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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도 깡촌 농부의 삼남매 자식농사 성공기 본문

~2016년 교육부 이야기/부모의 지혜 나눔

충청도 깡촌 농부의 삼남매 자식농사 성공기

대한민국 교육부 2010. 6. 1. 07:00
사교육은 커녕 모두 유치원도 못 보냈다. 
충남 예산군 덕산면 외라2리, 마을 입구에 있는 수덕초등학교는 지금도 벽지 수당이 나오는 학교이다. 시고모님의 세 자녀는 모두 이 학교 졸업생이다.

아버님과 작은 아버님이 교직에 있어서 두 분 다 부모님을 모시고 시골집에 살 수가 없었다.
옆 마을에 살고 있는 여동생, 홍성고모님에게 부탁을 해서 고모님 가족이 1970년부터 24년을 시골집에서 시할아버지와 시할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고모부님은 농업학교를 나오셨다.
** (지금 홍성에 살고 있어서 홍성고모님이라고 부른다.)
 
시아버님은 2남 5녀의 장남이신데 위로 누님이 한 분 있다. 큰시고모님은 90세로 시골집 옆 마을인 복당리로 시집을 가셨는데 건강하시다. 홍성고모님부터 마을 입구에 있는 수덕초등학교를 나왔다.


홍성고모님은 슬하에 1남 2녀를 두었다. 자녀는 모두 마을 입구의 수덕초등학교를 나오고 홍성의 중, 고등학교로 통학을 했다. 사교육은 물론 전혀 할 수가 없었다.
 
큰 아들이자 외아들인 장남(51세)은 서울에 캠퍼스를 둔 지방 분교 경영학과를 나왔다. 졸업후 바로 취직이 안되고 일 년 후 OO 공단 공무원 시험에 합격을 해서 지금까지 근무하고 있다.
 
지금은 원룸으로 바뀐 외양간에 소를 키워서 등록금을 마련했다.
큰 소 한 마리와 송아지 4마리 정도 키워서 학기마다 팔아서 대학등록금을 마련했다.
 
 
* 나는 명절에 시골집에 가면 사랑방에 막내 아가씨 상장으로 4면의 벽이 장식된 것을 보곤 했다. 충청도 깡촌 중에서도 깡촌 인 수덕사 가까운 마을의 벽지 학교를 졸업을 하고 막내 아가씨는 홍성의 중고등학교를 전교 5등안에 늘 들었다.
 
가운데에 낀 큰 딸은 희생적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언니! 오빠는 오빠라고 집안일을 안하고 막내 OO는 집안이 엉망진창인 것도 모르고 하루종일 공부만 하니께 내가 엄마를 도울수 밖에 없었시유" 하며 구수하게 웃었다.
 
홍성까지 통학을 하며 연애를 해서 옆마을의 총각과 결혼을 했다.
아가씨의 시고모집에서 치기공공장을 해서 부산에 살고 있다.
남편은 전문대학교 '치기공학과'를 나와서 고모부 회사에 취직을 했다.
아가씨도 홍성의 전문 대학교 '식품영양학과'를 졸업했다. 졸업 후에 충남의 초등학교 서무실에 근무를 했는데 그때 초등학교 교사를 오빠에게 소개를 해서 결혼을 하게 됐다.
 

홍성 고모님 부부는 평생을 농부로 살아 오신 분이다. 어느해 시골집에 갔다가 고모님과 함께 고추를 땄는데 반나절 일하고 나니 허리가 과장없이 똑 부러지는 것 같았다.그 후 나는 시골에서 보내 주시는 곡식이 예사로 보이지가 않았다.
 
시댁의 고모님들의 공통점은 선한 마음과 남을 배려 하는 따뜻한 마음을 지녔다.
항상 덕담을 하시고 부모님께서 걱정을 할까봐 힘든 것도 내색을 하지 않는 분들이시다.
시댁의 가장 큰 힘은 효심이라고 생각한다.
 
평생 농사를 지으셔서 다리가 O 형으로 바뀐 고모님의 모습을 보며 깊이 깨닫는 것이 늘 있다.
'착하게 사는 분들은 자식들이 잘된다는 것'이다. 
 

** 지금의 시골집은 7년전 부터 주말마다 시아버님과 남편의 형제가 들어 가서 아름답게 꾸민 집이다.

전에는 본채, 사랑방, 별채, 외양간, ...화장실도 대문밖 큰 은행나무 옆에 재래식이었다.
홍성고모님은 그집에서 시할머니와 시할아버지를 모시고 살면서 농사로 자녀 교육을 다 시켰다.
 
