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디어 팩토리 :: 70년동안 차별화된 인성교육을 하는 모교
 


70년동안 차별화된 인성교육을 하는 모교


요즘 교육계에 '인성교육'이 화두가 되고있기에 문득 생각이 났다.
내가 다녔던 모교에서 받았던 독특하고 훌륭한 인성교육이 아직도 계속 되고 있을까? 우선 학교 홈페이지를 인터넷으로 찾아봤다. 그런데 놀랍게도 계속하고 있었다.

전화로 확인을 하고 여고 졸업후 41년만에 모교를 찾아 가게 됐다.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북아현동... '굴레방다리'라고도 불렀다. 나는 서울 중앙여고를 1970년에 졸업을 했다.
 
내가 입학을 할 당시에는 전기 입시에 떨어진 학생들이 갔던 후기 고등학교였다
한 번 패배를 한 학생들만 모인 학교여서 학생들은 그리 의욕적이지 않았다.
그즈음 설립자인 독립유공자 황신덕 이사장의 아들인 윤형빈 교장선생님이 부임을 하셨다. 경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영국유학을 다녀 왔다는 그분의 교육관은 확실히 달랐던 것 같다.
 

* 설립자 황신덕 이사장님 동상이 교문 입구에 있었다. 이분의 훌륭한 점은 기독교인이지만 학교는 일반 사립학교를 만드신 것이다.


* 옛날 교복을 입은 여고생 동상의 모델은 나와 동기였던 염항숙이었다. 졸업후 수도여사대 미대(현 세종대학교)를 진학을 한 것으로 기억이 난다. 매주 토요일이면 운동장에서 전교생에게 포크댄스를 가르쳤던 교장선생님이 기억이 났다. 요즘은 포크댄스는 하지 않는다고 했다.


*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교복과 두발을 한번 주시해 볼 필요가 있다. 우연히 지나가던 후배 3명에게 포즈를 부탁했다. 교복 상의를 입은 학생과 생활복 티셔츠를 입은 학생들,두발은 자유롭게 기르고 있었다. 아주 합리적인 모습이었다.


* 학기말고사도 끝난 (7월9일 방문) 금요일이라서 고1학생들이 학교에서 야영을 하고 있었다. 운동장 바닥에 앉아서 삽겹살을 구워먹고 있는 후배들의 모습이다. 이 야영도 하고 싶은 반만 한다고 했다.
 


** 자 이제 부터 나의 모교인 중앙여고의 차별화된 인성교육을 소개하려고 한다.
 


   1. 한 학기에 3번, 일년에 6번 하는 수양회
 
 
매달 마지막 토요일 2,3교시에 한다. 개심견성하기 위해서 조용히 묵념을 하며 클래식 음악을 듣고 시작을 했었다.

 開心見誠[개심견성] :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야만 참과 진리를 볼 수 있다.
 
1)사회 저명 인사의 강연을 들었다.
 
2009년도 수양회 강사는 다음과 같다. 
 
1. 김인권 신부(천주교 서울대교구 청소년국 사목) : 나는 과연 믿을만 한 사람인가?
2. 김인자 (용문 상담심리 대학원총장) : 행복을 만드는 긍정 심리
3. 정희성(시인, 민족 문학 작가 회의 이사장) : 나의 시, 나의 삶
4. 정소정(건국대학교 부속 병원 의사) :푸른 삶
5. 이선희(한문화 인성교육 한국 뇌호흡 연구소 강사) : 성공하는 학습방법
6. 최광렬 (백석대 교수) : 비전으로 가슴 뛰는 인생을 살아라.
 
 

2) 재학생 중에서 재능있는 학생의 관혁악 연주를 들었다.

 
1970년에 졸업한 내가 아직 좋은 추억으로 기억을 하고 있으니 후배들도 그럴 것이다.
 
