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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모터쇼에서 본, 두려운 그러나 가벼운 중국 본문
상주인구만 천 칠백만 명이 넘는 초거대도시 베이징. 언젠가부터 북경이라는 이름보다는 그들의 발음인 ‘베이징’이라는 이름이 더 친숙해졌다. 서울에서도 그다지 어렵지 않게 맛볼 수 있는 음식인 북경 오리는 어느덧 ‘베이징 카오야’라고 불리고, 상해는 상하이로 불린 지 오래 된 것처럼 느껴지는 베이징 번화가에서의 하루다. 유난히 길었던 한국에서의 꽃샘추위가 무색할 정도로 이곳에서는 벌써 반팔 차림으로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들이 많다. 걱정했던 황사는 그다지 심하지 않았지만 플라타너스 나무의 꽃가루만이 바람에 엄청 나부키며 콧등을 간질인다.
베이징 최고 번화가 중의 하나인 왕부정 거리
겉으로 보기엔 지구상 그 어떤 자본주의 국가보다도 자본을 활용한 경제발전이 심화된 거처럼 보이는 이유는 왜 일까. 우리가 알고 있는 거의 모든 외국 브랜드들이 거리의 광고판을 장식한 걸 보면 중국은 이미 이데올로기적 의미로서의 공산주의 국가는 아닌 거 같다. 적어도 공산주의가 말하는 유산계급의 전유물이 도시를 채우는 역설과 아이러니를 베이징은 곳곳에 내포하고 있다.
알고 지낸지 십년이 넘는 중국 친구는 베이징에 갈 때 마다 나를 친절하게 맞이 해준다. 다음부터는 알아서 숙소로 갈테니 나오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해도 매번 공항으로 직접 배웅을 나옴은 물론이고 늘 좋은 식당으로 날 안내한다. 멀리서 온 친구를 귀하게 여기고 ‘극진한 대접’을 아끼지 않는 것이 미덕인 중국의 전통을 이 친구를 통해 다시 한 번 느낀다. 십년이 상을 만났는데도 내가 불편해하지는 않을까, 필요한 것은 없을까를 늘 생각해주는 친구를 볼 때면 “有朋이 自遠方來하면 不亦樂乎아”라는 고등학교 한문 시간에 배웠던 구절이 저절로 읊조려질 정도다.
전날의 긴 비즈니스 미팅에 숙소에서 늦게까지 곤하게 자고 있던 방으로 전화벨이 울렸다. 중국 친구의 전화였다. “브라이언, 오늘이 베이징 모터쇼 마지막 날인데 같이 보러가자.” “그런데 주말이라서 사람이 너무 많을까봐 걱정돼.” 친구의 배려가 너무 고마웠다. 내가 선택한 출장 일정이 베이징 모터쇼와 맞아 떨어졌다는 사실에도 기분이 좋아졌다. 막간의 망중한을 즐길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했다.
친구의 차로 모터쇼로 가는 길. 예상했던 대로 시속 10 킬로미티 이하로 움직이는 자동차, 그리고 모두가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인데도 마구 울려대는 경적소리. 모두가 짜증나고 힘든 상황에서 중국 사람들은 왜 경적을 울려댈까. 경적을 울린다고 앞차가 빨리 갈수도 없고 순식간에 길이 뚫릴 가능성도 전혀 없는 데도 말이다. 베이징 시내에서 27킬로 떨어져있는 모터쇼 전시장에 가는 데만 두 시간이 걸렸다. 열시에 숙소를 나왔는데 열두시가 넘어서 도착한 전시장. 문제는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주차를 안내하는 사람들도 없고, 있다고 해도 과중한 업무에 지쳐서 의지조차 없는 표정들. 주차를 하는 데만 다시 30분이 걸렸다.
해는 중천에 떠서 이글거리고 벌써 배가 고파졌다. 전시회장에 들어가기 전에 간단한 식사를 하기로 했다.수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기 때문에 선택할 수 있는 메뉴는 매우 한정적이었다. 물론 음식 가격은 평소보다 세배를 받고 있었다. 한국도 피서 철에 바가지 상혼이 큰 문제지만 이 정도는 아닐 거 같았다. 내가 한국 사람이라서 손이 안으로 굽는 것일까. 고객으로서 서비스를 받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허기진 배만 채울 수 있어도 다행인 거 같은 왠지 초라한 느낌이랄까.
먹는 둥 마는 둥 식사를 마치고 입장권을 사러 갔다. 전시회장에 들어가려고 하는 사람은 무수히 많은데 표를 파는 곳은 한군데. 그리고 그 앞에 늘어 선 긴 사람들의 행렬. 마음 속에서는 '으악' 소리를 외치고 있었다. 완전한 시스템의 부재. 구매자가 아닌 판매자 위주로 만들어 놓은 이동 동선. 이것이 우리 대한민국과 중국의 차이인 것일까. 30분 이상을 기다려서 구매한 입장권이 손에 들려있었지만 친구와 난 이미 지쳐있었다.더 솔직히 말하면 보고 싶은 의욕이 사라질 정도였다.
