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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보다 '발명 DNA'... 숯진주 제품으로 결실 맺고 있죠 본문
열 살 소녀는 손재주가 뛰어났습니다. 찰흙놀이, 비즈공예, 바느질 솜씨가 좋았습니다. 만들기만 잘한 게 아니었습니다. 상상력이 풍부하고 호기심이 많았습니다. 이를테면 ‘학생 대신 공부하는 기계’ 같은 독특한 아이템을 생각해냈습니다.
학창 시절 김경희(23) 숯진주연구소 대표가 좋아한 과목은 과학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공부 목표는 일반 학생들과 조금 달랐습니다. 시험을 보기 위해 과학 원리를 무작정 암기한 게 아니라 일상생활의 불편함을 해결할 방안으로서 과학 지식을 습득한 것입니다. 반면 다른 교과목에는 별다른 흥미를 갖지 못했습니다.
“학교 성적이 중하위권에 머물렀어요. 고등학교 내신 성적은 6등급이었죠. 그런데도 아버지와 어머니는 저에게 ‘공부하라’며 다그치지 않았어요. 오히려 제가 가진 자질과 특성을 눈여겨보셨죠.”
부모는 딸에게서 공부 머리가 아닌 ‘발명 DNA’를 발견했습니다. 손재주가 뛰어나고 과학 원리를 응용할 줄 아는 딸이 영어 단어를 외우거나 함수 문제를 푸는 것보다 발명에 재능이 있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부모가 발명일지를 써보라고 권한 것도 그쯤이었습니다. 그는 머릿속에 떠오른 아이디어를 흘려보내지 않고 매일 아이디어 5개를 간추려 발명일지에 적었습니다. 그 결과 지난 14년간 작성한 발명일지가 약 100권에 달합니다. 그중 특허청에 등록한 특허는 28건(실용신안 포함), 특허받은 발명품(오존 살균 신발장, 오존 살균 수족관 등)은 10개에 이릅니다. 김 대표가 ‘학생 에디슨’이라고 불리는 이유입니다.
‘학생 에디슨’이라 불린 김경희 숯진주연구소 대표는 숯진주를 활용해 다양한 아이템을 발명했다. 왼쪽부터 당뇨 환자용 신발, 입덧 예방 팔찌, 술잔.
14년간 발명일지 100권 작성
술잔 돌려 마시는 어른들 보며 해독 술잔 발명
발명은 우연히 시작했습니다. 어른들이 하나의 술잔을 서로 돌려가며 마시는 모습이 촉매제가 됐습니다. 여러 사람의 입을 거친 술잔은 청결하지 못해 전염병에 노출될 수 있었습니다. 이를 본 김 대표는 해결방안으로 항균 효과가 뛰어난 ‘은’을 떠올렸습니다. 술잔에 은을 코팅하면 여러 사람이 같은 잔을 사용하더라도 살균이 되니 전염병을 우려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은의 녹는점은 961℃지만 유리는 재질마다 녹는점이 달랐습니다. 은을 술잔에 코팅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김 대표는 방향을 살짝 틀었습니다. 은으로 만든 틀을 술잔에 씌우는 거였습니다. 2007년, 중학교 3학년이던 김 대표의 첫 발명품은 그렇게 탄생했습니다. 목포시학생발명품경진대회에 은으로 만든 틀 술잔을 출품해 장려상을 받았습니다.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이번에는 숯을 활용해 술잔을 만들어보기로 했습니다. 숯은 살균 효과뿐 아니라 물에 포함된 유해물질을 흡착하고 분해하는 효과가 뛰어났습니다. 이점을 주목한 그는 숯이 술에 함유된 숙취 원인물질을 분해한다면 숙취 해소가 가능하리라 생각했습니다.
발명은 또다시 벽에 부닥쳤습니다. 숯에서 떨어지는 가루를 처리하는 문제였습니다. 가루는 인체에 해를 끼치지는않지만 미관상 보기 좋지 않았습니다. 만약 숯가루가 술에 둥둥 떠다닌다면 사용자에게 이물감을 줄게 뻔했습니다. 이를 고민하던 어느 날 문제에서힌트를 얻었습니다. 가루가 떨어지지 않는 숯을 개발하기로 한 것입니다.
숯 전문가가 돼야 했습니다. 김 대표는 숯 관련 전문서적을 탐독했습니다. 그때 고온의 가마에서 숯을 오랫동안 구우면 단단해진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고온으로 숯을 응축하면강도가 단단해지니 가루가 날리지도 않을 것 같았습니다. 김대표는 그 길로 가마업체로 달려갔습니다. 30일 동안 1300℃에 이르는 고온의 가마에서 숯을 구웠습니다. 예상대로 숯은 강한 흡착력을유지하면서도 가루가 날리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불순물이 없어 술을 비롯한 음료에 숯을 넣어도 문제 되지 않았습니다.