 
 
 
   2. 일학년의 가야금 교육
 

내 기억으로는 1967년도 우리가 처음으로 배운 것 같다. 서울대학교 국악과 대학원생이었던 총각 선생님은 우리들 앞에서 늘 볼이 밝그레 해져서 가르쳐 주었다. 처음에는 손가락이 물집이 생겼으나 곧 굳은 살이 생겼다. 2010년 현재도 1학년 후배들이 배우고 있었다.
 

 

 
   3. 단오잔치: 전교생 체육대회
 
 
내가 재학중이던 1967년도 부터 1969년까지는 고1, 고2 전교생이 일년간 음악시간에 합창 연습을 했다. 12월 크리스마스 즈음에 지금의 세종문화회관의 전신인 시민회관 무대에 전교생이 무대에 올라가서 "할렐루야" 를 합창했던 추억이 있다. 해마다 그때에 음악축제를 해서 가족, 친구들을 초청했었다.

시민회관이 불에 탄 후 1973년부터 축제의 방법을 바꾸었다. 음력 5월5일 단오 때 "단오 축제'를 했다. 올해로 39회를 실시했다.
 

1) 우리 민족고유의 민솔놀이 : 그네뛰기, 널뛰기, 줄다리기를 체험한다.
 
 
2) 민속놀이를 현대적 체육과정으로 발전시켰다.
 
3) 스승과 제자가 함께하며 전통문화를 계승시킨다.
 


    4. 생활관 실습 3박4일
 
 
개교 때부터 약 70년 간 실시해 왔으나 생활관 자리가 재개발 계획지로 선정되서 올해 부터 잠은 집에서 잔다고 했다.
 
1) 교육목표 : 서로돕고 배려하는 공동체 경험으로 전체 속의 나의 정체성을 찾게 한다.
기초 생활예절, 전통예절, 다도, 조리 실습, 양성 평등 역할,을 배운다. 



2) 실습학년 : 1학년 전체 학생
 
3) 교육효과 : 상대방에 대한 배려심과 협동심을 실습하여 조화롭게 사회생활에 적응하는 인성을 가르친다. 실습 마지막날에 부모님을 초청해서 한복을 입고 큰 절을 한다.


내가 고1이었던 1967년도에는 아주 무섭고 엄격한 가정선생님이 사감이었다. 아침과 저녁식사를 우리가 직접해서 먹고 학교에 다녔다. 어묵볶음을 해 놓으면 "너의 집에서는 이렇게 하느냐?" 고만 물었는데도 모두 주눅이 들고 자신이 없어서 움추러 들었던 기억이 난다.
방의 가구를 바꾸어 보기, 책을 머리에 얹고 이층에서 아래층으로 걸어 내려오기, 한복 입는 방법, 한복입고 절하기 등이 기억에 난다.
 

5. 무감독고사 실시 [1977년부터 실시]: 34년째 유지해 오고 있다.
 
인터뷰에 응해준 박상학 교감선생님은 아마도 전국에서 유일한 '무감독고사' 학교일 것이라고 했다. 몇개 학교가 시도 해 봤으나 대부분 실패 했다고 한다.
학생들 스스로 학교와 자기 자신에게 한 약속을 지키는 자존심을 유지 하고 있다.
 
 
6. 학교 도서관 주민에게 개방
 
나는 고1이었던 1967년도에 고입 실패로 원하지도 않았던 중앙여고에 진학을 했다. 내가 공부를 하지 않았던 것은 반성하지 않고 학교만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그러나 딱 하나 마음에 드는 곳이 있었다.
 
4층에 있던 도서관은 '개괄식 도서관'으로 학생들 마음대로 서가에서 책을 찾아 읽을 수가 있었다.고1 때 도서관에서 읽었던 주옥같은 국내 문학, 세계문학은 나에게  독서가 형용할 수 없을 정도의 행복을 준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이광수의 '우정', '무정', 김동인의 '운현궁의 봄' 이상의 '날개' 와 난해한 시집 '오감도' , 황순원 전집, 김동리 전집...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폭풍의 언덕'을 읽느라고 밤을 꼬박 새웠다.
언젠가도 쓴 적이 있지만 책에 미쳤었고, 몸도 아파서 마지막 시험을 못 봐서 낙제할 지경도 돼 봤다.