전시장으로 들어갔다. 수많은 자동차 메이커들의 향연. 언젠가부터 세계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모터쇼로 자리매김한'베이징 모터쇼'. 중국은 더이상 자동차 변방국이 아닌 모든 자동차 생산 업체들에게 사활을 건 시장이 되었다. 연간 판매되는 차량의 대수만 7천만대가 넘는다고 하니 거의 남북한을 합친 인구 수 만큼이나 된다. 당연히 모든 생산업체들이 눈독을 들일 수밖에 없다. 한국 업체의 부스에서 출퇴근길에 매일 보는 자동차 모델을 왠지 마음이 뿌듯해졌다. 한편으로는 중국이 이처럼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데 한국 자동차 업체들이 얼마나 더 경쟁력을 가지고 살아남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약간의 두려움마저 들었다.
근사하게 만들어진 중국 자동차들이 눈에 들어왔다. 언젠가부터 중국은 우리나라보다 더 많은 자동차를 생산하는 국가가 되었다. 솔직히 업신여겼던 중국 자동차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성장해 있었다.이름만 대면 다 아는 유명 업체처럼 스포츠카도 전시해 놓았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딘지 모를 모방의 냄새가 난다. 모방이라기보다 거의 베낀 거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그들이 자랑하는 중국 토종 차에서 유수한 외국 자동차 메이커의 이미지가 생각나다니 참 재미있기도 하고 쓴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우리나라 차 같기도 하고 독일 차 같기도 하고, 아니 일본 차의 모습을 은연 중에 간직하고 있는 중국 자동차들. 좀더 심하게 말하면 짝퉁 차들. 심지어 자동차 회사의 이름이 BAW 인 곳도 있었다. 독일 자동차 회사가 연상되는 이름이 아닐 수 없다. 중국차에게 아직 부족한 몇 프로의 아쉬움이 마음속에 일었던 중국 자동차 산업에 대한 두려움을 가시게 한다.
유럽 회사들 중에서도 최고 브랜드로 인정받는 자동차 회사 제품이 있는 전시관은 들어갈 수도 없을 정도로 인파로 북적였다. 친구와 난 비장한 각오를 다지며 들어가려고 했다. 그런데 일분도 되지 않아서 입장을 포기하고 말았다. 포기한 이유는 전시관 입구에서 두 명의 남자와 두 명의 여자가 서로에게 온갖 욕설을 퍼부으며 싸움을 시작하더니 결국 남자들은 상대방의 얼굴에 주먹을 날리는 난타전을 벌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날씨는 덥고, 오랜 기다림에 짜증도 많이 났겠지만 저렇게 공공장소에서 욕설과 함께 몸싸움까지 하다니. 험악한 분위기에 싸움을 말리는 사람도 없는 실로 중국에만 있을 거 같은 장면을 목격한 후에, 전시관에 들어가는 가고 싶은 마음이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불편함, 짝퉁, 무질서, 그리고 알지 못할 두려움이 교차한 베이징 모터쇼. 차를 빼서 돌아오는 길도 역시 두 시간. 베이징 모터쇼에서 난 대한민국이 지난 수십 년간 이룩해 놓은 질서 의식과 시민의식, 고객을 응대하는 서비스 정신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느꼈다. 우리가 겪은 예전의 시행착오는 현재의 강한 경쟁력을 만들어 내었고, 분노하고 때로는 비통해하며 경험한 사회적 부조리는 우리를 더욱 성숙한 시민으로 만드는 밑거름이 되었다.
매년 열리는 중국의 모터쇼, 하지만 나에게는 수없이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 좋은 기회였다. 중국은 거대하다. 그리고 무섭게 성장하고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이미 거대함이 주는 위압감에서 벗어서 우리만의 잘 정돈된 시스템을 만들어 가고 있다. 무서운 성장과 잘 정돈된 시스템 중 어떤 것이 더 소중한 것일까라는 의문이 머리 속에 인다. 베이징 모터쇼는 무섭게 성장하는 중국의 발전에 두려움마저 느꼈던 나에게 진정한 발전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잘 각인시켜준 좋은 기회였다. 앞으로는 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중국으로 출장을 떠날 수 있을 거 같다. 이것이 짧은 의문에 대한 명확한 대답이리라.
브라이언 샬롬 | IDEA팩토리 정희섭 기자 | amPR 대표 | heeshalom@hanmail.net
전세계 55개국을 다닌 여행 전문가, 글로벌 리더들과 함께 호흡하는 글로벌 네트워킹 메이커, 존경받는 대한민국을 만드는 민간 외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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