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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은 왜 일어나는가

대한민국 교육부 2017. 7. 5. 21:34



불행은 왜 일어나는가



  만삭이 가까운 아내는 어린 아들과 함께 야근에서 돌아오는 남편을 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남편은 공무원으로 요즘 영화 홍보 때문에 야근이 잦았습니다. 밤 9시가 조금 못 돼 남편은 버스에서 내렸고 함께 집으로 향했습니다. 얼마 가지 않아 병 깨지는 소리가 들렸고 곧 이어 아주 둔탁한 소리가 바로 앞에서 났습니다. 아내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너무나 순식간에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남편이 보도에 쓰러져 있었고 그 옆에는 어떤 청년이 피를 흘리며 누워있었습니다. 병원에 가서야 공무원 시험공부에 지친 청년이 20층 높이의 아파트에서 투신을 하였고 지나가던 남편을 덮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사망하였습니다. 왜 남편은 죽었을까요? 한 발짝만 빨리 가거나 늦게 갔었다면 살지 않았을까요? 왜 하필 그 시간에 그 곳을 지났을까요? 왜 그 시간에 투신했을까요?

 

철학에서 바라 본 운의 의미
  우리는 이런 질문에 답하기 어렵습니다. 물론 과학적으로는 어떻게 이 사건이 일어났는가를 설명할 수 있을 겁니다. 투신자의 무게와 속도 그리고 충격의 크기 등으로 어느 정도의 물리적 힘이 목숨을 빼앗을 수 있다는 것을 제시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런 물리적 설명은 충분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사건이 일어났는가를 설명해줄 수는 있으나 왜 사건이 일어났는가를 알려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왜 하필 그 시간인가? 왜 하필 내 남편인가? 이런 질문에 과학은 답하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른 곳에서 답을 찾아야 합니다. 보통은 불운이라고 말합니다. 아니면 정해진 운명이라고 받아들입니다. 종교를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신의 뜻이라고 받아들이겠지요.


  철학도 이런 질문에 답을 시도합니다. 이 사건을 불운이라 한다면 철학은 운에 대해 운이란 통제 밖의 일이라는 입장을 취하기도 합니다. 물론 운에 대해 다른 의견도 있습니다만 여기에서는 통제를 중심으로 하겠습니다. 주사위 놀이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주사위를 던지면 어떤 숫자가 나올지는 운이라고 보통 말하는데 이때 운이라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전적으로 우리의 통제 밖에 있다는 뜻일까요? 과학자들은 주사위의 초기 각도와 속도 등을 알 수 있다면 결과를 예측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런 프로그램이 이미 나와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따라서 주사위 던지기는 우리의 통제 밖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앞의 사례는 전적으로 통제 밖에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투신자와 밑의 통행자 사이에 아무런 인과관계나 상관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투신자의 인과계열과 통행자의 인과계열은 두 사람이 충돌하기 전까지는 독립적이었습니다. 그런데 두 인과계열이 우연히 만난 것이지요. 이런 경우 운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천운과 불운에 대한 철학적 고찰
  하지만 그렇게 간단히 문제가 해결될 리가 없습니다. 이런 경우는 어떻습니까. 비행기를 탔는데 테러를 당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승객이 사망하였으나 살아남은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운이 좋은 것인가요? 아니면 나쁜 것인가요? 하필이면 테러가 발생한 비행기에 타서 고생을 했으니 불운이라고 해야겠지만 그 와중에 살아남았으니 행운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요. 한 사건인데도 불구하고 불운인 동시에 행운이 됩니다. 이런 경우를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이 경우를 보면 운이란 사건 자체의 속성이라기보다 사건에 관계가 있는 사람들과 관련이 있어 보입니다. 아마존 정글에서 커다란 나무 열매가 떨어져 밑에 지나가던 동물이 맞아 죽는 일이 지금도 일어날지 모릅니다. 두 사건은 독립적인 인과계열이기는 하지만 우리가 이런 경우를 두고 운을 이야기하지는 않을 겁니다. 우리와 무관하기 때문이죠.


  또한 운이란 거시적인 관점 즉 전체 맥락에 달려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대학 입시에 실패한 것이 오히려 분발의 계기가 되어 후에 성공의 밑거름이 되었다면 대학 입시 실패는 불운이라고 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성공을 했으나 오래 지속하지 못하고 파산으로 끝을 맺었다면 대학 입시 실패는 어떻게 평가될까요? 철학은 어렵습니다. 그리고 명쾌한 답을 제시하지도 못합니다. 그래도 혼란스럽고 눈앞의 것에만 매달려 있는 우리들에게 도움을 주려 합니다.

 




글_ 탁석산 철학자

출처_ 행복한교육 2017.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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