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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으라는 명령을 따르기 위해 모인 사람들 본문
한국에서 한국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 한강의 기적을 일궈낸 놀라운 민족. 최근 한류열풍으로 아시아의 별로 떠오르는 한국. IT분야 뿐 아니라 문화, 엔터테인먼트 에서도 최근 각광을 받고 있는 우리나라는 수난의 역사와 좁은 땅 면적에도 불구하고 세계의 한 가운데에 우뚝 서 있다.
하지만 삶은 겉에서 보이는 것과는 조금 다른 것 같다. 대한민국에서 하루 34분마다 한 명이 자살하고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는가? 한국은 연간 15,413명이 자살을 하며 이는 OECD 국가 중 최고의 수치를 나타낸다. 2010 통계자료에 의하면 자살은 한국에서 10~30대 사망원인의 1위, 40~50대 사망원인의 2위를 차지한다. 2010년 3월에는 성적을 비관한 초등학교 3학년 학생이 베란다 옥상에서 투신하였으며 2011년에는 카이스트 대학생이 4명이 차례로 목숨을 끊었다. 막 학교의 경쟁체제에 들어선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도, 입시경쟁을 끝내고 국가의 인재로 촉망받는 대학생들도 무엇 때문인지 자신의 생명을 스스로 끊는 결단을 하였다.
이에 교육과학기술부에서는 2011년 학생자살 예방 및 위기관리 강화정책을 발표하고 연수 및 전문기관과의 연계를 통한 사전예방, 위기관리, 사후대응의 방안을 모색하였다. 학생정신건강서비스체계(SOC: System Of Care)를 통해 자살의 근본적인 대책인 ‘사전예방’을 수립하고 원인과 징후, 예방대책을 구체적으로 형성해 나가는 정책이다. (관련게시물: http://if-blog.tistory.com/868)
하지만 어떠한 제도의 성공적인 결과를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의 자발적인 노력과 인식개선이 필요하다. 공지영씨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는 다음과 같은 대사가 있다.
“죽고 싶다는 말은 다시 거꾸로 뒤집으면 잘 살고 싶다는 거고.. 그러니까 우리는 죽고 싶다는 말 대신 잘 살고 싶다고 말해야 돼. 죽음에 대해 말하지 말아야 하는 건, 생명이라는 말의 뜻이 살아있으라는(生) 명령(命)이기 때문이야..“
살아있으라는 명령을 따르기 위해 모인 사람들. 2011년 8월 26일(금), 자신의 심장소리를 듣기 위해 서울시민 12,000여명이 한 자리에 모였다.
생명사랑 밤길걷기는 한국 생명의 전화 주최, 2006년을 시작으로 매회 개최하여 올해 8회째를 맞았다. 12,000여명의 참가자들이 시청광장에서 출발해 광화문광장, 남산, 서울숲과 청계천을 거쳐 시청으로 돌아오는 구간을 기준으로 5km와 10km, 34km(34분에 1명씩 자살, 2010통계)로 나누어 실시되었다.
기자가 현장에 갔을 때에는, 학교, 동아리, 종교단체, 가족.. 많은 사람들이 무리지어 모여 있었다. 경희대 태권도학과 시범단, 성균관대 재즈댄스동아리 JDM, 가수 허각 등이 화려한 공연으로 격려하였고, 서영훈 명예대회장, 박인주 청와대 사회통합수석, 문화체육관광부 박선규 차관, 보건복지부 최원영 차관, 조은희 서울시정부부시장,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 강지원 보건복지부 자살예방방지 대책위원장,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 대표의장 자승스님, 영화배우 강신일 등 각 계 각층의 인사들이 주요 내외빈으로 참석하였다.
참가 동기발표 및 생명사랑 10대선언, 대회선언, 준비 운동 등을 포함한 개회식이 끝난 후 10km, 5km, 34km 순으로 출발하였다. 5km는 서울시청-경복궁역-서울시청, 10km는 서울시청-숭례문-국립극장-마전교-청계광장-서울시청, 34km는 서울시청-고산자교-서울숲-고산자교-마전교-광화문광장-청계광장-서울시청을 돌아오는 대 장정이다.
이 중 함께 모여 단체사진을 찍고 있는 한 팀을 만나 보았다.
