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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나무심기, 미신이 아니라 과학이다 본문

~2016년 교육부 이야기/신기한 과학세계

조선의 나무심기, 미신이 아니라 과학이다

대한민국 교육부 2010. 5. 11. 10:16
산에는 아직 앙상한 나무숲 사이로 진달래가 분홍빛 군락을 이루더니, 길가엔 최근 부쩍 늘어난 벚꽃이 흐드러지게 자태를 뽐내고, 흐르던 시선이 문득 멈추는 곳에는 탐스러운 목련이 만개하고 있다. 최근 가로수로 많이 심어지는 벚꽃이 일본의 상징처럼 알려져 있으나 공식적인 일본의 국화는 정해진 것이 없으며, 벚꽃중에 가장 멋져 봄의 여왕으로 불리는 왕벚꽃의 자생지는 우리나라 제주도인 것으로 밝혀졌다.

우리나라에서 정원수로 나무가 심어지기 시작한 때는 언제일까? 기록에 의하면 BC180년 고조선의 제세왕 시절 궁원에 복숭아와 배꽃(桃,梨)가 만발했다는 기록이 있다. 고구려 안학궁에는 인공으로 못과 산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고, 동명왕릉 서쪽 진주지에는 봉례, 방장, 영주, 호량을 뜻하는 4개의 섬을 두었다고 한다. 고구려시절 궁궐의 정원을 관리하던 관원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신라에는 식대부, 고려에는 내원서, 조선시대에는 동산색, 상림원, 장원서라는 궁원 관리기구가 있었다. 

삼국사기의 백제 진사왕 7년 391년 춘정월 조에 의하면 궁실을 중수하는 한편 못을 파고 그 흙으로 인공산을 만들었으며 진기한 물새와 갖가지 화초를 길렀다는 기록이 있다. 딱히 이러한 기록이 아니더라도 경주의 안압지를 보면 조상들의 조경실력이 얼마나 대단했는가를 알 수 있다.

우리 전통의 조경은 중국이나 일본의 조경과는 다르며 식물을 다루는 방법도 다르다. 물론 지리적 조건이나 기후, 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나타난 당연한 현상일 것이다. 조경에 담겨 있는 사상, 인간대비 규모나 가지치기(剪定) 등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기회로 미루고, 꽃피는 이 봄에 ^^ 우리 조상들이 식물을 얼마나 과학적으로 활용했는가 하는 예를 찾아보기로 하겠다.
 


   1. 식물 이용에 관한 서적
 

먼저 원예나 식물에 관한 책을 살펴보면 조선 세조 때 인물인 강희안이 지은 「양화소록」에는 화목(花木)을 9품(品)으로 분류해 조경 식물의 가치를 나누었으며, 유박이 지은 화훼전문서인 「화암수록」에는 ‘화목구등품’을 언급하면서 외국의 진기한 식물을 귀하게 여기는 풍조와는 달리 조선의 식물이 아니면 책에 싣지 않았다.

홍만선의 「산림경제」와 서유구의 「임원십육지」에는 조선시대에 심었던 수종을 열거했는데, 나무를 심는 위치와 배치에 관련해 의, 기(宜, 忌)로 나누고 권장하거나 금기시하였다. 이것을 미신과 연관지어 생각하는 경향이 있으나, 잘 따져보면 커다란 나무는 북쪽에 심어 바람을 막고, 남쪽에는 심지 않아 채광, 통풍, 명암을 고려한 것이며, 진딧물이 잘 발생하는 복숭아는 우물가에 심지 않아 위생을 고려했고, 느릅나무는 뿌리가 왕성하게 뻗기에 주변에 곡식을 심으면 곡식이 잘 자라지 않는다는 등의 과학적인 이유가 있었다.

위에서 언급한 우리나라 최초의 원예 서적인 「양화소록」에는 꽃을 화분에 심는 법, 꽃을 취하는 법, 화분 놓는 법, 꽃 저장하는 법, 꽃을 기르는 법 등이 수록되어 있으며, 연못이 없을 때 연꽃을 심는 법 같은 실용적인 내용도 들어 있고, 홍련과 백련을 같이 심으면 한쪽만 성해지니 나누어 심어야 한다는 경험적 내용도 들어있다.