막내 아가씨는 대전의 둔산에 살고 있다. 홍성의 여고를 졸업하고 대전의 국립대학교 수학과를 나왔다.대학다닐 때부터 장학금을 받고 과외를 해서 집에서 용돈을 전혀 받지 않고 졸업을 했다.

같은 학교 공대생과 연애를 하고 결혼 후 박사 과정을 마쳤다. 남편은 청주의 어느 대학교에 전임 교수로 근무하고 있다. 초등 학교 교장이었던 시부모님이 사둔 둔산의 아파트에 살면서 수학 공부방을 하고 있다. 자기는 사교육을 전혀 받지 않고 대학에 입학을 했는데 현재는 대전의 8학군에서 잘 가르치는 수학 공부방을 하고 있다.
 

지금 홍성고모는 홍성읍내에 있는 큰아들집과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다. 아들집은 34평이고 고모님댁은 23평이다. 며느리가 초등학교 교사여서 손주 둘을 다 키우셨다. 두 딸이 매달 넉넉한 용돈을 드리고 고모님은 대전의 막내 딸을 위해서 김치를 해준다. 큰아들이 시골집 근처에 텃밭을 사드려서 짬짬히 채소도 길러서 반찬 을 하고 있다. 내게도 자주 만들어 주신다.
 

지난번에 홍성에 갈 일이 있어서 홍성 고모님댁에 인사를 드리러 갔다.(사진도 찍으려고).
큰 아가씨의 아들이 대학교에 입학을 했다고 양가 부모님에게 대형 냉장고를 사드렸다. 


** 홍성 고모님 큰딸이 사드린 대형 냉장고, 시댁에도 똑같은 냉장고를 사드렸다고 한다.



** 방안의 장롱과 정수기도 큰사위가 다 사드렸다. 큰 아가씨가 시댁에 너무 착하게 잘해서 고마운 마음을 처가에 잘하는 것으로 표현을 하고 살고 있다.

 ** 홍성고모님 아파트 거실벽에 있는 가족사진들


** 고모님 칠순 잔치에 나도 갔었다.

 
여기서 큰 아가씨의 아들이 어느대학교에 입학을 했는지 궁금할 것이다.
중학교에서는 3년내리 반장을 했고 공부도 전교 10등안에 들었다. 아가씨는 부산의 사상구에 살고 있다.'치과 대학'을 가면 아가씨의 시고모님이 졸업할 때까지 등록금을 다 주신다고 했었다.

그런데 고등학교에 진학을 해보니 적성이 문과여서 문과로 정했다.
 
그 학생이 고1말에 우리 가족이 부산에서 대전으로 이사올 때 같이 식사를 했다. 그때는 서울소재 명문 사립대학교 경영학과를 가려고 했었다. 수능 전날 전화를 해보니 예체능계의 '사회체육'을 전공할 예정이라고 했다. 글을 쓰려고 아가씨에게 전화를 해보니 부산의 사립대학교 '사회체육과'에 입학을 했다고 한다.


내가 이글을 쓰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아들이 열심히 공부를 했으나 중학교보다 등수가 하락을 했다. 아가씨 부부의 장점은 자기 자식을 그대로 인정하고 신뢰하고 축하 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고마움을 양가 부모님께 대형 냉장고를 사드리는 것으로 표현을 했다.
 
대학을 졸업한 후 무엇이 되려고 학교에 다니는 것은 맞는 말이다.
그러나 학생 스스로 행복하게 생활할 수 있게 하는 것도 부모이다.
 
아들이 중학교에 다닐 때 아가씨가 내게 해 준 말을 잊을 수가 없다.
"언니! 우리 OO가 공부를 잘해서, 덕분에 내가 자모회에 참석 할 수가 있으니 아들에게 고마워요. 아들이 아니면 충청도 촌에서 온 내가 어떻게 그 자리에 갈 수가 있었겠어요."
얼굴 가득 미소를 지으며 맗던 아가씨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게 떠오른다.
 
60가까이 살아오면서 허세와 허영과 가식으로 자기 자식을 괴롭히는 부모를 수 없이 봤습니다. 이유는 단 하나 "내자식이니까 무조건 잘해야 한다"는 자기 최면과 정직하지 못한 의식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이제 우리 나라 교육은 열성만 많고 관심은 부족한 것에서 좀 성숙한 방향으로 가기를 소망해서 이글을 썼습니다. 자녀가 행복한 인생을 살도록 우리 기성세대가 잘 이끌어 주어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홍성고모님의 요즘 생활이 제가 소망하는 노년의 모습입니다.



모과
 | IDEA팩토리 김성희 기자 | http://blog.daum.net/moga2641(모과 향기)
우리 나라 학생들이 행복한 생활을 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긍정적인 생각이 쌓이면 대단한 폭발력으로 변하여 자기와 주변을 즐겁게 해준다고 믿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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