고1 담임선생님은 4.19 데모에 압장 서서 있다가 총에 맞아서 한쪽 폐를 절제한 분이었다.
너무 순하고 어진 노총각 남선생님의 정성어린 배려로 나는 고2에 진학을 했다. 내가 고2에 진급을 하고 박우동 선생님은 보성고등학교로 전근을 갔다
 
그 도서관을 요즈음은 지역 주민과 함께 사용한다고 했다. 주민들에게 책도 대여해준다고 한다. 독서 모임도 여러 팀있다고 들었다.
 

7. 사교육없는 모범학교 선정
 
2010년 모교인 서울중앙여고는 교과부에서 '사교육 없는 모범학교'로 선정되었다.
 
내가 학교 다닐때는 서대문에서 북아현동 뒷길로 걸어서 학교까지 갔다.
그당시 그 등교길의 이층집들은 부촌에 속했다. 강남이 없을 때였고 1960년대 였기 때문일 것이다.

41년만에 찾아 간 모교는 우리가 다닐때 보다 입학률이 저조 하다고 했다.
우리 때는 강남, 강북 구분이 없었다. 지금은 돈이 좀 있는 부유한 집들은 강남으로 이사를 가고 주로 서민들의 자녀가 다닌다고 했다.
 
강남의 학교가 성적 위주의 교육에 몰두하고 있을 때 나의 모교는 묵묵히 학생들의 인성교육을 실천하고 있었다. 내가 다닐 때보다 더 좋고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교감 선생님과의 인터뷰가 끝날 때쯤 나는 재학할 때는 느끼지 못한 모교에 대한 자부심이 생겼다.
 
안타까운 것은 고3때 담임이셨던 전재룡 선생님이 10년 전 지병으로 타계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너무 오래 지방에 살았고 삶의 풍상이 심해서 모교를 아예 잊고 살았던 사실을 깨달았다. 중앙 현관에 역대 교장선생님 사진속에서 국어 선생님이셨던 장관준 선생님의 모습도 반가웠다.
 
** 41년전 제가 다닌 서울 중앙여고는 후기 고등학교였습니다. 일차에서 입시에 실패한 동기들은 풀 죽은 모습으로 학교를 다녔습니다. 41년의 세월을 지내고 보니 그 첫 번째 좌절이 저를 겸손하고 낮아지게 했습니다. 그때는 저렇게 좋은 교육을 받으면서도 그 사실을 몰랐습니다. 모든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인격적으로 대해 주었습니다.

두발 자유를 공약으로 내건 학생 회장 후보가 당선되자 바로 실시하게 해준 윤형빈 교장선생님께 고마움을 느낍니다. 

어찌보면 문제아였던 저를 매일 부르셔서 가능성을 깨닫게 해주시고 믿어준 고1담임 박우동 선생님이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인성교육에 앞서 가는 나의 모교 서울 중앙 여고를 저는 41년만에야 온전히 사랑하게 됐습니다.

인터뷰에 응해주신 박상학 교감선생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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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글
 
 
  1. Favicon of http://blog.daum.net/moga2641 모과

    기사가 노출되지 않아서 송고 시간을 보려고 클릭하다가 그만 제가 추천한 게 됐습니다.
    죄송합니다.
    이해 해주세요. 추천창이 없어서 실수했습니다.(손가락만 있어서ㅠㅠ)

     
  2. Favicon of http://nextgoal.tistory.com 티비의 세상구경

    정말 저렇게 인성교육이 잘되있으면~
    사교육은 전혀 필요도 없을것 같은데요!!!

