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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 국민서포터즈

“우주인 이소연 씨에게 밀려 아들들에겐 2순위에요”

대한민국 교육부 2009. 1. 6. 20:06

“우주인 이소연 씨에게 밀려 아들들에겐 2순위에요”
남극세종과학기지에서의 조리사 경력 세 번째인 이상훈 조리사를 만나다  

부산 해운대에서 일식집을 하던 평범한 요리사가 있었다. 어느 날 그는 요리를 하다가 왼손 세 번째 손가락에 작은 상처가 나서 병원에 들렀다. 진료를 받기 위해 기다리다가 의사의 프로필에 쓰여진 ‘남극 주치의’ 부분을 우연히 보게 됐다. 궁금증을 가진 요리사는 의사에게 남극에 대해 물었다. 5차 월동 연구대 주치의였던 의사는 남극에 대해 2시간동안 열변을 토했다. 그리고 요리사더러 꼭 남극에 가라고 권유했다. 막연한 동경이 생겼다. “저기서도 밥은 해 먹을 텐데”하는 생각에 세종과학기지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정말로 남극에 파견 될 조리사를 뽑는다는 내용의 공지가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었다. 요리사는 지원했다. 경쟁률은 8.9대 일이었다. 남극 조리사 경력자도 지원한 상태였다. 그러나 그는 당당히 합격했다. 이상훈(39) 조리사. 그는 2005년, 2007년 남극 월동 연구대에 조리사 자격으로 파견됐다. 그리고 오는 2009년 1월 1일, 다시 지구에서 가장 추운 주방을 향해 출발한다. 


- 처음에 지원했을 때 자신이 합격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봅니까?

“2005년 처음 지원할 당시 대장이었던 홍성민 박사님이 저를 잘 본 것 같습니다. 실력도 없는데(웃음). 아무래도 제 특유의 친화력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상훈 조리사의 친화력과 유머감각은 탁월하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남극 출국 시 필요한 비자를 받기 위해 미국 대사관을 들렀다. 비자 면접 시 외국인이 이 조리사에게 “삼겹살은 몇 톤 정도 가져갈 거냐”고 물었다. 자칭 영어가 짧은 이 조리사는 당황했다. 그러나 곧바로 “100톤”이라며 장난으로 받아쳤다. 그러자 외국인이 도리어 당황해 얼굴이 빨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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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번이나 도전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갔다 올 때마다 ‘내가 이렇게 했다면 요리를 더 잘 할 수 있었을 텐데’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계속 가다 보니 이번이 세 번째네요.”


- 가족의 반대는 없었습니까?

“2005년 당시 처음에 갈 때는 가족의 의견이 반반으로 갈렸습니다. 아내는 남극에 간다는 제 말을 농담으로 받아들였었는데 진담인 걸 알고 반대했죠. 그런데 제가 워낙 적극적으로 가고 싶은 의사를 표시하다 보니 아내가 이왕에 하는 것 나이 들기 전에 잘 해보라며 적극적으로 밀어주는 입장이 돼 버렸습니다.”


“아빠 직장은 남극이니까”라고 말할 수밖에 없을 때 애잔했죠.

이 조리사에겐 아들이 2명이 있다. 큰 아들은 초등학교 1학년이고 둘째 아들은 유치원생으로 6살이다. 지난여름 때까지는 아들들에겐 아빠가 최고였단다. “한번은 우리 아들이 학교에 지각했는데 선생님이 혼은 안내고 오히려 칭찬했다고 하더라고요. 왜 그랬냐고 물어보니 그 전날 선생님이 TV에서 저를 보고 아빠가 훌륭하신 분이라며 칭찬했다는 거예요.” 그러나 우리나라 최초의 우주인 이소연 씨 이후로 아들들에게 2위로 밀려났다는 설움(!)을 토로했다. 가족이 보고 싶을 때마다 짬을 내서 자주 인터넷으로 화상 전화를 한다. 메신저도 한다. 이럴 때 우리나라가아이티(IT)강국임을 새삼스레 느낀다고. 그러나 보고 싶은 마음을 달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이 조리사는 “처음 파견될 때는 아이들이 아기였는데 이제는 조금 커서 아빠 생각을 하는 것 같다”며 “아이들에게 ‘아빠 직장은 남극이니까’라며 떨어져 지내는 이유를 설명할 수밖에 없을 때 애잔하다”고 심정을 말했다.


