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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 유럽 열강들의 암투와 식민지 지배의 영원한 피해자 아프리카. 2차 대전이 끝나고 문화적 차이를 무시한 채 마구 그어진 국경선 때문에 부족 간의 내분이 일어나 지금도 인간 살육이 벌어지는 검은 대륙 아프리카. 계속 일어나는 군사 쿠데타와 부정부패, 그리고 기아와 질병으로 가득한 병든 아프리카. 아프리카 대륙을 생각하면 우선적으로 떠오는 이미지는 긍정적이 것이 아닌 부정적인 것이 많다.
다이아몬드를 차지하기 위해 멀쩡한 사람의 손을 칼로 자르는 가 하면, 지뢰를 밟아 한쪽 다리를 잃은 소년병들이 목발을 집고 다니는 모습 등은 이미 영화나 뉴스를 통해서 우리에게 공공연히 보여지고 있다. 하루 열 시간 이상의 중노동을 해도 일당으로 지급되는 것은 1달러 정도인 가난한 국가들이 대부분인 아프리카를 보면서 60년 전 전쟁 직후의 한국의 상황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을 거 같다.
2009년 11월 카톨릭 의대 안과 의료진과 언론사 기자, 국내 NGO단체와 아프리카 케냐에 봉사활동을 다녀왔다. 병들고 지친검은 대륙에 있는 케냐 어린이들에게 ‘희망의 빛’을 주자는 취지로 먼 길을 떠나게 되었다. 희망의 빛을 가지고 가는 마음은 경건함으로 가득찼다. 하지만 마음 속의 경건함이 그들의 비참한 모습을 보고 슬픔과 노여움과 분노로 바뀌었고, 맨 마지막엔 우리의 나약한 힘을 느끼며 좌절하게 되었다. 동시에 아프리카 대륙의 엄청난 지하자원을 아무런 댓가도 지불하지 않고 착취해왔던 20세기 초의 열강들이 원망스러웠다. 식민지 경영이 더이상 자국에 도움이 되지 않게 되자 민족자결주의라는 다분히 애매하고 무책임한 사상에 동조하며 아프리카를 영원한 참극의 나락으로 떨어 뜨린 소위 강대국이라 불리는 나라들 말이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우리나라는 여러 가지 면에서 환골탈태했지만 케냐는 아직도 영국의 식민지 시대에 지어진 건물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다. 도로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민망할 정도로 차가 지나가면 흙먼지를 만들어 냈고, 그 흙먼지 속에서 뛰어노는 아이들. 천국과 지옥이 시간적으로 공존한다면 여긴 필시 지옥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상하수도 시설이 전혀 없는 세계 최대의 빈민가 Kibera에서 난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매년 말라리아로 수만명이 목숨을 잃고 있는데도 예방약을 살 돈이 없어 속수무책으로 매일 매일의 삶을 근근히 이어나가는 그들이었다.
세계 3대 빈민가 중의 하나인 케냐의 Kibera
Kibera의 난민들은 우리가 탄 차량을 발견하자 신기한 듯 몰려들기 시작했으며, 차에서 내린 우리들을 에워싸고 악수를 청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우리가 대한민국에서 왔다는 사실이 아니라, 당장 굶주린 배를 채울 빵과 추위를 막을 수 있는 옷이었다. 우리는 그들의 비참한 삶을 동정어린 눈으로 카메라에 담지만, 그들은 절박한 눈빛으로 우리로부터 받아낼 수 있는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으리라. 이런 것을 동상이몽이라고 말하는 것일까. 우리는 대한민국 사람이고, 대한민국이 케냐를 위해 여기에 왔다고 생각했지만, 그들은 나에게 필요한 것은 빵이고 옷이기에 당신들의 국적은 필요없습니다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수술을 하기 전에 시신경이 아직 살아 있는 지를 검사해야 한다.
한국에서 눈 수술을 하기 위해 온다는 소문을 듣고 수십 킬로미터를 걸어서 온 소녀부터, 이미 수술 시기를 놓쳐 영원히 시각 장애인으로 살아가야 하는 소년까지 케냐에서 본 광경은 비참한 그 자체였다. 차를 탈 돈이 없어 수십 킬로미터를 걸어와야하다니. 인간의 존엄성과 생물로서의 인간의 차이마저 생각하게 하는 순간이었다. 우리나라 아이들이라면 의사선생님의 검사만으로도 자지러지게 울어 댈 거 같은데 케냐 어린이들은 이상하리만치 차분하게 수술 전 시력 검사를 받는다. 의료 혜택이라는 것을 거의 받지 못하는 케냐 어린이들에게 병원이라는 장소는 그저 생소한 공간일 뿐이었다.
