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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년 만의 귀환, 우리 국악기


1893년 조선의 궁중 악공 10명이 고종의 명을 받고 태평양을 건너 미국 땅으로 건너갔습니다. 시카고에서 열리는 만국박람회에서 중국, 일본과 다른 조선의 독자적 문화를 보여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세계 50개국이 참가한 박람회에서 이들은 조선의 곡을 연주해서 서구인들의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폐회 후 미국 보스턴 피바디 에섹스 박물관에 기증되었던 국악기 8점이 지난 9월 25일 오후 4시 항공편으로 120년 만에 고국 땅으로 돌아왔습니다.

<전시회 포스터>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4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1893년 5월 1일부터 10월 30일까지 개최되었던 시카고 만국박람회는 우리나라가 대조선이라는 국호와 태극기를 가지고 처음으로 참여한 박람회당시 세계사람들이 우리나라를 높은 문화와 예술을 가진 아름다운 나라로 인식하는 첫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서양인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던 우리의 국악기들이 10월 1일부터 12월 1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 테마실에서 전시된다고 하여 찾아가 보았습니다. 테마실은 그리 크지 않고 아담했습니다. 전시는 세 부분으로 나눠 1893년 시카고 만국박람회와 조선 전시관, 국악기, 국악 유물 편으로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를 세계에 알리기 위한 조선의 첫 문화사절단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면서 1893년 시카고 만국박람회에 전시되었던 전시품과 국악기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893년 시카고 만국박람회 전경><당시의 보도자료><조선 전시관><다른 나라에 비해 작은 조선의 전시부스위치>

<1892년 시카고 만국박람회와 조선 전시관>

참의 내무부사 정경원은 출품사무 대원으로 임명되어 10명의 악공과 조선의 공식국기 '태극기'를 안고 1893년 3월 23일 이세마루 호를 타고 제물포를 출발하여 4월 8일 일본 요코하마에서 벨기스 호로 갈아타고 태평양을 건너 샌프란시스코를 걸쳐 4월 28일 시카고에 도착했습니다.

당시 시카고 트리뷴지는 한국 대표단의 일정과 모습을 보도하면서 많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다른 나라에 비해 작은 조선 전시관이었지만 전통기와를 얹은 조선전시관에서 울려 퍼진 조선의 음악은 당시에 함께 했던 세계인의 눈길을 사로잡을 만했을 겁니다. 전시관의 조선 물품은 장신구, 의복, 가마, 짚신, 자수, 병풍, 화로, 자기 등이 전시되어 판매되기도 했다고 합니다. 전시관을 지키던 젊은 조선인은 관광객들의 여러 질문에 일일이 대답하기에 지쳐 우리나라의 지도 옆에 다음과 같은 글을 쓴 종이를 붙여 놓았었다고 합니다.

“Korea와 Corea는 둘 다 틀리지 않지만, Korea로 써 주시기 바랍니다. 조선은 중국의 일부가 아니라 독립국가입니다. 조선인은 중국어를 사용하지 않으며 조선어는 중국어와 일본어와 다릅니다. ..... 조선인들은 기와로 만든 지붕과 따뜻하게 데워지는 마루가 있는 편안한 집에서 생활합니다. 조선의 문명은 오래되었습니다.”                                        -시카고 만국박람회 기록사 중에서-

이 기록만 보더라도 동아시아의 힘없고 가난했던 나라 ‘조선’은 세계 인에게 짧지만 강한 인상을 남긴 것 같습니다.

<1893년 시카고 만국박람회, 국악기>

동아시아의 고대음악을 전승한 조선의 음악은 선율, 박자, 그리고 자연 친화적인 악기로 당시 서양인들에게 독특하고 신비로운 음악으로 비쳤다고 합니다. 그들에게 큰 감동을 안긴 첫 해외 연주회는 1893년 5월 1일 만국박람회 개회 때 연주되었습니다. 그 후 5월 3일 악공 10명은 귀국길에 오르고 국악기들은 폐회 후 피바디에섹스박물관에 기증되었습니다.

<귀환한 8점의 국악기>

양금, 장구, 거문고, 대금, 향피리(2), 생황, 당비파, 해금, 용고 9종 10점이었는데 대부분은 120여 년의 시간에도 불구하고 보관이 잘되어 있지만, 해금과 용고는 보관상태가 좋지 않아 귀환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장구>

<장구>는 고려 시대 송나라에서 들어와 당악에 쓰였고, 오늘날에는 궁중음악뿐 아니라 농악, 탈놀음 등의 다양한 민속 음악 연주에까지 널리 사용되고 있습니다. 오른쪽은 채로 왼쪽은 손으로 치는 것이 일반적인 연주법입니다. 전시된 장구는 용무늬와 화려한 자수로 장식되어 궁중 악기의 뛰어난 예술성을 보여주는 악기라는 평가를 받았다고 합니다.