     
    • Favicon of http://blog.daum.net/moga2641 모과

      제가 41년만에 모교에 갔다가 마음이 든든했습니다.
      가끔 댓글로 중앙여고 좋다고 한 것은 봤습니다.
      고맙습니다.^^

       
  3. Favicon of http://mayjhkim.tistory.com 바람꽃과 솔나리

    훌륭한 스승님이시군요.
    연주회, 전통문화 체험... 열정에 놀랍니다.

    저의 고교시절이 생각 나기도...^^*
    포크댄스... 생활관에서의 예절교육...
    자신도 모르게 인성에 도움이 된 듯 합니다.

     
    • Favicon of http://blog.daum.net/moga2641 모과

      우리가 다니던 70년대는 여학교마다 생활관이 있었던
      것같아요.
      요근래에 세워진 학교에서는 생활관교육을 하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4. Favicon of http://phoebescafe.tistory.com Phoebe Chung

    저도 제가 다니던 모교에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찌 변해 있을지도 궁금하고....
    학교에서의 캠핑... 이렁건 추억에도 오래가죠.^^*

     
  5. Favicon of http://moonlgt2.tistory.com 소박한 독서가

    엄항숙이라는 동기의 동상이 왜 있나요? 혹시 중앙여고생의 이미지를 가장 잘 나타내는 모델?
    그리고 일반 고등학교임에도 불구하고 매주 토요일 2,3교시에 저런 인성교육을 한다니 정말 좋은 학교입니다. 저는 공부보다는 인성교육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니깐요...ㅎ 중앙여고 출신들은 다 반듯할 것 같은 확신이 듭니다. 긴 장문의 포스터 잘 읽고 갑니다~~

     
    • Favicon of http://blog.daum.net/moga2641 모과

      염항숙은 미술부였어요.
      미술선생님이 예쁘고 단정한 그친구를 모델로
      중앙 여고상을 제작했습니다.
      동상이 입고 있는 교복이 그당시 우리들이 입었던 교복입니다.^^

       
  6. Favicon of http://boskim.tistory.com 털보아찌

    이제 공부하려면 교과부 홈페이지에 들려야 겠군요.

     
    • Favicon of http://blog.daum.net/moga2641 모과

      교과부 블로그에 교육정책이 다 있습니다.
      저는 한달에 두번 인터뷰 기사 위주로 송고하고 있습니다.
      자주 들려주세요.^^

       
  7. Favicon of http://blog.jb.go.kr/ 전북의재발견

    요즘 학교에서는 입시위주의 공부만 하는줄 알았는데 이런 학교도 있군요.
    정말 대단하고 존경스럽습니다. 학교는 단순한 지식습득의 공간이 아니라 이런 인성교육까지 하는 곳이 진정한 학교지요,^^

     
    • Favicon of http://blog.daum.net/moga2641 모과

      이런 좋은교육이 전국적으로 퍼져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저의 모교에 대한 자부심과 자랑이 생겼습니다.^^

       
  8. Favicon of http://blog.daum.net/cyprian95 조범

    모교자랑 하실만 하네요!!!
    이런 교육들이 다른 학교에서도 이루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잘보고 갑니다.

     
    • Favicon of http://blog.daum.net/moga2641 모과

      네 어느새 70년의 역사가 됏군요.
      이사장님과 교장선생님이 확고한 교육 철학을 가지고
      좋은 여학교를 만들려고 결심하셨던 것 같습니다.
      친구들과 교문에서 아현로타리까지 늘 걸어서 다녔는데
      이번에 가보니 마을 버스가 다니고 있었습니다.

       
  9. Favicon of http://blog.daum,net/kkr3225 김 또깡

    학교시설이 장난이 아니네요
    잘 되어있고 그러니 학생들이 인성교육이 제대로 되나 봅니다
    잘 보고 갑니다.
    근디,모과님 저는 티스토리 들어가는 자체가 불편해서 잘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없답니다.개선이 되었으면 해요.