이러한 원예전문 서적이 아닌 역사서나 실록, 문집에서도 우리 조상이 식물을 어떻게 지혜롭게 이용하였는가 하는 기록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2. 식물의 특성을 이용한 예 - 방화수림대(防火樹林帶)
 

우리 조상은 음지에서 잘 자라는 나무, 양지에서 잘 자라는 나무, 습지에서 잘 자라는 나무, 건조한 땅에서 잘사는 나무 등을 나누어 적재적소에 심는 슬기로움을 보였는데, 그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예가 방화수림대(防火樹林帶)다.

우리나라의 어느 절이든 화재를 당하지 않은 절을 찾아보긴 어렵다. 지난 2005년 산불로 폐허가 되었던 낙산사만 해도 조선왕조 5백 년 동안 무려 11차례의 화재를 겪었다.

방화수림대란 산불이 났을 때 불길이 사찰 경내로 내려오지 못하게 하고, 사찰에서 난 불이 산으로 번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하여 사찰과 숲 사이에 불에 잘 타지 않는 나무띠를 인공적으로 조성한 공간을 말한다. 먼저 사찰의 전각 뒤쪽 15~20m 공간의 숲을 완전히 제거하여 화소(火巢)를 조성하고 화소 위쪽에다 불에 잘 타지 않는 나무를 심어 방화수림대를 조성한다. 

현재 사찰에 남아있는 방화수림대는 고창 선운사에 동백나무숲이 있고, 화엄사 각황전 뒤에 동백나무와 참나무를 심은 방화수림대가 남아 있다. 나주 불회사 방화수림대는 아래쪽에서 위로 올라가며 잔디, 차나무, 동백나무, 비자나무, 대나무, 소나무, 혼효림이 층을 이루며 자리하고 있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방화수림 띠를 이루고 있다. 사천 다솔사는 화소 공간에 차나무를 심었는데 차나무는 동백나무와 같은 과에 속한다.
 

차나무를 이용한 사천 다솔사의 방화수림대 ⓒ네이버이미지검색


  
방화수림으로 이용되는 나무 - 동백나무, 아왜나무, 참식나무, 광나무, 사스레피나무, 호랑가시나무, 굴거리나무, 붓순나무, 후피향나무, 가시나무, 잎갈나무, 사철나무, 굴참나무, 불이 나면 줄기에서 물이 뿜어져 나온다 하여 [화두목]이라 불리는 은행나무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러한 내화수종은 산불 이후에 다른 나무들보다 회생력이 강하다는 장점도 있다. 음지에서 잘 자라는 음수나 친수성 나무인 고로쇠나무, 피나무, 물푸레나무, 황철나무, 고광나무, 음나무 등도 비교적 화재에 강하다.
 
화소(火巢) - 능원(陵園)※이나 사찰의 산불을 막기 위해, 또는 성곽의 외곽부분에 적군이 숨지 못하도록 나무나 풀이 나지 않게 만들어 공지로 유지해 두는 곳
※  능(陵): 왕과 왕비의 무덤
     원(園): 왕세자와 왕세자비, 왕의 사친 무덤
     묘(墓): 그 밖의 무덤
     총(塚): 왕릉으로 추정되지만 주인을 알 수 없는 무덤
     분(墳): 주인을 알 수 없는 기타 무덤
 
 무덤가에 나무를 심을 때도 아무 것이나 심지 않았는데 중종실록 예기에 보면 소나무는 뿌리가 곧게 뻗으며 장수하기에 천자의 능에는 소나무를 제후의 능에는 잣나무를 대부의 묘에는 밤나무를 선비의 묘에는 느티나무를 서인의 무덤에는 나무를 식재하지 않았다고 쓰여 있다.


