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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에 담긴 역사의 기록, 전쟁 본문
명화에 담긴 역사의 기록, 전쟁
우첼로의 <산 로마노 전투>
세계 곳곳이 테러 공포에 휩싸이고 있다. 테러는 집단이나 개인의 목적을 위해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는 행위로, 과거에는 군인이나 경찰 등 특정한 계층의 사람들을 향해 테러가 일어났다면 요즘은 불특정 다수, 즉 평범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자행되고 있다. 평범한 사람 누구나 테러의 희생자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더 두려움이 느껴지는 것이다.
테러의 발생은 전쟁의 역사와 함께 한다.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영토를 넓히기 위해 전쟁을 했다. 사람들이 전쟁을 하는 이유는 생존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영토를 확보해야만 식량을 확보할 수 있어서다. 따라서 전쟁은 인류의 오래된 활동인 동시에, 역사 속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나타내는 상징적인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글이나 그림으로 전쟁을 기록했는데, 그 이유는 국가나 통치자의 강한 힘을 과시하고 싶어서다.
미술 역사상 실제의 전쟁을 다룬 최초의 작품이 우첼로의 <산 로마노 전투>다.
1432년 6월 1일 발다르노의 몬토폴리에 인근 산 로마노에서, 토스카나 지역에 가장 영향력 있는 두 도시 피렌체와 시에나 사이에 전투가 벌어졌다. 피렌체는 이탈리아 여러 도시 국가들 사이에 주도권을 차지하기 위해, 시에나는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토스카나를 지지하기 위해 전쟁을 벌인 것이다.
매복 중이었던 시에나군은 피렌체를 기습 공격한다. 병력이 우세한 시에나 군의 기습 공격에 사령관을 임명된 지 얼마 되지 않은 피렌체의 용병 장군 니콜로 다 톨렌티노는 20여명의 기병을 데리고 산 로마노 탑 앞에서 적진을 향해 돌진한다. 당시 보수에 따라 도시 국가를 옮겨 가며 전투를 했던 용병에 의해 전투가 수행되었다.
톨렌티노는 진격해 오는 시에나 대군들 앞에서 용맹스럽게 칼과 창을 들고 맞서 싸웠다. 피렌체의 지원군이 도착할 때까지 톨렌티노 장군은 무려 여덟 시간 동안 수적으로 열세한 군사를 가지고 막아내는 데 성공한다.
피렌체의 위대한 메디치 가문 코시모는 절친한 친구 톨렌티노가 승리로 이끈 산 로마노 전투를 기록하고 싶었다. 코시모는 우첼로에게 작품을 의뢰하면서 전투 장면을 정확하게 그리면서 군마는 화려하게 장식하라고 주문을 한다.
우첼로는 코시모의 의뢰대로 <니콜로 다 톨렌티노가 피렌체 군대를 이끌다>, <미켈레토 다 코티뇰라가 구원병을 이끌다>, <베르나디노 델라 치아르다가 창에 찔리다>로 전쟁의 순간들을 3부작으로 작품을 제작한다.
우첼로는 이 작품을 통해 15세기 그림에 ‘전쟁’이라는 새로운 주제를 도입했다.
<니콜로 다 토렌티노가 피렌체 군대를 이끌다>-1455~1460년, 목판에 템페라, 182*320
ⓒ 런던 내셔널 갤러리 소장
<산 로마노의 전투> 중 첫 번째 작품 <니콜로 다 톨렌티노가 피렌체 군대를 이끌다>에서 병사들은 중세의 기사도 복장을 하고 있다. 화면 왼쪽 백마를 타고 붉은 색의 모자를 쓴 남자가 피렌체 장군 니콜로 다 톨렌티노다. 20여 명의 군사 앞에 서 있는 톨렌티노의 머리 위에 메디치가의 코시모를 뜻하는 ‘솔로몬의 매듭’이 그려진 군기가 휘날리고 있다.