김 대표는 발명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숯의 활용도를 높일 수 있는 디자인을 구상했습니다. 숯을 적당한 크기로 잘라 동그라미 모양으로 만든 후 반들반들하게 연마했더니 진주처럼 광택이 생겨 빛이 났습니다. 그는 발명품의 이름을 ‘숯진주’라고 지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창업을 할 수 있었지만 섣부른 치기로 사업에 뛰어들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입학사정관제도를 통해 목포대 식품영양학과에 입학해 다양한 학문을 접하며 사업 역량을 갖춘 후 도전하자고 결심했죠.” 통계는 설득력이 강합니다. 김 대표도 숯진주의 효능을 보여주려면 객관적인 데이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한국과학시험연구원과 원적외선협회에 숯진주의 성분을 분석해달라고 의뢰했습니다.
숯진주는 몇 가지 특징을 갖고 있었습니다. 흡착력이 뛰어나고 경도가 단단하면서도 기존 숯처럼 해독 효과가 있습니다. 숯진주를 수돗물에 담그면 중금속과 환경호르몬 함유량이 이전보다 낮아지는 것이 이를 방증합니다. 유해 성분은 빨아들이면서 미네랄이 풍부한 물로 만들어줍니다. 가루가 떨어지지 않는 데다 활용하기 알맞게 동그랗게 모양을 낸 것도 숯진주의 장점. 김 대표는 숯진주를 손에 들고 “유레카(찾았다는 뜻)”를 외쳤습니다.
팔찌에 장착된 숯진주가 혈자리와 접촉하면 지압이 이뤄져 입덧이 예방된다.
술잔·슬리퍼·텀블러·입덧 방지 팔찌 등 출시
자신이 좋아하는 것 도전…꿈 이루는 방법 다양
숯진주의 사업 가능성을 확신한 그는 여러 아이템을 개발했습니다. 그중 하나가 숯이 가진 원적외선 효능을 여성 속옷에 접목한 유방암 예방 브래지어입니다. 하지만 이 발명품은 2014년 특허청과 한국여성협회가 주관한 생활발명코리아 여성발명대회에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습니다. 숯의 원적외선 효능을 활용한 속옷이 마치 유방암을 치료한다는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습니다.
“심사위원단으로부터 피드백을 받은 후 발명은 단순히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게 아니란 걸 깨달았어요. 발명품이 사회적으로 미칠 영향과 효과도 생각해야 했죠. 더욱이 건강 관련 제품을 발명할 땐 신중해야 했습니다.”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2015년 같은 대회에 재도전장을 내밀었습니다. 이번엔 몸에 부착하면 혈액순환을 돕는 숯진주 경혈패치를 출품했습니다. 원리는 단순합니다. 숯진주를 혈이 지나는 자리에 부착해 혈액순환을 돕는 것입니다. 숯진주 경혈패치는 한국여성발명협회장상을 받았습니다.
이번 수상은 김 대표에게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이전까지의 수상이 숯진주가 가진 효능에 대한 평가였다면, 이번 수상은 숯진주를 새로운 사업 분야로 인정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아울러 김 대표의 재도전이 결실을 거둔 수상이기도 합니다.
창업에 뛰어든 지 올해로 2년 차. 김 대표는 더큰 목표를 향해 나아갑니다. 지난해 2월 숯진주연구소를 설립한 그는 창조경제타운에 숯진주를 아이디로 제안했습니다. 그 결과 인큐베이팅 아이디어로 선정돼 현재 숯진주 경혈패치 상용화를 앞두고 있습니다. 아울러 판로 확보에 나섰습니다. 제품 개발이 완료된 아이템은 술잔, 슬리퍼, 텀블러, 당뇨 환자용 신발, 입덧 방지 팔찌입니다. 모두 숯진주를 활용한 발명품입니다.
일찌감치 발명에 눈을 뜬 김 대표에게 숯진주는 어떤 의미일까.
“저는 우등생은 아니었지만 발명에 관심이 많은 학생이었어요. 그런 제가 남들처럼 발명을 포기하고 수학시험에서 100점을 받으려 했다면 숯진주는 탄생하지 못했겠죠. 스펙보다 중요한 건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찾아 도전하는 겁니다. 잊지 마세요. 꿈을 이루는 방법은 다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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