간단하게 팀 소개 부탁드립니다.
네, 저희는 염창중학교 어머니회에서 왔고요, 이번에 총 19명이 함께 5km 밤길 걷기 하러 왔습니다.
얼마나 많은 분들이 밤길걷기에 참여하나요?
초등학교 5학년에서 고등학교 2학년까지 총 11가정 참여했습니다. 작년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 참여입니다.
어떤 계기로 밤길걷기에 참여하게 되셨나요?
작년에 학교에서 한 번 하고, 취지가 정말 좋다고 생각해서 어머니회에서 마음을 모았습니다. 8시간의 봉사시간을 받을 수 있는 것도 큰 장점이지만, 청소년 자살률이 1위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아이들에게 이러한 행사를 통해 경각심을 주기도 하고, 또 우리 아이들이 밝고 건강하게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행사장에는 다양한 생명존중 및 자살예방을 위한 체험 프로그램이 다채롭게 열렸다. 미션에 따라 함께 온 친구를 꼭 안아주기도 하고, 자신의 슬픔을 조약돌에 적어 잊어버리기도 하며, 포춘쿠키의 쪽지를 읽으며 내일을 다짐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리고 임종 체험관.
15분 정도의 시간이 걸려 기다리는 시간이 긴데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임종체험관의 주위는 오드리 헵번, 장자연, 김수환 추기경 등 이제는 볼 수 없는 이들의 사진이 걸려 있었고, 조용하고 엄숙한 분위기 속에 식은 진행되었다. 주머니 없는 수의를 입고, 하얀 국화꽃이 헌화되면 관의 뚜껑은 닫힌다.
“쿵, 쿵, 쿵..”
어두움 속에서 해방된 후. 진행자가 관에 들어갔을 때 어떤 생각을 했냐고 질문에, 한 여학생은 “그동안 너무.. 표현을 못 한 것 같아요” 라며 말을 잇지 못하였다.
소중한 사람들에게 사랑한다고 말 하는 것이 평소에는 왜 그리 어려울까?
초등학생에서부터 대학생, 손자손녀를 두신 어르신까지. 많은 사람들의 많은 생각으로 행사장이 잠잠해지고 있었다. 시청 앞은 오케스트라와 성가단의 아름다운 음악으로 가득 메워졌고
어둠이 깔린 서울시청 광장 곳곳에는 조용히 잔디에 누워 생각에 잠긴 이들이 하나 둘 보였다.
누군가는 봉사점수를 위해 걸었을 것이고, 누군가는 연예인을 보기 위해 오게 되었다고 했다.누군가는 강요에 의해 왔을 것이고, 누군가는 운동 삼아 참여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단 한 생명이라도, 이번 행사를 통해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면, 이 얼마나 값을 매길 수 없는 행사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편 이번 행사는 자살로 인한 아픔을 이미 겪은 이들에게도 큰 위로가 되었다.
'일본 자살자 유가족 종합지원센터'에서 참가한 일본 자살유가족과 한국 자살유가족들이 함께 ‘소중한 동행’을 했다. 소중한 사람의 갑작스런 상실 속에서 아물지 못한 상처를 서로 위로하며 희망을 나누는 시간을 통해 아픔은 국경을 뛰어넘어 조금씩 치유되었을 것이다.
밤길걷기를 끝낸 참가자들은 라이프 메시지를 적어 마지막 ‘소망의 빛’ 미션을 완수하였다.
“저도 삽니다”
“자살은 뒤집으면 살자”
“00야 힘내, 자살하지 마”
“00야 나쁜 길로 빠지지 마. 살자!”
자기 자신에게, 힘들어하는 소중한 사람들에게, 그리고 세상에게. 심장의 소리에 귀기울여달라는 메시지를 남긴 사람들은 그 빛을 또한 전하기 위해 자신의 일터로 돌아갔을 것이다. 이제 자살문제는 더 이상 개개인의 감정적인 문제가 아니다. 우리 주위의 가족과 친구, 그리고 이웃의 이야기이며, 대한민국의 미래가 달린 문제이다.
대전은 9월17일, 대구는 9월24일 서울시의 바톤을 이어받아 행사가 진행된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그리고 이웃의 심장소리를 들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대한민국에서 산다는 것은 참 기쁘고 행복한 일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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