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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사라져가는 세상에서 시를 찾는 이창동 감독

대한민국 교육부 2010. 7. 8. 16:50
진중한 시선으로 끊임없이 세상을 바라보다

고등학교 교사에서, 주목받는 소설가가 된 사람. 그 후 늦은 나이에 감독으로 데뷔해 대한민국 대표 작가 감독이 된 사람. 그는 올해 칸국제영화제에서 <시>로 각본상을 수상한 이창동 감독(57)이다. 매 작품마다 깊은 울림을 선사하는 그는 <시>를 통해 관객에게 질문한다.
 

시가 사라지는 이 시대의 시를 찾는 이창동 감독


자식은 아버지를 닮는다. 생김새는 물론이요, 생활 방식도 그렇다. 한편 보통 창작물을 칭할 때 자식 같다고 한다. 자식처럼 열성을 다하기 때문이다. 두 말을 이어붙이면 이런 결론이 나온다. 창작물은 창작자를 닮는다. 이창동 감독은 이 결론이 무척 어울리는 사람이다. 지금까지 그가 꺼내놓은 이야기는, 진중하고 꼼꼼하다.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 또한 묵직하다. 세태는 깃털처럼 가벼운 걸 선호하지만, 그는 주춧돌처럼 묵직한 것에만 손을 댄다. 인터뷰 자리에서 만난 이창동 감독도 마찬가지. 그의 작품처럼 진중하고 꼼꼼하게 자신의 생각을 펼쳐놓는다. 이런 그가 질문한다. '시가 사라지는 이 시대에 시의 의미는 뭘까?'올해 칸국제영화제에서 각본상을 탄 <시>는, 이 질문에서 시작됐다. 

질문 속의 시는 단어 그대로의 뜻은 물론 영화, 더 나아가 예술을 말하기도 한다. 좀 더 범위를 넓히면 사람들이 잊어가는 수많은 것을 상징하기도 한다. 

"이번 영화에서는 제목이 <시>이고 시 이야기를 하지만, 저한테는 영화에 대한 이야기예요. 영화가 죽어가는 시대에 영화를 한다는 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질문이죠. 물론 여기서 죽어가는 영화는 <아바타> 같은 영화가 아닌, 어떤 영화죠. 내가 옛날에 하고 싶었고 점점 만나기 힘든, 어떤 영화요." 그에게 '시’는 '영화’다. 자신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준 영화.

 

창작물은 창작자를 닮는다. 이창독 감독은 그를 닮은 영화 <시>를 통해 ‘시가 사라지는 이 시대의 시의 의미’를 묻는다. 사진은 영화 <시>의 한 장면

 


   새로운 이야기 창구를 찾다
 

1997년 <초록물고기>로 늦깎이 영화감독이 된 그에겐 영화는 또 다른 이야기 창구다. 사범대학을 졸업한 그는 고등학교 교사가 된다. 그러다 1983년 소설 <전리>로 등단해 전업 작가로 활동하며 본격적으로 세상에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하지만 글로 보낸 30대, 그는 도리어 글로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에 회의를 느낀다. 그때 영화를 발견한다. 소설가로 활동할 때 연극계 인사와 맺은 연이 영화로 이어진 것이다. 이로써 글 외에 이야기를 전달할 새로운 통로를 찾은 것이다. 그렇게 내디딘 발걸음이 <초록물고기>다. 

"감독으로 내 작품 다섯 편만 만들면 소원이 없겠다고 생각했어요. 그 마음으로 여기까지 왔죠. 어느새 <시>가 다섯 번째 영화예요." 다섯 편만 만들면 좋겠다고 시작한 영화는 그에게 많은 영예를 선사한다. <초록물고기>로 밴쿠버영화제 용호상을, 다음 작품 <박하사탕>으로 카를로비바리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을, 세 번째 작품 <오아시스>로 베니스영화제 특별감독상을 받는다. 또한 <밀양>으로는 전도연을 '칸의 여왕’으로 만들고, 이번 <시>로는 칸국제영화제 각본상을 수상하기에 이른다. 이 외에도 각 작품마다 받은 상은 부지기수. 늦었지만, 아니 늦었기에 폭발적인 창작력으로 매 작품을 창조한 것이다. 물론 상이 그의 존재를 규정하진 못한다. 하지만 상이 있기에 그의 이야기는 더욱 힘을 발휘하며 대중에게 전해진다. 그렇지만 '국제영화제에서 받은 상’은, 이창동 감독에게 첫 번째가 아니다. 