<국내 현존 가장 오래된 당비파>

<당비파>는 통일신라 시대부터 비파를 연주한 기록이 있을 정도로 오래되었으나 조선 후기부터 쓰임이 줄었답니다. 네 개의 줄을 나무판이나 손으로 뜯어 연주하며 목 부분이 구부러져 있어 ‘곡경 비파’라고도 불립니다. 전시된 당비파는 국내 현존하고 있는 비파 중 가장 오래된 당비파라고 합니다.

<양금>

<양금>은 18세기 청나라로부터 소개되어 ‘서양양금’, ‘유럽에서 들어온 악기’라는 의미로 ‘서양금’, ‘구라철 사금’이라고도 불립니다. 네 줄이 한 벌인 14벌의 쇠줄을 사다리꼴 모양의 오동나무 통에 얹어 나무 채로 쳐서 소리를 냅니다.

<거문고>

<거문고>고구려의 왕산악이 만든 현악기입니다. 오동나무와 밤나무를 이어 만든 울림통 위에 여섯 줄을 거는데 오른손에 잡은 술대로 내려치거나 뜯어 연주하며 궁중 음악과 민간 음악에 두루 사용됩니다. 우리에게 익숙하고 친근한 국악기 중 하나일 겁니다.

<생황>

<생황>국악기 중 유일한 화음 악기입니다. 박으로 몸통을 만들어 길이가 다른 여러 개의 대나무 관을 꽂고 취구에 입김을 불어 연주합니다. 고구려, 백제 음악에 사용된 기록이 있고 통일 신라 시대 종이나 탑 등 불교 조각에도 새겨진 만큼 우리 역사와 오랜 시간 함께 호흡해온 악기입니다.

<대금>

<대금>은 대나무로 만든 악기로 취구가 있는 악기 부분을 한쪽 어깨에 얹고 연주하는 횡취(가로채기)악기입니다. 궁중, 풍류, 민간 음악에 두루 쓰인다고 합니다. 영화를 보면서 준수한 선비가 달밤에 대금을 부는 모습과 대금의 애절한 음색에 가슴을 셀렌 적이 있는데 청의 울림으로 인한 음색의 변화가 그런 감동을 주었나 봅니다.

<향피리>

<향피리>는 관대에 겹서를 꽂아 입으로 물고 연주하는 관악기입니다. 작은 몸집에 비해 음량이 크고 길게 소리 낼 수 있는 게 특징입니다. 시카고 만국박람회에는 2점이 출품되었다고 합니다.

<돌아오지 못한 두 점의 국악기-해금과 용고>

<용고>는 허리에 매고 연주하며 북 중 가장 작습니다. 연주자가 북채를 쥔 손에 한 삼을 끼고 연주하는 것이 특이하다고 합니다. 저는 풍악 패에서 연주되는 것을 보았는데 그래서인지 ‘행고’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다고 합니다.

<해금>은 말총 활줄로 만든 대나무 활대를 사이에 끼워 긁어서 소리 내는 칠현악기입니다. 음색이 독특하여 ‘깡깡이’, ‘깽깽이’라고도 불립니다.

돌아오지 못한 용고와 해금이 설명된 옆에는 우리 민족의 멋과 흥을 간직한 국악을 들을 수 있게 이어폰이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국악유물>

우리 민족은 음악에서도 다양한 자료를 남겼습니다. 조선 최초의 실용 음악 기록서인 <악학궤범>을 비롯하여 종묘제례악, 경모궁 제례 악보, 무안 왕 묘제 악보의 거문고.가야금 악보가 실려 있는<악장 요람>, 현악기, 관악기, 타악기, 가사 등이 한꺼번에 기보 되어 있는 <대악후보> 등 귀중한 가치를 지닌 자료만이 아니라 우리 음악의 흥과 멋을 표현한 그림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왕실의 성대한 잔치 장면과 공연을 그린 10폭 병풍 <정해진천도>는 역사적 가치로도 의미가 크다고 합니다.

<왕실의 잔치 장면을 묘사한 10폭 병풍-정해진천도><악학궤범><정해년의 궁중잔치 기록들><악장 요람>

<악장 요람>

이번 전시회를 통해서 국악이 하늘에서 나와 사람에게 깃든 음악이라고 표현한 것처럼 우리 음악 국악의 가치와 소중함을 느끼고 친밀감을 가졌으면 합니다. 또한, 120년 전인 1893년 시카고 만국박람회에서 중국, 일본과 다른 우리나라만의 독특하고 아름다운 독자적 문화를 알리고 그 후로도 눈부신 발전을 이룩해온 우리나라에 자긍심을 느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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