소아 백내장 수술을 마치고 병실 밖으로 나가는 소년
우리나라가 경제적, 정치적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할 때 과연 케냐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 까라는 의구심만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열악한 의료시설, 미비한 정부의 지원, 그리고 부정부패. 비단 케냐의 문제가 아닌 아프리카 전체의 문제라고 생각하니 우리의 작은 도움은 너무 미약해 보일 정도였다.
100년에 영국의 식민지 시절에 지어진 병동은 지반이 침하현상이 생겨 건물 자체가 아래로 가라앉고 있다는 설명을 들으니 내 마음 속에 있는 마지막 희망마저 없어지는 듯했다. 건물이 계속 가라앉는 심각한 상황을 태연하게 나에게 설명하는 병원 관계자의 말을 듣고 있자니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 말이 나오지 않을 지경에 이르렀다. 건물이 가라앉는 것을 막기 위해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건물 외벽에 버팀목을 대는 것 뿐이었다.
영국 식민지 시절에 지어진 병동, 지반이 침하되어 버팀목을 해놓았다.
수술을 하기 위해서는 아직 시신경이 살아있느냐가 가장 중요한데, 검사 결과 수술 후에도 시력을 회복할 가능성이 없는 어린이들은 병원까지 걸어온 먼 길을 되돌아 가야하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이런 사실을 알기나 하는지 케냐 어린이들은 카메라를 향해서 천진난만하게 웃기만 한다. 자신이 평생 짊어지고 가야할 신체적 장애에도 밝게 웃을 수 있는 그들의 낙천성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수술 불가능 판정을 받았어도 천진난만하게 웃는 어린이
병원이 있어도 돈이 없어 치료를 받을 수 없는 나라에서 대한민국의 작은 도움이 얼마나 도움이 될까. 케냐 정부 스스로도 못하는 일을 우리나라의 민간인들이 이렇게 봉사활동을 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는 회의감이 몰려온다. 이런 도움이라면 물고기를 낚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 아닌 그저 배고플 때 빵 몇 개를 주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라는 생각이 물밀 듯이 몰려 온다. 모기를 매개체로 걸리는 말라리아가 창궐하는 나라에 모기장을 공급하는 것이 좋을 까 아니면 모기의 서식처를 없애는 것이 더 바람직할까라는 생각을 해보면 정답은 쉽게 나온다.
열악한 수술 환경은 우리 의료진을 지치게 했다.
병실이라고는 하지만 내벽은 다 떨어져 있었고, 위생이란 개념은 없었다.
수술 후 성공 유무를 검사하고 있는 카톨릭 의대 주천기 안센터장님
늘 받기만 했던 가난한 나라 대한민국이 이제는 우리 보다 경제적으로 낙후된 나라를 돕는 나라가 되었다는 자부심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럼 힘도 없었다. 우리가 해주는 작은 도움으로는 그들의 상황을 변화시킬 수 없을 거 같았다. 같이 갔던 의료진도 계속되는 수술에 지쳐가고 있었다. 수술을 직접하는 사람, 수술 일정을 잡는 사람, 그리고 가까이에서 아이들을 다독거리는 사람들 모두가. 눈수술은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일같았다. 마치 슈바이처 박사가 평생을 아프리카에서 살며 봉사활동을 한 것처럼.
그 누구도 바꿀 수 없는 케냐 사람들의 가난. 그리고 가난을 이겨보겠다는 의지조차 상실한 사람들. 우리가 나누어 주는 작은 도움이 이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 까라는 회의감이 몰려 왔다. 그러나 35년 동안 소말리아와 케냐를 오가며 봉사활동을 하고 계신 선교사님과 이야기를 나눈 후 나의 마음은 서서히 변해갔다. 선교사님은 국적을 생각하기 이전에 아낌없이 주려는 마음을 강조하셨다. 내가 돈많은 부자이기 때문에 돕는 것이 아닌 내가 이들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 까를 생각해야한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이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나라가 되었기 때문에 돕는다라는 발상이 아닌, 대한민국이 이들이 위해 무엇을 할 수있을까라는 생각이 먼저라는 것이다. 부자가 먹고 남는 것을 남에게 줄 수 있다라는 개념과 내가 가진 것을 남에게 나누어 준다라는 개념은 다르다라는 말씀이셨다. 생각을 달리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봉사활동을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대한민국이 돕는다. 대한민국의 의료진이 돕는다라는 생각만 한 것 같다. 그러나 모든 일정을 마치고 현지에서 떠나올 때는 내가 남을 도울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기뻤다. 언제부터 언제까지 돕는다라는 생각이 아닌 내가 어디에 있던 도울 수 있다라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케냐에서의 봉사활동은 남을 도움으로써 기뻐질 수 있다는 발상의 전환점이었다. 남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줄 수 있다는 마음, 그것은 결국 나 자신을 돕고 기쁘게 만들어 주는 마력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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