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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 국민서포터즈

무턱대고 나선 내 생애 첫 봉사활동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8. 24. 07:00

대한민국에 사는 중, 고등학생이라면 봉사 활동이라는 말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요즘은 거의 모든 학교가 봉사 활동을 의무적으로 하게 해서 수행 점수를 주는 걸로 알고 있다. 나 또한 방학을 맞아 처음 해보는 봉사활동을 위해 이른 아침 1호선 지하철에 몸을 싣고, 구로구 개봉동에 있는 이름도 예쁜 '곰두리 무료 급식소'로 향했다.

사실 집 가까운 곳에서 봉사활동을 하려고 1주일 전부터 인터넷 사이트를 뒤져, 여러 군데 검색하고 접수 신청을 했건만, 이상하게 담당 연락자와 연락이 안 되고 접수 신청은 불발로 끝나고 말았다. 결국, 집 근처가 아닌 지하철로 1시간 거리의 개봉동에서, 어렵게 봉사 활동 자리를 찾아 떠나게 된 것이다. 주민센터와 치안센터를 헷갈려 한참을 헤맸지만,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곰두리 무료 급식소를 찾아냈다!

<곰두리 무료 급식소>



건물 안에 무료 급식소가 있을 줄 알았는데, 급식소 건물은 공사장에서 쓰는 임시 건물이었다. 그리고 처음 맞아주신 분은 뼈가 앙상하게 드러나서 걸음도 불편하신 쭈뼛쭈뼛 걷는 할아버지였다. 순간 나는 봉사를 받아야 할 것 같은, 나이 많고 약한 할아버지께서, 무료급식소를 운영하고 계신다는 사실에 당혹스러움을 느꼈다. 그리고 문득 봉사 활동을 먼저 한 친구들 이야기가 떠올랐다.

아이들은 봉사 활동 이야기가 나오면 귀찮아하고, 그냥 서서 시간만 때웠다는 이야기, 간혹가다 편법을 쓰는 친구들 이야기가 떠올랐다. 많은 아이들이 봉사 활동하면 단순히 점수를 위해 억지로 해야만 하는 생각이 꽉 박혀 있는 것 같은데, 그런 식으로 하려면 안 하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을까? 나는 무료 급식소 바닥을 물걸레질하면서 많은 생각에 잠겼다. 마침 비슷한 또래의 남매가 막 도착하였는데, 그 둘은 의자에 앉아서 핸드폰에 고개를 붙박고 게임에 열중하였다.

나는 급식소 바닥과 식탁 의자를 모두 땀 흘려 닦았다. 낡은 조리실에서는 할머니들이 버섯을 다듬고 급식을 준비하기 바빴는데, 그때까지 아직 무료 급식을 먹으러 오는 사람은 없었다. 버섯을 다 씻으신 한 할머니가 물어보셨다. "어이, 학생, 어디서 왔어?", "아, 저는 종로구 누하동이라고 사직공원 있는 쪽에서 왔어요.", "아니, 그런 먼 데에서 혼자 왔다고? 근처에 친척 집 있어?", "아니요, 그냥 혼자 왔습니다.", "학교는 어디야? 몇 학년이고?", "청운 중학교 1학년입니다!", "아니, 중학교 1학년이 이렇게나 커? 아따, 큰 것이 일도 잘하는 구마!" 하시는 할머니의 구수한 목소리가 어두운 급식소 안에 민요 가락처럼 퍼졌다.

나는 그 말을 듣고 기분이 좋아져서 기계처럼 휙휙~ 의자와 식탁을 벅벅 닦았다. 또 그때 어떤 할머니 한 분이 뒷짐을 지고 급식소 안으로 들어오셨다. "어디, 오늘은 모야, 그려? 잘 되고 있어?" 조리하시던 할머니는 자주 만나는 친구처럼 "어여, 어서 와! 근데 아직 조금 걸릴 것 같아. 여기 있는 학생은 봉사활동 하러 왔는데, 아주 그냥 일을 열심히 잘해!" 하셨다. 나는 베시시~ 입꼬리에 웃음이 걸쳐졌다. 그 뒤로 고소하고 식욕을 자극하는 어묵볶음 냄새가 급식소를 빠져나가 온 동네에 퍼졌고, 어두웠던 급식소에 불을 밝히듯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급식소 내부>


무료 급식을 하는 사람들은 주로 노인들이셨는데, 할아버지, 할머니들께서는 나를 보고 "아, 크네! 일도 잘해!", "아따, 키는 고등학생인데 얼굴은 어려!". '일도 퍼떡퍼떡 잘하네!" 하시며 입이 마르게 칭찬하셨다. 뭐, 칭찬받으려 여기 온 것은 아니지만, 괜히 어깨가 으쓱하고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나보다 조금 늦게 온 남매는 계속 의자에 앉아 핸드폰 게임을 두들기고 있으니 조금 민망했다. 나중에 그 둘이 돌아가고 난 뒤, 급식실에서 조리하시는 할머니들 말씀이, 대부분의 봉사 하러 오는 학생들이 그냥 시간만 때우다 간다고 하셨다. 나는 씁쓸함을 느꼈다.

