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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교장, 잊지 못할 그날의 총성

대한민국 교육부 2013. 6. 20. 13:00

<백범일지>가 집필된 곳.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마지막 청사로 쓰였던 곳.

우리 민족의 자유를 꿈꾸던 분이 총성과 함께 사라지신 곳.


여기는 경교장입니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새문안로 29에 있는 경교장이 지난 3년여의 복원과정을 거쳐 64년 만에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우리나라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이 패망하고, 우리나라가 서구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대한민국으로 국제사회에 나서기까지의 역사에서 없어서는 안 될 인물, 백범 김구 선생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곳입니다. 오늘은 경교장이 들려주는 역사 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경교장의 역사

경교장의 원래 이름은 대나무 죽, 더할 첨 자를 쓰는 죽첨장(竹添莊)이었다고 합니다. 친일파 거부였던 최창학이 일본 건설회사를 통해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로 지은 별장이었습니다. 그러나 해방 후, 임시정부의 관저로 무상 제공되었고, 김구 선생이 근처의 다리 이름을 붙여 경교장(京僑莊)이라는 이름을 지으셨다고 합니다. 

1949년 김구 선생이 총탄을 맞고 돌아가시기까지 경교장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마지막 건물이자 김구 선생의 거처로 활용되었습니다. 김구 선생이 돌아가신 후, 경교장은 다른 나라의 대사관으로도 쓰이고, 미군 특수부의 주둔지로도 사용됩니다. 

현재까지 병원 시설로 사용되면서 서울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고, 이후 사적 456호로까지 지정되었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많이 훼손되어 복원 기간을 거쳐 이제야 공개되었습니다.

복원된 경교장, 들여다보기

1층경교장과 임시정부와 관련된 내용을 영상으로 볼 수 있는 영상실과 응접실, 귀빈식당이 복원되어 있었습니다. 응접실은 국무위원회의가 열렸던 장소로서 당시의 회의장면을 사진으로 전시하여 당시의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선전부 활동 공간은 임시정부의 대외적 홍보를 담당했던 선전부 사무실로, 자료 고증을 통해 옛 모습 그대로 재현되어 있었습니다. 김구, 선우진 등 경교장에서 오랫동안 활동했던 사람들의 사진이 함께 전시되어 있습니다. 

계단 옆에 있는 귀빈식당은 1945년 12월 2일 김구 선생이 광복을 맞아 조국에 돌아온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들과 한자리에 모여 만찬을 열었던 곳입니다. 당시의 장면을 임시정부 요인들의 음성으로 재현해 놓아 역사의 한 장면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김구 선생 서거 당시 빈소로도 사용된 장소라고 합니다.

2층에는 집무실과 침실, 그리고 서재가 재현되어 있었습니다. 집무실과 조촐한 침실은 일식다다미방으로 되어 있었는데, 이는 당시 사진을 근거로 재현했다고 합니다. 김구 선생이 서거하신 2층 집무실 복도 창문에는 총탄 자국까지 재현하여 역사의 비극을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건축 원형 전시실은 당시 욕실로 쓰이던 곳으로 건축 당시의 타일, 벽체, 창문 등이 모두 그대로 남아있어 당시 경교장을 건축하는 데에 활용된 건축 자재를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2층에도 김구 선생이 주요 인사들과 면담하고, 국무위원회의를 주관하셨던 서재가 있는데, 천장, 바닥 벽난로 등이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되어 있었습니다.

지하3개의 전시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제1전시실에서는 경교장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죽첨장 시기(1938-1945), 경교장 시기(1945-1949), 훼손 및 복원기(1949-2013)로 나누어 경교장이 건축되고, 복원되기까지의 과정을 알기 쉽게 전시하고 있었습니다. 

제2전시실 임시정부가 걸어온 길을 당시의 신문기사와 관련 자료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2 전시실의 유물 가운데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글씨가 빼곡히 쓰여 있던 속옷이었습니다. 이 속옷은 밀서로, 1948년 2월 3일 북한 내 민족진영 비밀조직원들이 김구, 이승만 두 지도자에게 북한 내 동향을 보고하고, 남북통일 정부 수립을 위해 탄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해방 이후 우리나라 정세의 혼란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제3전시실은 자서전, 회중시계 등 김구 선생의 유품과 경교장에 돌아온 임시정부 요원들에 대해 정보검색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습니다. 이곳에서 가장 눈에 띈 것은 혈흔이 묻어 있는 한복 상의였습니다. 이것은 김구 선생이 집무실 복도에서 안두희에게 암살당했을 당시 입었던 옷입니다. 목과 가슴, 소매 등 곳곳에 있는 핏자국과 가위로 옷을 자른 흔적이 당시의 참혹했던 상황을 짐작할 수 있게 했습니다. 경교장을 나서면서도 내내 마음을 무겁게 한 유품이었습니다.

“나는 우리나라의 청년 남녀가 모두 과거의 조그맣고 좁다란 생각을 버리고, 우리 민족의 큰 사명에 눈을 떠서 제 마음을 닦고 제힘을 기르기로 낙을 삼기를 바란다. 젊은 사람들이 모두 이 정신을 가지고 이 방향으로 힘을 쓸진대 30년이 못하여 우리 민족은 괄목상대(刮目相對)하게 될 것을 나는 확신하는 바이다.” < 백범일지 ‘나의 소원’ 중 >

 

여덟 번의 국무회의가 열린 곳이고 신탁통치 반대운동의 중심지였던 경교장은 오늘날 국제사회에서 당당하게 목소리를 내는 주권국가로서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뿌리입니다. 또한, 민족의 지도자를 지켜주지 못한 뼈아픈 역사의 단면이기도 합니다. 더불어 그 역사를 잊고 내버려뒀던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백범 김구 선생께서 백범 일지를 통해 확신했던 대로, 60여 년이 지난 지금의 대한민국은 세계 속에서도 다른 나라를 이끌고 있습니다. 학교에서의 역사교육에 더하여 직접 유적지를 찾아보고, 우리 조상의 숨결과 삶을 느끼는 것으로도 우리는 역사를 반복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호국 보훈의 달, 자녀와 함께 지금의 우리나라가 대한민국으로 바로 서기까지 목숨 바쳐 노력하신 인물을 주제로 위인전을 함께 읽어보고, 관련된 유적지를 방문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부모님과 함께한다면 우리 아이들은 올바른 역사의식을 가진 어른으로 자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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