 
   3. 그 밖의 식물 이용 사례
 

인공조림
함양의 마을을 가로지르는 위천은 제방을 아무리 높게 쌓아도 해마다 여름철이면 수량을 감당하지 못하고 범람하여 함양을 물바다로 만들곤 하였다. 최치원이 태수로 부임하여 이를 보고 물길을 막는 방법이 아니라 위천 상류의 물을 한 갈래가 아닌 여러 갈래로 나눠, 인공수림의 둘레로 물길을 돌림으로써 수량의 분산을 꾀하여 유속을 늦추는 방법을 썼다. 예전에는 대관림(大館林)이라고 불렀으나 이 숲의 가운데 부분이 홍수로 무너짐에 따라 상림(上林)과 하림(下林)으로 나뉘게 되었고 하림이 유실되어 지금은 상림만 남아있다.
 

함양상림 ⓒ네이버이미지검색


 
이정표 후자
나무로 이정표의 역할을 하도록 하는 것으로 10리마다 소나무, 밤나무, 배나무, 회화나무를 심고 30리마다 느릅나무, 버드나무를 심어 거리를 알 수 있게 한 것을 후자라고 한다. (나무가 아닌 흙을 쌓아 거리를 새긴 것도 있었다.)
 
반경(槃景)
백제 왕실에서 화분에 산수경관을 축경하여 감상하던 것으로 후에 일본으로 전해졌다고 보인다.
 
마을숲
마을숲은 풍수지리를 완성하는 수단이기도 하며 솟대, 장승 등 문화적 장치가 설치되는 공간이기도 했지만, 휴양과 위락공원의 기능을 가지기도 했다. 수, 읍수, 동수, 입수, 쑤, 숲쟁이 등으로 불리며 수구막이나 풍수지리적 비보·엽승의 기능으로 설치되기도 했다.
  
울타리로 이용

바자울 ⓒ네이버이미지검색

① 취병 : 관목류, 덩굴성 식물 등을 심어 가지를 틀어 올려 병풍 모양으로 만든 울타리를 말한다. 동궐도에 보면 부용지 권역에 취병이 그러져 있다.
② 생울타리 : 관목류 등 살아있는 식물을 심어 울타리를 만드는 것으로 무궁화, 대나무, 국화, 가시가 있는 식물을 많이 썼다.
③ 바자울 : 싸리나무나 갈대, 대나무, 소나무 가지, 억새, 왕골 등으로 울타리를 엮어 만든 것으로 따뜻한 정감을 주는 자연스러움이 있고 계절마다 다른 변화를 줄 수 있다.
 

100년만에 복원된 창덕궁 주합루앞 취병 ⓒ이인옥


 
「임원경제지」와 「산림경제」에 쓰여 있는 울타리 세우는 법을 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대지의 사방 가장자리를 깊이와 폭이 2척이 되게 구덩이를 판다. 멧대추가 익기를 기다렸다가 그 씨를 많이 채취하여 파놓은 구덩이에 심고 싹이 튼 다음 잘 보호한다. 1년 후에 높이가 3치 정도 자라면 이듬해 봄에 가로 자란 가지는 잘라내고, 가시는 남겨둔다. 겨울을 지내고 난 다음에 줄기를 새끼로 엮어서 울타리를 만든다. 이때 적당하게 묶어서 엮는다. 그다음 해에 더욱 높이 자라면 도적을 막을 수 있다.

우리의 조상은 자연과 어우러져 공존을 해 나가는 지혜로는 생활 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과학의 엔트로피라는 개념으로 볼 때도 이러한 생활방식은 넓은 시각과 긴 안목을 가진 고도의 문화적 방법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이렇듯 우수한 우리 조상의 철학과 생활 방식을 우리는 미개한 것으로 치부하고 모두 버리려고만 하는 시절이 있었다. 그것을 생각하면 안타까움을 넘어서 부끄러운 생각이 든다. 후손으로서 우리는 마땅히 조상의 슬기로운 문화를 발굴 복원하고, 사상을 계승 발전시켜야 할 의무가 있지 않을까?

 
 참고문헌
1. 동양조경사 - 한국조경학회 - 문운당
2. 한국정원문화 - 민경현 - 예정산업사
3. 한국의 전통조경 - 홍광표 이상운 - 동국대학교 출판부
4. 조경설계 - 신상섭 - 한국문화재보호재단
5. 한국전통조경의 이해 - 정재훈 - 한국문화재보호재단
6. 마을숲과 명승 - 김학범 - 한국문화재보호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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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DEA팩토리 이인옥 기자 | jet33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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