싶다고 지은 정자가 압구정인 것입니다.


▲ 압구정터(출처: 에듀넷)


압구정은 워낙 경치가 좋아서 그 소문이 중국에까지 날 정도였다고 합니다. 중국의 사신이 오면 압구정을 관람할 정도로 워낙 풍경이 좋았다고 합니다. 오늘날 이 정자의 흔적은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72동과 74동 사이에 표지석으로만 남아 있습니다. 압구정의 주인이던 한명회가 연산군에 의해 부관참시 당한 후,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조선 말에 박영효의 소유가 되었는데, 박영효 역시 갑신정변 주모자 들 중 한 명이라는 이유로 그가 소유했던 정자가 파괴되면서 표지석만 남게 된 것입니다. 한명회 이후, 박영효 등 그 당시 정치의 중심 세력이었던 인물들이 압구정을 선택하였던 이유는 그 곳의 위치가 정치의 중심지와 가까우면서도 풍광이 우수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 표지석만 남게 된 압구정(출처: 에듀넷)


이와 같은 역사 속 의미를 지닌 압구정은 ‘경교명승첩’ 등 과거 압구정이 나타난 그림 등을 바탕으로 압구정 정자를 복원하기로 하였다고 합니다. 역사 속의 이야기를 눈으로 직접 볼 수 있게 될 수 있는 날이 곧 다가오게 된다는 것이겠지요? 이 밖에도 역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우리 고장 주변의 지명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을까요?



■ 광화문, 비운의 역사 

이번에는 광화문의 과거와 현재 모습에 대해 알아볼 거예요.


광화문은 무엇일까요? 광화문은 1395년 조선왕조에서 최초로 지어진 궁궐인 경복궁의 남쪽에 있는 정문입니다. 이러한 광화문이 현재의 모습을 찾는 데는 여러 가지 아픔이 있었습니다.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하나하나 알아봅시다.


광화문은 1592년 임진왜란 때 일어난 화재로 경복궁과 함께 무너졌다가 1867년 고종 황제 때 건축되었다고 합니다. 광화문은 궁궐을 출입하는 조정 관료들이 드나드는 곳이며, 정문을 나오면 중앙 행정 관청인 육조가 있어 행정 관리들의 오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궁궐의 정문 역할을 해오던 광화문은 일본이 조선총독부를 만들면서 조선총독부를 가린다는 이유로 1927년 건춘문 북쪽으로 옮겨지는 수모를 당하게 됩니다. 이것마저도 1950년 한국전쟁으로 인해 돌로 된 아랫부분만 남게 되었습니다. 1968년 광화문은 복원되었지만 완전하지는 않았습니다. 본래 궁궐의 중심축에 맞추어져 일직선상에 있었던 자리에서 벗어났던 것이죠. 그 이유는 조선총독부 청사의 축에 맞추어 배치했기 때문이었습니다.


▲ 광화문의 위치 변화(출처: 에듀넷)


비운의 역사를 지닌 광화문은 2006년 12월부터 시작한 복원 및 이전 공사로 2010년 8월15일, 드디어 예전의 모습을 되찾았습니다. 이렇듯 중심지의 모습은 시대에 따라 달라진답니다.


▲ 1896년(조선시대) 광화문의 모습(출처: k-heritage.tv/)


▲ 1927년 건춘문 북쪽으로 옮겨진 광화문(출처: http://newdoll.tistory.com/39)


▲ 1968년 복원된 광화문(뒤에 보이는 건물이 중앙청이라 불리던 옛 조선총독부)(출처: Namu Wiki)


▲ 2010년 복원된 광화문(조선총독부 건물을 철거하고 다시 궁궐의 대문이 됨)(출처: 에듀넷)



■ 잠실의 유래 

“1988년 서울올림픽경기가 열렸던 서울종합운동장이 있는 곳, 잠실” 이 지역의 이름에는 어떠한 의미가 있을까요?


잠실(蠶室)은 한자 그대로 양잠, 즉 누에를 기르던 곳입니다. 현재 이 지역은 고층 아파트와 건물들이 밀집해 있는 지역이지만 조선시대에는 뽕나무가 울창하여 국가에서 설치한 잠실이 있던 지역입니다. 조선 시대에는 누에를 귀하게 여겨서 왕실에서 직접 잠실을 관장했습니다. 또 서울에 잠원동이라는 지역이 있는데 이 지역도 조선시대에 뽕나무를 많이 심어 잠실에 뽕잎을 공급하던 지역이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이 지역들의 지명은 양잠과 관련이 있는 역사적 유래를 따라 붙이게 된 것이지요. 조선시대에는 양잠을 농가 부업으로 전국에 확산시키는 차원에서 각 도에 잠실을 설치하였으며, 양잠 기술을 배우도록 하였다고 합니다. 서울 잠실 말고 다른 도에 잠실은 어디였는지 스스로 찾아보도록 합시다.



[자료출처: 에듀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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