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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력·인성은 기본, 혹독한 수련과정 견뎌내야죠”

대한민국 교육부 2017. 6. 22. 18:05


“체력·인성은 기본,

 혹독한 수련과정 견뎌내야죠”

[명사인터뷰] 이국종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장

 

“의사는 남의 몸에 합법적으로 손을 대는 사람들이에요. 모든 상황에 대해서 완벽하게 알지 못하면 타인의 몸에 함부로 손을 대선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학업의 양이 어마어마하게 많고 성적 사정도 무섭게 하는 편이에요. 자신이 의사가 되겠다고 선택해서 의대에 왔으면 혹독한 수련과정을 견뎌내야죠.” 

경기도 수원시에 위치한 아주대학교병원 권역외상센터에서 만난 이국종 교수(센터장)의 말투는 단호했다. 간밤에 응급 환자가 많아 잠을 못 잤다면서도 또렷한 눈빛과 어조를 잃지 않았다. 원칙과 신념에 어긋난다면 조금도 물러서거나 타협하지 않겠다는 날선 의지가 엿보였다. 

의사라는 직업에 대해서도, 의사가 되고 싶은 학생들이 지녀야 할 자질에 대해서도 이교수의 입장은 냉정하리만큼 확고했다. 바로 어젯밤 헬리콥터를 타고 출동했던 응급 상황이 생생하게 담긴 영상을 보여주면서 “저렇게 비 오는 날 헬기를 띄워가며 환자를 치료하려면 악으로 깡으로 해야 한다. 체력도 중요하다”고 잘라 말했다. 이 교수는 “의대에 약골만 남는다면 그건 환자들에게도 불행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러고 보니 그의 굳은 표정은 지난밤 피로 때문만은 아닌 듯했다. 졸음운전을 하다가 교통사고가 나서 후유증으로 얼굴 한 쪽의 표정이 일그러진다고 했다. 당시 타고 있던 차는 폐차될 정도로 큰 사고였다. 밤이고 주말이고 구분 없이 응급실과 수술실에서 중증외상 환자를 받아 온 그다. 마음 놓고 실컷 잠을 자본 지 이미 오래 전이다. 바로 1초 뒤에 어떤 환자가 들어올지, 어떤 응급 상황이 생길지 모르는 긴박한 생활을 이어가는 탓인지 의사인 본인도 약도 많이 먹고 건강도 좋지 않다고 했다.


 


2012년 MBC에서 방영된 의학드라마 ‘골든타임’ 주인공의 실제 모델이자, 6발의 총상을 입은 ‘아덴만 영웅’ 석해균 선장을 치료해 유명세를 탄 의사. 중증외상 환자 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권역외상센터를 우리나라에 설립하는 데 앞장선 이. 소위 ‘돈 안 되는’ 의료분야에서 뚜렷한 존재감을 나타내 온 그다. 

‘의사 = 돈 잘 버는 직업’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은 이 시대에 모두가 기피하는 ‘응급환자 살리는 일’에 몰두해왔다. 사람들은 그에게서 진정한 의사의 모습을 느끼고 감동했다. 최근 종영한 SBS 의학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는 이 교수의 닮은꼴 배우를 섭외해 오마주 장면을 내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그는 사람들의 칭찬과 박수에 고개를 저으며 정색한다. “‘내 의술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살았다’는 생각 같은 건 절대 하지 않는다”고 했다. ‘내가 이렇게까지 했는데 나에 대한 대우가 이것밖에 안 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면 하루도 더 일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가 주도해 선진국 시스템 그대로 들여온 권역외상센터도 아직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많고 갈 길이 멀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의사의 덕목’을 언급했다. 

“의사에게 건방진 태도는 절대 용납 안 돼요. 자신을 계속 돌아봐야 하죠. 우리나라에 의사가 10만 명이에요. 동료 의사 중에 나보다 멍청한 사람은 없습니다. 모두들 뼈를 깎는 노력을 해요. 매일 전쟁 같은 경쟁구도에서 버텨내는 사람들이라고요. 그런 사람들의 학문적 성취를 무시하고 자신만의 것을 함부로 도입하고 옳다고 주장하면 그건 건방진 거예요. 동료 의사들의 말을 잘 듣고 끊임없이 자기반성을 해야 합니다. 의사는 전혀 모르는 남(환자)을 위해서 일하는 직업인데, 자기 주변 사람들과조차 협력하지 못하는 건 말이 안 되죠. 수술은 간호사와 마취과 의사 등 여러 사람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야 성공적으로 이뤄질 수 있어요.”