밥이 거의 다 되어갈 무렵, 나도 급식소 청소가 끝나 잠시 쉬는 시간을 가졌다. 그때 조리하는 할머니께서 "학생, 이리 좀 와 봐!" 하셨다. 꼭 엄마가 빨래 삶을 때 쓰는 거대한 양철 솥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고, 안에는 아직도 거품이 보글보글 무섭게 올라오는 미역국이 가득 담겨 있었다. 나는 할아버지 한 분이랑 함께 솥을 들어, 급식을 먹는 사람들이 국자로 뜰 수 있도록, 행주가 깔린 의자에 올려놓는 일을 하였다. 할아버지는 팔에 울긋불긋 핏줄이 섰다. 나와 할아버지는 두 방향에서 손에 물이 묻은 걸레를 놓고 솥을 쥐었다. 할아버지께서는 조금 쉰 목소리로 "조심혀서 들어야딘다! 뜨겁다고 놓으면 큰일 나! 꼭 잡아라!" 하셨다.

"하나아, 두우울, 세에엣~!" 하는 할머니의 구령과 함께 나와 할아버지는 동시에 두 손에 힘을 꽉 주고 솥을 들었다. 찰랑거리는 뜨거운 미역국 방울이 내 손에 튀었지만, 난 별로 상관하지 않고, 준비된 의자 위에 올려놓는 데에 성공했다. 나는 이제 노인분들과 함께 밥을 먹을 것이다. 오늘은 원래 오던 사람의 절반밖에 오지 않아서 식사가 많이 남았다. 그래서 나는 한 그릇 푸짐하게 얻어먹을 수 있었다. 버섯볶음, 어묵 볶음, 김치, 미역국으로 이루어진 정성이 가득 들어간 밥은 꿀맛이었다. 아까 그 핸드폰 게임만 하던 남매도 밥을 먹었다. 조리사 할머니께서는 자꾸 내 식판에 밥과 국을 더 담아주려 하셨다. 나는 숨쉬기도 힘들 만큼 먹었다.

점심을 드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하나하나 빠져나가고 다시 급식소에는 고요함이 흘렀다. 나는 조리사 할머니를 도와 설거지 한 식판과 식기 뒷정리를 도와드리고, "제가 뭐 더 도와드릴 일 없을까요?" 했지만, "으이~ 이젠 없어! 엄마, 아빠 걱정하겠다. 빨리 가 봐! 다음번에 또 오고이~!" 하고 웃으며 나를 보내주셨다. 어느덧 나는 할아버지, 할머니와 비슷한 말투로 "안녕히 계셔요이~ 건강하시고요오~"하고 인사하였다. 봉사활동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은 마음이 꽉 채워져 날아갈 것 같았다.

사실 이번에는 봉사활동 서류도 받지 않고 무턱대고 가서 봉사했기 때문에, 학교에서는 봉사점수를 받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나 자신에 뿌듯한 것에 만족하고, 한 가지 씁쓸한 점이 깊게 남는다. 가장 봉사활동을 받아야 할 대상 중에 1순위가 노약자들 아닌가? 그런데 그런 노인들이 시설도 열악한 환경에서 무료 급식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니, 뭔가 앞뒤가 안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고, 힘세고 팔팔한 젊은 사람들의 참여가 절실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또 학교에서 봉사 활동에 대해 생각해보지도 않던 아이들이, 의무적으로 시킨다고 봉사가 자발적으로 이루어질까?

요즘 우리 사회는 너무 결과만을 추구하는 것 같고, 우리는 어릴 때부터 약자에 대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문화 속에서 살아왔던 것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봉사활동마저 의무감속에서 해야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결과를 위해 억지로 시키는, 해야 하는 봉사 활동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요즘 내 주변 아이들은 봉사활동을 '내가 이런 걸 누구 좋으라고 해야 돼?' 하며 불평할 정도로 스스로 피해의식에 젖어 있다. 성적과 입시 경쟁에 대한 피해의식이 사회적 약자를 도와주는 기쁨과 행복도 빼앗아버린 것 같다. 어른들은 봉사활동으로 성적을 매기지 말고, 학생들이 봉사활동을 찾아 스스로 걸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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