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 공식 블로그

여름밤 은하수 여행 본문

교육정보

여름밤 은하수 여행

대한민국 교육부 2017. 8. 14. 17:19


여름밤 은하수 여행


 

적외선, 근적외선, X선으로 각각 촬영한 은하수 사진(아래). 그리고 세 사진을 합성한 사진(위). (NASA)

여름 밤하늘에 뿌연 강처럼 흐르는 은하수를 본 적이 있는가. 은하수를 보고 어떤 단상이 떠올랐는가. 어떤 아메리카 원주민 부족은 성스러운 동물들이 하늘을 지나는 통로라고 생각했으며, 시베리아에서는 하늘을 뒤덮는 천막의 솔기라고 생각했다. 동부 아프리카의 어느 부족은 모닥불에서 피어나는 연기를 떠올렸는가 하면, 남아프리카의 한 부족은 거대한 짐승의 등뼈라고 상상했다.

은하수는 영어로 ‘the Milky Way’라고 하는데, ‘젖 길’이란 뜻이다. 그리스로마 신화에 따르면 최고의 신 제우스는 인간여성 알크메네와 바람을 피운 뒤 낳은 아기 헤라클레스에게 영원한 생명을 선사하기 위해 본처 헤라의 젖을 먹이려고 했다. 잠자는 헤라의 젖을 물리자 헤라클레스는 힘차게 젖을 빨았는데, 어찌나 세게 빨았는지 헤라는 비명을 지르며 아기를 떼어냈다. 이때 뿜어져 나온 젖이 멀리 퍼져 밤하늘에서 빛을 내는 띠가 됐다고 한다. 이 내용은 르네상스시대 거장인 야코포 틴토레토가 그린 ‘은하수의 기원’이란 제목의 명화에도 담겨 있다.

여름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정말 헤라의 젖이 뿌려진 것처럼 뿌옇게 빛나는 은하수를 만날 수 있다. 백조와 독수리가 함께 날고, 궁수가 전갈을 향해 활을 겨누고 있는 빛의 강으로 여행을 떠나보자.


은하수 속 성운에서 유기분자도 발견


 

 

(우리은하 이미지. 출처: NASA)

신비로운 은하수의 정체는 바로 우리은하다. 정확히 말하면 지구에서 바라본 우리은하의 옆모습이다. 특히 여름에는 은하 중심이 있는 궁수자리 방향으로 우리은하를 볼 수 있어 하늘에 펼쳐진 은하수가 가장 화려하다.

사실 밤하늘에서 맨눈으로 볼 수 있는 모든 별은 우리은하에 속해 있다. 지구는 우리은하의 원반에 파묻혀 있는데, 두께 2000광년에 지름 10만 광년인 이 원반에는 적어도 2000억 개의 별이 모여 있다. 은하수가 흰 파도거품처럼 보이는 이유는 원반의 수많은 별이 뿜어내는 빛이 합쳐져 보이기 때문이다. 또 우리은하의 원반은 지구가 태양을 공전하는 궤도면과 같은 방향에 놓여 있지 않아, 은하수는 하늘을 대각선으로 가로질러 나타난다.

은하수를 자세히 보면 가운데로 시커먼 띠가 지나가며 빛의 길을 두 갈래로 나누고 있다. 성간물질이 별빛을 가려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성간물질은 기체와 먼지로 이뤄져 있으며, 99%로 대부분을 차지하는 기체보다 1%에 불과한 먼지가 별빛을 더 효율적으로 흡수한다. 두꺼운 성간먼지가 은하수에 기다란 검은 틈새를 만든 셈이다.

성간물질은 주로 구름의 형태로 뭉쳐져 덩어리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성운이라 불린다. 별빛을 가로막는 암흑성운은 대부분 수소분자가 우세한 분자운(분자구름)이다. 최근 이런 분자운에서 유기분자가 발견되고 있다. 특히 생명체의 아미노산을 구성하는 기본 유기분자인 시아노아세틸렌(HC3N), 아세트알데히드(CH3CHO)가 관측됐다. 유기분자는 수소분자운의 안쪽에 있는 먼지 표면에서 많이 만들어진다고 한다. 바깥에서 자외선이 들어오지 못하는 지역이다. 이곳은 주변에서 별이 탄생하는 곳이기도 하다. 별이 만들어지면 빛이 나와 주변을 데우는데, 이때 차가운 먼지에 얼음 형태로 붙어 있던 유기분자가 증발해 기체 상태로 관측되는 것이다.