실제의 전투에서는 톨렌티노는 이 작품에서 묘사된 모자를 쓰지는 않았지만 우첼로는 승리의 기쁨을 표현하기 위해 주인공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백마 뒤로는 부러진 창과 투구가 놓여 있고 병사는 죽어서 쓰러져 있다. 죽은 병사를 묘사했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굉장히 충격적인 표현법이었다.
장군 뒤로 왼쪽의 피렌체 기사들은 창으로 무장을 하고 있고 멀리 보이는 기사들은 창과 나팔, 군기를 들고 산에 오르고 있다. 화면 오른쪽에 있는 기사는 적군 두 명에 의해 창을 자유롭게 쓰지 못하자 곤봉으로 싸우고 있다. 기사가 타고 있는 말은 싸움에 피해 날뛰고 있다.
말은 싸움을 하고 있는 이미지보다는 회전목마를 연상시켜 사실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우첼로는 말에 매료되어 말이 세워져 있는 곳을 찾아다녔다. 당시 말이 유일한 교통수단이었기 때문에 말을 소유할 수 있는 사람은 부유층 밖에 없었다. 우첼로는 가난한 화가의 신분으로는 말을 소유할 수 없지만 말의 다양한 자세를 연구해 그림에 적용했다.
이 작품에서 화려한 투구를 쓰고 있어 기사들의 얼굴이 보이지 않지만, 톨렌티노 장군 뒤에 있는 나이 어린 기수들과 나팔수의 얼굴이 투구를 쓰지 않아 보인다.
우첼로는 이 작품을 제작하면서 사실적으로 보이기 위해 등장인물들의 동작과 원근법에 가장 많은 신경을 썼다. 그는 전경과 후경 사이에 산울타리를 그려 넣어 전투와 배경과의 거리감을 주었다.
<미켈레토가 다 코티뇰라가 구원병을 이끌다>-1455~1460년, 목판에 템페라, 182*320
ⓒ 파리 루브르 박물관 소장
두 번째 <미켈레토가 다 코티뇰라가 구원병을 이끌다> 작품은 피렌체 지원군인 미켈레토가 군사들을 이끌고 전장에 도착하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군사들이 창과 깃발, 나팔을 들고 있는 모습은 공격준비를 마치고 돌진하기 직전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이 작품에서 중앙 검은 말에 타고 있는 인물이 대장으로 군사들에게 공격 명령을 내리고 있고 화려한 복장을 입고 창 대신 지휘봉을 들고 있는 백마를 탄 인물이 코티뇰라다. 그는 막 전장에 도착했다는 것을 나타낸다. 그가 쓰고 있는 터번은 피렌체의 특산품이자 시민들의 자부심이었다.
<베르나디노 델라 치아르다가 창에 찔리다>>-1455~1460년, 목판에 템페라, 182*320
ⓒ 우피치 미술관 소장
세 번째 <베르나디노 델라 치아르다가 창에 찔리다> 작품에서 땅바닥에 떨어져 있는 산산조각 난 긴 창들과 쓰러진 말들을 통해 기마병과 지휘관의 결투를 나타낸다.
파올로 우첼로<1397~1475>는 르네상스 시대, 원근법의 선구자다. 실험을 좋아했던 그는 의뢰한 그림을 그리기보다는 원근법을 표현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겼으며, 원근법을 그림에 적용하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했다.
우첼로는 정확한 원근법 안에 인물을 기하학적으로 표현하며 화가의 경력을 인정받는다. 그의 이러한 방식은 코시모 데 메디치의 눈에 띠여 산마리노 전쟁 그림을 주문받기에 이른다.
말년에 우첼로는 다른 화가들의 방식에 따르지 않고 원근법에 매달려 있어 비난을 받았지만, 그의 원근법은 회화의 새로운 길을 열어 주었으며 레오나르도 다빈치에게 영향을 주었다.
글_ 박희숙 미술평론가
출처_ 사이언스올 사이언스타임즈
저작권자_ 2017.08.31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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