     
    • Favicon of http://blog.daum.net/moga2641 모과

      제가 한달에 두번 송고하는 글은 늘 제 블로그에 소개하고 링크를 타고 들어 오게 해 두었습니다.
      저도 댓글을 보고 오거나 제가 구독한 블로그들만 새로 발행한 글을 따라서 찾아 갑니다.^^
      어렵게 찾아 오셔서 고맙습니다.

       
  10. 소머즈

    모교의 교육 방침을 자랑하실만 하네요.
    아마 모과님은 모교의 '자랑스런 선배'로
    언젠가 모교 강단에 초대되어야 하실 듯 합니다.
    역사의 흐름 속에 변치 않는 교육,
    시대의 변천에 따라 발전하는 교육을
    양면으로 생생하게 들려주실 수 있는 분이실 테니까요. ^^

     
    • Favicon of http://blog.daum.net/moga2641 모과

      제가 교과부 블로그기자단 교육부문 5명,과학 5명에 선정됐을 때 느낀 것은 인터뷰 기사를 작성해서 따뜻하고 감동적인 사례를 많이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모교를 41년만에 방문하고 기사를 쓸 수 있어서 정말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좋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11. 또치

    저도 이 학교 졸업생이라 한 마디 하고 갈랍니다...
    죄송하지만...전 이 학교에 대해 좋은 기억이 선배님처럼 많지 않습니다..
    저는 그냥 뺑뺑이로 간 세대이고여....자퇴까지 생각했습니다... 검정고시를 볼까 했져..
    그렇다고 지금 제가 대학을 못 나온 것도 아니고 사회생활을 못 하는 것도 아닙니다..
    멀쩡한 사회의 일원으로 잘 살고 있어요..
    제가 모교를 싫어하는 이유는..
    일단..너무.. 정형적이고..고루한 방식이 싫었습니다...
    고현정이 미스코리아 대회 나간 것 때매 이 학교에서 다른 학교로 전학 간 걸 봄 알 수 있져...
    그 후밴 제가 고3때 고 1이었지요..ㅋㅋ
    수학여행대신 극기훈련을 간 것도 끔찍한 기억 중에 하나고요..
    이건 저뿐 아니라 저의 친구들도 같은 생각이었네요..
    축제를 문 걸어 잠그고 동네 어르신들만 모아 경로 잔치를 했었져....
    남학생 들어올까 봐....두려워서 하신 조치지요....ㅉ
    이 학교......제 딸이면 절대 안 보냅니다... 조신하신 분덜이면 보내세요..

     
    • Favicon of http://blog.daum.net/moga2641 모과

      고현정이 후배였다니 전혀 몰랐던 사실이네요.
      고등학교에서 미스코리아 나가려고 하면 당연히 반대해야지요. 학교에서 학생들을 그렇게 보호 해서 지금의 후배님이 있는 건 아닐런지요?
      멀쩡하게 대학교 에 갔고 멀쩡하게 사회생활을 한다면서요.
      몇년도 졸업 이름이 누군지 당당 하게 밝혀 보지요.
      모교가 있어서 오늘날 또치님이 있겠지요.
      아니면 당당하지 못한 우리 학교 졸업생이 아니든지 둘중에 하나입니다.
      분명한 것은 생각이 무지 짧다는 겁니다.40이 넘은 듯한데.....^^
      광주에 가서 들은니 고현정은 화순출신으로 광주의 미용실에서 추천해서 미스코리아 나갔다고 들었습니다.
      화순으로 전학을 갔나요?

       
  12. 길선

    여기 남자 선생님들 성추행범들이었습니다

    박치영 한문선생
    - 자기 집에서 누드로 있는다고 학생들 앞에서 떠벌..