"해외 영화제 나가서 국경, 언어, 문화를 넘어 보편성을 가지는 것도 좋지만, 1차적인 대상은 아니니까요. 1차적으로 한국 관객을 대상으로 영화를 만들고 그들과 소통하려고 해요." 그에게 소통의 1차적인 대상은 같은 문화권에서 숨 쉬는 우리다. 

 

   사라져가는 것을 보다
 

그가 영화를 시작할 때 소망한 '다섯 편’은 <시>를 만들면서 이뤘다. 그래서일까. 그는 다섯 번째 <시>를 통해 '중간점검식’으로 묻는다. 지금 자신이 잘하고 있는지, 자신의 영화가 중요한지 하는 의문을. 대상은 자신이자 관객이다. 

"이 질문은 끊임없이 해온 질문이기에, 저 스스로 답을 찾긴 어렵겠죠. 그 답은 제가 하는 게 아니라 관객 스스로 각자의 답을 찾는 게 아닐까 해요. 이런 식의 영화, 이런 영화라는 게 어떤 영화라고 규정하긴 어렵지만, 제가 영화를 하는 게 얼마만큼 힘이 있는 걸까, 의미 있는 걸까 하는 질문을 저뿐 아니라 같이 촬영한 스태프들도 모두 했을 거예요. 저도 그렇고 같이 한 사람들도, 그래도 할 만한 거라고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그래도 할 만한 것.'다시 말해 '그래도 필요한 것’일 게다. 이는 이창동 감독이 <시>를 통해 보여주고 싶은 점이며, 스스로 하는 다짐이다. 비록 많은 이가 잊어 가지만, 그래도 되새겨볼 가치가 있다고. 그래서 <시>는 잊혀지는 것을 복기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배우 윤정희를 캐스팅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창동 감독은 영화를 통해 지금 자신이 잘 하고 있는지, 자신의 영화가 중요한지 하는 의문을 갖는다. 대상은 자신이자 관객이다.



"윤정희 선생에게는 아련한 그리움 같은 게 있었어요. 옛날의 제가 좋다고 생각한 것에 대해, 명확하진 않더라도 그리움이요. 이런 느낌이 미자라는 인물에 대한 개인적인 느낌이기도 해요. 여전히 활동하고 있는 배우에게서 느끼는 부분과는 좀 달라요." 

잊혀지는 시를 쓰는 60대의 여성, 그녀를 맡은 과거의 스타 윤정희. 영화 속 주인공인 미자는 60대임에도 소녀 감수성을 간직하는 여자다. 많은 이가 잊어버린 소녀 감수성을 잊지 않은 여자가 겪는, 잊지 말아야 할 것들. 지금 세대에게는 시나 배우 윤정희나 모두 잊혀진 존재다. 이창동 감독은 이들을 화면 속에 불러와 상징적으로 잊혀지는 것들을 되살린다. <시> 속에 여러 편의 시가 등장하는 것도 점점 사라져 가는 시를 보여주기 위해서다. 

"정호승 시인의 '그리운 부석사’란 시는 굉장히 어려운 시예요. '시라는 게 뭔지 모르겠다’고 느낄 법한 시죠. 불교적 성찰이 담겼고. 반면 안도현 시인의 '너에게 묻는다’는 쉽잖아요. '이게 시야?'할 정도예요. 양극단에 있는 대표적인 시죠. 시의 다양한 면을 보여주는 작품들이죠." 

제목부터 그 안의 시 그리고 배우까지 <시>는 잊혀지는 것 투성이다. <시>를 관통하는 주제인 '도덕성'또한 그중 하나다. 이처럼 <시>는 사라져가는 것들을 끌어안는다. 그러면서 안타까움을 내비친다. 이렇게 소중한 것을 잊어서 되겠냐고.

 
   그래도 끝까지 가련다
 

이창동 감독이 <시>를 통해 던진 질문은 칸국제영화제가 '그렇다’고 답했다. 아직 세상에는 시 같은 것이 필요하다고. 이창동 감독의 영화 같은 소중한 게 아직 필요하다고. 이창동 감독은 앞으로도 이런 종류의 질문을 계속 던질 태세다. 그가 우려하는 바대로 비록 사람들이 시를 잊어버린 세상이 도래해도 말이다. 

"아마도 그냥 혼자서 찍는 영화이지 않을까? 6밀리 디지털로 아무도 봐주지 않는. 모르겠어요. 지금 식으로 가면 그렇게라도 하지 않을까 싶어요. 그때 가서 그런 열정이 남아 있으면 좋겠어요."   

글|무비위크 김종훈 기자
 교과부 웹진  꿈나래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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