 

이 교수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수술에 대해 물었다. 그는 “수술 후 환자 상태가 드라마틱하게 좋아진 경우도 기분 좋지만 수술실 안에서 여러 사람이 환자 한 명을 살리기 위해 함께 몸을 던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던 순간이 오래 가슴에 남는다”고 대답했다. “그런 순간엔 마음이 뭉클하고 전우애 같은 것을 느낀다”고 회상했다. 

그는 “의사는 월급 받으며 대놓고 좋은 일을 하는 직업이자 자부심으로 하는 직업이다. 환자의 피나 분변을 뒤집어쓰는 일, 환자를 위해 잠 못 자는 일 같은 건 사실 힘들지 않다”고 말하며 “신체의 피로보다는 환자를 살리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더 아프다”고 말했다.

“수술을 하다보면 환자의 피가 식어 간다는 느낌이 손으로 느껴지는 때가 있어요. 환자의 영혼이 떠나가고 있는 느낌이죠. 아픈 기억이 많지만, 내 트라우마는 소중한 사람을 잃은 보호자의 그것보다는 크지는 않아요. 예전에는 여름날 아침의 서늘함을 참 좋아했는데…. 어느 여름, 밤새 힘들게 수술했지만 끝내 환자를 붙잡지 못하고 수술실을 나섰을 때 복도 저쪽 창에서 해가 비치고 있었어요. 발은 피에 젖어 있고 보호자는 기다리고 있는데, 서늘한 아침 햇살을 바라보던 그 장면이 왠지 모르게 기억에 남아 있어요.” 

원래 그의 꿈은 의사가 아니었다. 친한 친구들과 함께 해군사관학교에 진학하는 것이 목표였다. 하지만 시력이 나빠 대안으로 선택한 것이 의대였다. 6.25 참전으로 장애를 입은 아버지의 영향과 주변의 권유가 그를 의대로 이끌었다. 남을 돕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다는 점도 매력으로 다가왔다. 

그는 당시를 돌이켜보며 “수학에 자신이 없어서 공대를 안 가고 의대를 택했는데 막상 가보니 의대도 수학 공부를 많이 하더라”며 웃었다. 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수학뿐 아니라 물리와 화학 등 기초 학문들을 깊이 있게 배워야 하기 때문에 학업의 범위와 양이 방대했다. 때문에 의사가 되려는 학생들은 무조건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한창 의대 공부할 때 저도 숨 쉬기가 힘들다 느낄 정도였어요. 공부를 상당히 잘 해서 의대에 들어온 학생들인데도 힘들어하고 유급 당하는 경우도 태반이죠. 의대에 오기 전에 스스로 공부하는 법을 알고 자신의 부족한 점도 체크하고 와야 하는데 요즘 학생들은 자기주도적으로 하지 않고 사교육으로 다져져서 더 힘들어하는 것 같아요. ‘핵심체크’, ‘핵심요약’ 같은 요령에 익숙하기 때문이에요.” 

의료분야 중에서 외과를 택한 것도 사실 그의 의도는 아니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함께 해온 친구가 ‘같이 외과를 선택하자’ 해서 ‘의리상’ 결정했다고 했다. 막상 그 친구는 응급 수술이 거의 없는 유방외과를 전공하고 뜻하지 않게 자신이 외상외과에 자리를 잡게 됐다. 

이 교수는 “같은 의사라도, 같은 외과라도 전공 분야에 따라 세상을 보는 눈이나 사고방식 등이 전혀 다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길어야 2~3년, 잠시 거쳐 가는 길이라고 생각했던 그 일이 어쩌다보니 이제는 그의 사명이 됐다. 이 교수는 “제때 처치를 받지 못해 안타깝게 죽어가는 사람들, 산업 현장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다 사고를 당하는 블루칼라 산업재해 환자들을 위해 우리 사회가 안전망을 마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에게 4차 산업과 인공지능의 발달로 컴퓨터가 의사를 대신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에 대해서도 물었다. 그는 “질병을 발견해내는 진단적인 측면에서는 인공지능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본다”면서도 “그러나 사람의 몸은 너무 복잡하고 개인마다 모두 달라 변수가 너무 많다. 앞으로 의사들은 인공지능까지 다루면서 치료를 해야 하기 때문에 공부할 게 더 많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국종 교수는… =1995년 아주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한 뒤 2002년 아주대 대학원 의학 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이후 미국 캘리포니아주립 샌디에이고대학교 병원의 외상외과와 영국 로열런던병원 외상센터에서의 연수를 바탕으로 아주대병원 내에 외상외과 체계를 설립, 2010년부터 아주대병원 외상외과장 및 권역외상센터장을 역임하고 있다. 2009년과 2010년, 2012년에 미국 백악관으로부터 감사장을 받았으며 2010년 보건복지부 장관 표창, 2011년 국민포장 등을 수여했다.


    

글_ 최은혜 에디터 

출처_ 꿈트리 Vol.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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