- 혹시 남극에서 가족이 보고 싶어서 울어본 적이 있습니까?

“가끔씩 남극 세종 과학 기지에서 TV를 틀면 가족애를 다룬 다큐가 나와 종종 봤었는데 한국에 두고 온 가족 생각이 나 마음이 찡했습니다. 다른 대원들도 눈물을 찔끔 흘리죠. 거기선 일주일에 한 번 영화 상영을 하는데 그 때도 슬픈 영화를 보면 오징어와 맥주를 먹으면서 웁니다. 사람 감정은 다 똑같은 것 같습니다.”


- 귀국할 때 어떤 선물을 사 옵니까?

“장난감을 사 와 아들들한테 선물합니다. 남극에서 한국으로 올 때는 미국을 경유하는데 그때 장난감을 삽니다. 작년에 영화 트랜스포머가 유행했을 때 트랜스포머 장난감도 덩달아 인기를 끌었는데 제일 좋은 걸로 샀었습니다. 어차피 삼 일이 지나면 박살이 날 걸 알고 있지만(웃음). 내 자식이라 좋은걸 사주고 싶었습니다. 아내는 내가 알아서 사오니깐 별로 안 좋아 하더라고요(웃음). 그래서 돌아와서 함께 데이트하며 아내가 고른 것을 사줍니다.”


“저는 자기 관리가 철저한 편이라 남극에서 한 번도 아픈 적이 없었어요”

남극 세종과학기지도 한국과 같이 주 5일 8시간 근무제다. 요리사도 기본적인 스케쥴을 따르지만 가끔 빨간날에도 일을 한다. 그리고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다른 대원들보다 먼저 하루를 시작하고, 늦게 하루를 마감한다. 이 조리사는 보통 새벽 5시에 일어나 7시에 있을 아침식사를 준비한다. 공식적으로 일과를 마치는 시간은 오후 6시 저녁 식사 이후다. 그러나 다음날 요리에 필요한 재료를 이것저것 챙기다 보면 밤 9시를 훌쩍 넘긴다. 재료를 정리한 후엔 세종과학기지 내의 운동기구로 체력관리를 한다. 그리고 새벽 1시 쯤 잠자리에 든다. 이 조리사는 “보는 사람만 계속 보는 반복적 일상으로부터 비롯되는 스트레스를 이기기 위해 체력관리에 몰두했다”고 말했다. 다른 대원들 중에는 스트레스를 이기기 위해 고등학교 때 풀던 수학의 정석을 다시 푸는 사람도 있다. 영화나 명상도 좋은 스트레스 해소법이다.


- 혹시 아프신 적은 없으십니까?

“남극에는 감기 바이러스가 없어 감기 걸릴 일이 없습니다. 그리고 걱정 끼칠까봐 배가 아프다거나 하는 것쯤은 웬만해선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저는 세종과학기지에 두 번 갔는데 한 번도 아픈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한 번도 요리를 빼먹은 적이 없습니다. 자기 관리를 잘 하는 편입니다.”


“중장비 포크레인으로 유빙을 건져서 팥빙수를 해 먹기도 하죠.”

- 남극에 갈 때 음식물 목록은 직접 작성합니까?

“정해진 예산 내에서 제가 직접 모든 목록을 작성합니다. 그 목록을 토대로 물품을 구매하는데 양이 엄청납니다.”


- 삼겹살 한 품목도 거의 1 -2 톤가량 하는데 그 엄청난 양의 식재료를 어떻게 기지까지 운반합니까?

“신선한 과일과 야채는 칠레 공군기로 보급이 됩니다. 칠레군 보급은 자주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관리에 특별히 힘쓰게 됩니다. 그 외에 김치, 삼겹살 모든 식자재는 한국에서 옵니다. 보통 9월에 냉동 식자재나 모든 물품들을 한국에서 남극으로 보내 12월 쯤 받습니다.”


이 조리사는 덧붙여 강조했다. “사람들이 남극 하면 이글루에서 잠자고 이상한 음식을 먹는 상상을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요즘은 시설이 좋아져서 먹는 것도 잘 먹고 잠도 좋은데서 잡니다. 참고로 세종과학기지가 남극에서 제일 좋은 기지입니다. 비데도 있습니다. 외국 대원들이 비데에 놀라서 이게 뭐냐고 할 때도 있습니다(웃음).”


