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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부르주아의 사치품, 마차
드가의 <경마장의 마차>
지금은 자동차가 생활화되어 언제 어디서든지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지만 자동차가 발명되지 않았을 때 최고의 이동수단은 마차였다. 마차는 말이 가축으로 키워지면서 이동할 수 있게 말에 수레를 달아 만들어졌으며 인간이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게 만든 발명품이다.
오리엔트, 이집트 등 각지에서 발견되는 유물들을 보면 1마리나 여러 마리의 말들이 끄는 전차가 그려져 있는 부조를 볼 수 있다. 이집트나 오리엔트뿐만 아니라 중국에서도 은나라, 주나라에서도 4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가 있었다. 당시의 왕릉에서 마가가 차장, 사수, 마부를 태우고 말이 멍에에 매인 채 매장되어 있는 것이 발굴되었다.
고대 오리엔트나 중국에서 사람들의 이동 수단으로만 쓰였던 마차는 BC 8세기경부터 기마병이 생기면서 군사용으로 발전하게 된다. 군사용으로 쓰이던 마차는 승용, 화물 운반용으로 발전하면서 바퀴도 두 개에서 네 바퀴가 되었다.
군사나 화물의 운반용으로 쓰이던 마차는 15~16세기부터 부르주아들의 사치품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이것이 코치라고 하는 4륜 마차의 기원이 되었다. 형태도 무개마차에서 유개마차로 바뀌었으며 19세기 초에는 여행용, 유람용으로 인기를 끌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구한말에 프랑스에서 마차를 사들여 고종 황제가 애용하였다. 고종 황제가 타던 마차는 지금 창덕궁 어차고에 전시되고 있다.
19세기 사치품이었던 4륜 마차를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 드가의 <경마장의 마차>다.
파란 하늘에는 흰색의 구름이 흐트러져 있고 나무가 거의 보이지 않는 초원에서 기수가 말을 빠르게 타고 있다. 말을 탄 사람들이 모여서 기수를 바라보고 있다.
화면 앞에 두 마리의 말이 끄는 4륜 마차 안에 앉아 있는 여인은 무릎에서 잠든 아이를 바라보고 있다. 그 옆에 앉아 여인은 노란색 양산을 펴서 그들 머리 위에 씌워주고 있다. 머리에 모자를 쓴 남자는 손에 말에 고삐를 쥔 채 아이를 바라보고 있고, 남자 옆에 있는 강아지는 멀리 초원을 향해 앉아 있다.
말의 고삐를 쥔 남자는 폴 발팽송으로 드가의 친구다. 잠든 아이를 안고 있는 여인은 발팽송의 아내이며, 파라솔을 들고 있는 여인은 유모다. 잠든 아이는 유모의 젖을 먹고 잠들었다는 것을 나타내며, 당시 부르주아들은 유모를 고용해 아이에게 젖을 먹였다.
마차와 유모 그리고 노란색 양산은 발팽송이 부르주아라는 것을 나타낸다. 또한 실크햇 모자와 정장은 발팽송이 평소 외출할 때도 차려입었다는 것을 의미하며, 사교계에서 중요한 인물이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경마가 벌이지고 있는 초원은 노르망디의 메닐 위베르의 사유지인 인근 아르장탕 경마장을 나타낸다. 당시 경마는 나폴레옹 3세가 영국에서 도입한 것으로, 왕의 주도 하에 블로뉴 숲 안에 대규모 관중석을 갖춘 경마장이 들어서게 되었다. 경마 경기 규칙을 정할 정도로 경마에 빠져들었던 황제 때문에 부르주아는 물론 파리의 사람들에게 경마는 주요 구경거리였다.
발팽송이 경마를 보지 않고 아이를 바라보고 있는 것은 경마에 관심이 없다는 것을 나타내지만, 그가 경마장에 온 것은 당시 경마 유행에 동참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암시한다.
마차 등받이에 앉아 있는 강아지가 경마를 바라보고 있는 것을 경마장을 찾은 가족들 중 강아지가 유일하게 경마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드가는 강아지를 통해 당시 경마 유행을 비판하고자 했다.
에드가 드가(1834~1917)의 이 작품은 경마하고 있는 동적인 장면과 마차에 타고 있는 가족의 정적인 모습이 대조를 이루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마차의 앞 부분을 잘라 원경과 근경의 대조를 더욱더 강조하고 있다. 그가 말과 마차의 바퀴를 잘린 것처럼 처리한 것은 우연하게 본 마차에 탄 가족사진에서 영감을 얻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드가는 당시 최신 기술이었던 사진을 그림에 접목시켰다.
드가는 화면의 구도를 치밀하게 계산해서 그렸는데, 아내가 들고 있는 양산의 끝은 화면의 중앙을 가리키고 말의 귀는 세로 측의 반을 가리킨다. 그는 먼 곳과 가까운 곳의 움직임과 정적인 것, 빈공간과 번잡한 공간을 한 화면에 동시에 표현해 역동성을 강조한다.
마차는 말을 잘 다루기만 하면 성별에 상관없이 몰았으며, 이에 따라 독립적이고 적극적인 성격의 여인들은 마차를 몰고 야외에서 여가 생활을 즐겼다.
<마차 몰기>-1881년, 캔버스에 유채, 89*130. ⓒ 필라델피아 미술관 소장
여가 활동을 즐기기 위해 마차를 몰고 있는 여인을 그린 작품이 메리 커셋의 <마차 몰기>다.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여인이 장갑을 낀 손으로 말의 고삐를 잡고 있고 옆에 앉아 있는 소녀는 마차의 흙받이를 잡고 있다. 그녀들 뒤에는 남자가 뒤 돌아 앉아 있다.
말의 고삐를 손에 쥐고 있는 여인은 메리 커셋의 여동생 리디아로 마차는 커셋 가족이 당시 야외에서 여가 활동을 마음껏 즐기기 위해 미국에서 파리로 이주한 후 처음으로 구입한 것들 중에 하나다. 커셋은 미국 피츠버그의 부유한 은행가 집안이다.
배경의 숲은 파리 서쪽 끝 16구에 있는 광대한 공원이었던 불로뉴 숲을 나타낸다. 불로뉴 숲은 마차를 살 수 있는 파리 부르주아들이 여가 생활을 즐기는 곳으로 인기가 많았다.
리디아가 마차를 몰 수 있었던 것은 집안의 분위기 때문이었다. 커셋 집안은 지적 호기심이 풍부한 어머니의 지지 덕분에 딸들도 대담한 성격을 지녔으며 직업을 가질 수 있었다.
리디아가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것은 마차 몰기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분홍색 드레스를 입은 소녀는 드가의 조카 오딜 페브리로 소녀가 마차의 흙받이를 손으로 잡고 있는 모습은 여인이 마차를 모는 것에 대한 불안과 초초를 암시한다. 뒤에 앉아 있는 남자는 마부이며 장식적인 마차의 겉모양은 부르주아의 마차라는 것을 나타낸다.
메리 커셋<1844~1926>의 이 작품에서 고삐를 쥐고 있는 리디아의 모습은 소녀의 모습이 대비되면서 진취적인 여성을 나타낸다. 커셋이 마차 외관의 일부만 그린 것은 그녀는 인물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며, 배경의 풍경을 구체적으로 묘사하지 않는 것도 풍경에 관심이 없어서다. 하지만 배경은 인상주의 기법을 충실하게 따라 색채를 자연스럽게 혼합해서 사용했다.
글_ 박희숙 미술평론가
출처_ 사이언스올 사이언스타임즈
저작권자 2017.09.22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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