    공수창 체육선생
    - 내 친구 인사하는데 손으로 뱃살 주물럭거리며 음흉하게 웃고 지나감

    서영창 또래심리 선생
    - 무슨 여자애들 바닥에 앉는 거 시키면서 내 친구 치마 돌아가면서 속옷 보이는 걸 보더니 검찍스런 얼굴로 돌변함

    나동철 국사선생...
    - 무슨 프린트물을 한권의 노트로 엮으라더니 안가져왔다하면 그날 교실 뒤로 손으로 벽 짚게 하고서는 대자로 나무몽둥이로 여자애들 엉덩이 죽살나게 때림

    백광기 미술선생님
    - 본인 입으로 여학생 말 안들어서 속옷에 피가 철벅철벅하게 때려서 그 여학생 울고 집에 갔다고 본인 입으로 그럼..

    여학생들을 은근히 여자나 애인으로 봄..

    집에 지 마누라놔두고 뭐하는 짓? 했음

    그 밖에 좋으셨던 분들
    박상학 물리선생님
    류순희 음악선생님
    김희태 체육선생님 (인간성은 좋으나 가끔 속옷을 안입었는지 속옷자국이 안보이게 바지를 쭉 땡기더라고 반 애들이 뒷모습 봤다고.. 어느날은
    윤락가에서 나오더니 대문안에 대고 '야 니가 그렇게 잘났어?' 하고 싸우던걸 애들이 야자끝나고 집에 가다가 목격했다고 함)
    이름은 기억 안나는데 어느 안경쓴 국어선생님
    박찬호 미술선생님 (유머스럽고 정말 착하고 좋으신 감사하신 분)
    도서관에 계신 최영희? 30년간 계셨던 사서쪽 선생님 (항상 책 빌리러 가면 친절히 대해주시던...)

    아무튼

    사립이다
    우리는 촌지를 안받는 깨끗한 학교다

    자화자찬이었습니다만
    여학생들 성추행 갈취로 셀프 촌지 걷어가시고
    사립이라고 무슨 황순덕 할머니 추모글을 쓰라고
    조기연 국어선생님 (말로 웃기는 게 수준있는 거다 말한 무개념 선생)

    두꺼운 노란책들을 주셨어요 그거 다 읽고 쓰라고..

    두장 읽다 던져버렸습니다 최순덕씨가 신이야?
    혼자 학교세웠나? 동지들과 다 같이 세웠지..

    에레
    그 학교에서 비웃는 동명여자중학교는 성추행은 없었어요.. 여긴 참 챙피스런 모교임

    서울 장안에
    A급도 아니고 B급으로 들어가는 수준이던데..

    아무리 좋은 영화라도
    음악 없으면 말짱 꽝이다? 무성영화가 뭔지는 아시나요?

    어느 성교육 간호 보건 선생님.. (안경쓴 퍼머머리..)

    흑인 비하...(난 성교육 시간에 거의 99%는 엎드려 잤습니다 듣기 싫었습니다 내가 정말 알고 싶었던 것은 히틀러와 고대 마녀 등의 제 2차 세계대전 같은 이상한 세계 역사 등이었습니다 애들 어우 야해.. 하면서 두눈 번쩍 뜨고 열심히 듣고 보던.. 누가 뭐랬냐고 일부러 왜 가식과 위선을 떨어? 얘들 때문에 더 듣기 싫었음..)

    내 교육은
    교실이 아닌 도서관이었던 듯요...

    거기 책들이 선생들과 교과서보다 더 나았습니다

    아무튼
    충무로에서 영화관계자들이 여기를 방문했다죠

    학생들끼리의 학창시절 이야기를 그리는 영화를 찍을 련다...

    해서 나온 것이

    <여고 괴담>... 시리즈의 최초 1탄 나오는 마룻바닥하며 다 여기학교 찍은 겁니다

    후에 학교는 리모델링 보수공사를 했었어요

    그래서 현재 연녹색 건물이 되신 거죠..

    현 모습 이전 모습이
    그 영화 속에 남아있습니다....

    내 인생의
    드러운 벌레같은 학교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