원시별 주변에는 별을 둘러싸고 있는 원반이 발견되고 있다. 이 원반에서 먼지들이 뭉쳐져 행성을 만들고 행성에서 생명체도 탄생할 수 있다. 2008년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스피처 우주망원경이 적외선으로 원시별을 관측한 결과, 원시별 주변 원반에 생명체와 관련 있는 다양한 유기분자와 물 분자가 존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아직까지 별이 탄생하는 과정에서 지구와 같은 행성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생명체가 어떻게 나타나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별 탄생과 생명체의 존재는 어떤 연결고리를 갖고 있음에 틀림없다.

은하 중심에 도사리고 있는 거대블랙홀


(우리은하 중심을 돌고 있는 별들의 궤적, Keck/UCLA)

여름 밤하늘에 펼쳐진 은하수를 찬찬히 따라가다 보면 궁수자리 방향이 가장 밝고 다채롭다. 우리은하의 중심이 있는 이곳에는 중앙 팽대부(bulge)의 많은 별들이 원반에 있는 별들에 가세해 빛나고 있다. 하지만 이곳 역시 암흑성운의 성간먼지가 군데군데에서 다양한 모양으로 별빛을 막고 있다. 지구에서 2만 6000광년이나 떨어져 있는 우리은하 중심은 베일에 싸여 있는 미지의 세계다. 기체, 먼지, 별과 그 시체로 가득한 복잡한 곳이라 정확한 속사정을 파악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은하 중심에 진짜 블랙홀이 있는지는 많은 천문학자들이 제기해온 의문이었다.

1970년대 우리은하 중심부에서 강한 전파원(전파가 관측되는 원천)이 발견돼 이 전파원에는 ‘궁수자리 A*’라는 이름이 붙었다. 궁수자리 A*는 광학망원경을 들이대도 보이지 않았고, 근적외선으로 관측해도 이 전파원에 해당하는 천체는 눈에 띄지 않았다. 2000년 찬드라X선망원경을 궁수자리 A*로 향하게 한 결과, 이곳에서 X선을 처음 포착했고, 이듬해 궁수자리 A*가 갑자기 밝아지는 현상을 잡아냈다. X선은 블랙홀로 물질이 빨려 들어갈 때 내놓는 마지막 절규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이 사실은 블랙홀의 간접 증거인 셈이다.


 

 

(칠레 유럽남반구천문대(ESO)의 거대망원경(VLT), 출처: ESO)

미국 UCLA와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연구팀이 궁수자리 A*의 정체를 제대로 밝히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2002년 UCLA 연구팀은 하와이 케크망원경으로 궁수자리 A*로 빨려 들어가는 가스와 먼지 흐름을 포착했고, 같은 해 막스플랑크연구소 연구팀은 칠레 유럽남반구천문대(ESO)의 거대망원경(VLT)을 이용해 우리은하 중심을 초속 5000km로 15.2년에 한 번씩 돌고 있는 별 S2를 발견했다. 그동안 궁수자리 A* 주위에서는 20~30개의 별이 관측됐고 이 중 몇 개 정도의 궤도가 정확히 결정됐다. 이를 통해 우리은하 중심부에 태양의 400만 배에 달하는 질량이 존재하는 것으로 계산됐다. 작은 공간 안에 이렇게 상당한 질량이 밀집돼 있다면 궁수자리 A*는 거대블랙홀일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사실 우리은하뿐 아니라 외부은하의 중심부에도 거의 대부분 거대블랙홀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천문학자들은 은하 중심부를 돌고 있는 별의 운동을 관측해 중심에 있는 거대블랙홀의 질량을 쟀다. 지금까지 수십 개의 거대블랙홀 질량을 측정했는데, 태양 질량의 100만~50억 배에 달한다. 우리은하의 거대 블랙홀은 작은 편에 속한다.

그리 크지 않은 블랙홀을 가진 우리은하는 방대한 우주에서 보면 그저 평범한 존재인지도 모른다. 다만 제가 태어난 은하수의 정체는 물론 우주의 신비를 밝히려 안간힘을 쓰는 인간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다른 점이 아닐까.

필자 소개 / 이충환

이충환은 서울대 대학원에서 천문학 석사학위(우주론 전공)를 받았고 고려대 과학기술학 협동과정에서 과학언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천문학 잡지 《별과 우주》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했고, 과학종합미디어 <동아사이언스>에서 과학전문기자로 활동하며 일간 《동아일보》와 월간 《과학동아》에 흥미진진한 과학 기사를 썼다. <동아사이언스>에서 《과학동아》, 《수학동아》 편집장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콘텐츠사업팀 편집위원으로 있다. 옮긴 책으로 『상대적으로 쉬운 상대성 이론』(양문, 2002), 『빛의 제국』(양문, 2006), 『보이드』(MID, 2014) 등이 있고, 지은 책으로는 『블랙홀』(살림, 2003), 『반짝반짝, 별 관찰 일지』(웅진씽크빅, 2012),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웅진 씽크빅, 2012) 등이 있다.

글_ 이충환

출처_ 사이언스올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