- 보통 식단은 어떻게 짭니까?

“한식, 중식, 양식 등 골고루 배치해 메뉴가 지겹게 느껴지지 않도록 합니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은 국, 밥, 김치는 절대 빠지면 안 되니까 매 끼니때마다 넣습니다. 토요일은 우동, 짜장면, 떡볶이, 스파게티 등 별식 위주로 식단을 짰습니다. 남극에서 제일 큰 행사인 동지에는 그 주변의 기지들이 모이는데 그때 음식을 나눠서 해먹습니다.”


- 외국인들은 우리나라 음식 중 어떤 음식을 가장 좋아하던가요? 

“제가 주는 건 다 잘 먹었습니다(웃음). 스시나 초밥을 잘 먹습니다. 스시용 생선살은 연구목적으로 쓰인 생선으로부터 얻습니다. 연구 목적으로 잡힌 생선은 내장 부분만 쓰이기 때문에 아깝거든요. 김치도 잘 먹는 외국 대원들도 있습니다. 저처럼 두세 번 남극에 온 대원은 고추장을 샘플로 가져가기도 합니다. 잡채도 잘 먹습니다. 맵지도 않고 달짝지근한게 입에 맞는가 봅니다. 불고기도 잘 먹는 것 같습니다.”


- 세종 기지 내의 야식 문화는 어떤가요?

“야식문화가 잘 돼 있습니다. 대원끼리 삼삼오오 모여서 삼겹살을 구워 먹으며 가족 이야기도 합니다. 고향 생각이 나서 마음이 추워질 때는 소주와 삼겹살이 최고죠.”


- 특별 메뉴도 가끔 준비하는 편입니까?

“한 달에 2번 정도 바비큐나 스테이크 등 특별메뉴를 준비합니다. 대원들이 거매일 같은 사람만 보니깐 겉옷을 잘 갈아입지 않습니다(웃음). 식상해서 아침 회의시간에 오늘 바베큐 파티 하니깐 똑같은 옷 입지 말고 다른 옷 입고 와라, 아니면 입장 안 된다, 이렇게 이야기 하고 특별 메뉴를 함께 먹지요.”


- 유빙으로 팥빙수도 먹는다고 들었습니다.

“중장비 포크레인으로 유빙을 건저서 팥빙수도 해먹습니다. 양주 마실 때 얼음용으로 띄우기도 하지요. 유빙이 음식 차갑게 할 때 냉면 먹을 때도 유용하게 쓰입니다.”

  

- 가장 기억에 남는 ‘밥’은 무엇입니까?

“작년에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방문했을 때 대접했던 음식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그때 그 때 제 전공인 일식과 초밥 종류 그리고 한식 몇 가지를 준비했습니다. 워낙 바쁘신 분이어서 그랬는지, 식사를 못해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거의 싹 다 비웠습니다. 사실 남극에서 보내는 모든 365일이 다 기억에 남습니다.”


- 그럴 수는 없지만, 잡아서 한번 요리해보고 싶은 동물이 있습니까?

“솔직히 개인적으로 제가 요리사다 보니 욕심나는 남극 동물이 한두 개가 아닙니다. 펭귄도 잡아서 요리해보고 싶고, 펭귄 알도 삶아 보고 싶습니다. 펭귄은 찜으로도 해 먹으면 괜찮을 거 같습니다.도둑갈매기, 물개, 고래 등 모두 잡아서 요리해 보고 싶습니다.”


인터뷰의 끝이 보일 즈음 이상훈 조리사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물었다. 그러자 이 조리사는 남극에 갈 때마다 배우는 것이 하나 있다고 답했다. 바로 자연 앞에서 겸손해 지는 법이다. 이 조리사는 배를 탈 때도 조심스럽게 몸을 움직인다. 예전에 아르헨티나 대원들이 무모하게 행동하다가 2명이 사망했단다. 그는 “안전이 최고”라고 강조했다. “남극은 자연 앞에서 설치면 절대로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끔 만드는 곳입니다.”

 

                                                            인터뷰, 사진 : 최지원(교육과학기술부 블로그 기자)

                                                                           글 : 홍지미(교육과학기술부 블로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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